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이동통신사업 (3)
한편, 태준과의 계약을 마친 김석훈 부사장은 태준과 작성한 계약서 세 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 태균전자 이동통신사업부 산하 무선통신연구소 양수도계약서
- 특허권 양수도계약서
- 금전소비대차 계약서
그냥 보기만 해도 태준에게 대부분의 것들을 퍼준 계약서들이었다.
"뭐... 이렇게 퍼줘도 상관없지."
각 세장의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태준의 물산 지분 10%를 전자에 넘기는 것에 대한 대가로
무선통신연구소, 태균전자가 보유한 특허권 전부를 넘기고,
이들 특허권에 대해서는 3년마다 갱신을 조건으로 사용료를 지급한다는 것.
다분히 태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약.
이걸 김석훈 부사장이 모를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김석훈 부사장이 이렇게 퍼줘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그룹부터 장악한다. 그룹부터 장악하고... 태준이 놈한테 빼앗긴건 이후에 찾아오면 돼."
김석훈 부사장이 섬뜩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계약서를 덮고는 슬쩍 전화기를 들여다 보았다.
"일단... 태준이 놈이 마련해 준 기회는 살려야겠지. 하핫.... 돈이 없냐고? 건방진 놈."
그렇게 한참을 전화기를 들여다 보던 김석훈 부사장은 웃음기를 날리고는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아, 난데. 전자 주식 매집 가능한가? 어디 전자는 어디 전자겠어! 태균전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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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일본에서 돌아와 연구소를 세우고, 경비회사와 빵빵카폰을 인수할 때만 해도 태준의 행보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은 태준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오오와다와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구 빵빵카폰, 현 유니버스 사장인 김기백 정도 뿐이었다.
그 말인 즉, 유니버스 연구소의 연구원들 마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연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었고,
자연히 연구원들은 약간은 붕 뜬 느낌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었다.
그러나, 태준이 가져온 태균전자 이동통신사업부 산하 무선통신연구소와 태균전자의 특허권으로 인해 태준이 뭘 노리고 있는지 그 실체와 윤곽이 드러나면서 유니버스 연구소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철민이 형! 이번에 2팀 대박 쳤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돌았냐?"
"그럼요. 연구소 합병되고 나서 대전 쪽 무시하던 태균맨 애들 콧대를 눌렀다고 아주 다들 신이나서 떠들던데요?"
"하하.... 그게 순수한 우리 성과라면 나도 그렇게 신나게 웃었을텐데..."
"그게 무슨 말이예요?"
"2팀이 만든 html 리더. 그거 2팀 순수 연구성과 아냐. 최고 공로자는 태준이형이지."
"예?!"
"애초에 형이 CERN에 가서 팀 버너스리라는 사람이 만든 WWW프로젝트에 한 다리 걸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니까."
"아... 그래서..."
"뭐 그래도 2팀이 다들 고생하긴 했지. 수원 캠 연구소 아재들한테 밀리면 개망신이라고 다들 코피를 쏟아가면서 갈아넣은 결과니까."
"엄청난 발명이네요."
"태준이 형이 진짜 대단한거지. 소장일 보느라 매일같이 서울 오가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양반이 CERN에서 나온 리포트를 어떻게 읽고서 협업까지 따낸건지...."
2팀의 html리더를 시작으로,
"저희 1팀도 다들 미쳐서 난리예요. 자기들 끼리 안되니까 교수님까지 모셔와서 물어보고..."
"아, 백찬승 교수님이 그래서 여기 오셨던거야?"
"예. 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이라고 태준이 형이 개념화 한게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태준이 형 아이디어네."
"뭐...? 그것도 태준이형 아이디어야? 미친... 전혀 다른 분야인데 그걸 개념화한다고...?
같은 박사급인데 난 왜... 쩝. 그래서. 어떻게 되가고 있는데?"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왔어요.
주파수분할다중접속이랑 시분할다중접속 방식에 코딩, 디코딩을 곁들이는 방법으로 해서 혼선이 되도 잡음으로만 들리게 하는 방식이예요.
디지털화해서 암호화하고 방송국처럼 동시에 모든 신호를 뿌리는 건데... 형이 개념은 만들었는데 구현을 못해서 애 많이 먹었죠."
"그런건 내가 들어봐야 모르고... 그래서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음.... 그러니까. 카폰이 비싼 이유가 다중 접속에 제한이 많이 있어서 그런거거든요. 물리적으로 전파를 나눠 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 한계가 사라지죠."
