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전쟁 (3)
평창동의 고택에서는 희미하게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모건 스탠리쪽에서 방향을 틀 것 같다는 말이지...?"
"예. 얼마전 세워진 서울지사장에게 물어보니 저희가 제안한 조건이라면 충분히 저희한테 팔 수도 있을 거랍니다."
"태준이 고놈 배 좀 아프겠는걸?"
"어차피 후계자로 태준 도련님을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훗날에는 태준 도련님에게 이 모든게 넘어간다는 것인데... 어째서 그렇게 즐거워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김두혁 회장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놈은 지 애비와도...아니 순둥하게 자란 내 자식들하고 비교해도 질적으로 다른 놈이거든."
"예?"
"날 더 닮았으니까. 그 놈 성격에 나한테 물려받는걸 거부하진 않겠지만... 그걸 순순히 받아들 놈인가? 제 힘으로 먹어치우면 먹어치웠지."
그 말에 박승철 이사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이 쪽은 거의 다 된 걸로 봐도 될테고... 이제 태준이 놈을 옭아맬 준비를 해야겠군."
"준비라고 하시면...."
"부산에 가서 석훈이 놈 내 앞으로 끌고 와. 그 놈이 해줘야 할 게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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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와다는 연이어 전달된 태준의 계획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태균텔레콤... 지분 25%, 소프트방코 지분 40%.... 미쳤어..."
모건 스탠리 쪽에 제안할 내용은 말 그대로 웃돈을 받는 모건 스탠리와 태준만 승리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도쿄디지털셀의 지분 35%를 태균텔레콤의 지분 35%와 바꾸고,
남은 도쿄디지털셀의 지분 35%를 소프트방코 지분 40%와 바꾸면,
도쿄디지털 셀의 지분 구조는
태균텔레콤 35%
소프트방코 35%
개인주주 30%
라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건 스탠리는
태균텔레콤의 지분 35%와 소프트방코의 지분 40%를 확보하게 되고,
여기서 모건 스탠리가 확보한 지분들을 웃돈을 주고 태준이 매입하게 된다면...
태준이 태균텔레콤의 지분 35%를 가짐과 동시에 소프트방코의 지분을 50% 확보하면서, 사실상 소프트방코를 인수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만 이뤄진다면.... 회장님의 지배구조는..."
오오와다가 즐거움과 놀라움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태준의 지배구조를 그려나갔다.
그렇게 복잡하게 (그래봐야 한국과 일본의 재벌기업의 순환 출자구조에 비해 상당히 간단한 그림이었다.) 지배구조를 그린 오오와다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AMD를 완전히 인수할때 지배구조 정리가 아직 안되서 유니버스와 지분교환이 되어있네... 퀄컴도 AMD와 나눠서 지배하는 그림이고....
AMD개인 보유 지분때문에 지분 정리를 미루고 계시는 건가...?"
지배구조를 정리한 오오와다가 그 그림에 태균텔레콤과 소프트방코를 집어넣자....
"역시... 거래 편의를 위해 미국 랜더스쪽에서 인수를 진행하면 완전히 꼬일대로 꼬여버리는군. 차라리 이번 딜을 걸되 한국 랜더스에서 인수하도록 하는 게 낫겠어."
그렇게 지배구조를 정리해가며 인수 전략(이랄 것도 없었다. 돈이 많으니 그저 제안하면 그 뿐이었으니까.)을 짜던 오오와다의 가슴팍에서...
- 즈즈즈
진동이 느껴졌다.
"예. 회장님."
태준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오오와다가 답하자, 태준이 말을 이었다.
"바쁩니까?"
"아닙니다. 이제 막 출근해서 회장님 지시사항 이행중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다름이 아니라, 추가로 일 하나만 지시하려고 합니다. 미국 게임 회사중에 실리콘&시냅스라는 회사가 있을 겁니다. 인수의사 타진해보세요.
