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48화 (48/200)

048. 월 스트리트 (1)

태준이 대통령과 담판을 짓던 그 시각 미국에서도 큰 담판이 지어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이요?"

"예."

제프 헨더슨 본사에서 벌어지는 담판의 주인공.

손의정와 오오와다였다.

"일본인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제프 헨더슨이 어떤 회사냐면...."

손의정과 오오와다의 제안에 제프 헨더슨의 사주 메릴 헨더슨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을 이었으나.....

"압니다. 포춘지보다 광고수익이 높은 먼슬리PC를 가졌고, 인터롭이라는 세계적인 IT 박람회까지 가진 기업. 그것만으로 이미 포스트 메러디스(세계적인 매거진 전문 미디어그룹)의 자리는 보장된 것 처럼 보이겠지요."

손의정이 그 말을 단칼에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손의정의 말에 메릴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보장 된 것 처럼 보인다?"

"예."

그 말에 메릴이 화를 내려던 그때,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인터롭의 한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인터롭의 한계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역사성과 상징성으로는 격년제로 열리고 있는 베를린 국제 라디오 박람회, IFA에도 밀리는 형편이고, 미국 내로 범위를 좁혀도 CES(미국 소비자 기술협회 주관 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밀리는 형편이죠."

"그 쪽은 가전이고, 우리는 컴퓨터....!"

메릴의 반발에 손의정은 웃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압니다. 다만 언제까지 컴퓨터가 전문가의 전유물일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죠."

그렇게 손의정이 운을 띄우자 오오와다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메릴과 손의정 앞에 건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오버 헤드 프로젝터(OHP)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오와다의 준비가 끝나자 손의정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작이라 불리는 애플 1, 애플 2, 그리고 IBM의 PC 시대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그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는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죠.

물론 그런 '개인적'용도 중에는 컴퓨팅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일반인의 수요도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들 역시 순수한 의미에서 '일반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렇게 다시 한 번 OHP필름이 넘어가고,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의 가정에 컴퓨터 보급이 점차 늘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전문화 된 일반인'의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GUI의 발전으로 직관적인 컴퓨터 사용이 가능해진 것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윈도우즈 보셨죠?

더 이상 검은 바탕화면에서 명령어들을 일일히 칠 필요가 없이 눈이 있고, 손가락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마치 TV채널을 돌리듯 컴퓨터를 쓰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어쩌면 이미 왔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요? 그럼 오히려 컴퓨터 사용인구가 늘어난 것이니 저희한테는 호재가 아닌가요?"

그 말에 손의정이 바지춤에 찔러넣은 손에서 손가락 두개를 살짝 뺐다가 집어넣었다.

그 수신호를 본 오오와다가 빠르게 가지고 있던 필름들을 뒤적이더니 새로운 필름 한장을 놓았다.

마치 프로야구 선수들이 서로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움직이는 듯 한 두 사람의 모습에 메릴이 슬쩍 놀랍다는 눈빛을 보였다.

"자. 지금 보시는 그래프는 연도에 따른 TV의 보급을 나타내는 그래프입니다. 그리고...

지금 얹어진 것은 컴퓨터 보급률 그래프이죠. 이 그래프를 살짝 뒤로 밀어보면....

이렇게... 거의 같은 그래프처럼 겹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적어도 서구권 시장에서는 컴퓨터가 가전화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인터롭도..."

"예. CES나 IFA에게 먹히거나 빼앗기겠죠. 지금의 위상을.

실제로 IFA는 원래 이름에 걸맞게 라디오나 나와야 맞겠지만, 지금은 냉장고 세탁기 할 것 없이 다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생각해본다면 컴퓨터가 나오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테죠."

"그러니 당신들 한테 팔라는 이야기인가요? 어째서죠?"

그 말에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우습게도 제가 온 일본에선 아직 PC라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

그러자 오오와다가 슬쩍 다른 필름을 꺼내 다시금 얹었다.

그렇게 겹쳐지는 새로운 그래프. 그것은 일본의 PC보급률을 나타내는 그래프였다.

