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53화 (53/200)

053. 미팅 앤 미팅 (3)

앤과의 첫 일정은 뉴욕 패션 위크가 아닌...

"어딥니까? 여긴?"

"패션쇼에 가는데 그렇게 입고 가시려구요?"

"그럼 제가 사업가로 가는데 수트를 입지 모델처럼 화려한 복장을 입겠습니까?"

"그래도 포인트 하나는 줄 수 있잖아요."

명품 매장이었다.

정확히는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내에 입점해있는 에르메스 매장.

그곳에 나를 데려간 앤은 연신 스카프를 내게 들이대며 말을 이었다.

"같은 수트라도 넥타이냐 스카프냐에 따라 이미지가 전혀 다르잖아요."

"이 넥타이도 보통 넥타이는 아닙니다만."

"알아요. 영국 세빌 로 거리에 있는 헌츠맨 매장꺼잖아요. 그건 여기 새겨진 마크만 봐도 알아요. 하지만 너무 포멀하니까..."

"그렇다고 경마장도 아닌데 에스콧 타이를 하라는 말입니까? 에스콧 타이야 말로 너무 포멀한데...."

"에스콧 타이가 아니라 스카프예요 스카프! 에르메스에서 나온 신상 스카프를 에스콧 타이라고 말하다니...!"

그렇게 한참의 씨름 끝에 최대한 무난한 단색의 스카프를 목에 매는 것으로 결정한 나는 슬쩍 가볍게 말을 이었다.

"자... 드레스 코드도 맞춘것 같은데. 다음은 어딥니까?"

"전부 제게 일정을 맡길 셈이예요?"

"내 일정이 곧 당신 일정일테니까."

그 말에 앤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은 초대장 받은 그거부터 가죠. 구찌 쪽 사람을 통해 받았잖아요?"

"제가 그걸 말한 적 있던가요?"

"...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그렇게 적당히 앤을 놀려먹은 나는 살짝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패션쇼 전에 가야할 곳이 먼저 있습니다."

"가야할 곳?"

"퀀텀 펀드. 그곳 부터 가죠."

내 말에 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퀀텀 펀드라니...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그 퀀텀 펀드 말인가요?"

"예. 조지 소로스와 짐 로저스가 운영하는 그 퀀텀 펀드입니다."

그 말에 당황한 앤이 말을 이었다.

"아니...잠깐만요. 대체 왜....?"

"그것까지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라면 잠자코 따라만 오시죠."

내 말에 앤이 입을 꾹 다물고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나는 살짝 눈을 얇게 만들며 말을 이었다.

"뭐 승인이라도 받아야 하는 겁니까?"

"... 그런 건 아니지만."

"보고가 필요하다면 하시죠. 로버트에게 알려져도 아무 상관도 없으니. 다만.... 이번 건은 우리 둘 만의 비밀로 하는 편이 더 좋을 겁니다."

그렇게 경고의 말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저에게도."

나를 가리킨 뒤

"당신에게도."

앤을 가리키고,

"그리고... 어쩌면 당신 가문에게도?"

하늘을 가리켰다.

그렇게 내 말이 끝나자 앤이 멍하니 나를 보다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나는 내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는 말을 이었다.

"거기서 더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골드만 삭스에서 입지를 지키고 싶다면. 회사에서 시킨 일을 하다가 사익을 편취했다는 오명은 별로 좋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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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앤의 잔소리와 우는 소리를 반 강제적으로 틀어막은 나는 택시를 타고 퀀텀펀드의 뉴욕본사로 향했다.

움직이는 차 안 뒷좌석에 나와 함께 나란히 앉은 앤은 불안듯 이 손을 만지작거렸지만, 나는 딱히 그런 그녀를 케어해줄 마음은 없었기에, 그것을 보고도 무시했다.

"도착했소."

택시 운전사의 말에 돈을 주고 내린 나는 퀀텀 펀드 본사 앞 작은 가판대에서 파는 책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금융의 연금술이라..."

조지 소로스의 명저, 금융의 연금술을 파는 가판대를 보며 나는 이곳이 진짜 퀀텀 펀드의 뉴욕 본사가 있는 곳임을 새삼 느끼며 따라 내린 앤에게 말을 이었다.

"저 책 읽어봤습니까?"

"예? 아, 예... 읽어봤죠. 니프티-피프티(60년대 말 1970년대 초,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한 미국의 50개의 종목을 일컫는 말)에 공매도를 치는 미친 전략을 썼던 이들이니 당연히...."

"애널리스트도 아닌데 공부를 열심히 했군요."

"적어도 말은 통해야 하니까요. 잡무만 맡기 싫다면."

"좋군요. 그럼 바로 들어가도 되겠어요. 눈치껏 적당히 행동할 능력은 된다는 거니까."

"예?"

그렇게 앤의 놀람을 무시한채 나는 곧장 퀀텀펀드 본사로 쳐들어가 로비의 직원에게 말했다.

"조지 소로스씨를 만나고 싶은데요."

"약속은 되어있으십니까?"

