085. 동아시아 금융위기 (2)
1996년.
이 무렵, 한국은 상당한 호황이었다.
호황의 이유는 다양했다.
일본이 망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기 위해 저금리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제로금리 단위까지 내린 것은 아니었다.)과 함께 재정지출의 확대, 그리고 IT버블에 편승한 기사회생을 노리는 가운데,
한국은 그런 일본의 저금리 기조를 통해 흘러나온 돈을 초단기로 빌려 훨씬 더 싼 이자를 물고 돈을 차입해와서 동남아 등지에 고액의 이자를 붙여 다시 대출해주는 돈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더해,
태준이 일으킨 파운드화 공격에서 작게나마 외환을 얻은 점
태준이 일으킨 정보통신보급 사업,
태준이 부추긴 불량 건축물에 대한 재건축 붐도 이런 호황의 이유가 되었다.
이때의 한국의 자금 흐름을 놓고 보면...
태준의 정보통신사업과 국가주도의 불량 건축물 재건축 사업등으로 원화는 끊임없이 돌고 있었고,
파운드화 공격의 수익금과 일본쪽 자금으로 받은 대출등은 한국에 머무를 새 없이 장부상으로만 기록되어 고스란히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출로 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돈의 흐름이 만들어낸 것은,
하늘 높이 솟아오른 한국의 자산과 함께
마리아나 해구보다 더 깊게 내려앉은 한국의 외환보유고와
그리고 그 주위로 장식처럼 쌓인 대기업들의 부채였다.
국가도, 기업도,
심지어 그 안에 속한 국민들과 사원들 모두가 이 호황이 영원할 것 처럼 여겼기에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 꼴을 지켜보던 태준은....
"생각보다 심각한데...?"
'국뽕'이라는 약에 취해 한심한 희망사항을 예측이랍시고 늘어놓는 경제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어보였다.
"뭐가 심각해요?"
태준의 혼잣말을 들은 민영이 서류를 내려놓고 말하자, 태준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아뇨. 별일은 아니고요."
"별일이 아닌데 심각해요?"
"심각이야 한데 별일이 아니예요."
태준의 이어진 말에 민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으려는 순간.
태준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해결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태준은 슬쩍 자신의 책상 한켠에 놓인 오오와다의 보고서를 들어보고는 생각했다.
'기어이 일어나는 구만.... IMF가. 퀀텀펀드가 엮여 들어갔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버블로 털어먹었는데도 아직 여력이 남았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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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다가올 금융위기를 어떻게 막을까 고민하던 그 시각.
태준에 의해 뜬금없이 UEP(유니버스 엔터 플래닛)의 대표로 취임하게 된 앤은 태준이 잔뜩 벌여놓은 일들의 마무리를 지으며....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다.
"뭐가 이해가 가야 말이지....! 방송사도 아닌데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심지어 그걸 공짜로 그냥 유니버스넷에 올린다니...
이건 사서 적자를 감수하는 건데 이걸 왜 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한 효과가 뭔지를 알아야 진행하던 말던 하지....!
이대로는 계속 적자만 나는데 이걸 이대로 운영해도 되는거야 진짜?
사장자리 준다고 좋다고 받은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저... 사장님? 오엔터 쪽 회의시간이...."
"아!!! 진짜!!! 아예 그냥 회사를 합쳐버려야지...! 몸이 남아나질 않겠어 진짜!"
그렇게 성을 내는 와중에도 밀려드는 서류를 처리해나가던 앤은 미리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리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서에게 말을 이었다.
"건너가죠."
"예."
그렇게 바쁘게 반대편 건물에 위치한 오엔터(오브라이언 가문의 동아시아 지역 음반유통사)로 건너가려던 그때, 황급히 직원하나가 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 지금 좀 와보셔야겠습니다! 유니버스넷에...!"
그 말에 황급히 직원을 따라 되돌아간 앤은 직원이 미리 켜둔 컴퓨터와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영상, 그리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는 직원에게 되물었다.
"... 리플이 많군요."