그리고 일본에 게임프리크라는 회사도 알아보시고요. 그 쪽도 포함해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지시사항이 있으십니까?"
"그 외에는 없습니다. 아, 그리고 도쿄디지털셀. 알아보니 상장회사더군요. 일본 랜더스에서 한국이동통신 통해서 매집작업에 들어갔으니 이점 유념해서 전략짜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그럼 그렇게 해서, 이번 일과 함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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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은 93년 1월의 어느날.
손의정은 뜻밖의 제안에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식교환으로 거래를 마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다만, 파는 주식은 절반입니다."
"그럼.. 남은 35%는 모건 스탠리에서 가지고 있는 겁니까?"
"글세요. 그 부분은 확답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외비라서요. 대신 교환비를 소프트방코측에 유리하게... 소프트방코 주식 40%와 도쿄디지털셀 주식 35%로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손의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상장이후에 제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 측에서 추가 대출을 해드릴테니까요."
그 말에 손의정이 책상을 내리치며 말을 이었다.
"지금 그걸 제안이라고 하십니까?"
그 말에 모건 스탠리측의 인사가 통보하듯 말을 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저희 쪽에서는 동일한 조건으로 태균텔레콤에 팔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 쪽 계산에는 이 제안이 제일 합당합니다."
"40%는 안됩니다. 35%로 하죠."
"그럼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지불해주셔야 겠습니다."
"현금...?"
손의정이 말끝을 흐리며 되묻자 모건 스탠리측 인사가 계산기를 두들기더니 나온 숫자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1억 달러입니다."
그 말에 손의정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한편, 같은 시각 한국에서는....
"태균텔레콤 지분 35%에 도쿄디지털셀의 지분 35% 교환 어떠십니까?"
"괜찮네요. 돈 들어갈 일 없고."
태균의 대표자로 나온 박승철 이사와 모건 스탠리 서울지사장과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서로 이렇게 윈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나머지 35%는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대외비라 알려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박승철 이사가 슬쩍 옆에 차키를 내려놓았다.
BMW로고가 차갑게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렇게 차키를 내려놓은 박승철 이사가 말을 이었다.
"가시는 길 짐이 무거우실까 기름도 가득 채워뒀습니다."
박승철 이사의 담담한 말에 모건 스탠리 서울지사장이 침을 꿀꺽 삼키자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 안에서 있던 일은 아무도 모를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 필요도 없지요. 계약도 마친 마당에 언제 아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서울 지사장이 손세수를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일본의 소프트방코 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박승철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곤 차키를 둔채 사라지자 서울지사장이 냉큼 차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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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어온 손의정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의뭉스럽게 그에게 되물었다.
"....1억 달러. 추가 대출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자 손의정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내게 추가 대출을 요청하는 말을 꺼내들었다.
나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벌써 9억 달러가 들어가는 것인데... 혹시 그 돈이 왜 필요하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통신 업체를 인수하고자 합니다."
"통신 업체라니... 어딥니까 거기가?"
그 말에 손의정 역시 의뭉스럽게 말을 뭉개며 대답했다.
"도쿄에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이동통신업체입니다. 전국 5위 규모 업체죠. 인수만 하면, 확실하게 돈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내 대답에서 긍정의 의사를 읽은 것일까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성급히 결론을 지으려는 손의정의 말을 막고 말을 이었다.
"이참에 아예 계약을 갱신하죠. 저한테 10억 달러를 빌려가시고, 기존의 8억 달러를 갚는 것으로 처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예?"
"그런 다음 거기에 조건을 하나 걸죠."
"조건...말씀이십니까?"
"예. 주식을 담보로 맡기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손의정이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담보로... 주식을 맡기라고 하시면... 어느정도나..."
"당연히 10억달러 만큼은 주식을 맡기셔야겠지요. 평가는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대충 30% 가까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손의정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30%를 담보로 맡기는 동안에는 소유권과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보장해주신다면...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일반 담보로 계약서 상으로만 담보를 잡아두겠습니다. 아, 물론 상장시 판매는 금지합니다. 언제까지 갚으실 생각이십니까?"