"골드만 삭스에서 왔다고 하면 아실겁니다."

그 말에 앤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보았고, 마찬가지로 본사의 로비를 지키던 직원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골드만 삭스면... 그 골드만 삭스 말씀이십니까?"

"예. 미스 오브라이언? 명함을 저 분께 내어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당황한 듯 자신의 명함을 내미는 앤을 보며 나는 당당히 말을 이었다.

"소로스씨가 바쁘시다면, 미스터 드러켄밀러와 만나도 좋습니다."

너무나 당당한 말에 로비 직원이 곧장 인터폰으로 위에 문의를 넣었고....

그 결과.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드러켄밀러씨가 곧 내려오실겁니다."

나는 바로 드러켄밀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퀀텀 펀드 뉴욕본사 로비 한켠에 마련 된 소파로 다가가 몸을 기대자 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러려고 저와 함께 온 건가요?"

"데이트 신청은 그쪽이 했습니다만?"

"식당에서 여자 지갑 받아 결제하는 남자라니 최악이잖아요!"

"보시다시피. 지갑이 없어서 말이죠."

"지갑이 왜 없어요! 차라리...랜....!"

그렇게 앤이 뭐라 반발하며 내게 따지려던 그 때, 로비로 내려온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로비 직원의 손 끝 끝에 걸린 나와 앤을 보더니 약간 인상을 쓰고는 내게 다가왔다.

"골드만 삭스에서 오셨다고?"

"정확히는 미스 오브라이언만 그렇고. 전 아닙니다."

내 말에 '하'하고 콧방귀를 뀐 스탠리가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럼 당신은 어디서 오셨는지... 그게 궁금해지는군?"

"일단 좀 앉으시죠. 소파가 푹신하니 좋네요."

내가 소파의 팔걸이를 두들기며 말하자 스탠리가 끙 소리를 내고는 소파에 앉았다.

"이제 말해보지. 골드만 삭스의 이름.... 그것도 임원 비서인 미스 오브라이언까지 대동해서 나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뭔지."

"뭐 별건 아니고, 얼굴이나 볼 겸 해서 왔습니다."

"뭐...?"

당혹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

그리고 내 옆에서 더욱 표정관리가 안되는 앤.

그런 둘을 차분히 바라본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모든 사업의 시작은 결국 사업이니까. 얼굴을 봐야 사업 이야기를 할 게 아닙니까."

"하.... 동양인 답군. 뭐 Qi(氣)라도 보이나보지?"

"기가 보이는지 안보이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하나는 보이는군요."

"뭐가 보인다는거지?"

"드레스를 만들 고급 옷감으로 접시나 닦고 있는 당신의 처지."

그 말에 스탠리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무례하군."

"글세요. 오히려 전 상당히 예의가 바른 편이라 생각하는데요. 당신을 고평가 한다는 이야기니까요."

"뭐?"

"미스터 니더호퍼(전 퀀텀펀드 매니저)가 운용하던 플래그십 펀드의 뒤처리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대단한 안목으로."

그 말에 스탠리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하, 어디서 그 딴 개소리를 주워듣... 아, 골드만 삭스에서 말해주던가?"

"아뇨. 그럴리가요. 골드만 삭스는 저를 감시하고 있는 걸요. 보시다시피. 미스 오브라이언의 표정이 좋지 않지 않습니까."

"그럼 대체 무슨 꿍꿍인지 말이나 해. 바쁘니까."

"소로스와 이야기를 할 까 했지만, 역시 금융은 늙은이 보다는 젊은이가 이해가 빠르니 당신과 이야기하겠습니다. 퀀텀펀드에서 랜더스로 오실 생각은 없습니까?"

"하. 동양인이란 것에서 알아봤어야 하는데."

약간은 인종차별적인 말.

그 말에도 나는 그저 웃기만 하며 말을 이었다.

"오실 마음이 없으십니까?"

"내가 왜 그딴 신생 펀드에 가야하지? 일본에서 왔다고 뭐 내가 동경이라도 할 줄 알았나?"

"돈을 벌고 싶으면 와야하지 않겠습니까?"

"뭐?"

"분명 소로스는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지금 당신이 세우고 있는 전략을."

"내가 세우고 있는 전략? 그게 뭔데?"

"독일통일.... 그리고 BOE....."

그 말에 스탠리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내 말을 툭 끊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크흠...! 흠흠!.... 대체 어디서 뭘 듣고 온거지?"

"정답이군요."

그렇게 운을 띄워놓은 나는 곧바로 오오와다의 명함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더 이야기 하고 싶으시면 이 자를 통해 연락하세요. 여긴 보는 눈이 많군요."

"이 자...? 당신 명함이 아닌가?"

"예. 저는 전달자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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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와다의 명함까지 스탠리 드러켄밀러에게 넘겨주고 나온 나는 졸졸 따라오기만 하는 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자 볼일은 대충 다 끝난 것 같군요. 이제 가죠. 패션쇼에."

