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74화 (74/200)

074. 전후처리 (3)

노동자는 노동으로 돈을 번다.

사업자는 사업으로 돈을 번다.

자본가는 자본으로 돈을 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것으로도 바꿔볼 수 있다.

노동자는 시간으로 돈을 번다.

사업자는 노동자로 돈을 번다.

자본가는 사업자로 돈을 번다.

이 진리.

수 많은 노동자의 1시간이 모인 수백 수천 시간의 노동가치가

사업자가 지급하는 돈과 함께 사업자의 1시간 노동가치가 되고,

수 많은 사업자의 1시간이 모인 수백 수천의 노동가치가

자본가가 투자하는 돈과 함께 자본가의 1시간 노동가치가 되는,

이 자본주의 문법에서 손의정의 선택은 타당한 것이었다.

"회장님께서도 흔쾌히 승낙해주셨겠지요."

"...그렇더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태준과 손의정은 아는데.

오오와다가 모르는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을 늘리는 기술이었다.

태준과 손의정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결코 자신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태준도 손의정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그들 스스로도 능력도, 기술도, 학식도 있는 사람들.

하지만 결코 스스로 주도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었다.

정확히는 '남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해도,

남보다 더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해도,

남에게 맡길 수 있다면, 남에게 맡기는 것.

그것이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 방법이었다.

그 말인 즉, 다시 말하면 태준과 손의정은 결코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맡기는 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약하게 말해도 자본가에서 사업가로, 사업가에서 노동자로의 전락,

즉, 점차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했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존재가치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태준과 손의정, 그리고 수 많은 자본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시간'이야 말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시간은 평등하고,

그 평등한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

남을 위해 그 시간을 사용해 돈을 벌 것인지,

사업을 위해 그 그 시간을 사용할 것인지,

혹은 시간을 사기 위해 그 시간을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노동자와 사업가, 자본가가 갈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오오와다와 손의정 그리고 태준의 위치를 보자면.

오오와다는 자신이 버는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일개 노동자에 불과했고,

손의정은 사업가에서 자본가로 넘어가려다 실패한 사람이었으며,

태준은 사업가이자 동시에 자본가인 사람인 셈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손의정은 진정으로 천재였다.

태준이 죽음을 겪고 깨달은 진실을 손의정은 죽지도 않고 깨달았으며,

패배 속에서도 그 깨달음을 놓지 않았으니까.

"이제 더 큰 자본금이 생겼으니 새로운 투자를 해볼까 합니다."

"사업이 아니라요?"

"예. 투자입니다."

그렇게 급하게 만들어진 주식 양도 서류에 사인을 하고 오오와다에게 넘겨준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는 좋은 날 다시 찾아뵙겠다 전해주십시오."

"...예."

그리고 그런 천재의 뒷모습에서 오오와다는 왠지 손의정이야 말로 최후까지 태준과 경쟁할 상대가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며 손의정의 사무실,

아니, 이제는 태준의 것이 된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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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와다의 보고를 들은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오와다에게 말을 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통신쪽에서는 태균텔레콤 하나 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일본에 가신 김에 게임프리크 매입 현황 어떻게 됬는지 알아보시고 바로 한국으로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나는 슬쩍 민영을 보며 뭐라 말하려다....

"밥 먹으러 갈까요?"

슬쩍 웃으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앤을 불러 오겠습니다."

"아뇨. 오늘은 둘이 가죠."

그 말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은 민영이 말을 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아뇨. 그냥 평범하게 둘이 밥이나 한끼 하자는 겁니다."

그 말에 민영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나서는 민영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억지로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있는 민영.

그것은 분명 전생의 나와 같은 것이었다.

'힘들다고 말해도 받아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기에 억지로라도.

밥이라도 한끼 먹이며, 설사 본인이 힘들다고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민영이 준비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말을 이었다.

"자주 가시던 중식당에 예약해뒀습니다."

"둘이 가는데 예약까지... 그럼 가죠."

그렇게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던 그 때.

카폰이 울렸다.

- 뚜루루루

차 안을 울리는 벨소리에 내가 슬쩍 민영을 바라보자.

민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카폰을 집어들자....

"태준이. 자네 시간 괜찮은가?"

김응삼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쩍 한숨을 아주 작게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전화는 가능합니다."

"바쁜가보네."

"사업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내가 아들을 몇 보냈는데, 아들이 자네가 지금 회사에 없다캐서 직접 전화했네."

"그러십니까?"

"어떻게. 니 지금 청와대로 올 수 있나?"

그 말에 나는 슬쩍 인상을 쓰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조금 힘들 것 같고, 저녁 때는 어떠십니까?"

"그라모, 저녁때 시간 맞춰가 사람 보낼테니까 시간 맞춰 건너온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 민영이 슬쩍 말을 이었다.

"저녁때 일정이 있으십니까?"

"예. 청와대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이 아니고...."

그 말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선약이 있으니까요."

"... 선약이요?"

"예. 민영씨와 점심식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민영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알아요."

"아니, 점심을 못 먹는것도 괜찮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괜찮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 말에 나는 빤히 민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밥 한끼 편하게 먹지도 못할 사이입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아니면, 직장 상사인 저는 민영씨를 걱정하면 안되는 겁니까? 너무 과도한 관심이었을까요?"