"6개월 안에 모두 갚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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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손의정이 본인 소유의 주식 30%를 담보로 태준으로부터 돈을 빌려 30%의 주식과 2억달러의 돈으로 35%의 도쿄디지털셀을 인수했다는 소식은...
[이번엔 통신이다. 손 요시마사, 모건 스탠리와 손 잡다. 도쿄디지털셀 소프트방코의 품으로]
- 손 요시마사, 일본의 김태준이 되려고 하는가.
태준으로부터 손의정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도,
모건 스탠리가 도교디지털셀의 남은 주식도 태균그룹에 팔아치웠다는 사실도,
전부 숨겨진채 화려하게 일본 전역을 강타했다.
"이걸로 소프트방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된 겁니다."
"맞습니다. 버블이 꺼지면서 단기적인 침체에 빠졌지만... 이번 사건으로 모건 스탠리 역시 일본 시장의 가능성을...."
그리고 그러한 소식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일본 경제를 다시 되돌려놓겠다'는 공약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자민당측 인사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전도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일본이 소프트방코의 이번 지분교환을 두고 희망에 가득찬 설왕설래를 주고 받고 있을 때.
한국에 있던 태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닛케이신문을 내려놓고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오오와다에게 말을 이었다.
"좋네요.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전부 회장님께서 계획하신 건데요."
"계획은 누구나 그럴 듯 한 법이죠. 실행이 어려운 것이지. 어려운 일 잘 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오오와다가 어색하게 웃자 민영이 차를 내오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요?"
그 말에 오오와다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모건 스탠리측으로부터 바로 매집한 주식을 인수한 후 바로 신탁으로 맡겼습니다. 태균텔레콤 35%, 소프트방코 30%까지. 신탁기간은 정확히 6월까지입니다."
"그 말씀은..."
"예. 신탁기간이 끝나 주식을 받아 신고하면. 일본의 소프트방코에도, 한국의 태균텔레콤에도 핵폭탄이 떨어지겠지요."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프트방코가 우리 쪽에 진 빚이 10억 달러입니다.
손의정 사장 제게 개인이 빚을 져서 다시 투자금을 넣었고, 우리 쪽 역시 그에 맞춰 투자금을 넣었으니 비율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모건 스탠리와의 거래가 이뤄진 게 함정이죠.
지분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거래가 이뤄진데다 빚까지 졌으니...
현재 표면상으로는 소프트방코의 주식 비율이 손의정 사장 60%에 모건 스탠리 30%, 랜더스가 10% 이렇게 보일테니 손의정 사장도 안심하고 상장에 들어가려 할 겁니다.
제가 시중에 풀릴 물량을 전부 확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테니까요.
모건 스탠리가 팔아치울 30%, 본인이 상장하며 팔아치울 20% 이 정도로 비율을 생각하고 있겠죠.
그 과정에서 유상증자로 물타기를 할 생각도 하고 있을테고요."
내 말에 민영이 순간 놀라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쪽이 모건 스탠리가 가진 30%를 이미 확보했으니까...?!"
"예. 상장을 하고 팔아치우는 순간 손의정 사장이 물타기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소프트방코를 먹는 겁니다.
물타기용으로 유상증자한 주식대금은 곧바로 소프트방코에 귀속되지 손의정 사장의 자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 만큼, 손의정 사장이 벌어들일 수 있는 개인자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에라도 상장이 기대만큼 높은 가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쪽에서는 손의정 사장의 지분을 추가로 뺐어오게 되는거군요!"
민영의 천진한 말에 내가 씩 웃자, 오오와다가 말을 이었다.
"뺐는 것은 아니지요. 정당한 처분 절차일 뿐이니까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정당하게' 유상증자분을 제외한 지분 모두를 확보하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