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전후처리 (2)
잠시 과거로 돌아가, 태준이 상속법 개정안과 태균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던 3월무렵.
청와대에서는 주인이 바뀐지 2주만에 대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권 차관, 군인은 그만둘때 사표를 내고 그만두나?"
뜬금없는 김응삼의 말에 권해영 국방부 차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군대에는 사표는 없습니다. 오로지 명령만이 있습니다. 인사 역시 명령의 일종이구요. 군은 언제나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렇나. 그라모 상관없겠구마. 권 차관. 내 오늘 육참총장하고, 기무사령관 갈아치워버릴라 카는데."
그렇게 시작된 일심회 척결.
그것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대한민국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별이 7개가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마치 준비라도 되어있었다는 듯이.
"긴급 속보입니다. 서울역, 서울시청, 청와대, 국방부, 동빙고 군인 아파트에서 오늘 정체 불명의 괴문서가 동시에 살포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괴문서의 내용은 육군 사조직 일심회 회원 명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장성과 영관급장교의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심회 회원 140여명의 명단이 세상에 뿌려지며....
김응삼 대통령의 일심회 척결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공개된 142명의 명단 중 102명이 실제 일심회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그렇게 떨어진 별만 마흔개 가량.
흩뿌려진 금강석과 대나무꽃이 수십개였다.
이 파란을 지켜본 김정필은 이를 두고 후에 시사대담 프로에 나와 말하길...
"대통령께서 행한 일을 두고 다들 일심회 척결이라 말들을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척결이라 함은 찾아 없앤다는 뜻인데, 우리세대야 이것이 부패한 군인을 찾아 없앴다고 이해하지만, 후인들까지 그렇겠습니까?
저는 언론에서 말하는 일심회 척결 보다는, 국군중건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라 평하며 일심회 척결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노대호는....
"김응삼...! 이 똥되만도 못 한자가...! 정두황 계야 명단을 내가 넘겼으니 그렇다치지만.... 우리 애들은 어떻게 알고 이 자가...!"
그저 성이나 내며 조용히 자신의 사저 안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군부에서 시작된 태풍은 정치권을 자연스럽게 지나 재계를 향해 다가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일심회가 무너지면서 사모님을 비호해줄 세력이 완전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각하의 큰 따님이신 노민영 경선 사장 부인도 방금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사모님께서도... 빨리 미국이든 한국이든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을겁니다."
일심회의 권력과 결탁했던,
또는 그들과 혼맥 내지는 인연을 맺었던 다수의 기업들은 조용히 다가오는 태풍을 피하기 위해 몸을 엎드리고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노대호 전 대통령의 딸 노민영을 큰 며느리로 들인 경선과 노대호의 여동생을 둘째 며느리로 들인 태균은 혼맥, 그것도 직계와의 혼맥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외국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예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께서 동행할 사람을 구해 뒀습니다. 일단, 사모님께서는 먼저 빨리 민식 도련님과 출국준비를 해주십시오.
김석훈 이사가 힘을 쓰고 있고, 회장님께서도 각별히 신경쓰고 계시니 금방 끝날겁니다."
"... 그럼 미국으로 가겠어요."
"알겠습니다."
조여오는 정권의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각 그룹의 수장들이 내린 결정은....
일심회와 연관된 모든 이들을 한국 정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로 보내버림과 동시에...
"큰 일 하시는데 쓰시라고 준비해봤습니다."
"약소하게나마..."
정치권 전반을 향한 무차별적인 현금살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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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소식을 4개월이 지난 지금 막 정리해서 들은 나는 인상을 쓰며 민영에게 되물었다.
"... 노민영, 노영숙이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말입니까?"
"예. 원체 비밀리에 출국하기도 했고, 3부 전원이 회장님께서 내린 '역습' 작전을 수행하느라 정보 수집이 늦었다고 합니다.
전략 3부쪽에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여야할 것 없이 태균, 경선 모두가 무차별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것은 지금도 계속 진행이 되고 있던 터라 사진자료부터 정치자금에 대한 입출금 기록까지 전부 확보했다고 합니다. 물론 확보된 자료는 태균 한정입니다."
탈상하고 돌아오자마자 신상보고 대신 업무보고를 하는 민영에게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일이 일이었던 지라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민영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오오와다 사장. 어느 정도까지 매입했습니까?"
"매입한 것 중에 소멸시효 도래일이 온 것들을 정리하고, 터뜨릴 수 있는 것만 계산하면 약 1000억 수준입니다."
"생각보다 얼마 안되는 군요."
"예. 그쪽도 바보가 아닌지라 기간을 잘 짜뒀더군요. 그나마 회장님께서 발주하신 대규모 공사때문에 어음 발행이 늘어나 이 정도까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에 대규모 공사인지라 하청업체의 수도 상당하니까요."
"그럼 슬슬 터뜨릴 준비해주시고. 아, 삼각합병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동의는 받았습니까?"
"동의는 받았는데 평가액에 대한 입장차가 상당히 갈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갈립니까?"
"합병 규모에 대해서 자꾸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더군요. 가입자수도 그렇고 자산도 우리가 훨씬 많은데, 자꾸 1:1 합병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유니버스넷은 포함되지 않은채 한국이동통신과 1:1 입니다."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좋게 좋게 나가주니 이거 안되겠네요. 그럼 먼저 어음부터 터뜨리고 그 다음에 다시 협상 진행하도록 하죠.
어차피 우리 쪽이 태균텔레콤 경영권 확보에 성공한 만큼, 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경영행위 자체는 지장이 없으니까요.
탈탈 털려보면 정신을 좀 차리겠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합병과 공격에 대한 오더를 남긴 나는 뒤이어 소프트방코에 대한 건도 물어보았다.
