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이동통신사업 (2)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네.'
기회라는 것은 그리 자주오는 게 아니다.
보통의 사람은 기회를 억지로 쥐어 짜듯 만들어서 간신히 제 먹을 것 하나 챙기면 '운이 좋다'라고 말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다시 인생을 살게 된 것 부터가 운을 넘어선 초자연의 영역.
거기에 지금 이 순간.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산 주식 10%라는 미끼를 던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까지.
모든게 절묘하게 이어지는 이 상황이 나는 너무 기꺼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웃지?"
그런 내 웃음이 이상했던 것일까?
김석훈 부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역시나 싶어서요."
".... 헛짓거리 하는 것이라면...."
"그럼... 제안에 앞서... 사람들을 좀 물려주시겠습니까?"
내가 대답과 함께 이어진 김석훈 부사장의 으르렁거림을 끊어내고 사람을 물려달라 청하자, 김석훈 부사장이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물러나고 방 안에는 나와 김석훈.
단 둘 만이 남았다.
"후. 이제야 좀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네. 계급장 떼고."
"그래. 제안이 뭐지."
"물산 주식 10% 전부 넘기는 조건으로 전자의 특허를 전부 제 쪽으로 넘겨줬으면 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 얼토당토 않은 제안에 버럭 소리치는 김석훈을 보며 나는 싱긋 웃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태균전자만 먹고 떨어질겁니까?"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건데 우리 서로 빼지 말죠. 태균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로 이뤄져 있죠. 출자구조는 복잡하지만.... 핵심은 물산 아닙니까?"
"계속해 봐."
나는 발로 밟고 있던 가방을 탁자 위에 올리고 무기명 채권 한장을 꺼내들고는 내 가슴 왼쪽에 꽂힌 만년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물산-전자-기타자회사-전자-물산 이런 식으로 돈이 돌고 있죠."
"그래서?"
"여기서 만약에 전자가 부실화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뭐?"
"전자가 부실화되면 중간 고리가 약해집니다. 실제로 전자. 경쟁력 없지 않습니까? 반도체는 산성전자에 밀렸고,
가전은 수성전자에 밀리고 있죠? 기껏해야 2위에서 3위 지키는게 고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예 전자를 부실화 시켜라?"
"예. 전자가 부실화 되면 그룹차원에서는 전자의 부실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지분정리에 들어가겠죠. 아니면 투자를 단행하던가."
내가 세운 전략이라는 것은 이러했다.
태균그룹의 순환 출자구조를 이용해 반란을 저지르라는 것.
김석훈의 포악스러운 입맛에 잘 맞는 작전일 터였다.
"그렇겠지. 우리가 굴리는 돈이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니까. 아예 합병절차에 들어갈지도 모르겠군."
실제로도 개념을 듣고 난 뒤 김석훈의 표정은 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나는 정리된 작전을 고이 접어 김석훈 쪽으로 밀어보내고는 김석훈을 자극하는 말을 더 해주었다.
"예. 다행히 김석훈 부사장께선 전자 쪽 지분을 꽤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껍데기만 남은 전자랑 물산이 합병이 되면, 가지고 계신 전자지분이 한순간에 물산지분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합병 비율이 다르지 않은가?"
정확한 지적이었다.
서로 다른 규모의 법인이 합쳐지는 만큼 각 주식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이를 방어할 타개책도 생각을 해둔 뒤였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지요."
"중요한 포인트?"
"제가 넘길 물산 지분 10%입니다. 물산 지분 10%를 전자가 쥐고 있다면, 비율에 손해가 생길까요?"
"물산이 전자를 15%로 지배하고 있고, 전자는...."
"5%입니다. 물산이 가진 전자의 주식은. 여기에 15%가 된다면...."
내 말에 김석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자에, 내 지분까지 합쳐 모두 24%가 되어 아버지를 이긴다... 이런 말이겠군."
"예. 물론, 부사장님의 형제분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지요. 부사장님의 형님되시는 분께서도 물산 주식 10%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사장님 동생 되시는 분을 끌어들일 생각을 하셔야겠지요."
"그렇군. 거기다 전자의 주식을 움직이려면 전자 내의 의결권 확보도 필요할 것이고..."
"그 점은 제가 계산해 두었습니다. 대략... 60억 정도를 쓰시면 되겠더군요."
