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플랫폼 (7)
태준의 호의로 태준 소유의 게임업체로 연수파견을 가게된 김성주와 손재겸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미스터 킴. 서버 시스템은...."
"손상. 퀄리티는...."
미국으로 간 김성주는 본인보다 한참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상 핵심 영역에 손을 대야 했다는 점에서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한쪽은 일본의 폐쇄적인 콘솔 정책과 그로 인한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열화) 작업에 신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저 열심히 각각의 기업에서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수 밖에는 답이 없음을 알았기에 참고 견뎌내며 각자 서있는 공간에서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찾고 또 찾았다.
- 손재겸 : 일단 여기 게임프리크에서는 기획이랑 아트, 그리고 마케팅 빼고는 건질게 없어보여. 특히 마케팅 방식은 어떻게든 가져올만 해.
여긴 처음부터 미디어믹스를 활용한 상품개발을 전제로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 후지tv에서 애니메이션도 준비중이고. 봉제인형도 그렇고.
- 김성주 : 거긴 그래도 그나마 잘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네. 여긴 서버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죄다 나한테 몰리고 난리다.
- 손재겸 : 잘 돌아가긴. 쯧. 실리콘 앤 시냅스가 이상한거지. 서버 관련 기술 없이 무슨 온라인 게임을 만들겠다고 그러는 거래?
- 김성주 : 여기 와서 보니까 한 공간 내에 있는 컴퓨터 끼리 연결해서 1:1 대결을 하는 방식으로 구축해놓았더라.
애초에 장르 자체를 시뮬레이션으로 해놓은거 보니까 온라인 만드려다가 잘 안되니까 적당히 얹어만 놓은 모양새인거 같더라고.
해서 이참에 아예 유니버스넷에 있는 서버를 이용하도록 미리 프로그램을 짜는 중이야.
- 손재겸 : 뭐 어차피 회장님이 가진 회사니까 둘 다. 그렇게 움직여도 되겠지. 머리 잘 굴렸네.
- 김성주 : 겸사겸사 우리가 기획한 게임. 거기에 맞게 조정작업도 해놨어.
- 손재겸 : 그래도 되나? 아무리 그래도 일단 회사가 다른데.
- 김성주 : 코드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허 따로 받아놓은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장르도 여긴 전략시뮬이고 우린 MUG라 상관 없어.
적당히 만들어서 들고 나올건 들고 나와야지. 너도 거기서 들고나올거 잘 추려서 들고 나와. 거기 몬스터 디자인이라거나... 뭐 빼올 소스는 많잖아.
- 손재겸 : 그게 될 거 같냐. 여긴 미디어믹스까지 제대로 준비중이라니까. 이번에 닌텐도랑 합자회사 세운다더라. IP 홀딩용으로.
그런 면에서 IP협상이나 그런 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따져보는게 나을 것 같아서 그 방면으로 보고 있어.
'철의 나라'는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니까.... 미리 협상도 해야 탈이 없을 거 같아서.
- 김성주 : 아쉽게 됬네. 일단 알겠다. 그럼 너는 지금 하는 대로 진행하는걸로 하고, 다음 챗은 3주 뒤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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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성주와 손재겸이 실리콘 앤 시냅스와 게임프리크에서 착착 자신들의 사업을 준비하던 그 시각,
한국에서는 태준의 조언을 들은 김응삼 대통령이 대대적인 '불량 건축물 청산 사업'에 들어갔다.
"긴급명령 제17호 불량건축물에관한특별조치령을 발표합니다. 현 시간부로 전국의 모든 건축현장은 일시 중단되고, 건설부와 국토부의 감사를 진행합니다. 또한 도로, 철도,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과 대규모 다중이용시설, 아파트, 빌라 등과 같은 대규모 주택단지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시행됩니다."
화끈한 김응삼 대통령 성격 답게 또 다시 긴급명령을 통해 발효된 이번 사업은 처음에는....
"민주정부라더니 긴급명령이 웬말이냐!"
"독재정부의 수괴 김응삼은 물러나라!"
두 번이나 연달아 발효된 긴급명령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이라고는 해도 김응삼과 대립중인 김태충쪽 지지자들과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권들이 대부분이었다)의 엄청난 반발을 샀지만....
곧바로 이어진 단속 성과에...