그 말에 직원은 앤이 한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댓글들을 하나하나 영어로 말해주기 시작했다.
"M플래닛 1화, 진짜 대단하네. 문화방송에서 하는 각 지사 가요프로그램 수준보다 살짝 아래일줄 알았는데 KBS 가요톱텐이나 서울민방 생방송 TV가요 20보다 더 나은 수준이면.... 대단하네."
"다른 소속사는 못나오고 오로지 UEP소속 가수들만 나오는 건데, 화려함이 진짜 대단하더라구요."
"이번에 나온 신인 아무도 못 봤나? 디타이틀, MRG 전부 잘 생겼던데... 정식 데뷔는 아니고, 1화 스페셜로 데뷔 전에 얼굴 알리려고 나왔다는데..."
"D플래닛도 재미있었음. 정도연, 최민식, 그리고 이선재가 연극 리어왕 하던데... 만날 드라마에서만 보던 얼굴이 연극하니까 신기했음."
"뒤 이어 이어진 햄릿도 재미있었지. 햄릿은 신인들로 구성했다던데 송진경 키 엄청 크더라."
그렇게 쭉 직원이 이어지는 댓글들을 번역에 읊어주자, 앤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반응이 아주 좋네요."
"예. 실제로 조회수도... 지금 M플래닛이 조회수 45만... D플래닛이 조회수 14만입니다."
그 말에 앤은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공개된지 하루 밖에 안되지 않았나요?"
"예. 유니버스넷에 E플래닛이라고 별도의 페이지를 받은 것도 있고, 중간중간 배너 광고가 들어갔던 게 주효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D플래닛의 경우에는..."
그렇게 말을 잠시 끌던 직원이 또 다시 유니버스넷 검색창에 검색을 하더니 이내 기사 하나를 띄워 놓고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번역해주기 시작했다.
"한국 연극계. 유니버스넷에서 살아나나. 유니버스넷의 광폭 행보. 자체 예능으로 시청자들 TV대신 PC본다. 스포츠신라 차성용 기자."
"... 그게 헤드라인인가요?"
"예. 심지어 저희가 따로 요청한 기사도 아닙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제 지면에 나온 기사를 곧바로 유니버스 넷에 올리기만 한 겁니다."
"... 잠시... 잠시만요."
앤은 상상이상의 반응과 상상 이상의 파급력에 잠시 그 자리에 선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태준이 왜 나한테 사장자리를 줬는지 이제 알겠네. 직접 보고 선택하라는 거야... 우리 오브라이언 가문이 유니버스에 탈지 말지를....'
그렇게 짧은 생각 끝에 앤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오엔터로 가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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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오오와다는 갑작스레 걸려온 태준의 전화에 놀라 되물었지만, 태준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지금부터 최대한 달러를 모으세요."
"달러... 말씀이십니까?"
"예. 슬슬 준비를 해야할 거 같거든요."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오오와다의 말에 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에 대고 작게 말을 이었다.
"김응삼 대통령께서 무리수를 둘 것 같거든요."
"그게 무슨...."
"최근 한국 경제가 활황이지 않습니까?"
"예. 종종 미국에서도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면서 특집기사를 자주 내주고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그게 사상누각이거든요. 전부 빚져서 이뤄놓은 겁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전체 자산도 크게 늘지 않았습니까?"
"늘었지요. 문제는... 여기서 멈추면 다행인데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보니 계속 일을 벌이는게 문제입니다.
이번에 뉴스를 보니 김응삼 대통령이 1인당 GDP가 1만 5천달러를 넘겼고, 경제 순위도 세계 10위권에 들어섰다면서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더군요."
"그 말은... OECD도 가입을 하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예.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입장발표를 돌려 말한겁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태준의 말에 오오와다가 슬쩍 인상을 쓰더니 이내 태준이 말한 '빚'에 초점을 맞추고는 답을 내렸다.
"설마... 국가 신용 때문에...?!"