"버블경제시절에도, 일본은 PC의 보급률이 좀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넘치는 돈으로 더 큰 TV, 더 큰 차, 각종 명품을 사들이는데에만 치중했죠. 워크맨에는 모두가 관심을 가졌지만, 그 워크맨을 설계한 도구인 컴퓨터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PC통신이 나오고 서비스를 시작해도 그런 기조는 바뀌지 않았고요.

그 결과... 일본의 PC 보급률은, 딱 귀사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인 1980년의 PC보급율과 거의 유사합니다."

손의정의 말에 메릴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즉... 미국 시장은 끝물이고, 일본 시장은 아직 성장여지가 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회사를 사들이려고 하는 겁니다. 일본 PC시장을 먹어치우기 위해."

그 말에 메릴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 정보를 들었으니 제가 직접 일본으로 가 사업을 해도 될 텐데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죠?"

"일본은 상당히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면 죄다 배척하고 보지요."

"맥도날드도 들어가 있는 나라 아닌가요?"

"들어와있지만, 직영이 아닙니다. 일본 합자기업으로 들어와있는 것이죠. 일본은 자국내에서 큰 기업과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시장입니다."

"그래서 이 제안이 가치 있다고 본 거군요. 두 분은."

"예."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메릴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마정도를 예상하시나요? 인수가격은."

"얼마나 어떻게 받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는 알겠는데 어떻게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지불 금액과 지불 방식을 여쭙는 겁니다."

"7억달러 정도면 적절하겠네요."

그 완곡한 거절의사에 손의정이 딱 자르며 말했다.

"전액 현금. 8억 달러. 일시불로 드리겠습니다."

"예?"

"싫으십니까?"

"아...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계약하죠."

현금 일시불 8억달러라는 돈.

메릴이 제안한 7억달러라는 돈에서 무려 1억이나 더 올라간 금액.

거기에 전액 현금 일시불이라는 조건은 메릴이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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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자네가 개발하는 동안 우리 쪽에서는 정부 지원 사업으로 국민PC를 보급하는 것으로 하고, 지정업체 선정에서 유니버스를 선정해주는 것으로 하지."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희는 정부의 지원시책의 일환이라면서 무료 PC통신을 보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 아까 말했다시피."

"예, 한국통신에는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한국통신에서 제공하는 속도의 75%까지만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내가 최대한 빠르게 서울 전역의 광케이블 매설 작업을 하는 동안, 대통령은 모르는 척 지켜 보고 있다가 후에 완공이 완료될 쯤,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서 무료 PC통신 제공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협상을 마치고 관저에서 밥까지 얻어먹고 나온 나는 다음날, 민영에게 말을 이었다.

"이제는 사업이 뒤집힐 일은 없을 겁니다. 실무진 협상부터 바로 시작하세요. 우선은... 태균물산에 발주부터 시작해야겠군요. 대금은 어음으로 지급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본 닛칸겐다이에서 손의정 사장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건네받은 오늘 자 신문의 사본에는 손의정 사장과 제프 헨더슨의 사주 메릴 헨더슨이 계약을 체결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1면 상단 중앙에 박혀있었다.

[손 요시마사, 『재프 핸더슨』 인수]

- 쾌진격의 인수합병, 8억 달러의 매머드 급 인수협상을 고작 5분만에...!

- 손,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일본을 IT의 중심지로 만들 것."

'전생에도 인수협상 5분만에 바로 계약을 타결하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원래 스타일이 달란대로 다 주는 스타일인가?'

그렇게 굵은 헤드라인만 읽어본 나는 속으로 짧은 감상을 남기곤,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화끈하네요. 손의정 사장. 8억 달러를 찔러주니까 바로 질러버리는 군요."

"이제 어쩌실 생각이신가요?"

내 말에 민영이 기대감에 찬 얼굴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왔다.

그 질문을 받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글세요. 92년도까진 딱히 할게 없을 것 같은데요? 돈 쓰는 것 말고는..."

"네?"

"아직 독일 통일 작업이 마무리된 게 아니니까요."

그 말에 민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군.'