내 말에 내내 침묵하던 앤이 말문을 열고 항의하듯 말을 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옆에서 다 보지 않았습니까? 그대로 로버트에게 보고하면 됩니다."

"뭐라고요? 미스터 킴이 배를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뭐 이렇게 보고하면 될까요? 거기에 전 바로 이용당했다? 뭐 그렇게요?"

"그렇게 보고해도 좋겠지만, 그건 당신과 당신 가문에는 이득이 안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진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를 바꿔탈 마음은 없으니까.

당신들이 무슨 생각으로 나와의 인연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당신들...아니, 정확히는 당신이 모시는 로버트와의 인연이 필요하거든요."

내 말에 다시 말문이 막힌 것인지 앤이 침묵했다.

아니 뭔가를 계산하는 듯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런 앤의 침묵에 내가 '고민은 알아서 하시고 패션쇼를 가자'고 말하려던 그 순간 앤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힌트."

성인 여성.

그것도 어리광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백인 문화권의 성인 여성이 어리광을 피우듯 작게 말하자 나는 살짝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예?"

"힌트 좀 주세요. 내가 뭐라고 하는게 가장 이득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요. 대체 뭐가 이득이라는 거죠?

저는 오히려 손해만 봤잖아요! 제 명함이 퀀텀 펀드에 넘어간 것도 그렇고! 거기다 오브라이언 가문에 이득이 될 일이 하나도 없는데 대체....!"

그 말에 나는 순간 앤을 보며 피식 웃고는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조금 휘둘렀다고 이렇게 바로 넘어오다니... 골드만 삭스도 직원 조련은 쉽지 않은 모양이군.

하기사, 애초에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긴 했지. 거기다 반 강제적으로 내게 협조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난감하긴 하겠네.

거기다 나야 미래 정보로 파운드화 공매도 전략을 알고 있다지만, 앤은 모르니.... 더 불안 하겠지.'

그렇게 짧은 감상을 뒤로한 채 나는 슬며시 웃으며 앤에게 말을 이었다.

"맨 입으로요?"

"맨...입?"

"공짜로 알려달라고 하는 거냐는 겁니다."

"공짜가 아니라니....!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너무한 것 아니예요?!"

내 장난기 넘치는 표정 때문이었을까.

앤이 더 안달복달 하는 모양새를 보이니 나로서는 기껍기 그지 없었다.

'로버트....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뜻대로는 쉽게 되지 않을거야.'

그렇게 한참을 서서 토라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앤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뭐... 간단히 힌트를 드리자면. 독일 통일과 BOE. 이 둘을 엮어보면 금방 나올겁니다."

"그건 아까 들은 말이잖아요! 그게 무슨 힌트예요. 그리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끄지도 못하는....!"

그 말에 나는 두 손의 검지를 펴 X자로 만든 뒤 말을 이었다.

"이 이상 이야기 해주는 건 공짜가 아니라서요. 기브 앤 테이크. 저도 뭐 받는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희 아버지를 만나게 해드릴게요."

"아버지?"

"조던 오브라이언. 현재 오브라이언 가문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오브라이언 가문의 가주와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웃으며 앤의 속내를 가늠해보았다.

'퀀텀 펀드에 들어서기 전 했던 말을 기억은 하고 있었나보군. 상황을 이해하진 못해도 자기와 자기 가문에도 뭔가 이득이 생길 건이라는 걸 바로 이해했어.'

그렇게 앤의 속내를 가늠한 나는 곧이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가장한채 말을 이었다.

"그게 제게 드리는 선물인가요? 선물은 제가 드린 것 같은데요?"

"네? 저를 곤란하게 만드신게 아니라... 선물을 주셨다고요?"

그 말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을 이었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습니다. 그럼 그 쪽 약속은 앤 당신이 직접 잡아 알려주세요. 물론 제가 뉴욕에 있는 동안에 말이죠. 아, 할리우드까지 가야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예요. 아버지를 뉴욕으로 모시면 될 일이니까요."

"좋네요."

그렇게 내가 만족스럽게 미소짓고는 택시를 잡아 타려고 하자, 앤이 다급히 택시 문을 가로 막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끌지는 말해주셔야죠."

"퀀텀 펀드에 들어갔다가 쫒겨났다. 당신의 이름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퀀텀펀드 측에서 거절 당했다. 딱 이 정도로만 보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스탠리도 딱히 자신의 전략을 외부로 노출하고 싶진 않을테니 적당히 말해서 내쫒았다고 말할테고요.

이 정도면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까?"

"....확실해요?"

"못 믿겠으면 그냥 솔직히 보고하시던지요. 로버트가 퍽이나 좋아라 하겠네요."

그렇게 나는 앤을 살짝 치우며 택시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그러자 앤이 냉큼 나를 따라 차에 오르더니 말을 이었다.

"이 다음은..."

"패션쇼에 갈겁니다. 당신이 보내준 초대장으로 말이죠."

"그... 톰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가요?"

"예."

다음은 톰 포드.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구찌를 부활시킨 구세주.

그를 만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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