"맞습니다.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 지위를 확고히 굳히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차관을 얻어올 수 있지요. 그 차관을 이용해서 정부는 시중 은행과 종금사에 돈놀이를 시킬거구요.
잘만 굴러가면 홍콩같은 거대한 자본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거라는 판단일겁니다. 문제는...."
"잘 굴러갈리가 없다는 거군요."
"예. 외환 보유고를 너무 낮게 잡고 있어요. 제 예상보다도 더."
태준의 예상이라는 것은 곧, 태준이 살다온 전생의 경험.
그 경험 속, 96년의 대한민국 또한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며 잘 나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원 역사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는 GDP 1만 3천에 경제규모 역시 11위-12위를 왔다갔다 거리는 수준.
그런데 태준이 개입하며,
대한민국의 경제는 'IT'라 불리는 신사업과 태준이 보여준 선진 금융기법이라는 이름의 약탈적 금융경제에 눈을 뜨게 되면서 한 껏 부풀어오르기 시작했고,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결과....
"당장 외국에 지불해야할 달러만 가볍게 쥐고 나머지는 전부 동남아에 쏟아붓고 있으니... 채권만 늘어나고 돈은 없어지는 날이 곧 올 겁니다."
대한민국은 고작 외환보유고를 200억달러 선에서 유지한 채 엄청난 돈놀이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온 것이었다. 원 역사보다 100억달러는 더 적은 수치였다.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태준의 말을 들은 오오와다는...
"양상만 다르지 이거 완전히...."
"예. 파운드화 공격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리만 놓고 보면 말이죠. 한 국가의 시장에서 외환은 계속 빼고, 그 국가의 통화량만 미친듯이 늘린다.
그렇게 늘린 통화량으로 한 국가의 모든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헤지펀드가 해도 어떻게든 막아야할 짓을 국가가 전체가 돈놀이에 미쳐서 하고 있는 꼴입니다.
그리고 그 짓거릴 더 하겠다고 OECD에 가입해서 신용 한도를 늘리는 꼴이지요."
"그럼 달러를 모아두라고 하시는건... 이를 막기 위함입니까?"
"아뇨. 그럴리가요. 다만 하다보니 막아지는 것이지요."
그 말에 오오와다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자 태준이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이 부실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덩치가 큰 만큼 어설프게 공격하지 않을겁니다."
"그야... 경제 10위권의 대국이니..."
"그럼 어딜 치고 오겠습니까?"
"... 설마. 한국의 채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들어온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면 그 채권의 원천 자금인 일본까지도 잘 하면 돈을 떼일 수 있으니 한 번에 경제 2위, 10위를 털어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태국을 공격할 겁니다."
"공격 방식은.... 역시? 환 시장 공격이겠군요."
오오와다의 말에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잔뜩 모은 달러로 공격이 들어온 순간 전부 달러를 바트로 바꾸고 바트를 담보로 태국 환 시장에 달러를 대출 받아 다시 달러를 풀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 말에 오오와다는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공격 들어온 헤지펀드의 손해를 전부 우리가 먹어치울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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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를 마친 퀀텀펀드에서는 태국의 바트화 공격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시작할까요?"
"그래."
"시작! 전부 바트화 팔아!"
바트화에 대한 공격에 들어갔다.
그렇게 바트화 공격이 시작된 그 순간 손의정이 헐레벌떡 트레이딩 룸에 들어와서는 소로스에게 말을 이었다.
"스톱! 스톱!!!"
"왜 그러지? 미스터 손."
"지금. 지금 막 KTJC에서 포지션 오픈을 했습니다."
그 말에 소로스가 놀란 표정으로 옆에 있던 컴퓨터로 다가가자 손의정이 빠르게 컴퓨터를 조작해 유니버스넷을 열어보였다.
약간의 버퍼링이 지나고 영상하나가 재생된 순간.
소로스는 이마를 짚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자가.... 무슨 짓을...."
그렇게 태준이 얼굴마담으로 나와서 발표한 것은 소로스에게도,
월가의 모든 트레이더들에게도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