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전쟁 (5)
김석훈은 딱히 태준에게 감정이 없었다.
애초에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 태준과 그의 어머니에게 어떤 사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루밤 질펀하게 놀고 생긴 결과물에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변기에 싼 똥이 물을 타고 어디로 가는지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욕망의 배설물.
김석훈에게 있어 태준은 그런 존재였다.
아니, 그런 존재 '였었다'.
"그렇다고 막 결혼했는데 그년을 데리고 올 수는 없잖습니... 아니, 그리고 애초에 딴따라년을 무슨...!"
태준의 존재가 김두혁 회장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김석훈에게 태준은 역류하는 오물이되었고,
"일단은 그룹부터 장악한다. 그룹부터 장악하고... 태준이 놈한테 빼앗긴건 이후에 찾아오면 돼."
태준의 존재가 점차 커져 그 입지가 자신을 넘어서기 시작했을 때,
김석훈에게 태준은 자신의 입자를 단번에 뒤집어줄 금광이 되었다.
김석훈에게 태준이 점차 다가올 수록, 비록 그것이 태준이 의도한 게 아닐지라도,
태준에 대한 김석훈의 상반된 두 감정 역시 점차 커져나갔다.
그렇게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멀리서 노영숙이 뭔가를 하는 동안 침묵하던 김석훈은...
"준비 다 되면 사인 내려줄테니까 알아서 처리해."
"아따. 사장님 겁도 윽수로 많네. 우리 칠성파가 요래 이름은 촌시러워도 나름 국제조직이요. 사카우메구미랑 사카즈키(야쿠자간 동맹을 맺는 의식, 교다이 사카즈키라고도 한다.)도 맺었다 아잉교."
"그러니가 니들 한테 맡긴거야. 알아서 잘 하라고."
"걱정 마소."
기어이 그 감정을 추스름과 동시에 자신에게 이득이 될 방향을 떠올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오물이니 치워버리자.
금광이니 캐내버리자.
서로 다른 말이었지만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였다.
'깔끔하게. 죽여버리는 거지.'
그 과정에서 태준과 법적인 관계가 되는 것은 김석훈에게 있어 그저 '청소를 하다 몸에 밴 악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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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두혁 회장이 머무는 평창동 고택에 가자 김두혁 회장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왔느냐?"
"예. 왔습니다."
"오면서 이야기는 들었지?"
"예. 저를 호적에 입적시키시겠다고요."
"그래. 너도 이제 그만큼 놀았으면 이제 집안으로 들어와..."
내 말에 인자한 할아버지 행세를 하며 말을 있는 김두혁 회장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싫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뭐? 싫어?"
"예. 뭐가 예쁘다고 이 집구석에 제가 들어오겠습니까. 저와 제 어머니를 죽이려든 년놈들이 있는데."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라면 내가 이미 정리를..."
"정리? 무슨 정리가 어떻게 되었답니까?"
"그야 석훈이 놈을 저기 지방으로 발령을...."
김두혁 회장의 말에 나는 비웃음을 날리며 김두혁 회장 책상 가까이로 다가가...
- 달칵
크리스탈 사탕함에 들어있는 박하사탕 몇 개를 꺼내 한입에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 콰작콰작
내 돌발행동에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 침묵에서 내 사탕씹는 소리가 유영하듯 울려퍼졌다.
그렇게 사탕을 전부 씹어 섬긴 내가 후 하고 민트향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하도 역겨운 소리를 들어서 속이 좀 더부룩 했는데 이제 좀 낫군요."
"...뭣...!?"
"정리를 회장님이 하신겁니까? 제가 등 떠밀어 시킨게 아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제 손으로 한걸 왜 회장님이 생색을 내십니까?"
"이놈이...!"
그렇게 부들대는 김두혁 회장을 보며 나는 마저 말을 이었다.
"거기다. 말이 웃기는 군요. 놀았다니요. 회장님은 물론이고 회장님 자식 중에 아니 이 나라에서 고작 10억으로 저만큼 성공한 사업가가 있기는 합니까?"
"... 그건 내가 말이..."
"거기다 그 10억도 제가 침묵하고 있겠다는 조건 하에 받은 것 아닙니까? 누가 들으면 제게 미안해서 거저 주신 줄 알겠습니다."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야이 자식아!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닙니까?"
"애초에 그 10억은 너랑 내가 조손관계를 회복하고...!"
"그건 그쪽이 건 조건이지 제가 건 조건에는 제가 침묵하기로 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건 조건에 혹하신 것도 사실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조손관계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면 진즉에 법적 관계 회복은 아니더라도 공표는 하셨겠지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남남 아닙니까? 그래놓고 무슨 그런 허울 좋은 말씀을 하십니까?"