"그런 말 뜻이 아니잖아요."

"아니라면 되었습니다. 민영씨가 괜찮다고 해도, 아니 설사 진짜로 괜찮은 상태라고 해도, 민영씨를 걱정해주는 것, 그리고 위로를 건네는 것은 제 마음입니다."

그 말에 민영이 잘 가던 차를 멈추고는 말을 이었다.

따닥하는 사이드브레이크 올리는 소리가 거칠게 차 안을 울렸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호의가 때로는 제게 너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호의는 호의로 받으면 그만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건네는 것이 아니니까요."

"받는 입장에선 그렇지 않으니까요. 말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번 장례식도 그렇고...."

"장례식은 회사 복지 차원이었습니다."

"그런 복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요."

"그때 만들기로 한 거니까요. 아예 복지만 담당하는 팀을 신설해서 자녀들의 학비부터,사원들의 결혼, 사원과 사원 가족의 건강과 장례까지 전부 지원할 예정입니다."

"원래 그런 제도가 없다가 생기는 건.... 특혜잖아요. 회장님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는다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절대 특혜가 아닙니다. 오히려 민영씨 일로 제가 신경쓰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되어서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일 뿐이지요. 너무 빨리 커버린 탓에 부족한 내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내 말에 민영이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안심?

실망?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무언가?

그 애매한 표정과 함께 민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어쩐지 선을 긋는 듯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내리시죠.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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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민영과 어색한 식사를 하고 돌아온 태준은 진행중인 일정을 확인하며 김응삼 대통령이 보낼 차를 기다렸다.

그렇게 어색한 기류 속에서 펜과 책상이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만이 사무실을 울렸다.

"저... 대체 두 사람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어색하게 내려앉은 공기를 참지 못한 앤이 먹고 있던 강냉이를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민영에게 다가가 물었고,

민영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니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는 듯 억지로 표정을 쥐어짜며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앤이 째릿 하고 태준을 노려보고는 슬쩍 태준에게 다가와 물었다.

"... 미스터 킴?"

"예."

"혹시 민영을 찼나요?"

그 직설적인 말에 커피를 마시던 민영이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고,

태준은 그 직설적인 말에 태연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고백을 받은 일도 없습니다만."

"그런데 두 사람 다 왜 그래요!? 답답해 미치겠어요! 말 없이 일에 미친 사람처럼."

그 말에 태준이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무실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여긴 원래 안 그랬잖아요."

"사무실도 가끔 시끄러울 때가 있듯이, 원래 안 그러던 여기도 가끔은 사무실처럼 조용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불편하시면 배정해드린 앤의 사무실에서 쉬시면 되지 않습니까?"

태준의 정론에 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흐음... 그렇다는 말이죠? 그럼 민영 오늘 일찍 퇴근해도 괜찮죠?"

그 말에 태준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풀며 말을 이었다.

"저녁에도 일정이...."

"다른 비서진도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앤의 막무가내에 태준이 넘어가려던 그때, 민영이 말을 이었다.

"앤. 오늘은 안됩니다. 회장님께서는 중요한 일정이 아직 남으셨고, 저도 비서이자 경호요원으로서 동행해야 하니까요."

"민영!"

그렇게 앤이 놀란 눈으로 민영을 바라보며 말하자, 민영이 말을 이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 벨 소리가 울렸다.

그 벨소리에 민영이 말을 멈추고는 전화를 받더니 이내 끊고는 태준에게 말을 이었다.

"가시죠. 준비 다 되었답니다."

그렇게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태준과 민영 두 사람이 빠져나가자 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어휴... 진짜. 상처받은거 빤히 보이는데도 저러네. 뭐. 자기가 알아서 험지로 가겠다니 말릴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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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민영과 함께 청와대에 도착한 나는 익숙한 길을 너머 청와대 안쪽 관저로 향했다.

그 곳에서 만난 김응삼 대통령은 대뜸 나와 민영을 번갈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일을 마치고 바로 온 겐가?"

억지로 사투리를 숨기려는 듯한 말투였지만, 억양에서 다 사투리가 묻어나는 김응삼 대통령의 말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예."

"일단 들지."

그렇게 관저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구조에 새로이 들어찬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주인이 바뀐걸 이렇게 실감하는 군.'

그렇게 민영을 마루에 남겨둔채 김응삼 대통령과 내실 한 쪽 서재에 들어서자, 대뜸 김응삼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래. 태균을 치는 일은 잘 준비되고 있나?"

"들으신 모양이군요."

"김태충이한테 들었지. 거 참. 이거 섭섭한데. 나한테는 일언반구 말도 없더니만."

"취임 준비하시느라 바쁘셨으니까요. 잡스러운 일에 신경쓰시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김응삼 대통령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기 아이겠지. 니 금융실명제 전에 미리 준비하느라 나한테 찔리가 그런거 아이가?"

"제가 찔릴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모든 거래는 전부 제 실명이나 법인 계좌로 처리하고 있는데요."

그 말에 김응삼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알고 있다. 니 뒷조사야 안기부에서 계속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안기부도 모르는게 있는거 같아가 내 니를 직접 부른기다."

그 말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뭘 말씀하시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

"일심회 명부. 그거 니가 뿌린기지?"

김응삼의 눈빛.

그것은 맛좋은 먹이감을 노려보는 사자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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