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전쟁 (6)
"그런 도발적인 말로 날 찾은 이유가 뭔가?"
김태충의 사저에 들어서자 대뜸 문 앞에서부터 질문을 받은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대 놓고 떠들면 저한테도 의원님한테도 별로 모양새가 안좋을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안되겠습니까?"
"... 들어오게."
그렇게 나와 민영이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오자 김태충 의원이 말을 이었다.
"맘 같아서는 자네가 한 일 때문에 겸상도 하고 싶지 않네만..... 그래도 손님이니 차라도 내줘야겠지."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김태충이 직접 내어준 차를 한 모금 마신 나는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서자입니다."
"그래. 그리고 자네가 아는 것 처럼 나 역시 서자일세.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문제는 제가 서자인 주제에 돈을 그 아비보다 더 많이 벌었단 겁니다."
그 말에 김태충이 나를 빤히 보더니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아비되는 자가 태균의 그 망나니로구만."
"예."
"그래서. 자네 목숨이 위험하다 이건가?"
"지금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그렇겠지만요."
"지금은 아니다?"
"예. 법적으로 전 미혼모의 자식이니까요."
그 말에 김태충이 말을 이었다.
"친생자관계를 회복하는 대로 자네를 죽일 것이라... 뭐 그런 말인가?"
"예. 해서 의원님의 도움을 얻고자 왔습니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태균과 직접 거래관계가 있어."
"예.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때 태균을 밀어주셨지요."
"원해서 밀어준 건 아닐세. 어디까지나 자네의 시장 독점을 막고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
"덤으로 민평당의 자금도 확보하고 말이죠."
그 말에 김태충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아직 민주화가 덜 된 나라니까. 권리 당원 수가 얼마 없고 죄다 이름만 걸어둔 일반 당원으로 전국정당을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이지."
"예.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흠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구요."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태균과 척을 질 수가 없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참에 아예 태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떠십니까?"
"... 무슨 수로 말인가?"
"저를 도와주신다면 제가 태균을 치겠습니다."
그 말에 김태충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태균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실업자가 무더기로 나오고, 지옥도가 펼쳐지겠지. 내 그 꼴을 보면서 자네를 도와야하나?"
"태균이 무너져도 태균이 가진 인프라는 살아있는 만큼 당연히 다른 기업들이 인수할테지요."
"아니지. 점령군이 어디 인수하며 고용승계를 하던가? 있던 일자리도 사라질걸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일자리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이지 인수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수는 그저 사태를 촉발시킨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래. 시대는 변하지. 하지만, 정치인인 나로서는 태균이 건재하게 버텨주는 것이 나라에 이득이라 보네. 꼭 나라가 발전해야만 국민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나.
국가 전체로는 중복투자가 된다 해도 어찌되었든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태균인 만큼.... 나로서는 비호할 수 밖에 없네."
"태균이라고 자동화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미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현자동차의 로봇 설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의원님께서 그렇게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말하는 태균의 자동화 설비 또한 개선되고 있습니다.
인력으로 대부분의 산업 소요를 충족시키는 곳은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 같은 곳 뿐입니다. 그 조차도 인건비가 매우 싸기 때문이지, 그들이 자동화를 못해서가 아니구요."
"하지만 그런 단순 노동집약산업이야 말로 나라 경제와 민생 안정에 매우 중요한 일자리 일세. 모두가 고학력이 될 수 없듯 모두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김태충의 말에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십니다. 젊은 시절엔 사업을 하셨다 들었는데... 감이 너무 떨어지신 것 아닙니까?"
"뭣...?!"
"지금 우리나라에 의원님께서 말씀하시는 블루칼라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내 말에 김태충이 잠시 턱을 괴며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계속해보게."
"우리나라 대학 진학율이 벌서 70%대를 넘었습니다. 80년대 3저호황을 겪으며 중산층이 탄탄해졌고, 그로 인해서 그 시기 대학을 간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전체 인구로 보면이야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후에 대학을 갈 처지가 못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대학을 나온 고학력 인력들이 공장에 안가게 될 것이다 이건가?"
"예. 당연하지 않습니까. 배운만큼 배운 이들이 공장에 자발적으로 가려 들겠습니까. 설사 간다 한들 주변에서 좋게 보기나 하겠습니까?
그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백수로 살면 살았지 공장으로는 안갈겁니다. 지금이야 대학만 나와도 엘리트 취급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동가능인구 중 대학을 나온 이들의 절대수가 적어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요.
앞으로 5년만 지나면 대학이 아니라 서울권 주요 명문대만 나온 이들만,
거기서 5년이 더 지나면 서울권 주요 명문대생 중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또 다시 5년이 더 지나면 서울권의 성적도 좋고, 추가적인 자격증을 가진 이들만 지금의 대학생이 누리던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노동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늦기 마련입니다."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런데. 그것은 태균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태균은 못합니다."
"어째서?"
"태균은 그저 돈 벌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요. 전자 쪽 R&D센터를 고작 이동통신사업자를 위한 딜로 제게 내놓은 것 부터가 태균의 안목이 거기까지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네한테 내어주고 얼마 후에 바로 또 별도의 연구소를 차린 것으로 아네만."
