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61화 (61/200)

061. 파운드화 공격 (4)

내 말과 함께 발행되기 시작한 채권은 기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국채도 아닌 일반적인 회사채가 이렇게나 빨리 팔려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진기한 일이었으나....

"어떻게 이렇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죠?"

"공고도 했고, 발행량도 한국에선 5000억, 일본에선 1조가 넘는데...!"

"정치권이 엮여있으니까요. 여야 할 것 없이."

"하지만 한 곳은 빠져있지 않나요?"

"민평당 말입니까?"

"예. 거기선 분명 문제시 할 줄 알았는데... 상당히 조용하네요?"

"그쪽은 그쪽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겁니다."

"계산... 이요?"

민영의 의문에 나는 내 옆에 놓인 신문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대선 정국이니까요."

"대선 정국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아?!"

"예. 본격적인 선거 활동이 시작되면, 바로 공세에 들어갈 생각일 겁니다. 네거티브 전략용으로 아껴두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나는 신문에 쓰여진 날짜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 그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으니.... 이걸 막판 저격용으로 아껴두고 싶겠지. 정영수든, 김태충이든.'

내가 생각한 그 사건.

그것은 '평야가든 사건'이었다.

부산지역의 기관장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김응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 모의했던 사건이자, 헌정사상 최악의 도청사건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최악의 도청사건'화' 한 것이었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후보는 민주화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김응삼,

그리고 대현그룹의 창업주 정영수

이 두 사람이었다.

어느 관점,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치권 최악의 게이트가 될 이 사건에 대해 경고를 해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노대호도 김응삼도 협조적이긴 해도 딱히 예쁘지는 않으니까.'

딱히 막을 의지도.

'거기다 이 평야가든 사건이 터져야 내가 돈 가져다 쓴 게 티가 안난다.'

딱히 막을 실익도 없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어차피 돈을 벌어다가 갚기만 한다면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뒷구멍으로 받아 모은 돈인 만큼, 수북이 먼지가 쌓여 있는 돈이기에 굳이 털어서 먼지 묻을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채권을 팔고

일본에서 사실상 불법에 가까운 대출을 받아 마련한 돈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금성 자산들을 모두 챙겨 쌓은 실탄은....

한화 6,340억

엔화 3,300억엔 (우리돈으로 약 2조)

그리고 미국에 건너간 달러 39.4억 달러 (우리돈으로 약 3조) 까지 해서

해서 약 5조 가량

여기에 오브라이언 가문이 랜더스에 운용자산으로 맡긴 아일랜드계 자금(우습게도 에이레 푼트가 아니라 영국 파운드였다.)과

오브라이언 가문의 개인 자산까지 약 우리 돈으로 1조 정도가 더 들어와 총 6조의 실탄이 마련되었다.

단순 환율로 계산하면 최소로 잡았던 46억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79억 달러 정도의 돈이었다.

그렇게 돈이 전부 들어오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기까지 일주일이 지나고,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미리 계획한 밑밥을 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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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의 사인이 떨어지자 마자 미국 랜더스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지금 당장 보도자료 준비하고, 빨리 인터뷰 준비해!"

"퀀텀 펀드에는 연락 했어? 스탠리?"

"지금 하고 있어!"

"빠르게 움직여야 해. 분위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고."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며 그들이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언론 플레이였다.

[영국 경제의 미래전망]

- 기조 연설 : 조지 소로스

- 토론자 : 스탠리 드러켄밀러, 타이조 오오와다, 짐 로저스

영국 경제에 대한 미래전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스탠리의 인맥을 활용하여 조지 소로스와 짐 로저스까지 자리에 앉힌 채,

영국의 파산을 일주일에 걸쳐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영국은 ERM을 탈퇴하던지, 아니면 감당 못할 금리인상을 계속하면서 국민들 고혈을 짜던지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얼마전 영국 재무장관이 ERM탈퇴는 없다고 못을 박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 아니겠습니까? 영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타국을 견제하는 것에만 힘쓰는 박쥐같은 나라 아닙니까.

ERM 유지 역시 그런 차원의 문제겠지요. 유럽에서 계획한 통합 화폐 체제에서 우위를 가져가려면 영국 화폐의 건재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갑자기 대뜸 독일이 이렇게 치고 나와서 영국 입장도 곤란할 겁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손해를 보더라도 계속 ERM에 잔류할 것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미스터 소로스."

"맞습니다. 자존심 하면 또 영국 아닙니까. 애초에 영국이 그 먼 옛날 아서왕 시절 부터 꿈꾸던게 유럽대륙으로의 진출 아닙니까? 하핫.

이번에도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요.물리적 침략이 안된다면, 경제적으로 침략하겠다.

유럽 통합 화폐 체제를 이용하여. 이게 영국의 속내일겁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워낙 잘 해주고 있거든요. 그 재미없는 농담이나 해대는 인간들은 타고난 워커홀릭입니다. 그리고 그걸 경제 회복으로 증명해내고 있지요.

그 정도의 금리인상. 그리고 그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전부 경제 성장으로 막아내고 있어요.

아마 다음 유럽의 패자는 통일된 독일이 될 겁니다. 이 점에서는 대처 수상의 말이 맞았군요. '악당' 독일이 돌아온다."

그렇게 기자들 앞에 조지 소로스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영국에 대한 불안감 심기를 일주일동안 지속한 랜더스와 퀀텀펀드는

92년 9월 16일 한날 한 시에 스탠리의 지휘 아래 영국에 돈 폭탄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한국에 있던 태준은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단순했다.

