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전후처리 (1)
"그러니까...! 내가 습격을 당한...! 여기 배를 보면...."
"이봐요! 김석훈씨. 아주 허연 피가 철철 납니다. 예. 철철나요."
"아니.. 이게 무슨...!"
김석훈이 호통섞인 말과 함께 배를 뒤집어 까자, 경찰이 비아냥 대고는 말을 이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습격은 커녕 당신 차 안에서 기절한 거 보고 지나가던 중국집 배달원이 신고한 거예요.
위치가 위치인지라 습격 걱정 하시는 건 알겠는데. 여기선 안통해요. 쓰잘데 없는 말 하지 말고 솔직히 자백해요. 트렁크에 있는 약. 어디서 구했어요?"
"뭐....?!"
김석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경찰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트렁크에 필로폰 1kg 소지하고 계셨잖아요!"
그 말에 김석훈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사람이 나를 뭘로 보고! 내가 그딴 약쟁이로 보여! 여기 서장 나오라 그래! 내가 누군줄 알고!"
"약쟁이가 얼굴에 나 약쟁이요 하고 써붙이고 다닌답니까? 거기다. 혈액검사 결과에선 프로포폴도 나왔는데. 그건 또 어디서 구한거예요?"
그 말에 김석훈이 인상을 푹 쓰고는 털썩 주저 앉으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 변호사나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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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7월 1일. 부산의 폐공장.
"아니.... 잠깐. 이건 너무 쉽지."
깡패들에게 내밀었던 녹음기를 뒤로 뺀 태준이 혼잣말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니들도 깜방은 가기 싫을테고."
그 말에 희망을 본 것일까?
온 몸이 묶인채 멍든 얼굴로 있던 깡패들이 그 어느 때 보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자 태준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협조적인 자세, 아주 좋아. 신 부장님. 얘들 입에 물린 재갈 좀 풀어줘보세요."
그렇게 입에 물린 재갈이 풀리자, 태준이 슬쩍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니들 원래 계획이 김석훈 이사 찌르고, 그거 나한테 덮어 씌우는 거였지?"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아니면 니들이 여기 잡혀왔겠냐. 됐고. 그 계획 좀 바꾸자. 니들 약도 파냐?"
"예?"
"약도 파냐고."
태준의 말에 깡패들이 슬쩍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수출만 조금 합니다."
그 말에 태준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출... 이야... 이거 애국자네. 한국에는 안파니까 약쟁이는 아니다?"
"약 팔아서 엔화 벌어오면 그게 애국 아닙니까."
"개소리 말고. 그럼 기술자도 있겠네?"
"예."
"그거 김석훈한테 팔아라. 원래 니들이 받기로 한 돈, 그거 만큼 김석훈이한테 주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태준의 계획은 이러했다.
돈을 받는 사람과 신고할 사람을 둘로 나눈다.
자해공갈을 위해 미리 물색해둔 장소에서 돈을 받기로 하고, 돈은 트렁크에 넣어두라 김석훈에게 지시한다.
김석훈이 나오지 않고 트렁크 문을 열어주었을때, 돈과 약을 바꿔치기 하고 사라진다.
이후 신고를 할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며 마약반에 신고를 한다.
그 계획을 들은 깡패들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태준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굳이 칼로 찌를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까?"
"칼로 찌르면 뭐랄까... 어쨌든 피해자인 느낌이 남잖아. 일단 본인이 다친 거기도 하고."
그 말에 깡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저희가 작업할 때 쓰는 방식을 추가해도 되겠습니까?"
"작업...?"
"예. 상대 조직 엿먹일때 일본 통해서 미루쿠츄우샤라는 약을 들여오거든요. 술에 타서 먹인 다음 납치하거나 뭐... 그렇때 쓰는데. 칼에 찔릴때 아프지 않게 해주는 진통제라고 하면서 먼저 쥐어주면 본인도 아픈 건 싫을 테니 알아서 맞지 않겠습니까?"
깡패들의 말에 태준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루쿠츄우샤...? 우유주사? 아, 프로포폴을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성공확률이 올라가겠네. 기본적으로는 수면진통제니까."
"예. 잘 아시는 군요."
그 말에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자. 그럼 그렇게 해서 놈을 깜방에 보내놓자고. 보내 놓으면 니들도 한결 마음이 편할 거 아냐."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태준의 즉흥적인 결단에 깡패들의 의견이 더해져...
