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52화 (52/200)

052. 미팅 앤 미팅 (2)

잠시 시간을 돌려.

태준과 로버트가 회동을 마친 그날 밤.

로버트는 은밀히 자신의 비서를 불러 말을 이었다.

"AMD쪽에 미스터 킴이 할 제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퀄컴을 옭아맸던 방식을 키운 방향 아닐까요?"

"내 생각도 그래. QULAB이 지금 CMDA라는 핵심 특허를 이용해서 온갖 제조사들과 계약을 맺어가는 것도 그렇고...

카이스트 학생들을 저렇게 많이 끌고 온 것도 그렇고.... 진짜 노리는 건 AMD라기보다는 AMD의 특허와 기술일테지."

"예. 거기다 지금 AMD는 인텔의 공세에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예요. 주가도 꽤 많이 떨어졌구요."

그 말에 로버트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노리고 들어온 셈인데...."

"이번에 한국에서 출국할 때도 애를 먹었다고 하니, 당연히 준비를 철저히 했겠지요."

"노리고 들어온 만큼 AMD와의 협상도 금방 끝날거란 말이지...."

그렇게 침음성에 가깝게 말 꼬리를 흐린 로버트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여기 더 머물러."

"예?"

"난 곧장 뉴욕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좀 해야겠어."

"그게 무슨...."

"아무래도 미스터 킴이 일을 빠르게 진행할 것 같단 말이지. 나도 그에 보조를 맞춰야지."

"그럼 언제까지 머무르면 되겠습니까?"

"그리 안 길거야. 아마 하루? 길면 이틀 정도 걸리겠군."

그 말에 앤이 말을 이었다.

"그 자가 하루만에 AMD와의 협상을 마칠거라 보시는건가요?"

"물론. 더 빨리도 낼 수 있겠지.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도 사는 법이거든."

"그럼 저는...."

"미스터 킴이 뉴욕에 들어올 때, 함께 뉴욕으로 돌아와. 아, 단 미스터 킴의 뉴욕 일정은 전부 따라붙고."

"무슨 수로.... 애초에 미스터 킴 옆에도 비서가 있는데요."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자네도 골드만 삭스잖아. 비서실이긴 해도."

".... 알겠습니다."

그렇게 앤이 불만에 찬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로버트가 말을 이었다.

"아, 태준이 뉴욕에서 활동하는 동안 절대로 다른 펀드나 투자은행에 그의 정체를 들켜선 안 돼."

"정체라 하심은...."

"랜더스의 진짜 오너가 그 자라는 것. 애초에 비상장기업인 랜더스의 진짜 주인을 찾아낸 건 우리 만이어야 하니까. 알겠지?"

"... 그건 노력하겠습니다."

이후 지령을 받은 앤은 돌아간 로버트의 눈이 되어 한 발짝 멀리서 태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폈다.

그렇게 이틀째가 된 날 퀄컴을 들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태준이 갑자기 일행들에게서 벗어나 공항으로 향하자 앤이 태준의 뒤를 따라 붙었고...

"안녕하세요. 미스터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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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의 비서 앤 오브라이언의 소개에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당신 상사가 보냈습니까?"

"저도 휴가정도는 있답니다."

"퍽이나 그렇겠군요. 골드만 삭스에 휴가가 있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네요."

"지나가던 개가 웃어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무리 한 배를 탔다고 해도 이건 좀 선을 넘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앤이 말을 이었다.

"미녀가 휴가를 내서 함께 뉴욕 여행을 함께 해주겠다는데 꽤나 표정은 불쾌한 것 같네요?"

그 말에 나는 황당함을 느끼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첫 번째. 저는 제 개인적인 시간을 빼앗는 사람이면 미녀가 아니라 여신이어도 싫습니다."

그 말에 앤이 뭐라하려던 찰나, 나는 바로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두번째. 그리고 저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도 싫어합니다."

"제 미모는 객관적인 수준에서 확실히 예쁜 편인데요?"

이번에도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후 하고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실은 이게 핵심인데... 말을 해도 알아듣질 못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 말에 인상을 쓰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뭐. 골드만 삭스 출신이 말을 못알아들을 일은 없으니, 안 듣고 있다고 봐야겠지만요."

"거...참."

"그리고 그 안 듣는데에도 이유가 있겠지요. 자.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로버트가 뭘 시켰습니까?"

그 말에 앤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로버트가 뭘 시켰어야지만 함께 있을 수 있는 건가요?"