그렇게 무의식적인 생각을 흘려보낸 나는 씽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죄다 받아쓰기나 하는 기레기들 밖에 없잖아요?"

"기..레기가 무슨 말인가요?"

그 말에 나는 문득 이 표현이 미래에서 있었던 표현임을 깨닫고는 정정했다.

"기자에 쓰레기를 합친 말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인가 보네요."

그 말에 나는 '민영씨도 요즘사람 아닌가요'라고 말하려다 말고 마저 말을 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다들 독일이 얼마 전 완전히 통일된 줄 알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오보에 의한 해프닝일 뿐이죠."

"그럼 회장님께선 통일이 안 될 것이라 보시는 건가요?"

"아뇨. 통일은 될 겁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지난할 것이라는게 문제죠. 일단 작년 3월에 동독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선거가 있었지요.

거기서 독일연합이 빠른 화폐통합과 경제 재건을 내밀고 이겼지 않습니까. 그 건만으로도 이미 독일은 통일 확정입니다. 이미 그러고 1년이 지나기도 했고요. 다시 갈라질 일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독일연합이면... 서독쪽 정당이죠??"

"예. 정확히는 기민당과 자유당의 연립정당이죠. 진짜 문제는 독일연합이 내세운 화폐 통합이 문제가 될겁니다. 이걸 해결해야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되었다 말할 수 있게 되겠지요."

"어째서요?"

"동독과 서독의 경제력 차이 때문이지요. 양자간의 경제력 차이만큼 양자간의 화폐가치도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사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동독의 1마르크를 서독의 1마르크로 1:1 교환을 해주겠다고 했으니까요."

그 말에 민영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면 사실상 서독이 동독에게 돈을 준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문제?"

"유럽은 단일 경제권을 이루고 싶어하거든요. 그래서 EC(유럽공동체)의 주도하에 유럽내 환율은 고정환율로 거래되고 있죠. 그 고정밴드의 비율은 6%선이고요. 그걸 ERM이라고 합니다.

이 ERM때문에... 독일이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하게되면 유럽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게 문제입니다."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민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 말인 즉.... 독일이 뿌려댄 돈 때문에 ERM에 속한 나라들의 화폐도 강제적으로 늘어난다는 말인가요?"

"아뇨 그렇게 단순한 과정은 아닐겁니다. 독일은 1차대전 이후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해본 몇 안되는 국가지 않습니까?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나라지요. 아마 화폐교환이 완료되는 시점에 곧바로 기준금리를 어마어마하게 올려 시장에 풀린 돈을 빨아들이려 할겁니다. 진공청소기처럼.

그렇게 되면.... 은행 금리 자체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좋을테니 전세계의 돈이 전부 독일로 몰리게 될거고, 그렇게 다른 나라의 화폐가 몰릴 수록 마르크화의 가치는 역으로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겠지요."

그 말에 민영이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독일 마르크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네요."

"일반론적으로는 그렇겠지요.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죠."

"진짜...?"

그 말에 나는 그저 싱긋 웃으며 민영에게 미소지어 보일 뿐이었다.

'전생의 퀀텀 펀드의 최대 업적.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 그 전략을 입안한 드러켄밀러를 내 손에 넣고 검은 수요일을 내 두 번째 생일로 만든다.'

그렇게 내 미소와 함께 끊어진 대화는....

- 따르르릉

한 통의 전화에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회장님. 오오와다입니다. 골드만 삭스 이사회 공동 의장 중 한 사람이 직접 회장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연락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사회 의장이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로버트 루빈입니다. 1966년 합병 차익거래 부서에서 어소시에이트(대리급)로 시작해서 지금은 이사회 공동 의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오오와다가 말하는 설명을 듣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머릿 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로버트 루빈이면 클린턴 행정부 때 미 재무부 장관인데... 이 사람도 골드만 삭스 출신이었나?'

로버트 루빈이 이뤄낸 성과보다 그가 앞으로 이뤄낼 성과가 내게는 더 큰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오와다의 설명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일정 잡아보도록 하죠."

곧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 이사를 거쳐 우리나라 IMF때 미 재무부장관을 하는 거물.

그런 거물이 부르는데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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