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58화 (58/200)

058. 파운드화 공격 (1)

뉴욕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나는 일행들과 함께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이라는 곳에서 이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만큼 아예 본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일단은 병역을 수행중이라는 입장에

함께 간 사람이 많다보니 보는 눈도 많았다는 점.

이에 더해 한국에서 할 일도 남았기에 더는 욕심부리지 않고 곧장 한국으로 귀국했다.

거기다 남은 뒷 일은 오오와다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귀국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지원자 중에서는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이 사람까지 포함해서 아까 말한 세 사람을 비서팀으로 아예 묶어서 뽑는 것으로 하고, 실무 수습기간 거치면서 내근, 외근 나눠보죠.

비서팀 인사는 민영씨에게 완전히 일임하겠습니다. 아, 한 명은 민영씨 비서로 배정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해서,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은, 자잘한 걱정거리중 하나였던, 빈약한 비서진의 확충이었다.

미국에 가서 사람 부족으로 경호 인력만을 비밀리에 내게 배치시키는 것이 한계였다는 점,

그로 인해 또 다시 내 스스로가 잡다한 일들까지 전부 일일히 하나하나 연락하며 처리했었다는 경험,

무엇보다 민영의 빈 자리를 타고...

"회의는 다 끝나셨나요?"

"골드만삭스에서는 안부릅니까?"

"골드만삭스에서 하는 회사 평가를 위한 파견이니까요."

외부인인 앤이 끼어들어 기어이 한국의 유니버스 연구소까지 따라온 점등의 이유로

빠르게 신규인원을 확충하기로 한 탓이었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최종 보고서는 이미 골드만삭스에 올라간 것으로 아는데요?

거기다 AMD건의 경우에는 지분교환계약도 끝이 났고요. 여기서 더 할 일이 남았나요?"

앤의 말에 민영이 한국식 발음이 잔뜩 묻어나는 영어로 앤에게 따지고 들자 앤이 손가락을 들어 흔들며 혀를 끌끌 차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골드만삭스와 계약을 맺지 않았잖아요? 그것까지 끝나야 제 출장도 끝이죠."

그 말에 민영이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계속 회장님 비서 노릇을 자처하겠다는 건가요? 로버트씨는 어쩌고요?"

"그 분도 이번 일로 많이 바쁘시니까요. 호탕하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확언하는 바람에 돈 구하러 다니기 바쁘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가 여기 와있는거죠. 미스터 로버트의 '대리인'으로."

서로 물러섬 없이 말을 주고 받는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규모 프로젝트성 자금인 만큼 시간이 걸리는 건 알겠지만....

골드만 삭스 자금이 들어오는 대로 그 계약서를 토대로 정부와 협상을 해야하니 빠르게 움직여줬으면 합니다."

"알겠어요. 저희 쪽에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채지는 말아주세요. 무려 한국 돈으로 조 단위 계획이잖아요?"

"뭐. 그렇죠."

그 말에 민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을 이었다.

"trillion won? 조 단위라구요? AMD인수에 그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데 그 만큼의 돈을 빌리신 건가요?"

"정확히는 딱 2조 정도 빌렸어요. 제 자산만큼 빌려준다기에 최대한 많이 당겼죠. AMD인수를 명목으로요."

"그럴 필요가... 퀄컴까지 전부 매입한다고 해도 그 반에 반도 안 될 텐데요."

"영란은행건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민영과 내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자 앤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말에 나는 어색하게 뒤통수를 살짝 긁고는 말을 이었다.

"아. 오늘 점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점심은 그 우유스프인가요?!"

"우유스프가 아니라 설렁탕입니다."

"그거 맛있죠. 여기 와서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LA에 있는 한식당에서 파는 한국음식은 전부 매운 것만 있었는데 그렇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라니...!"

그 말에 민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앤. 당신 여기 오자마자 계속 그 설렁탕만 먹은거 알아요? 그러다 살 쪄요."

"살이야 빼면 되죠. 그리고 제가 언제 설렁탕만 먹었다고 그래요? 당신 때문에 생전 처음 문어요리도 먹고, 매운 새끼 문어요리도 먹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쭈꾸미라고... 아, 영어로 뭐더라... 여하튼 그게 전부 다 살찌는 음식이라는..."

"저는 당신과 다르게 아침에 조깅을 하니까 괜찮아요."

"다..당신과는 달리?!"

그렇게 다시 불이 붙으려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미소짓고는 말을 이었다.

"3개월 넘게 봤는데 여전히 두 사람은 상극이네요."

그 말에 민영과 앤이 동시에 홱하고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누구때문이겠어요?""

동시에 터져나온 말은 언어의 차이로 인해 그 발음은 서로 달랐으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로 탓하지 말고 한 발짝씩만 물러나면 좋잖아요?"

그 말에 민영과 앤이 후 하고 한숨을 내뱉고는 이내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떼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의 반응이었지만, 3개월간 봐온 광경이었기에 나는 딱히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민영씨. 오오와다 사장으로부터는 따로 연락이 없었습니까?"

"예. 그때 드러켄밀러씨에 대한 보고 이후에는 따로 연락이 없었습니다. 랜더스 미국지사에서 별도로 AMD의 주식을 조금씩 사모으고는 있지만, 그건 별 의미 없는 내용이구요."

민영의 보고에 나는 슬쩍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핸드폰을 꺼내 오오와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바로 받는 오오와다의 목소리에 반가움을 느낀 것도 잠시.

