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64화 (64/200)

064. 전쟁 (2)

김응삼 당선자와의 대화는 중간이 없는 것 처럼 진행이 되고 있었다.

"와. 좋나?"

"좋지요. 그럼. 다만, 그것만으로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게 되는 건지는..."

뭔가 내용이 쑥 빠져있는 듯한 말에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묻자 김응삼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야. 이놈 머리 좋은 줄 알았는데 맹탕이구만. 잘 들어라. 금융실명제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한 거 아이가?

다들 은행으로 몰려가 지 예금 뺄라 그럴거 아이가. 뱅크런이 벌어질끼다 이기야.

그걸 막을라카모 어떻게 해야겠노? 우선은 계도기간 주고, 실명전환 유도하고, 그래야카지 않겠나?

그러면 우찌 되겠노? 은행이 마비가 되긋지? 은행 마비되모 안 그래도 이거 맘에 안들어카는 놈들이 뭐라카겠노? 김응삼이가 또...."

한 마디로, 혼란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PC뱅킹 시스템을 국가 주도로 개발하여 보급하겠다는 말이었다.

말 자체로는 일리가 있는 것이었으나....

"PC보급률이 늘지 않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있었다.

PC보급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노대호 대통령과 딜을 하긴 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소규모 생산에만 그치고 있었으니... 김응삼 대통령 생각대로는 어려워.'

실제로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받았던 국민PC보급 사업의 일반 보급률은 28%로, 시행전에 비해 10%p 증가한 선에 그쳤기 때문에, 김응삼이 생각하는 것 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 자명했다.

'거기다.... 보급률이 전부가 아니지. PC뱅킹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할테니...'

그렇게 내가 한계점들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있자, 김응삼이 말을 이었다.

"노대호 금마가 너 밀어주면서 한 정책은 아직이가?"

"예. 애초에 이제 막 시작단계인데요. 무료 PC통신 보급은 하고 있지만... 그래 봐야 이제 삼분지 1도 안 됩니다.

그 마저도 원래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나 PC카페(PC통신을 쓸 수 있게 만든 PC방의 일종) 사용자들 중에 늘어난 것이라 아직 일반 보급 수준은 안 되고요."

"그럼 그거부터 해야겠군. 정권 바뀌는대로 PC통신 단말 보급 사업 진행해봐. 내 도와줄께."

"노대호 대통령의 치적 사업을 계승하는 모양새인데 괜찮으십니까?"

"어차피 해야할 일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지."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외려 그러는 편이 더 좋으신 것이군요."

"역시 니는 그냥 정치나 해라. 눈치는 빨라가지고."

내 말에 김응삼이 긍정하며 웃자 나는 더는 묻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납기일은 언제까지로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은 내 임기 시작일이 내년 3월이니까... 적당히 7월쯤이 좋지 않겠나?"

"7개월 정도 남은 셈이군요."

"그렇지. 너무 짧나?"

"아뇨. 빠르게 해보이겠습니다."

"그럼 니만 믿고 있으께. 잘 해라. 아. 그리고..."

그렇게 김응삼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서류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각서였다.

전생에도 금융실명제 관련해서 비밀유지를 위해 각서를 받아냈던 김응삼다운 행동이었다.

'그 유명한 각서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거참. 뭐 그런대로 괜찮지. 이것도.

이 각서 자체로 사실상 김응삼의 이너서클에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일이 틀어져도 후에 내가 빠져나올 구실로 쓰일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틀어질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 내가 각서를 한참 읽으며 '입 조심만 하면' 문제 될 일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고는 슬쩍 김응삼을 바라보며 말했다.

".... 저를 못믿으십니까?"

장난삼아 한껏 섭섭한 표정을 띄며 말을 건네자 김응삼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니를 못 믿으모 애초에 이리 부르지도 않았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안 부르고 니 부터 불렀더만... 쯧.

그라고, 니랑 태균이랑 사이 드러븐거 알지만, 그래도 또 모르는거 아이가? 퍼뜩 싸인이나 하고 일 보러 가그라."

그렇게 각서에 사인을 하고 상도동 저택을 빠져나오자....

"함께 가주셔야 겠습니다."

이번에는 양복 차림의 요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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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대선 결과에 정치인들에게 불려다니던 그 때, 일본에 있던 손의정 역시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인수 발표와 동시에 상장을 통해 빚을 처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괜찮은 방법이네요. 사실 소프트방코의 경우 실적도 좋은 편이고, 인수한 회사들 모두 나름대로 실적을 내고 있으니 빚만 빠르게 처리 할 수 있으면 배당을 노린 투자자들이 많이 몰려들 겁니다."

그 말에 손의정은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회장님과는 동등한 입장이 될 수는 없겠지.