"... 이거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를 할 수도 없겠군요. '역작업' 당했다고 외칠 수 도 없는 형편이니."
"일단 여기서 나갈 수 있게만 해줘."
"불구속 수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째서!"
"일단은 프로포폴이 현행법상 마약은 아니지만... 문제는 전문의약품이라는 겁니다. 안그래도 전문의약품 관련해서 의약분업관련 논란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다, 프로포폴 자체도 수면마취제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구할 수 없는지라..."
"젠장...!"
"거기다 소지한 필로폰의 양도 호기심에 샀다고 변명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습니다."
김석훈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도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감방으로 직행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로서....
"자식을 둔 아비로서... 자식의 일탈에 국민여러분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모든 처벌을 달게 받고, 혹독하고 엄격한 치료과정을 거친 뒤에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김두혁 회장 역시 대국민기자회견을 통해 수치를 맛보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며 지켜본 신병철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었군. 즉흥적으로 짠 계획이 이 정도라니... 혹여라도 애들한테 허튼 수작은 부릴 생각은 말라고 해야겠어.'
태준에 대한 평가를 대폭 상향 수정함과 동시에,
'특히. 그분들의 직속이라 할 수 있는 최민영, 오오와다 타이조. 이 두 사람 만큼은 절대 건드려선 안 돼.'
민영과 오오와다를 태준의 곁에서 떼어낸다는 대전략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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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는 민영씨 뿐입니까?"
민영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찾아간 장례식장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QULAB과 계열사로 묶여있는 KOTEC의 사장의 장례식이라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장례식장이었다.
"예.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도 따로 없으니까요."
"...우선 아버님께 인사부터 올리고 마저 이야기 하도록 하죠."
그렇게 절을 두 번 하고 상주에게 절을 올리는 내 모습에 앤이 당혹스러워 하며 주위를 어색하게 서성이자, 민영이 슬쩍 앤에게 말을 이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앤."
"...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와봐야죠."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민영이 말을 이었다.
"사흘 뒤에 바로 발인입니다. 바쁘시겠지만.... 그 전에는 복귀가 어려울 듯 합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뇨...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병구완...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돈 버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불효자식이라 그런지.... 좀 무디네요.
아버지 멀쩡하실때도 아버지께서 일 때문에 집에 안계신 날이 많아서 더 그렇기도 하구요."
그 말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발인 끝나고 일주일은 쉬고 오세요."
미소와 함께 건넨 말.
그리고 이어진 대답에 나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 천애 고아가 된 느낌이라 싫어요."
내게 어머니가 뿌리이자 기둥이었듯.
민영에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 사실을 담은 말 한 마디에 나는 슬쩍 민영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 알겠습니다. 그럼 편하신대로 하시죠."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앤과 함께 주차장으로 나오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계열사 사장의 장례식인데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운전을 하고 온 외근비서 김철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우선 장례식장을 옮길 수는 없으니까, 이 장례식장에서 가장 넓은 방으로 다시 옮겨두시고, 근조화환도 보내세요. 우리 계열사 명의를 총 동원하세요. 해외 계열사도 포함입니다. 거기에 거래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쏟아지는 말에 김철진이 황급히 품에서 수첩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고를 크게 알리세요. 주요 일간지에 부고 소식을 알리고, 우리 쪽 직원들 보내서 일손도 도우시고요. 자고로 장례식장은 시끄러워야 한다잖습니까."
"예."
"장지도 만약에 따로 선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알아봐주세요.
지금이야 카이스트 때문에 대전에 매여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서울 근교로 본사를 옮길텐데, 최민영씨가 자주 오갈 수 있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명을 내린 나는 장례식장을 쓱 돌아보고는 차에 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무 무심했군. 밑에 사람들 부려먹으며 돈이나 챙겨줄 줄 알았지 다른 건 전혀 안챙겨줬으니... 일단... 관혼상제에 관련한 것들 부터 챙겨나가야겠어.
그러려면 자녀 학비 지원, 결혼식 관련 지원에, 종합병원과 장례지원... 정도가 필요하겠네.'
그렇게 내가 생각에 잠겨있자 앤이 슬쩍 나를 툭툭 치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저, 이런 말 하면 조금 이상한거 아는데요."
