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월 스트리트 (3)
실리콘 밸리.
라고는 해도 내가 알던 실리콘 밸리는 아니었다.
'고작 몇몇 IT기업이 모여있는 수준인가....'
전생과는 달리 인터넷도 널리 보급이 된 상태가 아니다 보니 흔히 말하는 MAGA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있다 하더라도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이곳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끼가 안보이는 건 아니지.'
그도 그럴 것이 일단은 MAGA의 M에 해당하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일단은 이곳에 천 명 규모의 사무실을 운영중이었고,
애플 역시 쿠퍼티노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며,
애플에서 쫒겨난 스티브 잡스 또한 레드우드에 자리를 잡고 회사를 나름대로 운영해 나가고 있었으니...
실리콘 밸리를 구성하는 핵심 기업들이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서로 코를 맡대고 경쟁하고 있는 꼴이었다.
거기다...
"나는 그럼 잠시 내 모교에 다녀오마."
"바로요?"
"약속을 잡았으니까. 내일 견학에는 차질없이 참석할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멀기는 하지만 차로 다섯시간 거리에는 전길남 박사의 모교인 UCLA가,
더 가깝게는 차로 한시간 거리에 UC버클리가,
그리고 실리콘 밸리 안에는 스탠퍼드 대학교까지.
세계의 유명 명문대가 죄다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니....
과거, 아니 전생의 그 이름에 걸맞는 위상에 까지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실제로 여기 창업주들 대부분이 이 캘리포니아 세 개 대학 출신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혼잣말에 가까운 감상을 작게 내뱉자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민영이 되물었다.
"예?"
"아닙니다. 학생들은 전부 호텔로 들어갔습니까?"
"아까 전에 직접 체크인 해주시고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전길남 박사님도 아까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 끊어서 내려가셨는데요...."
그 말에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혼자 생각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군요."
"하긴... 멀찍이 떨어져서 보는 저도 정신이 없더라구요. 다들 어른인 척 해도 어쨌든 20대니까요. 일 하러 온 저도 이렇게 신이 나서 두근거리는데, 회장님 학우분들은 오죽할까요."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30대라 차분한 것이군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사과하면 내가 더 상처받는데요...."
그렇게 농담을 주고 받은 나는 슬쩍 민명에게 미안함을 담아 말을 이었다.
"관광을 못해서 아쉽겠지만.... 그건 나중을 기약하고 일단 이번 여행은 일에 집중합시다. 우리."
그 말에 민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딱히 관광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여행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구요. 다만...."
잠시 민영이 말을 삼키며 말을 머뭇거리던 그 때,
"여기 계셨군요."
오오와다가 내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벌써 오셨습니까?"
"비행기 타고 오면 금방인데요. 루빈 씨와 함께 왔습니다. 지금은... 일단 체크인을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지만요."
"그럼 우리도 방에 들어가 준비를 해야겠네요."
"예. 스위트 룸을 잡아두었습니다. 올라가셔서 이야기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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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로버트는 자신에게 배정된 스위트 룸을 둘러보다 묘한 비음을 흘렸다.
"흐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비음에 한창 일을 준비하던 로버트의 비서가 되묻자 루빈이 말을 이었다.
"아까 내가 들어올때 호텔 로비 카페에서 미스터 킴을 본 것 같단 말이지."
"그러셨습니까?"
"그때 아예 아는 체를 했어야 했나 하고 고민중이었네."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렇게까지 신경쓰시는 이유가...?"
비서의 말에 로버트가 허허 거리며 웃고는 말을 이었다.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닌가. 여기까지 그 자를 보기 위해 왔는데."
"그도 그렇군요. 그래서 뭘 제안할 지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이상한 말에 로버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아쉽지 않은 개인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뭘 제안할지 못 정했네. 그저 그 자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건넨 제안이었거든."
"그 쪽 비서도 그럼 골머리를 썩고 있겠네요. 여러가지 예상 제안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느라."
"그 말은 자네가 지금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말하는 듯 하네만."
"...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아니, 맞네. 맞는 말이야. 그래. 그래서 자네가 추천하는 전략은 뭔가?"
그 말에 비서가 자리에서 두 개의 서류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하나는 정공법으로 현재 미스터 킴이 주력으로 밀고 있는 IT쪽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하는 겁니다. 미스터 오오와다에게 운을 띄울때에도 써먹은 제안이죠.
아마 무난하게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미스터 킴의 사업 스타일이 무차입 경영을 선호하는 지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만요."
"또 다른 한가지는?"
"혹시 몰라 구찌 쪽을 통해 이번 뉴욕 S/S 패션 위크의 초대장을 건넸습니다. 패션업계에 함께 진출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지요."
".... 그건 좀 놀리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비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하수지요. 무려 골드만 삭스의 제안인데, 그렇게 단순한 제안을 할리가 있나요."
그렇게 그녀가 참고자료로 건넨 것은 곱게 잘린 패션잡지의 한 화보였다.
"할스턴...?"
"예. 라이센스 비즈니스를 제안하는 겁니다. 물론 할스턴이 아닌 다른 브랜드로요."
"우리가 하기엔 너무 사이즈가 작은데....?"
"하지만 의외로 흥미가 동할겁니다. 지금 한국 경제를 들여다보면 더더욱."
그녀의 말에 로버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하긴.... 대략 우리보다 30년 뒤쳐졌다고 생각하면 얼추 60년대 초반 미국 경제상황과 비슷하겠군.
그러면... 꽤나 그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겠어.
뉴욕도 60,70년대에는 라이센스 비즈니스가 성행했으니. 긍정적인 명성을 얻기도 쉽고 말이지."