대외적인 영향력은 동급일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회장님은 오롯이 본인 소유의 회사들로 그 정도까지 온 거니까.'

그렇게 손의정이 무의식에 가까운 속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속으로 태준에 대한 패배선언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모건 스탠리 측의 인사가 말을 이었다.

"그럼 손 사장님의 제안은 저희쪽에서 검토를 해 보고..."

그렇게 이어진 말에 손의정이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검토라니요? 그 쪽에서 제안한 것 아닙니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모건 스탠리 일본지사장이 일본인 특유의 손짓으로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만, 내부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

그 말에 손의정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매수제안이 왔군요."

일본 생활이 긴 손의정이 여태 한 번도 내비친 적 없는 한국인 특유의 직설적인 말투에 모건 스탠리 일본지사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우선은 검토가..."

"대체 누굽니까? 그 쪽에서 선 제안했던 것 마저 뒤집을 정도라면... NTT입니까? 아니면... KDDI?"

말을 빙빙 돌리려드는 일본 지사장의 말에 손의정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몰아 붙이자, 모건 스탠리 일본 지사장이 졌다는 듯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국의 태균그룹에서 제안을 해왔습니다. 해서.... 저희 쪽에서도..."

그 말에 손의정은 인상을 찌푸렸다.

"태균이라면... 한국의 재벌그룹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왜..."

"이번에 한국에서 통신시장 민간 개방이 있었으니까요. 한번에 다국적 통신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계획이지요."

그 말에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뭘..."

"매각대금의 절반을 선 지급 하지요. 주식으로."

"스톡 옵션으로 주시겠단 겁니까?"

"예. 상장 전에 미리 받으시고, 상장 이후에 상장차익을 실현하면 모건 스탠리로서도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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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나?"

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청와대의 내부에 있는 관저였다.

일전에도 온 적이 있었기에 나는 어색함 없이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퇴임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일단 안에서 이야기 하지."

그렇게 일전의 그 서재로 끌려가듯 들어간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래, 김응삼이 자넬 왜 부른건가?"

"아니, 그보다. 들은 이야기는 뭐지?"

"인수위 작업도 들어가기 전인데 벌써부터 자네를 부른건... 자네 정치할 생각인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노대호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 천천히 물어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신이 없군요."

그 말에 노대호가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해하게.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 말과 함께 살짝 떨리는 그의 손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우선. 각하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저는 그저 일을 받으러 갔을 뿐입니다."

물론 그 한숨과 함께 밖으로 나온 말은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모를리가 있나. 목 떨어질까 그거 걱정하는거지. 근데 난 낄 생각이 전혀 없거든.'

내 말에 노대호가 '일? 무슨 일?'하고 되묻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선거에 도움을 줘 고맙다면서 PC보급 사업을 도와주신다 하셨습니다."

"그건 내가 이미 하던게 아닌가?"

"예. 거기에 더해 국가규모의 PC뱅킹 표준설계도 맡겨주셨지요."

"흐음..."

내 말에 노대호가 침음성을 흘리더니 축 하고 푹신한 중역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가? 그 밖엔 뭐 없었나?"

그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딱히 뭐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선물이라도 요구하실 줄 알고 품에 혹시 몰라 축하금도 들고 갔는데...."

"김응삼이 그자가 그런 걸 어디 받을 사람인가? 타고나길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는데. 거기다 일전에 자네가 돈 벌어다 준게 어디 한 두푼도 아니고."

"예. 애초에 말도 못 꺼냈습니다."

이어진 내 말에 순식간에 안도한 표정을 띄우며 의자의 팔걸이를 툭툭치는 노대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안심한 모양이네.'라고.

그리고 그런 내 생각대로, 노대호는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하며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를 부른 이유는 이걸로 해결이 되었네."

"이걸 물어보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그래. 솔직히 나랑 김응삼이 그자랑 당만 같은 당이지 막말로 서로 불구대천급의 원수 아닌가.

중간 다리로 삼을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지. 자네 빼고는."

"뭘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노대호가 후 하고 산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정두황이랑 같이 엮여서 목 날아갈까. 그게 걱정이네."

그 말에 나는 노대호의 정치적 감각에 경악하며 말을 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군부도 그렇고... 여전히 일심회의 힘이 강한데요."

"강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하지만 힘이 강하다고 해서 내 목까지 지킬 수 있는건 아니니까. 막말로 후배들 입장에서 우리가 다시 해먹는다 하면 그거 좋게 보겠나?

다음은 지들이라고 생각하고 우리한테 충성한 걸텐데.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일심회가 통으로 날아가버리는게 나은 형편이지.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 말에 나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각하께서 위험해 지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지. 어차피 일심회 후배들이나 나나 일심회 안에서는 전부 정두황이 시다바리인데... 안 그런가?"