"보통은 그렇겠지요? 초면의, 그것도 미모의 여성이 제 뭘 보고 좋다고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겠습니까?"

그 말에 앤이 풋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양인은 동양인인가보네요. 그걸 겸손이라고 하던가요?"

"겸손이 아니라 객관적 분석에 의해 도출된 사실이죠."

"당신의 돈을 보고 그러는 걸 수도 있고, 당신의 외모를 보고 그런 걸 수도 있죠. 아님 둘 다 거나요."

그 말에 나는 참고 참았던 말을 이었다.

"그 '오브라이언' 가문 사람인 당신이요?"

그리고 그 순간.

앤이 눈빛이 바뀌며 말을 이었다.

"뭔가 잘 아는 듯이 말을 하는군요?"

"나름 연예계 비슷한 곳에 있었으니까요."

"하긴. 모델 출신이었죠?"

"첫 직업이 모델이긴 했죠."

'전생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내 말에 앤이 푸- 하고 거친 한숨을 내뱉더니 슬쩍 승무원에게 샴페인을 주문하고는 말을 이었다.

"알만하다 싶은 로버트는 오히려 저에 대해서 모르던데, 동양인인 당신이 안다는게... 꽤 느낌이 이상하네요."

"정확히는 당신에 대해서 아는게 아니라, 오브라이언 가문에 대해서 아는 것일 뿐입니다. 금주법 시대에 돈을 번 아일랜드계 갱단 가문...이면서 지금은 연예계를 주름 잡는 가문이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죠."

"동양인이 그 정도 씩이나 알고 있다는 건 상당히 자세히 아는 건데요."

"'스튜디오 54'에선 별별 소문이 다 도니까요. 저도 그 때 지나가다 들은 이야기입니다. IRA(Irish Republic Army ;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 아일랜드의 무장투쟁단체)에도 자금지원을 하는 가문이라고 아일랜드 출신 모델이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그 말에 어느새 승무원에게 샴페인을 받아든 앤이 샴페인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대체 언제적 소문을 듣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요."

"언제적이냐고 해도.... IRA는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 중이지 않습니까?"

"그 IRA와 저희 가문이 지원을 했던 IRA는 다르니까요."

앤의 말에 나는 흐음 하며 침음성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기는 했다는 말이군....'

"뭐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그래서 그런 대단한 오브라이언 가문 사람이자, 골드만 삭스의 임원 비서씩이나 되는 사람이 제게 접근한 겁니까?"

"아까는 로버트의 지시냐고 물으셨잖아요?"

"아니라면서요?"

내 말에 앤이 졌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로버트의 지시가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고 미스터 킴의 활동을 보조하라는 정도였죠."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활동보조라... 관리대상 취급인지는 후에 지켜보면 알겠죠."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곤란한데요."

"그 골드만 삭스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나는 승무원에게 수면 안대와 이어플러그를 받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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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빠져있는 사이 뉴욕에 도착한 나는 로버트에게 거추장 스런 앤을 넘겨주고 겸사겸사 퀀텀펀드를 소개받을 생각으로 골드만 삭스에 쳐들어갔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루빈 의장께서는 부재중이십니다."

"자리에 안 계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미스터 킴이 오시면 따로 이 편지를 전해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받아든 편지에는 '앤을 잘 부탁하네.'라는 장난기 넘치는 내용만 담겨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거 골드만 삭스의 후광부터 앤이 가진 오브라이언 가문의 후광까지 제대로 뽑아먹어줘야겠네. 치울 수 없다면 써먹어야 하니까.

그나저나... 오브라이언 가문이라. 아무리 골드만 삭스가 신경도 안쓰는 쇼 비지니스 쪽 가문이라곤 해도 골드만 삭스에서 썩기에는 꽤 괜찮은 가문 출신인데 말이지...'

그렇게 내가 속으로 앤을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며 골드만 삭스의 본사 로비에 서있자,

어느새 다시 다가온 앤이 씩 웃으며 내게 일 지오날레(스타벅스에서 독립한 하워드 슐츠의 커피 브랜드) 커피를 들이 밀었다.

'일 지오날레 커피라. 상당히 마이너한 브랜드인데... 이걸 아는 것만 봐도 안목도 좋은 편이고....

아예 내 편으로 끌어들여 볼까? 손자병법에서도 반간계(反間計;간첩을 회유해 우리쪽 간첩으로 쓰는 전략)를 강조하는 만큼... 끌어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렇게 내가 고심하며 커피를 받아들자 앤이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 뉴욕에 오셨으니 패션 위크는 보고가셔야죠?"