"그러면... 너나 할거 없이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된다는거야?"
"예. 애초에 그걸 위한 연구기도 하고요. 나중 가면 죄다 휴대폰만 들고 다닐껄요?"
"공중전화 찾느라 고생안해도 된다는거잖아? 엄청나네...그거 언제 나와? 너희도 다 된거잖아 그치?"
"지금은 아직 랩 수준이예요. 상용화까진 멀었죠. 특허 낼 정도는 아니었는데... 소장님 성화에 특허부터 빠르게 낸 거예요. 그나저나... 형네팀은 좋겠어요. 랩 수준 개발이면 상용화는 금방이잖아요."
1팀의 디지털 무선통신 프로젝트까지 대전 유니버스 연구소에서 진행하던 일들이 빠르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진척이 없던 연구들이 급격하게 진척을 이루게 된 원인에는 목표하는 사업이 명확해 진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걸로 이제 한시름 놓겠네."
"예. 진짜 태균 무선통신연구소를 유니버스에서 인수했다고 했을때는 진짜 아찔했었는데... 그런대로 성과가 나왔으니 이제 학비걱정은 없겠어요."
"학비가 아니라 월급이겠지. 너 이번에 차 샀다며."
"하핫. 들으셨어요?"
"들은게 아니다 본거지. 당당히 연구소 공터에 주차시켜놓고 출근하는 놈이 무슨."
연구원들 개인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통신 시장을 향한 명확한 사업적 목표.
연구원들 개개인에게 지급되던 꿀과 같은 복지와 높은 연봉.
그리고 그 연봉을 구성하는 한정된 자원을 노리는 새로운 실력있는 경쟁자의 등장.
이 세가지 요건이 유니버스 연구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감지한 태준은 곧바로 이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대규모의 투자를 다시 한 번 단행했다.
"다, 업무때문에 산겁니다. 업무때문에."
"업무는 무슨."
"2팀은 몰라요! 우리 1팀이 얼마나 개고생을 하는데요. 수원 아재들 바쁠때는 만날 우리가 올라가서 그쪽 실험 데이터 받아와야 하는데..."
"아, 그 문제는 곧 해결될 거 같더라."
"뭐가 해결이 되요?"
"태준이형... 아니, 소장님이 이번에 산학협력사업 기어이 따냈잖아. 그래서 자문교수를 따로 둘 수 있게 되었대."
"그럼 1팀에 백찬승 교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자문교수에는 TO가 없으니까 그 분도 오실테지만, 진짜는 따로 있지. 전길남 교수님."
"하긴... 소장씩이나 달고 있다고 해도 대학원생인데 지도교수부터 챙겨드려야겠지요."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교수님의 능력이 필요해서 모시는 건데."
"예?"
"교수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라우터 자체개발 하신 분인거... 아, 넌 이쪽 분야가 아니라 모르겠구나. 쨌든 그 분이 우리나라 최초로 라우터 자체개발 하신 분이거든?
네트워크의 달인이랄까? 그분 주도하에 우리 대전 연구소랑 수원 연구소간 네트워크 구축에 나설거라고 하더라고. 아까 소장실로 전길남 교수님 들어가셨으니 거의 확정이라 봐야지."
"그럼...?"
"더는 데이터 주고 받는다고 차 몰고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그래도 한 1년은 더 고생해야겠지만."
"1년이면 이 개고생도 끝이다... 이거죠...? 대박..."
태준이 단행한 투자.
그것은 대전과 수원을 잇는 네트워크의 구축이었다.
2팀이 개발한 html리더의 알파테스트를 겸함과 동시에 새롭게 열릴 인터넷 시대를 대비하는 투자였다.
"팀 버너스리의 추천서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놀라진 않은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게 지금 저희 2팀이 개발중인 DOS기반 html리더입니다. CERN에서는 NeXTcube을 기반으로 만들고 html리더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저희 쪽이 좀 더 대중성은 있을겁니다."
"이게 상용화 되는 날이면 PC통신을 쓰는 사람은 없겠군."
태준의 시연을 본 전길남 교수의 소감은 단출...
"지금 구현된 대로만 되면 단순 정보 교환으로 끝나는게 아니겠어. 사실상 대규모의 광장이지 않나."
"제 논문을 읽어보셨군요."
"그야 서류심사를 내가 했으니까. 읽어봤지. 그때는 뜬 구름이나 잡는 말로 논문을 썼다 생각했는데 그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현해 낼 줄이야."