"예. 말씀하시죠."
"장례식장에서 먹은 빨간 스프 이름이 뭐예요?"
분위기를 깨는 말에 나는 살짝 인상을 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육개장이라고 합니다. 고인께서 마지막을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선물이죠."
"... 신기하네요. 돌아가신 분의 선물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라니."
"한국인은 먹을 것에 진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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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민영의 부친상에 대한 지원 결과를 보고받은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빠르게 잘 정리했군요. 이미 다 민영씨에게 지원이 된 결과지요?"
"예."
"그럼... 미국 지사에서 진행중인 건은 보고 올라온 게 있습니까?"
"삼각합병에 대한 것이라면... 어제 밤에 팩스를 통해 들어온 보고가 있습니다."
그렇게 미국지사에서 보내온 팩스를 본 태준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수적으로 계산해서 15%라... 작은 비율은 아니지만, 태균 입장에서 계속 들고 있을 수 있는 비율도 아니겠네요."
태준이 건넨 말에 김철진이 답을 하지 못한채 버벅이자 태준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고했어요. 나가보세요."
그렇게 김철진을 밖으로 내보낸 태준은 옆에서 과자를 까먹고 있는 앤에게 말을 이었다.
"골드만 삭스에서는 태균물산 채권 매입 시작했습니까?"
"당연하죠. 심지어 저희 아버지도 따로 채권을 매입중이신데요?"
"미스터 오브라이언이요?"
"예. 태준에게 받은 은혜갚기라나? 뭐 돈 냄새 맡고 움직였다고 대놓고 말하실 분은 아니니까 얼추 둘러대신 말이겠지만요.
어차피 저야 본사 측 얼굴마담이나 하러 온 거고... 일은 서울지사에서 다 하고 있을테니 걱정 마세요."
그 말에 태준이 눈을 가늘게 좌우로 뜨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앤은 한국에서 뭘 하는 겁니까?"
"뭐 이래보여도 이것 저것 해요. 음반사 관련해서도 움직이고 있고..."
"한국 음반 시장이 아직은 매력적이진 않을텐데요."
"태준 때문이죠 이것도. 솔직히 우리 아버지가 태준을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거든요."
앤의 말에 태준이 별 생각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뭐 좋게 봐주신다니 좋은 일이군요."
태준의 무심한 말과 태도에 앤이 살짝 어이없다는 듯 태준을 빤히 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진짜 돈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나보네요?"
"종교에 귀의했으면 신만을 따르는 것은 신도된 자로서 당연하지요."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제게 돈은 신이라는 뜻이죠. 자본주의는 교리고, 기업체는 신전 쯤 되겠네요."
태준의 과장된 말에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보인 앤이 말을 이었다.
"그럼 자본주의교 성직자께서는 결혼 생각도 아예 없으시겠네요? 평생 수도원 수도사처럼 독신으로 돈 만 벌며 사실건가요?"
"없진 않습니다. 저도 사람인데요. 다만, 안정되고 나면. 그 때 할 작정입니다."
"안정이라니... 포브스 선정 차세대 경제리더 100인 중 한 명이면서, 아시아에서는 탑 10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안정이 안 되었다니..."
앤이 질색하며 건넨 말에 태준은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말을 이었다.
"돈만 많지 세력이 없잖아요."
진심으로 머쓱하다는 듯이 구는 태준의 모습에 앤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세력?"
"예. 저를 위해 일해줄 사람들. 저와 이득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아직 부족하니 당연히 불안하죠. 덩치만 큰 아기와 같은 상태니까요.
최소한... 록펠러까진 아니어도 스웨덴의 발렌베리급은 되어야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상 인류 최고의 부자. 록펠러.
북유럽 최고의 산업귀족. 발렌베리.
그들과 자신을 경쟁상대로 두며 말을 하는 태준을 보며 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차라리 돈이 부인이고 권력이 정부(情婦)라고 말하세요."
"하하. 그 표현 좋네요."
앤의 비꼼에도 그저 웃으며 시원스레 동의하는 태준을 보며 앤은 속으로 생각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관은 완벽한데... 어쩌다 저렇게 까지 돈에 미쳐있게 된건지.... 쯧쯧...
아무리 가문이 중요해도 이런 사람은 좀... 거기다 워커홀릭이잖어... 에효...'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한 사발 거하게 들이키는 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