"긴급명령 제17호와 관련하여 첫번째 불량 건축물이 적발되었습니다. 89년 완공된 대풍백화점이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술적 문화공간의 꿈을 연출하겠다던 대풍백화점은 그 시작부터 비리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주거용 토지에 지목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건축물을 올린데 이어, 이후 문제가 되자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무차별적인 뇌물 살포로 지목을 변경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출된 건축 설계도면과는 달리 내부공간 확보를 위해 무량판 구조의 핵심인 기둥을 임의로 제거하고, 그 두께마저 철근을 아끼기 위해 정해진 설계의 반에 미치지도 못하는 양으로 만든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불량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구조상 가장 취약한 상층부에 온돌을 깔고, 식당가를 유치하여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러한 반발도 곧장 시들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명품매장이 입점해있는 오렌지족의 성지 대풍백화점 마저 부실 건축물로 드러난데다,
"정부의 긴급조치에 따른 전국 건축물 1차 안전진단 결과, 고층 건물의 14.3%은 전면적인 개축이 필요한 상태였으며, 전체 건물의 80%은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 수치를 놓고보면 대한민국 내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건물인 셈입니다.
대풍, 한상, 심지어 지난 정권의 수혜를 입어 분당 신도시의 대규모 택지단지를 조성했던 태균까지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연이어 대풍아파트, 태균아파트, 한상아파트 등 대기업 아파트라 불리는 아파트까지도 안전진단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들자,
김응삼이 발표한 긴급조치가 부당하다는 반발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금 김응삼에 대한 지지율이 엄청나게 치솟기 시작했다.
"... 이걸 기뻐해야 하는기가? 나라가 완전히 개판인데... 개판도 이런 개판이 어디있노?"
그렇게 치솟는 지지율에 김응삼 대통령이 머리를 감싸쥐며 묻자 지지율 상승에 대한 보고를 한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다 잡았고, 그로 인한 정당한 결과인 만큼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김응삼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그 대풍 백화점 관련해서는 어떻게 처리했노?"
"일단 대풍건설산업 회장 이춘은 바로 구속기소했고, 대풍백화점은 무기한 영업정지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돈 들어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니까, 바로 그거 강제 처분해삐라. 태준이 한테 넘기면 될기다.
금마가 땅이랑 해서 비싸게 사줄테니까. 그리고, 토지 관련해서는... 서울시 공무원 놈들은 다 잡아 쳐넣고, 지목은... 태준이 금마가 원하는 대로 바꿔줘버리고.
이번에 공이 있으니까. 상을 줘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대풍 쪽 압류 절차 거쳐서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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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곧바로 대풍백화점의 모든 시설(이라곤 해도 철거 해야하는 불량 시설이지만.)과 땅을 정부로부터 인수받은 나는 곧장 바로 대풍백화점의 철거를 진행하기 위해 곧바로 건설업체를 인수해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대풍건설산업을 인수하신건가요?"
"일단 이번 일로 싸게 매물이 나왔고... 어찌 되었든 이 건물을 지었던 사람들이니까요."
"예?"
그렇게 영문을 몰라 되묻는 민영을 항해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상 짓자마자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건물을 원 역사대로라면 5년 반이나 유지시킨 실력자들이니까.
제대로 감리하고 제대로 돈 쥐어주고 건물을 짓게 만들면 훨씬 더 대단한 건축물을 안전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렇게 내가 속으로 생각하며 멀찍이 서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그 때, 앤이 부웅 하고 차를 몰고 나타나서는 말을 이었다.
"태준이 샀다는 쓰레기 건물이 여긴가요? 여기 물건이 좋아서 자주 왔었는데... 거의 목숨 내놓고 다닌 거였네요. 저."
"빨리 왔네요?"
"원래 철거 구경이 재미있잖아요."
"원칙대로 안전하게만 한다면 말이죠. 그리고 곧 더 재미있는 철거 구경도 있을테고요."
그렇게 멀찍이 대풍백화점을 바라보던 나는 슬쩍 현장 사무소 벽면에 걸린 달력을 보고는 생각했다.
'3.1절에 총독부 건물까지 철거하겠다고 선포할테니... 지지율은 완전히 90%대까지 넘길테고... 이제 김응삼 대통령은 IMF만 잘 넘기면 되겠네.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태국쪽을 공격할 퀀텀펀드만 어떻게 잘 벗겨먹으면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을테고.'
내 고발로 시작된 불량 건축물 철거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철거 폭파가 이뤄진 날은 재미있게도 95년 3월 1일이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정한 날짜였는데... 김응삼 대통령의 총독부 건물 철거 발표와 대구를 맞추기 위한 차원에서 정해진 날짜였다.
"오늘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량 건축물을 철거하고, 제대로 된 선진국가 건설을 위한 새로운 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불량 건축물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조선 총독부 건물입니다.