순간 나는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떠올리고는 (오오와다는 보이지도 않을테지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밤 늦게 미안합니다. 지금 통화 괜찮습니까?"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드러켄밀러씨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어서요."

"아, 곧 퀀텀 펀드 쪽 정리하고 온다고 합니다. 아직 그쪽 일이 정리가 안되었고, 저희 쪽으로 완전히 넘어온 것이 아니라, 따로 보고드리진 않았습니다."

그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오와다 사장이 어떻게 잘 구워 삶았나보군. 드러켄밀러가 우리쪽으로 넘어온다니.

애초에 드러켄밀러는 소로스가 쓴 '금융의 연금술'에 깊은 감명을 받고 퀀텀 펀드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뭐...금융인에게는 개인적인 감동이나 존경보다도 돈이 더 중요하니 이해 못할 행보는 아니지만.'

그렇게 드러켄밀러에 대한 짧은 생각을 마친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작전 개시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저희 쪽 계산으로는 1년 반 정도 남았습니다. 일정상 AMD, 퀄컴 인수 건과 겹칠 것 같아 그렇게 잡았는데... 드러켄밀러씨의 계산으로는 92년 9월 중순에서 늦어도 9월 하순이 제일 좋다고 해서... 그 부분이 조금...."

그 말에 나는 슬쩍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91년 5월 23일.

여기서 1년 반이라면 92년 말이다.

'너무 늦군. 드러켄밀러의 계산은 전생에서 경험한 역사 그대로인데... 흠.'

어차피 파운드화 공격의 방아쇠인 드러켄밀러가 우리 쪽으로 넘어온 이상 그걸 언제 당길지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지만....

'구태여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이용하지 않고 다른 날을 잡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어.'

굳이 역사를 비틀어 가면서 얻는 이득이 고작해야 행정적 편의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드러켄밀러씨의 계획대로 가죠."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골드만 삭스 쪽 자금의 1차 상환일과 겹쳐서 흑자부도가 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예정대로라면 10월에 1차 상환이 이뤄지게 되니까요. 차라리 1차 상환까지는 끝내시고...."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 쪽에서도 한국과 일본에서 회사채를 발행해서 추가 자금을 조달할테니... 만약에라도 꼬이면 회사채를 통해 들어온 자금으로 막으면 됩니다.

1차 상환분 정도는 안쓰고 빼둘 수 있으니까요."

마치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신용불량자의 말과 같은 내 말에 오오와다가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골드만 삭스에서 들어올 자금, 저희 쪽 자금, 그리고 오브라이언 가문의 자금만을 굴리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럴리가 있나요.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할 겁니다."

"그럼... 한국 랜더스에서 발행하는 회사채에... 일본 랜더스의 회사채...까지 해서 기본 조달자금이..."

"적으면 3조, 많으면 7-8조까지도 보고 있습니다.

아 물론 한국에서 빌린 돈은 한국에서 작업할 거고, 일본에서 빌린 돈은 일본에서 작업할테니 오오와다 사장이 굴릴 돈은 그보다는 적을 겁니다.

외환시장은 전세계 어디에서든 24시간 돌아가니까요. 그래도 조 단위라는 건 변함 없지만요."

"원단위로 말씀이시죠? 거기다 레버리지를 사용한다고 하셨으니..."

"예. 공격시점에 파운드를 매도한 돈으로 다시 파운드를 빌려 매도하는 일을 계속 반복할 겁니다."

내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소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 책장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테이블과 펜끝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오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사실상 공격에 들어가는 자금은 최소 6조가 넘어갑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보다 더 레버리지를 돌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자산대비 부채비율만 300%가 넘어갑니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인 오오와다가 부채비율을 논하니 우습네. 하기사. 이 때만 해도 일본이 미친 국채비율을 가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망한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무엇보다...미래에서 말하던 일본정부의 부채라는건 GDP대비 즉, 연간 생산량 대비 부채고, 우리쪽 부채는 말 그대로 전 재산 대비 부채비율이 300%가 되는 거니까 심각성이 다르기는 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괜찮습니다. 이건 확실히 이기는 싸움이니까요."

"이기는 것 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나중에 이긴다 한들, 이기는 과정에서 쓰러지면 그야말로..."

"피로스의 승리를 말하는 겁니까?"

"예. 이겨도 이긴게 아닌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빌려주기로 한 골드만삭스도 계약 위반으로 시비를 걸어올테구요. 애초에 돈을 빌려주기로 한 것은 AMD와 퀄컴의 LBO를 위해서였으니.... 그 점을 파고들어 시비를 걸 게 자명합니다."

그 말에 나는 오오와다를 안심시키며 말을 이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예?"

"하루면 끝날테니까요."

"하루... 영란은행이 그렇게 허술하겠습니까?"

"당하는건 영란은행이 허술해서라기 보다는... 정치권의 실책이니까요. 하기에 따라서는 반나절 만에도 이길 수 있을겁니다."

"반나절이라면...."

그렇게 오오와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하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레버리지를 최대한 높이세요. 그게 승리의 비결이 될겁니다."

"높이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최소 6배까지 당기세요."

최소 6배.

내 투자금을 대략 빚까지 포함해 3조 5천억가량 이 작전에 때려넣는다고 가정하면,

지금 환율로 46억 달러.

여기에 레버리지를 최소 6배를 목표로 미칠듯이 굴린다면....

276억 달러만큼의 파운드화가 공매도 되는 셈이 되고....

"그렇게 당기다 보면 다른 헤지펀드들까지도 달라 붙을 겁니다. 그러면.... 영국은 펑. 하고 터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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