'작전 개시'

그 단순한 사인에 태준은 곧장 외환은행 딜러실 옆에 마련된 VIP룸에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파운드화를 공매도 해주십시오. 매도하고 들어온 돈으로 다시 파운드화를 사들여 공매도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태준이 공매도를 시작한 시점.

랜더스 일본지사 역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털어 넣어! 전부!"

"파운드 팔고 남은 돈 전부 다시 파운드로 바꿔서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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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미-일 이 세 개 국가에서 동시에 시작된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은 처음에는 꽤 치열한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었다.

미국의 랜더스에서 운용자금으로 받은 영국 파운드의 매각을 신호로

한-미-일 삼국에 존재하는 랜더스의 자금이 한 번에 파운드 공매도로 들어갔고,

그렇게 파운드를 매도하고 들어온 미국 달러(혹은 한국 원이나 일본 엔)를 담보로 다시 파운드를 빌려 매도하기를 수십, 수백, 수천, 수만번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vip룸에서 민영과 함께 차를 마시며 지켜보던 나는 툭 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이게 바이오 로봇이라는 건가..."

"예?"

그 말에 민영이 약간은 무섭다는 듯 나를 쳐다보자 나는 순간 최근에 들려온 체르노빌 관련 뉴스를 생각해내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 중에 매크로라는... 그게 단순 작업을...."

그렇게 내가 허둥지둥 변명을 이어나가자 민영이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도 꽤 불안하신가보네요."

"사운을 통째로 걸고 들어간 작업인데.... 무조건 성공할 걸 알아도 두근 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지요."

"이번에 실패하면 AMD와 퀄컴에 내어줄 남은 인수금액도 문제가 될테구요."

"예. 하지만 실패할 일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 역사에서 퀀텀펀드가 파운드화 공격을 위해 넣은 돈이 레버리지를 전부 다 동원해서 100억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는 레버리지까지 모두 계산하면 거의 480억 달러 수준의 공격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실패를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초반에 한번에 세 개 국가에서 대규모로 파운드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아직 그래봐야 3시간인 걸요."

"아직 금융가의 하이에나들이 안 붙은 모양이네요."

"기다리면 붙겠지요."

"영국이 ERM탈퇴 선언 하기 전에 빠르게 더 붙여야 합니다. 공매도 수량이 늘면 늘 수록 더 많은 손해를 입힐 수 있을테니까요."

"어떻게 하시려구요?"

그 말에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언플을 좀 해야죠. 민영씨. 언론사, 기자 전부 불러주세요."

"전에 불렀던 사람들로 부를까요?"

"예."

그렇게 나는 VIP실에서 간단히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민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 지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들이 모여들자, 나는 방송용 ENG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제 소개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여러분! 외환 계좌가 있으시거나 혹은 외환에 투자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그 투자 상품을 관리하는 여러분.

거문도를 침략했던 영국이 곧 무너집니다. 파운드화가 국제 금융세력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파운드화를 매도하십시오. 없으면 빌려서라도 파십시오. 빌리고 팔고를 반복하시면....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거래를 할 수 없을지 걱정되신다고요? 외환 시장은 24시간 열려있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인터뷰를 모두 마친 나는 슬쩍 vip실 옆 유리창의 블라인드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확 하고 걷었다.

내 움직임을 따라 초점을 옮기던 ENG카메라에 딜러룸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딜러룸이 ENG카메라에 담긴 것을 확인한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하루. 단 하루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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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한 짧은 언론플레이는 한국에 꽤나 큰 충격을 주었다.

"영국 파운드 화를 팔라고?"

"걔들 ERM에 가입되어 있어서 어차피 다른 유럽 국가 모두 망하지 않은 이상 환율이 안빠질텐데?"

"그게... 그렇지 않다더라. 오늘 나온 사람이 랜더스 회장... 그러니까 그 QULAB 오너인데, 이 사람이 며칠전에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더라고. 거기 보면...."

가장 먼저 소식이 빠른 금융가 사람들이 작전에 들어가기 전 태준이 한 경제지와 했던 인터뷰를 확보해 태준의 말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고,

그 확인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나 할 것 없이 파운드 공매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풍은 소수의 부자들을 지나, 일반인에게까지 전이되기 시작했다.

한국 시간으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 파운드화라는 거 공매도 어떻게 하는거요?"

"그와 관련한 상품이 여기..."

그리고 이 때를 놓칠새라 증권사들은 일반인들에게 외환 관련 상품을 급하게 만들어 금감원의 승인을 받기도 전에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금감원에서는

"파운드 공매도 관련된 건은 적당히 보고 전부 통과시켜."

라는 노대호 대통령의 하명을 근거로 마구잡이로 승인을 내주기 시작했다.

단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의 기적이었다.

그렇게 한국 민간 시장 전체가 달아오르기 시작한지 단 두 시간만에

"파운드화가 ERM기준선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잘 버티던 영란은행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급보입니다. 영국이 이번 파운드화 사태에 대해 환율 방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로서 ERM에서 탈퇴한 국가는 총...."

영국 재무장관이 영란은행 앞에 나와 기자회견(을 빙자한 하실상의 항복 선언)을 함으로서....

"파운드화... 파운드화가 수직하락중입니다...!!!"

"그만! 지금까지 확보된 파운드까지만 팔고 전부 대기합니다."

검은 수요일은 막을 내렸다.

원 역사보다 한참을 길게 끌었지만... 승자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정산이 기대되는군. 아예 파운드화가 완전히 휴지쪼가리가 됬으면 공매도한 파운드를 갚을 필요가 없으니 빌린 돈 만큼 버는 건데...

쯧. 어디서 역사가 바뀐건지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느렸어.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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