"그렇게 치면 우리 쪽 역시..."
나는 김두혁 회장의 말을 뚝 잘라먹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도 생각이 다 있으니. 구태여 저를 사지로 몰겠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군요."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왜 널 사지로 몰아! 널 데리고 와서 내 후계자로...!"
"그게 저를 사지로 모는 일이란 말입니다. 끽해야 동네 구멍가게보다 나은 수준인 태균을 물려받겠다고 제가 왜 죽음까지 자처해야 하는 겁니까?"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구멍가게? 죽음? 그게 무슨 개소리야!"
"물어볼꺼면 하나씩 물어보세요. 흥분해서 이것 저것 막 물어보지 말고."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자 나는 마저 말을 이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는 표면적으로야 제게 제안하듯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지만...실상은 통보하는 자리겠지요."
"... 그래. 그리고 그 말인 즉 너도 이건 막을 수 없다는 것 잘 알지 않느냐. 애초에 천륜이다. 석훈이도... 그걸 재료 삼아 회사에 복귀하려는 게고."
"그 빌어먹을 천륜. 그것 때문에 제가 여태 참아줬다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뭐?"
"노영숙도 적당히 노대호 대통령 통해서 훈계하는 선에서 끝냈고, 김석훈도 꼴에 애비라고 실권만 날려버리는 선에서 정리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친생자관계 존재확인소송? 그걸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이 안오십니까?
알면서 그러는 거면 회장님 역시 내 재산을 탐내는 것이고, 모르고 같이 동조하는 거라면 그 머리가 장식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군요."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인상을 쓰며 침묵하다가 이내 박승철 이사를 바라보자,
함께 생각에 잠겨있던 박승철 이사가 이내 눈을 부릅 뜨고는 말을 이었다.
"설마... 상속권이 생긴다는 겁니까?"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박승철 이사의 말을 끊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이 사람아. 그걸 누가 모르나? 애초에 태준이에게 정당한 상속권을 주려고 지금..."
김두혁 회장입에서 나온 순진한 말...
"아니...잠깐. 설마...!"
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경악성을 내뱉자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믿기지 않으십니까? 아직도 자기 자식이라고 감싸고 도는 꼴이 우습네요. 박이사님도 눈치챈 것인데요. 박 이사님 어디 한 번 회장님께서 이해하시기 쉽도록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박승철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승철 이사의 추측.
정확히는 김석훈이 고안해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전략을 들은 김두혁 회장은 벙찐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입가에 가져다 대고는 불을 붙였다.
"후..."
그렇게 담배연기를 마시고 내뱉은 김두혁 회장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놈이 미리 다 준비를 해두고 있던 것도. 전부 상속을 받기 위해서다?"
"예. 제가 미혼이고 자식도 없으니까요. 저만 사고사로 죽어주면 남은 상속권자는 김석훈 그 놈과 제 어머니 뿐이지 않습니까?"
"그 말인 즉, 네 어미도 위험하다는 말이구나."
"예. 거기다 이미 전적도 있죠."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그 점까지 내가 세심히 봤어야 하는데 못봤구나. 미안하다. 더는 힘을 못쓸거라 생각한 내 잘 못이 크다. 자식이라고 너무 감싸고 돌았어."
"그럼..."
"그래. 내가 이 참에 그 놈을 철저히 감시하마. 너는..."
그 말에 나는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며 훑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를 놔주실 생각은 없으시단 말이군요."
"네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내가 너를 포기하겠느냐."
오만한 발언도 이런 오만한 발언이 없었다.
나보다 한참 작은 규모의 태균.
거기에 이제는 정치권 인맥도,
가진 정보력도,
하다못해 리스크 매니징도,
무엇하나 나보다 처지는 집단을 이끄는 태균의 수장이.
나를 포기하네 마네 하며 여전히 내 위에 있으려 하는 모양새가 나로서는 썩 달갑지 않았다.
애정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애정도 팍팍하게 식어있는 마당이라 더더욱 그랬다.
이에 나는 그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
"김석훈을 완전히 박살내버릴겁니다. 그 과정에서 태균이 휘말리게 되더라도 절 원망하지 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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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이 손의정은 이번 인수로 인해 반영된 새로운 주주명부를 보며 인상을 썼다.
"내가 60%, 모건 스탠리가 30%, 회장님이 10%...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애초에 돈이 넘쳐나는 분이라 비율에 맞게 추가 투자를 단행할 거라 생각은 했으니 예상 밖의 일은 아닌데...."