이에 3.1운동 76주년을 맞아, 대통령으로서 저는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고, 우리 나라의 진정한 광복을 이루기 위해,
한국 소재의 최고 불량 건축물이자, 최악의 건축물인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결정하였습니다."
내 지원사격에 맞춰 김응삼 대통령이 이를 받아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발표함으로서 김응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국의 축제 분위기 속에 나는 몸을 숨긴 채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울 본사는 철거 했으니까 이제 다시 성토작업하고, 신축 들어가면 되고... 통신, 인터넷까지 전부 장악했고, 거기에 포털사이트까지 제대로 정착을 시켰으니...
다음은 안에 채워넣을 컨텐츠인가? 일단 게임 쪽을 확보하긴 했는데... 이건 대중성이 부족하고... 대중성 확보 차원에서 빠르게 할 수 있는건... 만화, 소설.... 그리고 음악이겠네."
그렇게 혼잣말로 다음 행보에 대한 정리를 마친 나는 수첩을 꺼내...
- 웹툰, 웹소설, MTV-net
키워드가 될 단어를 적어놓고는 수첩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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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95년도의 소란 속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던 그 무렵.
퀀텀펀드에서는 태준이 일으킨 IT붐에 편승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인터넷, 컴퓨터, 프로그래밍 이 세 단어중 뭐 하나라도 붙어있으면 돈이 천정부지로 몰리고 있어."
그러나 그런 즐거운 비명 속에서도 퀀텀펀드에 합류한 손의정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작정하고 강제로 띄우고 있는 거니까요. KTJC에서."
"나도 알아. 알지만 당장 돈이 벌리는 건 좋은 일 아닌가?"
"출구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겁니다. 지금 대부분의 벤처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허황된 것들 뿐이예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최근에 독일에서 발표된 mp3 파일규격을 이용한 음악재생기를 만들겠다고 나선 애플이나 운영체제를 독점에 가깝게 전세계에 뿌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정도입니다."
"허나 그것들은 이미 가격이 오를만큼 올라서 돈이 되지 않지."
"예. 그러니 주의하라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요."
손의정의 말에 소로스가 허허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리가 있나. 우리에겐 손. 당신이 있는데. 당신이 주기적으로 보고받는 KTJC의 보고서가 있는 이상 우리가 빠져나갈 타이밍을 모르는 것은 말이 안되지."
그 말에 손의정이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대비는 하라는 겁니다. 동양의 가르침에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런 손의정의 불안은.... IT호황이 일어난지 딱 1년 반인 1996년부터, 서서히 안개속에서 걸어나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가가 오를 만큼 올랐는데도... 계속 KTJC에서는 매입만 하고 있다? 이상한데...."
그렇게 실체를 들어내기 시작했음에도 손의정이 파악하지 못한 이유는 오오와다가 태준에게 건넨 질문과 태준이 오오와다에게 건네준 그에 대한 답 때문이었다.
"손의정 사장의 투자금이 있으니... 저희 쪽 전략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손 사장이 계약한 것은 KTJC-A 이지 KTJC-K나, KTJC-J가 아니지 않습니까.
A쪽에서는 계속 버블을 키워가는 척 하면서 K와 J에서는 버블 정리 타이밍 직전에 버블을 정리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K와 J에서는 전략대로 가고, A는 손실을 감내하고 보다가 한순간에 빵 하고 터뜨리면... K와 J에 들어올 돈이 어마어마하지 않겠습니까?"
비화폰을 통해 건네진 오오와다의 질문에 태준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내려준 답변.
그것은 손의정을 일종의 이중간첩으로 써먹는 방법이었다.
태준의 이 묘책을 실현하기 위해 오오와다는 1년간 KTJC-A에서는 계속 쓸데없는 주식을 사들임과 동시에
K와 J에서는 알짜배기 IT기업만을 남기고 계속 공매도로 팔기만 하는 수법을 사용하며 버블을 터뜨릴 시점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96년. 현재.
"아직 더 바람을 불어넣을 모양입니다."
손의정의 보고에 안심하고 뒤늦게 버블의 막차를 타버린 퀀텀펀드는....
"이게 대체 무슨...! 지금 IT관련 주식들이 일제히 폭락하고 있소! 미스터 손! 대체 당신은 그 눈으로 뭘 보고 있었던 거요?!
지금 손해가 얼만지 아시오?! 갑자기 한 순간에 KTJC에서 물량을 다 던졌다는 말이오! 공매도 치던 놈들을 저지하던게 KTJC였는데 KTJC에서 빠지니 지금 주가가...!"
파운드화 공격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고스란히 태준에게 빼앗기며 작년 이맘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