".... 그 구하기 힘들다는 초대장을 보낸 것도 당신이었습니까?"

"아뇨. 초대장 받으셨나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는 거짓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패션 쪽에 벌써부터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언젠가 가실 생각은 있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 말은."

"그야 그렇죠. 돈 버는데 방법을 가리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돈 버는데 방법을 가리진 않는다라.... 저하고도 죽이 잘 맞을 것 같네요? 미스터 킴."

그 말에 나는 커피를 받아 든 손을 슬쩍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불법적인 수단은 빼고."

"세상에. 일본을 털어먹고 수많은 과부를 양산한 과부제조기께서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앤의 말에 나는 앤의 말투를 따라하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IRA에 돈 까지 보내는 독립투사집안의 딸이 제국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말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내 말에 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제발 그 입 좀...! 보는 눈이 많잖아요...!"

"왜요? 싫으십니까?"

"후... 아뇨. 싫다기 보다는... 그래서 뉴욕 패션 위크에 안 가실건가요?"

".... 가기야 가야겠죠. 톰을 봐야 하니."

"톰...? 그 자가 누구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옆에서 보고 판단하시죠. 오브라이언 가문 사람이니 나름 안목은 있을 거 아닙니까?"

내 말에 순간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던 앤이 화사한 웃음을 피워내며 내게 되물었다.

"그럼...?"

나는 그런 앤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데이트 하자고 졸랐으니 밥 정도는 살 거라 믿겠습니다."

밀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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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앤의 동행을 허가한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곧장 호텔로 들어와 오오와다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로버트가 장난을 좀 치는 것 같습니다. 제 곁에 사람을 붙였더군요."

"알겠습니다. 실무 협상 끝나는대로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조치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신경전....내지는 통상적인 첩보전 같은 느낌이니까요.

차라리 함께 다니면서 이용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거의 무명이니 골드만 삭스의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하는 방향으로....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끌어들이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도 당하고 있을 수 만은 없으니 골드만 삭스 쪽에 사람을 심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좋네요. 그럼 골드만 삭스와는 그렇게 한 방씩 주고 받는 것으로 하고...

AMD건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까?"

"일단 사주인 제리가 상당히 의욕적으로 움직여주고 있는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사회의 신중파들이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너무 위축된 전략을 쓰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신중파 메인이 대체 누굽니까?"

"젠슨 황이라는 자입니다. 현재는 스탠포드 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자이너입니다. 제리가 상당히 아끼는 인재죠. 제리가 자신의 주식까지 넘기며 억지로 보드 멤버로 끼워넣을 만큼 대단한 인재인 모양입니다."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살짝 쓰며 뇌 한 구석 어딘가에 있는 기억을 계속 끄집어내려고 애를 썼다.

"... 젠슨 황이라..."

"왜 그러십니까?"

"어디선가 들어본 인물이라서요."

"아, 최근에 그가 AMD내에서 사건을 일으키긴 했으니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군요."

"사건?"

내 되물음에 오오와다의 답변이 이어지고....

"최근에 AMD에 3D카드 생산을 건의하면서 사실상의 반란 비슷한 일을 꾸몄거든요.

자신을 중심으로 한 팀을 구성해서 아예 3D카드 설계부문의 독립을 요구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거부당했지만요. 그래도 제리가 끼고 도는 인재다 보니 사내 입지는 아직도 막강합니다."

그 답변을 들은 나는 차곡차곡 쌓인 현생의 기억 저편에서 부상하듯 떠오르는 기업명 하나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순간 수화기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혼잣말에 가까운 경악성을 내질렀다.

"엔비디아...!"

미래 AI기술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그리고 비트코인 채굴 대란의 수혜를 제대로 받은....'

엔비디아의 수장이자 가죽자켓의 너드 동양인이 떠오른 탓이었다.

"일단 AMD 쪽 일은 차질 없이 진행하시고... 은밀하게 젠슨 황과 접촉하세요."

"설득 작업 때문입니까?"

"설득이라기 보단 우리 쪽에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그 말에 오오와다가 웃음끼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판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예. 제가 캘리포니아에 돌아가는 즉시 그를 따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오오와다와의 전화를 끊은 나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생에 사람들이 지금 이 광경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겠네. 퀄컴에 AMD에 엔비디아까지 죄다 쓸어담고 있으니...."

이정도면 외계인 납치범 소리도 듣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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