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60화 (60/200)

060. 파운드화 공격 (3)

타케미치가 태준의 곁을 떠난 것은 NTT상장이 있기 바로 직전 87년 초였다.

그 때로부터 약 4년이 넘게 지난 지금.

타케미치는 다케시타 노보루 자민당 고문의 제1비서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미 은퇴한 뒷방 늙은이 수발 드는게 무슨 '올라가는 것'이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반만 아는 것.

일본 정치권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타케미치가 3년만에 다케시타를 모시게 된 상황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리가 없었다.

일본 정계에서 다케시타 노보루는 소위 '야미쇼군(闇将軍)'이라 불리는 실세중의 실세였기 때문이다.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의 버블을 일으킨 장본인임과 동시에 플라자합의를 성사시킨 자.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버블이 붕괴한 지금 결코 실세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바로 다케시타의 정치적 수완이었다.

본인이 보스격으로 모시던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반기를 들어 자신만의 파벌인 창정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그 반기의 빌미가 되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비롯하여 자민당 각계 각층에 리크루트 사에서 받은 돈(태준이 허영하를 통해 세탁해준 돈)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본인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 와중에 본인이 주도적으로 나선 플라자 합의와 버블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후임 대장대신인 미야자와 기이치에게 떠넘기기까지한 그의 수완은 이미 달인의 경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다케시타의 제 1비서로 타케미치가 그것도 태준의 곁을 떠난지 3년만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그 리크루트 사에서 받은 돈 때문이었다.

허영하와의 연계를 가져갈 수 있고,

다케시타가 벌어들인 돈을 관리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케시타의 돈을 눈독들이지 않을 만큼 그 스스로도 상당히 부유한 자.

그와 동시에 일본 내에서 정치적 입지는 전혀 없는 인물.

그 조건에 타케미치가 정확히 부합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다케시타가 타케미치를 선택한 이유였다면,

타케미치가 다케시타를 선택한 이유는 꽤 심플한 것이었다.

'이 방법이 정계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리고... 그 방법 만이 회장님께 받은 은혜를 빠르게 갚을 수 있는 길이니까.'

딱 그 뿐이었다.

중세 일본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퍼져있는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정계에 입문하는 방법은 딱 세 가지.

집안 자체가 정치인 집안이어서 자기 부친 내지는 모친, 혹은 형제 중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 있거나.

비례대표로 출마하거나.

아니면 당의 공천과는 관계 없이 추천제로 이뤄지는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을 하거나.

이 세 가지였다.

이 중 도쿄의 평범한 중산층 집안의 자제였던 타케미치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딱 한가지.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것 뿐이었다.

수도 도쿄의 기초자치 단체를 노릴 수도 없고, 집안도 정치인 집안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때문에 타케미치는 비례대표의 명단을 직접 정할 수 있는 다케시타를 고른 것이었다.

이렇듯 만남부터 다분히 정치적인 두 사람의 결합은 지난 3년간 서로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타케미치는 다케시타에게 돈을.

다케시타는 타케미치에게 자민당 내 권력을.

이러한 둘의 관계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이 일으키고 태준이 터뜨린 일본 버블에 대한 것이었다.

버블이 붕괴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타케미치는 버블 붕괴시점에 맞춰 오오와다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케시타의 막대한 재산을 지켜주었고,

그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다케시타는 타케미치에게 자민당 청년위원 자리를 맡김과 동시에 자신의 비서로 곁에 두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자신의 재산을 지켜주는 것을 넘어 계속해서 불려주는 타케미치의 행보에

다케시타는 자신이 정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좌했던 아오키 이헤이를 독립이라는 명목하에 내치고,

타케미치를 자신의 제 1 비서로 두게 되었으니 이 사건이야 말로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케시타가 신뢰해 마지않는 타케미치가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을 들고 다케시타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니까... 자네의 전 주인이 나를 보고자 한다고?"

"예."

"이유는?"

"돈을 조금 융통하고 싶다고 합니다."

"내 돈을 말인가?"

다케시타의 말에 고개를 저은 타케미치는 이내 말을 이었다.

"일본정부의 돈을 융통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 말에 다케시타가 놀란 표정을 하고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게."

다케시타의 말에 타케미치는 이윽고 태준에게 전해들은 작전의 전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 통일 이후에..."

그렇게 시작된 설명은 이내 해가 질때가 되어서야 그 끝에 닿을 수 있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타케시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즉... 영국의 돈을 털어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

"예. 그리고 공격에 많은 돈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뜯어 올 수 있는 돈도 많아지는 구조랍니다."

"해서... 일본 정부의 자금인 것인가."

"예. 정확히는 정부가 직접 경제공격을 할 수 없으니, 김 회장이 돈을 빌려 본인이 총대를 매고 공격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다케시타가 가만히 책상을 엄지손가락으로 두드리더니 말을 이었다.

"과연. 과연 김회장이군. 아주 대단해. 일본에서 돈을 그렇게 털어가더니 이젠 영국에서..."

"... 거절할까요?"

"이 좋은 건을 왜 거절하는가? 김 회장에게 전하게. 건너올 필요도 없다고. 랜더스가 발행하는 회사채는 전부 일본은행이 사줄거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대출도 알선해주겠다 전하게. 아, 이 쪽은 채권매입과는 결이 다른... 일종의 호의라고 전하게.

일전의 그 R사건(리크루트 사건을 돌려 말한 것)에서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값 정도로 생각해달라고 전하고."

"그럼... 저희쪽 자금은 어떻게..."

"당연히 투자를 해야겠지. 달러면 되겠나?"

"예. 아무래도 그 편이 저희에겐 편할 겁니다. 오오와다 사장이 랜더스 미국지사장으로 나가있으니."

"그래. 좋아. 오오와다 그 친구라면 믿을 수 있지."