"정확히는 버너스리가 구현한 겁니다. 저는 거기에 숟가락만 얹은 셈이죠."
"그 버너스리가 자네가 쓴 논문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직접 밝히지 않았나. 추천서에서. 그럼 반쯤은 자네가 만든셈이지."
하지 않았다.
"이건 일대 혁명이 될게야. PC통신처럼 폐쇄된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입구만 막으면 PC통신과 같은 폐쇄성을 가질 수 있으니...."
연이어
"거기다 SMTP프로토콜(이메일을 보내기 위한 프로토콜) 같은 것도 한 두 단계만 거치면 얹을 수 있겠어."
계속되는
"획기적이군... 획기적이야. 거기다 자네 팀이 만들었다는 이 html리더도 대단해.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html문서 읽게만 하는게 아니라 서버와 통신하며 문서를 임시로 불러오는게 아닌가.
거기다 여기 이 새로고침기능. 이 기능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문서에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니...
잘만 하면 신문이고 뉴스고 전부 이 안으로 넣을 수도 있겠어. 실시간으로 바뀌는 정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네트워크만 받쳐준다면 여기 영상 플레이어를 얹어서 실시간 방송도 할 수 있겠군....
하. 거참. 모든 내용이 전부 자네 논문에서 나온 내용들 뿐이군. 신문, 주식, 영상, 쇼핑... 이렇게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프로토콜이라니.... 허허.
미래상을 예측한 자네도, 이걸 만들어낸 팀 버너스리도 그렇고 둘 다 천재구만."
찬사에 태준이 민망한 듯 볼을 긁었다.
'사실은 전생에 버너스리가 만든 www의 미래를 보고 거기에 끼어든 것 뿐입니다....'
그렇게 태준이 입밖으로 내지 못할 고백을 속으로 하자, 전길남 교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약서는 어디있나?"
"바로 계약하십니까? 조건도 들어보지 않으시고?"
"어차피 자문계약이 거기서 거기지. 하루라도 빨리 자네가 가진 연구소 둘을 이어 이 HTTP 프로토콜을 시험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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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길남 교수와의 계약을 마친 뒤,
"이걸로 대충 밑밥은 다 뿌렸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건가."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커피 드세요."
그렇게 내 혼잣말과 함께 민영이 직접 내린 커피를 내 앞에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당분간 한국이동통신 주식 매집은 멈춰두는 것으로 했습니다."
"예. 잘 하셨어요. 이제 당분간은 한가할 겁니다."
"그... 일본에서 진행되는 일 때문인가요?"
"그렇죠 뭐. 상상이상의 돈이 들어올거예요. 손해를..."
내 말을 민영이 슬쩍 끊어내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손해를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죠."
"하하. 예. 맞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 손해를 버틸만큼의 체력이 있죠."
"오오와다 사장님이 고생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오오와다 씨에게도. 민영씨에게도."
그 말에 민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연구소에서 성과가 꽤 나온 모양인데..."
"예. 안 그래도 그 성과들을 지키려고 한 일주일은 고생했네요. 그래도 84년에 한국이 PCT에 가입해서 국제출원을 빠르게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요."
"죄송해요. 제가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영어는 영 젬병이라..."
"지금도 잘 해주고 계십니다."
그렇게 민영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그 때, 연구소에 설치된 청색전화가 울려퍼졌다.
청색전화의 울림에 민영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아들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국제전화...라는데요?"
"국제전화...? 일본인가요? 오오와다 사장이 벌써 일을 다 마쳤을리가 없는데...?"
내 되물음에 민영이 전화를 다시 받고는 어색한 영어로 몇마디 주고받았다.
'영어?'
그렇게 내 의문이 증폭되던 그때, 민영이 대화를 마치고 말을 이었다.
"미국에서 온 전화입니다."
"미국이요?"
"네... 어윈 제이콥스라는 분이라는데...."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어윈 제이콥스요...?"
"네. 퀄컴의 체어맨이라고...."
퀄컴이라는 말에 순간 머릿속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퀄컴... 그러고 보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의 원 주인이 퀄컴이었지. 그냥 미래에서 봤던 다큐멘터리 내용을 연구원들한테 던져줬던 것이었는데...'
그렇게 기억을 떠올린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민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전화 바꿔주세요."
그렇게 전화를 받자 어윈 제이콥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유니버스 당신들... 진짜 당신네들 자력으로 CDMA 개발에 성공했다는 게 사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