"60억...?!"
내 계산에 인상을 쓰며 경악하는 김석훈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뭘 그 정도 돈으로 놀라십니까? 개인 돈이 없으십니까? 그럼 제가 빌려드릴까요?"
-툭툭
내가 가방을 치는 소리에 김석훈이 인상을 쓰고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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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증권사에 도착한 민영은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연신 주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계속 매물이 나오는대로 사고는 있는데... 과연 이걸 감당을 할 수 있을까..."
민영의 불안은 정당했다.
계속 미친듯이 사모으기만 하니 주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고,
그게 태준의 랜더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온갖 대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혈투에 가까운 싸움이 이어지던 그때.
태준이 환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래는 마치신 건가요?"
그 말에 태준이 계약서를 펄럭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이죠."
태준의 등장으로 맥이 풀린 것일까.
민영이 축 하고 객장에 앉아있던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주가가 쉬지않고 오르고 있어요."
"그렇겠죠. 그래도 여기서 밀리면 안됩니다."
"벌써 40억가까이 썼는데... 계속 사들이기만 하면 될까요?"
"예. 50프로가 될 때까지 사들일겁니다."
"...50프로요? 그렇게 계속 사들이기만 한다면..."
"그럴 만한 돈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민영이 놀란 눈으로 돌아보자, 태준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리 놀랍니까. 나 돈 많은 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야... 그렇지만. 50%가 될 때 까지 주식을 살 돈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 말에 태준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곧 일본에서 돈 들어오는 규모 보면 놀라겠군요."
"네?"
태준의 말에 민영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되물었지만.
태준은 그저 반짝이는 주가를 표시하는 전광판을 보며 눈을 빛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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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과의 거래를 마치고, 증권사 객장에서 민영을 데려와 연구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오늘 있었던 거래를 복기하며 수첩에 앞으로 할 일을 적었다.
"태균전자가 가진 특허권에 연구소. 거기에 110억을 받고... 물산 주식을 전자에 넘기기로 했지. 거기다... 김석훈이 가진 물산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었고.... 이제는 오오와다쪽만 남은건가."
그렇게 오오와다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그때, 카폰이 울려퍼졌다.
설치한지 얼마 안된 새 카폰.
유니버스 C1이었다.
시원하게 빵빵터진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작명.
나는 새 카폰의 펫네임을 지을때의 일을 떠올리고는 카폰의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접니다. 오오와다."
"양반은 못되겠군요. 오오와다 사장. 아, 일본이니까 한케(半家)라고 해야할까요."
"하하. 한국 속담입니까?"
"예. 마침 오오와다 사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입니다."
"이거 제 마음이 현해탄 건너 회장님께 닿았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하하."
그렇게 전화 너머 오오와다와 농을 주고받은 나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번에 한국이동통신 공모에 참여하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일본에서 공모 준비하려면 이것 저것 많이 공부해야 했을텐데."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최민영씨가 많이 일했죠."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리게 되었습니다."
"별 말씀을요. 받는 만큼 하는건데요."
"그렇군요. 그럼 일전에 이야기 했던 지분 정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질문에 오오와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배당액을 이용해서 한국 랜더스의 지분의 30%선 까지 회장님 명의로 옮기고, 매각 대금으로 다시 들어온 돈은 일본 단기국채에 집어넣었습니다."
"잘 처리하셨네요."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사실상 부실 기업들...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KOTEC과 빵빵카폰 인수로 인해서 평가액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뭐 애초에 일본 신평사가 한국 기업들을 좋게 평가하지도 않고 말이죠. 리스크 있는 투자라고 판단해 한국 랜더스의 가치를 낮게 보더군요.
외려 사주가 자신의 배당금을 이용해 손해를 메꾸려한다는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런가요?"
"예. 덕분에 일이 상당히 수월해졌지요. 거기다 비상장기업인게 컸습니다. 어차피 사주도 동일인이고 하니 관계부처에서도 별 신경도 안쓰더군요."
오오와다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한국 돈으로도 제가 배당을 받을 수 있겠군요."
"원하신다면 그렇죠. 물론 30%지분만큼 만요."
"그럼 다음 배당은 현금배당으로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예. 안 그래도 일전에 말씀하신 내용이 있기에 준비는 해두고 있었습니다."