모든 것이 예상대로 돌아가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손의정은 미묘하게 느껴지는 불안한 냄새에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불안감을 느꼈다.
"거기에 결과적으로 한국의 태균텔레콤과 도쿄디지털셀을 나눠 지배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이것도 거슬리는 군."
그렇게 손의정이 인상을 쓰던 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손의정의 허가가 떨어지자 손의정의 비서가 서류하나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일전에 검토지시하라 하셨던 기업공개 관련 서류입니다."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서류를 받아든 손의정이 부드럽게 축객령을 내리자 들어왔던 비서가 다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비서가 나가자, 손의정이 비서가 건넨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
..
- 정문 상장보다 우회 상장이 상장 가능성이 높음.
서류에 쓰여진 문구하나를 본 손의정은 눈을 부릅뜨며 해당 문구에 펜으로 별을 치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거야...! 그래 이거면...!"
그렇게 손의정이 내선전화를 들고는 곧바로 비서실에 연락해 말을 이었다.
"상장관련 팀들 모두 소집하세요. 도쿄디지털셀을 이용한 우회상장절차에 들어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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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두혁 회장에게 경고를 날린 뒤, 태준이 바람처럼 사라지자.
- 쩅그랑.
김두혁 회장의 방에서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크리스탈 재떨이는 10년 조금 넘는 그 수명을 다하고 벽에 부딪혀 산산히 터져나갔다.
"대체! 김석훈 이 놈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거야!!!"
그 분노의 소용돌이의 중간에 선 박승철 이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기획 1부에서 들어온 보고는 없었습니다."
"보고가 없어? 옆에 끼고 관찰하는 우리도 모르는걸 태준이는 다 안다는 듯이 말했어! 그럼 그 놈들이 무능한게지!
내 말이 틀려?! 그 놈들 전부 갈아치우고 새로 뽑아서 다시 사람 붙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준 도련님이 사실 범인의 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지요. 처음 찾아 뵈었을 때부터 그 비상한 머리로 전부 상황을 파악하셨으니...
이번에도 주어진 정보만으로 모든 상황을 내다보고 말씀하신 걸 겁니다."
박승철의 말에 김두혁 회장이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다시 앉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야. 말해봐."
"일단 소송준비를 조금 늦춰보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다음 석훈 도련.. 아니, 김석훈 이사의 행보를 관찰하는 편이 좋겠지요.
태준 도련님이 보신 대로라면 소송은 필요조건이니까요.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태준이는 한다면 하는 놈이야. 알지?"
"예. 최근 파운드 사태도 그렇고... 태준 도련님 능력으로 작정하고 전방위적 공격에 들어오면 분명 태균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어떻게든 태준 도련님의 분노가 우리쪽에 튀지 않도록 수습해보이겠습니다."
"전략 3부 놈들도 풀 가동 시켜."
"하지만 일전에도 보고 드린 바와 같이 낄 틈이 없어서... 멀리서만 지켜보는게 고작입니다. 그나마 이번 유니버스 비서실 확장 때 한 명을 잠입시키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껏 개점 휴업 상태로 둘건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 잘 구슬러 보란 말이야!"
김두혁 회장의 언성이 높아지자 박승철 이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병철 부장을 태준 도련님께 보내보겠습니다. 안면이 있는 만큼 곁을 내어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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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균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와 김석훈에 대한 선전포고를 내리고 평창동 고택 밖으로 나오자 민영이 황급히 차에서 내리며 내게 말했다.
"지금 바로 동교동으로 모시겠습니다."
"김태충. 그자가 보잡니까?"
"예. 회장님께서 주신 쪽지를 보여주니까 바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더니 회장님을 모셔오라더군요. 오실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서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민영과 함께 차에 올랐다.
그렇게 동교동으로 향하는 차에서 나는 품에 있는 비화폰을 꺼내 오오와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박영감은 만났습니까?"
"예. 만나기는 했는데.. 그 쪽에서 회장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예상대로의 말에 나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이 쪽 일 끝내고 바로 명동으로 가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오오와다에게 전화를 마치자 민영이 말을 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김태충 의원이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습니다."
"쪽지 내용을 안본겁니까?"
"예."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김태충 의원의 역린을 건드렸거든요."
"역린...이요?"
"예. 뭐... 같은 '서자' 출신이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요."
그 말에 민영이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 않은데 같은 서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쪽지의 내용을 민영에게 읊어준 나는 흘러가는 차창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김석훈이 아예 계획을 시작조차 못하게 만들어줘야지. 양육포기자에 대한 상속권 배제법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