"예. 이 둘 중에서 고르시면 됩니다."
그 말에 로버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둘 다 제안해보도록 하지.
한국... 아니, 지금은 망해버린 일본까지 포함해서 돈의 세계에서는 동북아 1인자가 될 사람 중 하나와 인연을 맺는 차원이니까. 오늘 만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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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미리 준비한 수트를 입고 약속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브닝 드레스 입고 오길 잘했죠?"
"밥 먹으러 오는 건데... 드레스 코드 운운할 줄은 몰랐네요."
"꽤나 보수적인 호텔 체인이니까요. 힐튼은. 한국도 요즘 이런 걸 따라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기도 해서 준비해봤습니다. 불편하겠지만..."
"괜찮아요. 어색하긴 해도 불편하진 않습니다. 근데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은 자리일까요?"
"괜찮습니다. 다만, 테이블 매너에는 좀 신경을 써주셔야 합니다."
"예...!"
그렇게 민영과 함께 자리에 들어선 나는 호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간 곳에는 로버트가 홀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내 비서를 데려올 걸 그랬군."
"태준 킴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난 로버트 루빈일세."
그렇게 인사를 나눈 나는 민영의 의자를 빼 자연스럽게 앉히고는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식전이니 우선 식사부터 할까요?"
"그거 좋지."
그렇게 조용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인 나와 로버트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민영은 이 특유의 분위기에 억눌린 탓인지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묘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로버트가 와인을 건네며 내게 말했다.
"슬슬 일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어떤가."
그 말에 민영이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지요. 해서 어쩐 일로 저를 보자 하셨습니까?"
"어떻게 킴 자네를 알고 찾아온 건지는 묻지 않는겐가?"
"골드만 삭스 아닙니까.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 말에 로버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재미있는 친구군. 누가 보면 월 가에서 10년은 구른 사람인 줄 알겠어."
"월 가에서 10년을 굴렀다면 이런 자리에 비서를 데려오는 대담한 일을 벌이진 않았겠지요."
"하핫.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군. 간만에 크게 웃었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어떤 생각입니까?"
그 말에 로버트가 씩 웃으며 내게 도발적으로 말해왔다.
"자네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것."
"예?"
"아, 나쁜 말은 아닐세. 남의 시선, 남의 생각 따윈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니까. 아마 고민조차 없을테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어보였다.
"그래 보이십니까?"
"그래보이는군. 여기 어색하게 앉아있는 비서 양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말에 민영이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아무 생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뭘 팔러 오셨을지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은 로버트가 말을 이었다.
"두 가지 제안이 있네. 두 가지를 다 받아도 되고, 하나만 받아도 되고, 안받아도 되지."
그렇게 시작된 제안은...
QULAB에 대한 투자, 그리고 패션 브랜드의 라이센싱 사업이었다.
하나는 오오와다에게 들은 내용과 거의 같은 맥락의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 과거 경력까지 알고 있다... 뭐 그런 걸 어필하고 싶은건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 한 내용의 제안이었다.
두 개의 제안의 속내를 추측한 나는 슬쩍 와인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구실이군요. 애초에 제가 받을 생각이 없는 제안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거기다... 아이템만 있고, 계획이 없으니...."
"뭐 그렇지. 솔직히 내 선에서 올 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딱 애널리스트 수준에서 그것도 막 입사한 놈들이나 낼 계획이긴 하지. 이해하시게. 이거 내 비서가 짠 거라."
"그런데도 들고 오셨다는 건... 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겠군요."
"맞네."
그 말에 나는 슬쩍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그건 나랑 같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로버트에게 말을 이었다.
"목적이 같군요."
"목적이 같다?"
그 되물음에 나는 따로 답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건은 전부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전부 받는다니.... 그럼?"
"골드만 삭스와 한 배를 타보도록 하죠. 뭐가 되었든 서로 '인연'이 필요한 모양이니."
그 말에 로버트가 허허 웃으며 말을...
"그럼...."
이으려는 그 순간.
나는 그의 말을 툭 잘라먹고는 말을 이었다.
"다만, 기왕하는 것 계획을 좀 키웁시다."
"IT쪽으로...? 아니면 패션 쪽으로?"
"둘 다요."
"아직 명확한 계획은 없는데...?"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퀄컴 인수부터 가죠."
그 말에 로버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인수 기업은 당연히... 유니버스인가?"
"예. 그런 다음. AMD도 인수하겠습니다."
AMD라는 말이 나오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 로버트가 말을 이었다.
"LBO로 자금을 조달하고 적대적 M&A까지 걸겠다는 건가?"
"예. 그런 다음... 패션 쪽 라이센싱 사업을 생각해보도록 하죠."
그 말에 로버트가 허허 웃고는 말을 이었다.
"거 참... 인연치고는 너무 과하게 엮여들어가는 것 같은데 말이야."
"무서우시면 지금이라도 내려도 됩니다."
"그럴리가.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하지."
"아. 전략은 짜주시더라도, 실행은 조금 미뤄주십시오."
"어째서지?"
내 말에 로버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먼저 해야할 일이 있거든요."
먼저 해야할 일. 그것은 오오와다가 설계한 전략 중 하나인 전략적 제휴를 통한 얼라이언스 형성이었다.
'먼저 AMD를 한 배에 태운 뒤에 AMD와 연합해 퀄컴을 찢어 먹는다. 그런 다음... 지분 교환으로 엮여 있는 AMD까지 전부 먹어치우면....?'
기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그 어떤 방해나 거슬리는 것 없이
우리나라 IT시장의 하드 플랫폼을 장악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