그 자조섞인 표정에 나는 순간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노대호가 말을 이었다.

"뭐... 자네 말을 들으니 그래도 안심이네. 자네 말만 들어보면 약속한 대로 해줄 것 같으니.

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도 그렇고.... 나와 많이 엮여있는 자네를 계속 등용해 쓰는 것도 그렇고."

"..."

"그래. 자네가 아는 그대로야. 명분용으로 정두황계 일심회 놈들 싹 쳐내는 것. 거기에 학군장교 라인까지. 내 라인은 김응삼이에게 온전히 협조하기로 했거든.

김응삼이는 김태충이하곤 달라서 약속하나는 잘 지키니 믿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내 한짓이 있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그 말에 나는 역사 속에 감춰진 진실하나를 알게된 기분이었다.

'급작스러운게 아니라... 정치적인 거래와... 배신의 결과물이었던건가? 어쩐지. 군부가 쉽게 무너졌다 했지.'

전생.

그러니까 이 시대를 살았던 내 또래라면,

김응삼이 행한 일심회 척결이 너무 허무하다시피 쉽사리 이뤄졌다는 것에 모두 공감할 터였다.

그것을 밖에서 보고 있을 때는 그저 일심회가 기습당해 사라졌다고만 생각했지만...

'실상은 김응삼 대통령의 정치력에 놀아났던 거였구만. 군바리놈들.'

그렇게 내가 전생을 떠올리며 가만히 침묵하자 노대호가 허허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이제 고민도 해결되었고... 나도 자네한테 선물하나를 줘야겠는데?"

"선물..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퇴직금 챙겨줬고, 또 지난 파운드화 공격때 적시에 오픈해서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이득도 가져다 줬으니까. 자리에 있을때 나름대로 치하를 해줘야겠지.

내 어차피 이빨도 다 빠졌고.. 딱히 이득으로 줄 건 없고...."

그렇게 노대호가 내민 것은 봉투 하나와 자그마한 상자였다.

"이게 뭡니까?"

"열어봐."

그렇게 상자를 열자 훈장 하나가 들어있었다.

"과학기술훈장이야. 국민훈장을 줄까 하다가... 이번 투자 건을 명분으로 삼기엔 좀 너무 꼴이 우스워서 말이지.

자네 팀이 개발한 CDMA관련 특허를 공적으로 해서 QULAB에 훈장을 수훈했네.

진보장이라 급은 좀 떨어지는데... 그건 이해하라고. 별도의 식 없이 주려고 한거니까. 수훈자 명단에는 QULAB연구원 전원이 들어갈거야. 어때. 마음에 드나?"

그 말에 나는 살짝 훈장이 든 상자를 덮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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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훈장을 받던 그 시각.

민영은 오오와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회장님 계십니까?"

"지금 대통령 당선인 만나러 가셨습니다."

"...이런. 그럼 민영상이 전해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민영이 황급히 책상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와 말을 이었다.

"말씀하세요."

"이번 거래에 태균도 끼어든 모양입니다. 도쿄디지털셀 인수가 복잡하게 흘러갈 것 같다. 이렇게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민영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끊고는 곧바로 전에 확충한 비서진들을 호출해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태균쪽 자금 흐름 주시하세요. 그리고 김팀장님(KOTEC 요인보호팀)한테 연락해서 바로 평창동 주시하라고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민영이 오오와다의 보고를 먼저 받아 기본적인 처리를 마치고, 돌아온 태준에게 보고하자 태준은 받아온 훈장을 책상 위에 턱 하고 놓고는 말을 이었다.

"거 참... 노인네. 도와줄거면 대놓고 도와주지... 뒤에서 살금살금..."

그렇게 태준의 혼잣말에 민영이 뭐라 되물으려는 그 순간.

태준이 손을 들어보이며 민영의 말을 막고는 오오와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고 받았습니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죠. 모건 스탠리에 접근하세요."

"알겠습니다. 접근한 다음 우리쪽도 이번 인수전에..."

"아뇨. 이 참에 김두혁 회장한테 빼앗겼던 제2이동통신사업자도 뺏어와야겠습니다."

"예?"

"모건 스탠리에게 가서 소프트방코와 태균텔레콤. 양쪽에 쪼개팔라고 제안하라고 하세요. 대금은 전부 주식으로 받으라고 하고."

"그 말씀은...."

오오와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 끝을 흐리자 태준이 상쾌하게 웃음 지으며 오오와다에게 말을 이었다.

"예. 우리는 거기서 나온 소프트방코와 태균텔레콤 주식을 사들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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