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손 요시마사 (2)
태준의 전화를 받은 오오와다는 알겠다는 말만 남기고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태준 대신 일본의 모든 일을 처리하며,
태준의 말 대로 이뤄지는 일들을 보며, 더는 태준의 결정에 의심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오와다가 남긴 감상이라고는 고작
"걸프전 때문에 달러 약세가 지속되니 이 참에 환차익을 보시려는 건가...."
이 정도의 감상 뿐이었다.
그렇게 오오와다가 일본 랜더스에 남은 자금을 해외투자라는 명목으로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해 반출을 거의 완료하자, 귀신같이 태준으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다.
"전부 달러로 바꿨습니까?"
"예.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해서 투자 목적으로 해외 송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지금부터 오오와다 사장은 일본에서 성공한 투자자로 미국 내에서 활동하시면 됩니다.
랜더스 투금 사장직을 한 적이 있으니 활동을 시작하는데에는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예상치 못한 태준의 말에 오오와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화기 너머의 태준에게 물었다.
"활동....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저 활동입니다. 아, 기왕이면 월 스트리트에서 활동해줬으면 좋겠네요."
"월 스트리트라면 금융인들하고 친분을 쌓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한 번에 접근하면 이상할테니까요."
태준의 말에 오오와다는 자신이 놓친 것이 있었는지 순간 고민하다, 황급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뒤적이기 시작했다.
오로지 태준의 말만을 적어놓은 황금색 표지의 수첩.
그렇게 한참을 수첩을 뒤적거리던 오오와다는 본인이 놓친 것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저, 혹시 죄송하지만, 누가 최종적인 목표인지 듣지 못했습니다."
"아, 제가 말을 해준적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요새 정신이 없어서..."
"별 말씀을요. 워낙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래도 요새는 괜찮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오오와다씨가 최종적으로 인연을 맺어야하는 사람은, 조지 소로스 입니다."
"조지.. 소로스요? 그게 누굽니까?"
"헝가리 태생의 미국 투자가입니다. 퀀텀펀드라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을겁니다."
"알겠습니다."
"정확히는 그 자의 곁에 있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친해지십시오."
그렇게 태준이 불러준 인명을 받아적은 오오와다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물었다.
"그럼 그렇게 친해진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1992년즈음이면 알게 될겁니다. 그 전까지는 순수하게 친분을 다지는데 주력하세요. 대전략을 듣고 나면 순수한 친분을 쌓는데 오히려 독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때까지 그들의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미국으로 갈 수 있을때까지, 잘 부탁합니다. 아, 그리고 사무실로 선물 하나 보내놨습니다. 유용하게 쓰십시오."
그렇게 태준이 전화를 끊자, 오오와다는 핵심 키워드들을 정리하며 목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스탠리 드러켄밀러
- 조지 소로스
- 퀀텀 펀드
- 1992년
그렇게 키워드를 정리한 오오와다는 다시 품에 수첩을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똑똑똑
일어나려던 그때.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오오와다의 귓전을 때렸다.
"네. 들어오세요."
"사장님. 소포가 도착했는데요."
"회장님께서 보내신 겁니까?"
"예. 박스가 꽤 되는데 어떻게 전부 들여놓을까요?"
"예,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일곱개의 박스가 차례대로 비서의 손에 의해 날라지고, 사라지자 오오와다는 슬쩍 사무실과 사장실을 구분 짓는 통창을 보고는 통창으로 다가가 철제 버티컬 블라인드를 내렸다.
촤락 하는 경쾌한 금속음이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완전한 밀실이 된 사무실에서 오오와다는 하나 둘 박스를 뜯어보았다.
양복.
양복.
양복.
양복.
양복.
다섯개의 박스 모두 옷이 들어있었다.
패션에도, 브랜드에도 문외한인 오오와다로서는 그저 일반적인 양복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체 이게..."
그렇게 오오와다가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옷을 들어올리자, 그 안에서 편지가 튀어나왔다.
"편지...?"
그렇게 오오와다가 집어든 편지 안에는 각 패션 아이템들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적혀있었다.
[박스 안 쪽에 번호를 적어두었습니다. 1번부터 5번까지 각 용도에 맞게 입으시면 됩니다. 미국가서도 어색한 일본식 공장제 양복을 입고 다닐까봐 일부러 사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은 6번 박스에는 시계와 지갑이 벨트, 그리고 구두가 있습니다. 시계는 은장, 금장 두 종류, 벨트도 은버클 금버클 두 종류입니다. 철물 색상을 맞춰 착용하십시오.
정장은 혹시라도 시간이 나거든 영국 새빌 로 (Savile Row) 거리에 가서 따로 맞추시길 권합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에, 대서양 건너는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말하는 세비로(背広, セビロ ; 새빌 로의 음차표현으로 정장을 뜻하는 말.)와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가시게 되거든 제일 오래된 Henry Poole & Co 말고 다른 양장점을 찾아가시고요. 거긴 오래된 가게라 트렌드가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장문의 편지에 오오와다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문을 잠그고 그대로 옷을 훌렁 벗어 갈아입기 시작했다.
편지에 쓰여진 대로 4번 박스에 든 평상용 정장을 꺼내 입은 오오와다는 슬쩍 옷걸이 옆에 놓인 전신 거울을 옮겨다 놓고 자신의 모습을 감상했다.
위에부터 아래까지 전부 죄다 명품 브랜드로 도배를 했음에도 과하지 않은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인 오오와다는 이내 자신이 입던 양복에서 수첩과 지갑을 꺼내 옮기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임시로 보낸 옷이 이정도라니... 엄청나네. 처음 보는 브랜드도 많고. 헤르메스...? 파리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니 이건 프랑스 쪽 브랜드인가보군."