"척하면 척이군요."
내 말에 오오와다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별말씀을요. 당연한 수순이지요."
그렇게 나는 오오와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작전에 대한 당부를 이어나갔다.
"작전에 들어가면 단기적으로 손해가 계속 날겁니다."
"예. 일본 경제 멸망에 베팅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 시기에 맞춰 기업공개를 단행하세요. 그런 다음 기업공개에 들어간 직후에 CDO에 투자하세요. 전액 다."
"그렇게 되면 손실율이 어마어마하겠군요."
"장부상으론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럼 그 손실율을 메꾸기 위해..."
"한국 랜더스의 주식을 매각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대상은..."
"회장님이 되시는 거군요."
"그렇게 한국랜더스의 주식 전체가 제 손에 들어오면, 그때 부터 본격적인 주식하락이 이어질 겁니다.
이미 그 전부터 주식하락이 이어지겠지만, 어쨋든 회사의 처분가능 한 재산을 사주가 나서 직접 손실을 메꾼 상황이 되니 급격하게 떨어지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더는 팔아치울 재산이 없다면? 거기다 사주가 여전히 경영권을 방어한 채 계속 투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폭락은 한 순간입니다."
리마인드 차원에서 이뤄진 대화.
그 대화에 오오와다 역시 내게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반복하며 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한국 랜더스에서 일본 랜더스를 먹어 치우면서 모자관계가 역전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정확히는 계속 떨어지는 주가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에 들어가 상장폐지하겠다고 공고하는 방법이지요. 그렇게 되면 구태여 한국랜더스의 자금이 들어갈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냥 남은 현금자산으로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면 그 뿐이니까요."
".... 지금 막 계산해 봤는데. 지금부터 빠르게 작업에 들어가면 마무리되는 시점은..."
"예. NTT 2차 공모 직후입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일본 대장성에서 발표를 하나 하겠죠."
"예의... 그 건입니까?"
"예. 대출총량규제. 지금도 이미 NTT를 비싸게 팔아치우기 위해 미루고 미룬 상태인 만큼, 더는 미룰 수 없을겁니다.
애초에 지금껏 미뤄온 것도 일본 정치인들이 선배 정치인들에게 배운 수법 그대로지 않습니까?"
그렇게 모든 리마인드가 끝이 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자 오오오다가 심히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한 번도 일본인, 그것도 전후세대인 오오와다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하지만 오오와다도 모를 리 없는 '일본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민에게 손해를 떠넘길지언정 절대로 국가가 손해보는 일은 안하는 나라죠. 예금봉쇄령이 그 좋은 예가 아닙니까.
2차대전기의 빚을 국민 재산을 털어 갚았던 세대가 바로 지금의 정치인들의 윗세대지 않습니까."
내 말에 오오와다가 침묵했다.
아니면 자신의 아버지 세대, 혹은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그 부조리를 몸소 체감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에 좌절한 것일까?
그렇게 내가 온갖 상념에 젖어있던 그 때.
오오와다가 침묵을 깨고 웃었다.
"지금 절 걱정해주시려 하시는 겁니까?"
"예?"
"일본인인 제가 일본을 무너뜨리는 계획을 실행해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까봐 이렇게 미리 말씀해주시는 것 아닙니까?"
오오와다의 말에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괜찮습니까?"
"회장님께서는 늘 냉철한 판단을 하시죠. 딱 한 가지만 빼고."
"그게 뭡니까?"
"자기 사람이 걸린 일. 자기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유해지시는 회장님의 성격을 제가 모를리가 없잖습니까."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담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일본인들의 탐욕과 오판이 불러일으킨 버블이 아닙니까. 그 버블을 제가 이용한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꺼뜨린 버블도 아닌데.
그리고 회장님께서 늘 말씀하신게 있지 않습니까?"
"...사업하는 사람은 돈이 먼저다."
"그건 금융인인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돈은 일단 벌어야지요. 죄책감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면 남을 돕지도 못하는 법이니까요."
오오와다의 당찬 목소리에 에 나는 대한해협 넘어 도쿄에 있을 오오와다의 어깨를 잡는 상상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진짜로 저와 함께 어퍼 클래스(アッパー・クラス)가 되어보죠. 오오와다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