그렇게 모든 말을 끝낸 타케미치가 이내 잊을 뻔 했다는 듯 마저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김회장이."

"불필요한 말이군. 다른 이들도 돈을 벌 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 권력은 내 지갑에서 나오는 법인데."

"예. 그래도 말을 전하는 입장이라 전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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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타케미치가 다케시타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태준 역시 비밀리에 이뤄진 회담에서 이번 건에 대한 통보를 받고 있었다.

"자네 계획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단, 자네가 방금 설명한 이 계획에서 한가지만 수정하지."

"어떤 부분 말씀이십니까?

태준의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포지션 공개...라고 하나? 그..."

"제 투자 방향에 대한 발표시점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 시점을 조금 빨리 해줄 수 없나, 우리나라 단독이면 더 좋고."

그 말에 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일세. 어차피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면, 자네가 투자 하기 전에 미리 우리 금융기관들에 알려서...."

그 말에 태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포지션 공개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제 공격으로 인해 영국이 빈사상태가 되었을 때 공개해서 마지막 타격을 주기 위한 방법이라면 모를까.

미리 공개해버리면 역으로 영국의 편을 들고 나오는 금융기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파운드는 역사적으로 경화(硬貨, Hard Currency)의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을 모두 고려한 공격임에도 그 역사적인 배경과 후광때문에 아무도 파운드가 망할 것이라 생각지 않는 이 맹점을 이용한 공격인데...

제가 그걸 미리 공개하면 금융기관들이 제 말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영란은행 편을 들겠습니까?"

태준의 반박에 김응삼 총재가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금융기관 아들이 손해를 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왜 손해를 봅니까? 외환 딜러들이 바보도 아니고, 아래로 춤추며 추락하는 파운드 그래프만 봐도 절 따라서 공매도 칠 사람들이 그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역으로 니 말마따나 다르게 생각하는 아들도 있을게 아이가."

그 말에 태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영국에서 발표가 난 이후에 제가 한국에 발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영국에서 무신 발표...."

"영란은행 금고는 넉넉하다... 뭐 그런 발표겠지요. 그 치들도 바보가 아니니 공격의 낌새는 바로 눈치 챌 것 아닙니까?"

"그 때 자네가 반박하겠다?"

"예. 정확히는 제가 반박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 랜더스 자회사인 미국 랜더스의 사장이 발표할 겁니다."

"그걸 한국에서 받아 적게 하겠다... 이거구만.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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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대호, 김응삼, 김정필 세사람과 완벽하게 한 배를 타고 나온 나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가 타케미치에게 연락했다.

"어떻게 됬습니까?"

"건너오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거절인 겁니까?"

그렇게 내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하자 타케미치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절이 아니라 완전한 승낙입니다. 다케시타 선생께서도 일전에 회장님께서 신경써주셨던 R사건..

아, 리크루트 사건을 말하는 겁니다. 그 사건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셨습니다.

회사채는 물론이고, 그 외의 추가대출도 필요하면 알선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따로 건너오실 필요 없이 알아서 처리해주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나는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좋네요."

"예. 저도 오랜만에 회장님 일을 돕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어떻게.. 그럼 타케미치 변호사도 이번에 투자를 좀 해보시겠습니까?"

"수익율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최소 50%는 나오겠지요?"

"그렇군요. 그 돈은 얼마나 묶여있게 되는 겁니까?"

나는 그 말에 타케미치가 내 곁을 떠나 다케시타의 곁에 있으면서 많이 배운 것을 느꼈다.

'다케시타 노보루 이 양반이 타케미치를 아주 제대로 굴렸나보네. 금고지기로 쓴 모양인데...

알아서 편의를 봐준 만큼, 그리고 타케미치가 이 양반 파벌에 들어가 있는 만큼 어떻게든 리크루트 사건이 문제가 안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겠어.

애초에 그걸 노리고 이정도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일테고. 다케시타 이 양반도 보통은 아닌걸?'

그렇게 내 짧은 감상이 스쳐지나가고, 나는 곧장 타케미치에게 말을 이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묶여있는 시간은 한달 정도가 되겠군요. 채권의 경우에는 어차피 제가 빌리는 것이니 10%정도로 책정했고,

직접 투자의 경우에는 언제 넣을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으면 이틀 정도 묶여있어도 될 수준입니다."

그 말에 타케미치가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틀에.... 50% 말입니까?"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최소 50%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더 나올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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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타케미치와의 대화를 끝으로 모든 밑 준비를 마친 나는.

"이렇게 놀고 계셔도 되는건가요?"

"제가 노는 것으로 보입니까?"

"벌려놓은 일도 많은데 논문만 붙잡고 계시니 그러지요."

"보고는 다 받고 있었습니다."

민영의 노골적인 핀잔을 들을 만큼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채 1년하고 3개월이라는 시간을 논문을 쓰며 보냈다.

인내의 시간이자,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92년 8월 24일. 그 인내의 시간에 끝이 다가오고 있었디.

"안 그래도 슬슬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작년 12월에 소련이 무너진 이후 상황이 더 좋아졌으니까요."

"독일 쪽 말씀이신가요?"

"네. 소련 붕괴 이후 추가 금리 인상을 또 단행했으니까요. 독일이."

"그 바람에 이탈리아, 그리스까지도 ERM 탈퇴를 선언하고 나갔죠. 남은건 이제 서유럽, 북유럽 그리고 영국 밖에 없어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영국이 나가버리면 엄청난 타격이...."

"불안할 이유가 있나요. 애초에 다 생각한 대로 되고 있는데요."

'정확히는 전생에서 본 대로 되고 있지.'

"네?"

민영의 되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상쾌한 미소로 화답해준 뒤 말을 이었다.

"채권 발행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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