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퀀텀 점프 (3)
".... 판교쪽 일도 있고, 제2이동통신사업자 관련 일도 있고 하니 내 이번 일 받아주마."
그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제2이동통신사업자건... 그거 할아버지 작품이었나. 거 참. 진짜로 이 양반 손자 사탕까지 뺏어먹고 그러네.'
그렇게 내가 속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 있자,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 PC통신이라는 사업. 어떻게 되는 건지나 좀 들어보자."
"광섬유라고 아십니까? 저는 일반 전화선이 아닌 광섬유를 통해서 자체 선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PC통신 사업을 하려고 하는겁니다."
"자체선이면... 더 좋은게 있는게냐?"
"훨씬 빠르고 많은 양의 정보를 보낼 수 있지요."
"겨우 그것 뿐이야?"
"겨우라니요. 그렇게만 되면 오가는 정보 양이 폭증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세상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겁니다.
새로운 공간이 하나 탄생하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고 갈 수 있는 방대한 정보가 있는 공간이."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 공간에 광고판 하나 걸어두면 어마어마하겠군. 어지간한 땅 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과연... 회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네. 바로 상업적 용도 하나를 캐치해내다니....'
그렇게 내가 경악에 찬 속마음을 숨긴채 그저 허허 거리고 있자,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결국 초반에는 필연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데, 그걸 버틸 수는 있는게냐?"
"꽤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군요."
"사업이니까 말이지."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버틸 수 있습니다."
"어째서. 애초에 기반 시설을 만만찮게 까는 일인데."
"이건 널리 퍼져야 돈이 되니까요. 다만 속도에는 차등을 둘겁니다. 지금 현행 수준의 속도로 제한을 건 계정은 무료로 사용하게 하고, 속도를 올릴때 마다 돈을 받고 올려주는 방식으로 돈을 받을 생각입니다."
"... 한국 사람 성질머리 긁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구나."
그렇게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자 김두혁 회장이 슬쩍 내게 말을 이어왔다.
"혹시 그거 이동통신으로도 접속이 가능한게냐?"
속이 빤히 보이는 태도에 나는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기술이 만들어진 목적이 다른 데 되겠습니까?"
"하긴."
그렇게 아쉬운 티를 팍팍내던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해서 내가 전자와 상사를 합병하고 남은 찌거기를 네가 먹게 해주면, 지하관로 구축 사업을 우리한테 발주하겠다.. 그런게지?"
"그렇지요."
"그럼 그렇게 하마. 어차피 우리 쪽에서는 가지고 있어봐야 계륵이니까. 아, 반도체는 빼고. 그건 상사에서 반도체 사업부로 만들었다가 도로 물적 분할할거니까."
"반도체를 빼면 그냥 조립공장 수준 아닙니까?"
"조립공장이라니! 그런 조립공장 봤냐?!"
내 말에 발끈하며 화를 내는 김두혁 회장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그 반도체 사업부는 곧 산성전자에 밀려서 곧 고사할텐데 꾸역꾸역 잡고 있는 꼴도 웃기네. 거참.'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그럼 공장 숙련공들 전원 고용승계하는 방향으로 해서 제가 가져갑니다? 아, 그때 안넘긴 전자 쪽 연구원도 전부 주시는 조건까지 더해서요. 반도체 안 주시면 연구원이라도 챙겨야지요."
"오냐 그래. 그것까진 내주마. 단, 반도체만은 절대 안돼."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아. 우선 서울하고 부산, 그리고 대전 이렇게 세곳부터 지하관로 사업 시작하게 될겁니다. 자세한건 사업 들어갈때 실무자들 선에서 이야기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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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회장과 협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청와대에 연락을 넣었다.
"사업 준비 하던 중에 꽤 좋은 생각이 나서요."
"좋은 생각?"
"제가 준비하는 사업이 왠지 정부의 경제 정책하고 아주 잘 맞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 전용선 PC통신 사업 말하는건가?"
"예. 이 참에 아예 국민들에게 PC를 보급하는 사업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내가 전하려고 하는 정책.
그것은 김태충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시행하는 IT민주화 정책이었다.
IMF타개를 위해 IT사업을 육성해야 했던 정부의 필요와 때마침 보급되는 고속인터넷이 맞물려 탄생한 정책이었지만....
'어차피 내가 광케이블 잔뜩 깔아서 빠르게 보급할건데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내가 지금 시점부터 광케이블로 인터넷 망을 구축할 생각이었기에, 정책의 인과와 선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 제2이동통신사업자 관련 건으로 엿 먹은 것도 좀 있으니 작게나마 복수를 해야지.'
그렇게 내가 대통령의 말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노대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 컴퓨터 말하는게지?"
"예. 어차피 군사용으로도 쓰이는게 컴퓨터고, 정부에서도 각종 데이터 분석은 다 컴퓨터로 하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은게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만... 일반 가정에서 그걸로 뭘 할 수 있겠나. PC통신이라고 해도 비싼 물건이라 다들 안하려 들텐데."
그 말에 나는 슬쩍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걸 만들어주면 되지요."
"...PC통신?"
"예. 제가 PC통신을 무료로 보급하겠습니다."
그 말에 노대호 대통령의 새 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한국통신이 못한 그것. 제가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서울인가?"