그렇게 옷을 다 갈아입고, 아직 뜯지 않은 번호 없는 박스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번호 없는 박스쪽으로 다가가 박스를 개봉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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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와다와의 전화를 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시제품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음질이면 상당한 수준이네요. 거의 유선 수준으로 들렸습니다. 국제통화였는데도."
"예. 지금은 임시 운영 면허로 통화하신 것이라 음질이 최고 수준이었을 겁니다. 디지털화 해서 전송하는 특성상 사용자가 몰리면 그만큼 음성신호의 압축율이 올라가서 손실률도 커지기 때문에..."
"그 부분은 차차 해결해야겠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연구원에게 시제품 CMDA 핸드폰을 넘겨준 나는 연구실에서 나와 민영에게 말했다.
"오오와다 사장에게 시제품은 보냈습니까?"
"예. 말씀하신 선물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 보냈는데... 도착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도착 안했을지도 모르니까 미국 QULAB에 연락해두세요. 시제품 건네 주라고."
"알겠습니다."
오오와다에게 보낸 시제품 핸드폰은 일명 비화폰이라 불리는 비밀통신 장비였다.
QULAB의 연구용 전파를 이용해 통신하는 장비로서 도감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 우수한 통화품질, 거기에 소소한 이득이지만 통신비 자체가 들지 않는다는 점등의 장점이 있기에 오오와다에게 보내주었던 것이었다.
"생산공장 부지는 구했습니까?"
"예. 평택에 있는 구 빵빵카폰 공장 양 옆을 추가 매입하고, 관계부처와 협의중입니다."
"유니버스 쪽은 그걸로 알아서 굴러갈거고... 이제 남은 건 제 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만 남았네요."
"네. 사전 심사원서는 제출했습니다."
"뭐 어차피 요식행위니까요."
그렇게 모든 진행 상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와 일본의 손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회장님께서는 바쁜 일은 좀 해결 되신 모양입니다."
"하하. 일 생겼을 때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것 까지야 있나요. 제가 도와드린 만큼 회장님께서도 절 도와주시겠죠."
손의정의 너스레에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죠. QULAB 설립 건으로 도움만 받고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별 수 있나요. 퀄컴에서 반대하고 들고 일어나는데."
"해서 미약하게 나마 빚을 좀 갚으려 전화드렸습니다."
"설마...."
"예. 곧 기업공개를 노리신다고요."
"예. 회장님 덕에 이번 일본 버블 붕괴에서 저도 돈을 좀 만졌는데, 이제는 사업을 다각화해야지요. 그러려면 실탄을 좀 마련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제가 한 손 거들어드릴까 합니다."
"설마."
"저도 소프트방코 주식을 10%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마냥 순수하게 도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추가 투자를 해주신다는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진게 돈 뿐인데 어려울 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일단 먼슬리PC 쪽은 거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 그게 판권만 가져온 겁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잡지가 잘 나가지 않습니까? 일본판 먼슬리PC에 대한 판권을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잡지사를 통으로 인수하실 계획이시군요."
"예. 포춘지보다 잘 나가는 잡지인데 그냥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 말에 나는 손의정의 감각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미래를 살고 온 나는 두번째 사는 인생에서야 플랫폼 사업을 전개할 생각을 했는데, 현생을 처음 살 손의정은 벌써부터 플랫폼 사업의 미래를 보고 움직이고 있었다.
'거 참. 대단하긴 대단하네. 잡지면 그 자체로 컨텐츠를 다루는데다 광고를 실을 수 있으니 고전적인 플랫폼 사업인데... 벌써 그걸 캐치하고 움직이는 건가.'
그렇게 내가 놀라움에 잠시 말을 멈추자 손의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망상에 가까운 계획입니다만, 기업공개에서 대박이 나면 컴덱스를 인수할까 합니다."
"컴덱스라면... IT박람회가 아닙니까? 사장님께서 입상하셨던."
"예. 뭐... 제 첫 성과가 있었던 곳이지요."
그렇게 손의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나는 슬쩍 손의정을 떠보았다.
"개인적인 추억 때문... 은 아닐 것 같고, 혹시 정보 때문입니까?"
그러자 손의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 참. 회장님께는 못 이기겠습니다. 예. 박람회 운영사를 인수하면 전 세계 IT동향을 한번에 알 수 있으니까요."
"손사장님 전문 분야군요. IT."
"예. 저는 회장님 처럼 담대하지 못해서 큰 투자는 잘 못합니다. 그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분야에서 투자를 하는 것일 뿐이죠."
"과찬이십니다. 허면 컴덱스에 인터롭도 인수하실 수 있으면 금상 첨화겠군요."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죠. 뭐 어디까지나 몽중지몽 수준의 계획입니다."
그렇게 손의정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나는 가만히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손의정의 계획.
세계 최고의 PC관련 잡지사를 인수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IT박람회를 인수한다.
이 모든 계획들에서 나는 전에 없던 돈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여기에 내가 끼어들 수만 있으면 금상첨화겠어.... 여기서 잘만 하면 손의정을 아예 내 가신으로 삼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계산을 마친 나는 슬쩍 손의정에게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그 꿈. 이뤄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 하지만 기업공개는 아직도 멀었... 설마."
"예. 제가 투자해드리겠습니다. 단, 완전히 투자해드리는 건 아니고. 제 지분만큼 투자해 드리겠습니다."
"컴덱스 하나만 해도 거의 천 만 달러 규모입니다. 거기서 10%라고 해봐야..."
"LBO(leveraged buyout)라고 아십니까?"
"차입금으로 인수를 하는 방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제가 손사장님의 날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한 번 원 없이 날아올라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