"그럼...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손 사장은 지금 어쩌고 있습니까?"
"우리 쪽에 진 빚을 갚느라 남은 돈이 없어 주식 매입은 꿈도 못꾸고, 그저 일반 개인 주주들에 대한 위임장이나 받으러 돌아다니는 수준이랍니다."
그 말에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개인 주주들의 주식은 나오는대로 계속 매집 중이지요?"
"애초에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가지고만 있어도 어차피 오를 주식이기도 하고, 경영권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스윙보트로 자신들의 주식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아예 물량 자체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아예 다시 돌아올 엄두를 못내게 해줘야겠네요."
"엄두를 못내게라니..."
"일본랜더스와 소프트방코. 합병절차 들어가세요."
그 말에 오오와다가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합병... 말씀이십니까? 진행중인 합병 건도 만만찮은데 거기에 또 합병을 진행하는 것은...."
"예. 힘들겠지만 해주세요. 합병하고, 이후에 물적분할해서 구 도쿄디지털 셀을 소프트방코 모바일로 내보냅시다.
그렇게 하면 어느 쪽에서도 손의정이 힘 쓸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오오와다가 슬쩍 한숨을 내쉬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나는 순간 오오와다에게 맡겨진 짐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는 오오와다를 달래며 말을 이었다.
"힘이 많이 드는 모양이군요."
"... 하하. 솔직히 그렇긴 합니다."
"그럼 이번 일에 성공하면 선물하나 드리도록 하죠."
"선물...말씀이십니까?"
"물적분할해서 나올 소프트방코 모바일. 거기 지분에 대한 스톡옵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다시 활기를 되찾은 오오와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처음 우리가 인사하던 때가 떠오르는 군요. 그 목소리 들으니."
"실제로 고개도 숙였습니다."
"왠지 그럴것 같았습니다. 그럼 한-미-일 오가면서 바쁘시겠지만... 조금만 더 수고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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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심회 척결을 모두 마치고 개운해진 표정의 김응삼은 그제서야 집무실을 구경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음을 실감하고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비서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 봐라 비서실장. 저 벽에 달린 봉황 저거 금이가?"
"도금 아니겠습니까?"
"도금이라도 저거 진짜 비쌀긴데..."
"나라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니까요."
"일심회 놈들 쳐내삐고 나니 이제야 좀 살맛나네. 그 치들이 살아있으모, 언제 또 쿠데타 일으키가 난리칠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 말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각하께서 결단을 빠르게 내려주신 덕분입니다."
"니, 그 내 앞에서 각하소리좀 하지 마라. 무신 각하야 각하는. 그냥 대통령님이라 카든가 어이~ 영삼이! 캐라."
"제가 감히...."
"됐고, 전에 그 일심회 명단 뿌린 놈은 찾았나? 그 덕을 보긴 했어도, 어쨌든간 군 요인들 명단을 뿌린기라... 고발을 할라카모 우리한테 넘기야지 와 그걸 뿌리고 앉았노."
"그게...."
잠시 머뭇거리는 비서실장을 보며 김응삼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뭔데. 설마 니 안기부 동원한기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리 말꼬리가 추욱하고 늘어진긴데?"
"그게... 아무래도 김태준 회장이 벌인 일 같습니다."
그 말에 김응삼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태준이 금마가 와?"
"그... 얼마 전 김태충 의원에게도 찾아가 법안 하나를 부탁했는데... 그게 최근에 개정된 상속법안이랍니다."
"그건 태충이한테 청와대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 들었다. 지 목숨 노리는 애비한테 그럼 뭐 우짜겠노. 지도 살아야할낀데. 그건 걸고 넘어질 일이 아이다."
그 말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응삼에게 말을 이었다.
"예. 거기까지라면 그렇지요. 그런데... 그 법이 통과되기 직전, 연이어 김태준 회장의 생부인 김석훈 태균물산 이사가 마약투약혐의로 잡혀갔다는 점이 걸립니다.
일심회가 살아있었으면 풀려날 수도 있는 건인데... 일심회가 완전히 무너지고 딱 2개월뒤에 일이 벌어졌고, 동시에 딱 맞춰 법안까지 통과된 것도 전부 김회장이 계획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공교롭게도 노대호의 여동생인 노영숙이 일전에 김태준 회장의 어머니에게 협박을 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 더욱 심증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니 말은... 태준이가 명단 살포를 했다... 뭐 그 말이가?"
"... 예."
"증거는 없고?"
"예. 애초에 증거를 남길만큼 허술하게 일 하는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응삼이 크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그라모 조사는 대강해서 미제로 넘겨삐고... 니는 가서 태준이 좀 불러온나. 내가 금마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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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의 연락을 받은 오오와다는 급한대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와 일본으로 돌아와, 손의정을 찾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의정이 오오와다를 만나자마자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건네자, 오오와다가 영업용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 잘 지냈을리가요. 모건 스탠리까지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럴리가요. 모건 스탠리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기에 저희는 그저 뉴욕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도와준 것 뿐인데요."
그 말에 손의정이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전형적인 기만이군요. 금융인들에게 동료애라니."
"너무 과한 농담이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예. 말씀하시죠."
뒤이어 이어진 손의정의 말에 오오와다는 살짝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제가 보유한 소프트방코의 주식 전부를 회장님께 매각하고 싶습니다."
"예?"
"돈을 크게 벌었으니 다시 시작해야지요. 이번 패배를 갚아주려면."
손의정의 대담한 딜에, 오오와다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제 마음은 확고합니다. 혹여나 회유를 하실 생각이시라면 안하시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그 말에 오오와다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벗어나 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런 오오와다의 질문에 대한 태준의 대답은 의외로 상쾌한 것이었다.
"그럼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물적 분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대로 가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