"기술은 단순한 제품과 달라서 돈과 인력을 넣는다고 바로 툭하고 나오는게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하지요. 새로 연구소를 차리기만 한다고 성과가 나온답니까?
거기다 연구 인력들을 한 번 배신한 전력이 있는 태균에서 연구원들이 제대로 일이나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이직이나 해보려고 안간힘인데요."
"... 연구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말인가?"
"아뇨.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왜냐면 QULAB이 우리나라에 있으니까요. 전자, 통신쪽 연구원들은 QULAB으로 오고 있습니다. 다만.... QULAB에서 연구를 하지 않는 분야는 지금 중국 쪽으로 많이들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김태충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중국?"
"예. 등소평이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틀고 나서 기술력 확보에 총력을 다하는 상황입니다. 일본에서는 파나소닉에서 퇴사한 배터리 관련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는데에 이어 일본의 TDK와 합작으로 배터리 회사를 설립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죠.
거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디스플레이 관련 연구원들을 빼돌리고 있고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는 LCD관련 기술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 말이 없어진 김태충을 보며 나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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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김태충과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김태충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이제는 대통령이 된 김응삼은 김정필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각제 개헌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이거요?"
"그렇제. 일단은 먼저 정리할게 있다 아이가. 그리고 내각제 개헌이 아이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이라 캐라. 어데 은근슬쩍 말을 바꾸나?"
그 말에 김정필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무슨 정리가 필요한데 개헌을 미루겠다고 하는거요?"
"그건 보면 안다. 딱 내 현직에 가가 두 개만 바꿀게. 그런 다음에 개헌 논의 바로 들어가면 된다 아이가."
그 말에 김정필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노대호 금마 치려고 그러는게요?"
"내가 왜 이빨빠진 호랑이를 치는데?"
"그게 아니면... 정두황이 잔당 정리하려고 하는거요?"
".... 니 어디가 말조심해라. 일심회 놈들이 들으모 가만히 있겠나? 하기야 니야 군사 쿠데타해서 여까지 올라왔으니 그러고 싶기야 하겠다마는."
"이보쇼! 김형!"
그 말에 김응삼이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아따마. 니도 찔리는게 있는가 보네. 농 좀 던졌다꼬 발끈하는거 보면."
"그게 농이요? 막말이지."
"여하튼. 니도 당분간은 내각제 개헌 하자고 애들 부추기지 마라카이. 일단은 정리부터 하고 그 다음에. 안정된 다음에 내각제 논의 들어가는게 최선이니까. 알긋나?
명색이 니도 삼김에 들어가는데 니도 여기 훈장하나는 차야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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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김태충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경제에 대한 지론은 알겠네. 그래, 자네는 내가 직접 태균을 쳐주기를 바라나?"
"아뇨. 굳이 그런 부담을 안겨드릴 필요는 없지요."
"뭐...? 그럼 왜 그런 설명을...? 애초에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다면 그 설명도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방해나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서요."
"방해?"
"정치인이 무서운 이유는 거기에 있으니까요. 남을 잘 되게 도울 수는 없지만, 남을 망하게 하는 데에는 특화된 직업군이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의원님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럼 내게 바라는 것은 중립이군.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말라는. 하기사 그걸 위해서라면 그런 설명도 이해가 되는군."
안심한 듯 말하는 김태충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뭘 바라는가?"
"정의를 위해 싸워주시는 걸 바랍니다."
"정의?"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유학적 관점에서. 또 도덕적 관점에서. 아비이길 포기한 자에게 자식 역시 그 도리를 다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상속법 개정안 하나만 내주시지요."
".... 양육을 포기하거나 방임한 자에 대한 상속배제 법안 정도로 정리가 되겠군."
"예. 거기에 덤으로 양육을 포기한 부모에 대한 양육비 강제 징수 법안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저 같은 아이들이 계속 생겨나는 건 좋지 않으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선물을 하나 드려야겠군요."
"선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숫자 여섯개를 써서 보여줬다.
"이게 뭔가."
"태균물산의 종목코드입니다. 이걸 사시면 됩니다."
"...방금까지 태균을 망하게 하겠다 하지 않았나?"
"망하게 만들겠다 한 적은 없습니다. 치겠다고만 했을 뿐."
"그 말이 그 말이 아닌가?"
내 말 뜻을 이해 못한 김태충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아뇨. 저는 태균을 '망하게' 하겠다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어쩔 셈인가?"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태균 그룹 자체를 제 손아귀에 넣을 셈입니다."
"... 뭐!?"
"태균 그룹은 순환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 순환의 중심에는 물산이 있습니다. 그 물산이 통으로 부도가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발악을 하겠지."
"예. 처음엔 실적이 떨어지는 자회사들의 정리부터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을 겁니다. 결국 그룹을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몰리게 될 테니까요."
"그때 그걸 자네가 갖겠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저는 가진게 돈 밖에 없으니까요."
"....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자네 돈이 얼마나 많기에 가진게 돈 뿐이라 말하는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현금성 자산으로 지금 당장 태균그룹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