"예. 간만에 서울에 올라와있습니다."
"청와대로 좀 들어오지."
그렇게 전화가 뚝 끊기고 얼마지나지 않아 청실아파트 주차장에 차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곧장 끌려가다시피 청와대로 들어간 나는 전에 본 집무실이 아닌 대통령의 사적 공간인 관저로 안내되었다.
"어서오게."
"한옥이 아주 멋들어집니다."
"지어진지 몇 달 밖에 안된 새집일세."
그 말에 나는 슬쩍 전경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새집에 이리 초대를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자네가 나를 급하게 만들었지 않는가. 우선 들어가지. 내 안사람에게 밥을 해놓으라 일렀으니, 곧 차려질 걸세. 이야기 다 나누고 같이 밥이나 먹지."
그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영부인에게 마주 인사하고는 곧장 내실 안쪽 좁은 서재로 들어갔다.
"그래. 어디 이야기 해보게. 진짜로 자네가 무료로 PC통신을 제공할 생각인가?"
"예. 기본 도수에 한해서지만... 그렇습니다."
그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푹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래주면이야. 우리쪽이야 좋은데... 문제는 아직 한국통신이 민영화 전이란 말이지. 민영화 계획도 한참 멀었고. 수익성이 좋으니까."
"그 말인 즉..."
"그래. 자네가 그걸 하는 순간 뒤에서 욕 좀 먹을거라는 말이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공기업, 그것도 기간 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이 수익성이 좋다는 것도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뭐?"
"생각해보면 공기업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의 복리증진 차원에서 존재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익이 상당하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국민의 복리증진 차원에서 운영되는 기업이 국민에게서 수익을 거둬 이익을 본다는 게. 누구를 위한 공기업이란 말입니까 그게. 심지어 PC통신은 지금 얼마 쓰지도 않지 않습니까?"
내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말 그대로지. 맞는 말이야. 헌데... 일이란게 또 그렇지 않다는 말이지. 자네 말 대로 적자만 면하는 수준으로 운영해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분배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적자가 나는 공기업도 상당하고, 자네 말대로 국민의 복리를 위해 어떻게든 그걸 또 세금으로 메꿔서라도 어떻게든 보전해야 하니.. 흑자가 나주는 공기업이 있으면 차라리 고마운게 정부 입장인게야.
사실 한국통신 같은 전형적인 흑자 공기업은... 마음같아서는 놔주고 싶지 않은게 또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역시 정부 중 장기 계획에 민영화가 있다는건...."
"해외의 압박 때문이지. 우리 경제수준이 좀 빨리 컸나. 이후 10년만 더 지나면 개도국지위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네.
그나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이동통신시대가 개막하면서 이동통신보급 목적으로 공기업을 만들고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미는 수 밖에는 없는게야.
그러면서 아직 유선전화도 제대로 안 깔렸으니 그 작업이 마무리 되는 대로 민영화 하겠다고 버티는거고.
그렇게 안하면 저기 동남아처럼 해외 통신기업들이 와서 나라의 국익을 빼먹겠지. 나도 깨끗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라 팔아먹으면서까지 해쳐먹는 인간은 아닐세."
노대호 대통령의 진솔한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 공감은 어디까지나 노대호가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고민에 대한 것일 뿐.
노대호의 결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렇게 멋있고 그럴 듯하게 말하지만, 역적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해처먹는다는 말이잖아...'
물론 동의여부와 그와 함께 갈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에, 나는 고개를 선션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해합니다. 무슨 말인지."
"고맙네. 자네 입장에서도..."
"하지만 대통령님께서 제 제안을 정책으로 받아들이던 말던. 저는 PC통신을 무료로 보급 할 생각입니다."
"뭐?"
"개인 사업이니까요. 어떤 식으로 요금을 부과할지는 말 그대로 사업체의 결정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을 하러 온 겐가?"
"명령이라기 보다는 빚 독촉이겠지요?"
그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후... 하고 한숨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빚 독촉이라...."
"빚은 빨리 갚으시는 게 좋습니다. 해서 제가 정책적 성과라는 '선물'도 들고 오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한국통신의 고객들이 자네 쪽으로 흘러들어가겠지."
"그래서요?"
"그럼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한국통신의 알짜 사업은 다른 곳에서 올텐데요."
"다른 곳이라면 어딜 말하는건가?"
"전화요금. 요새 전화요금 현실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누가 보면 전화를 무료로 제공하는 줄 알겠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공중전화에 한해서지. 관리비 충당 차원에서. 집전화 요금은 곧 시외전화합리화 정책으로 내려갈걸세."
"유배 보낸 광주대단지랑 각 신도시 권역 사람들에게 02 번호 주기 싫어서 하는 정책을 꽤나 국민을 위한 것 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내 노골적인 말에 노대호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지.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일 줄 도 알아야 하는게야."
"그럼 그 현실을 바꿀 이유를 드려야겠군요. 한국 IT혁명의 선구자 타이틀을 달아드리겠습니다."
"뭐?"
"그게 싫으시면 이건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뭐가 되었든 역사에 남는 타이틀이 될텐데, 이걸 김응삼 총재가 가져가도 좋겠습니까?
임기도 이제 2년밖에 안남으셨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