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36화 (36/200)

036. 삼김과의 거래 (1)

삼김과의 만남.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지난 번 처럼 명확히 김응삼에게만 던져줘야할 재료도 아니거니와,

이번엔 그럴 만한 재료도 없었다.

오히려 누구 하나에게만 던져주면 다른 둘에게는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는 아이디어인 만큼 동시에 셋을 만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 준비.

그것은 논문이었다.

학자인 내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자, 삼김에게 쥐어줄 논리적 총알이었다.

[정보기술과 도시환경의 융합, 스마트 시티]

우선 도시공학쪽으로 한 마디 말을 보태기 위한 논문을 써서, 한국도시개발연구학회에 제출하고,

논문이 통과되어 학회지에 게재되는 것을 핑계삼아....

"안녕하십니까.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 김태준입니다."

"반가워요. 김선생. 나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박찬길이요. 이번에 논문 아주 잘 봤소."

학회에 얼굴을 비추며 인맥을 쌓는다.

그렇게 쌓은 인맥으로 '학제 간 연구'라는 좋은 명분으로 원하는 주제를 그쪽 분야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며,

[신도시 추가 개발에 따른 인구분산효과의 통계학적 분석]

- 박찬길, 김태준

공식적으로 발표.

그렇게 만들어진 논문에 더해...

"오오와다 사장님. 부탁 좀 하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안 그래도 한가하던 참이었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혹시 도시공학 관련해서 일본 쪽 논문 구할 수 있겠습니까? 최신 논문으로."

"주제는 어떤 주제로 구해다드리면 되겠습니까?"

"주제는... 베드타운과 관련해서 폐해를 보여주는 논문이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로 교통 관련해서 찾아보면 되겠네요. 회장님께선 모르시겠지만...일본은 지하철이 지옥이거든요. 푸시맨이라고....

아무튼, 바로 국회도서관에 가서 찾아 보고 사본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오와다를 통해 구한 일본 쪽 연구자료까지 첨부해서...

"지금 여기 이 논문들 세 부 씩 복사해서 삼김에게 전하세요. 아, 여기 편지도 함께."

삼김에게 보내면 기본적인 작업은 완료되는 것이었다.

"물론 논문에 편지만 보고 움직일 위인들이 아니니... 이것도 함께 전하세요."

그렇게 내가 준비물을 챙겨주며 민영에게 말하자 민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유니버스의 네트워크, 컴퓨팅 리서치 컴플렉스 관련 사업계획서입니다. 물론, 보시다시피 그 중간에..."

"땅...문서네요? 태균측으로 부터 받은."

"예.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세 사람 다 대통령을 꿈꾸고 있으니까요. 순서와는 상관 없이 세 분이 한 번씩은 돌아가며 하시게 되겠지요.

대통령 퇴임 이후에 서울하고 가까우면서도 안정적으로 은퇴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어필하세요.

아, 물론 합법적인 방식으로 드리는 것이라 말씀하세요. 세 분 다 대통령 되기 전에 흠이 잡혀서는 안되니 말이죠."

"기부나 그런걸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살짝 윙크를 해보이며 민영에게 말을 이었다.

"변호사 공부 하고 있잖아요? 일찍 하는 실무연수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잘 생각해봐요. 어떻게 하면 아무 탈 없이 합법적으로 그 세 분에게 땅을 전달 할 수 있을지."

그 말에 당황한 듯 놀라는 민영이 말을 이었다.

"하..하지만 제가 잘못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제가 감옥에 다녀와야겠죠. 뭐. 그래도 살아날 방법은 있으니까. 걱정은 하지 말구요. 자. 그럼 일합시다."

그렇게 밑작업을 하는 동안 하나의 득과 하나의 실이 있었다.

우선 득이라고 한다면...

...

..

.

"심재식 연구원, 이분들께서 서울대에서 이번에 우리 연구소에 지원한 분들이십니까?"

"...소장님, 아니... 형 무섭게 왜 그래요 하던대로 해요...."

"안 어울리냐?"

"엄청요."

"씁... 그래도 초면인데."

심재식의 지적에 내가 슬쩍 뒤에 서 있는 서울대 출신 연구원(후보)들을 보자 심재식이 나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에이... 말씀 편히 하셔도 되죠. 형 나이가...."

"심재식 연구원이 쉬고 오더니..."

심재식의 놀림 섞인 말에 내가 인상을 팍 쓰며 심재식에게 경고하듯 말하자 심재식이 친구들에게 SOS를 치기 시작했다.

"야야! 니들도 형이 편하게 말하는게 좋잖아? 오래 볼 사인데!"

"예. 맞습니다. 선배님. 듣기로 선배님께서도 서울대 합격하셨다가 유학가시면서 자퇴하신 분이라던데.. 어떤 의미론 저희 직속 선배시죠. 말씀 편히 해주세요."

심재식의 SOS에 서울대 출신 연구원(후보) 하나가 맞장구를 쳐주자, 나도 더는 심재식에게 뭐라 하기 애매해졌다.

"흠흠. 그럼 그럴까. 재식아. 소개해 봐라."

그렇게 내가 말투를 다시 바로하며 심재식에게 소개를 부탁하자, 심재식이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한 사람 한사람 손짓으로 가리키며 보고를 해오기 시작했다.

"예. 여기 둘은 서울대 전계공이고, 얘네 둘은 저랑 같은 전기공학부 출신입니다. 소장님."

"어이. 심재식이, 너는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

"예? 그게 무슨... 아니 그보다 누굴 따라하시는 거예요?"

"알 거 없고. 휴가 까지 줬더니 왜 다섯이 아니라 넷이야?"

"아. 한 놈은 자퇴했대요. 그림을 그린다고.... 예술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 말에 나는 '아'소리를 내고는 모인 네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안녕하십니까. 서울대 전계공 87학번 김성주입니다."

"저도 같은 서울대 87학번 손재겸입니다."

"저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87학번 차민철입니다."

"저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87학번 백산영입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듣는 와중에...

"잠깐. 김성주, 손재겸....?"

"형, 혹시 얘네 둘 알아요?"

모를 리가 있나.

김성주, 손재겸.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1인자 넥손을 만든 장본인들 아닌가.

물론 전생의 이야기지만.

"아. 아니야. 그래. 니들은 얼마나 어떻게 일하려고?"

"저희가 이번에 창업을 좀 하고 싶어서요. 아버지 도움도 받았고, 여러가지로 도와주시는 분도 구했는데... 저희가 실무 경험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겸사겸사 해서 왔습니다."

그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솔직한가?"

"... 뭐 좀 그런 편이죠?"

"뭐. 아무래도 좋지. 일만 잘하면. 그래. 계약서 쓰자. 거기 전기공학부 둘. 니들도 창업?"

"아뇨. 저희는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오케이. 그럼 계약하자고. 아, 최근에 내가 서울 오갈일이 많거든? 거의 매일 오가고 있으니까 니들이 원하면 셔틀도 돌려주고."

"셔틀...이요?"

"기왕이면 매일 일하면 좋잖아. 주말만 나와서 일하면 어디가서 경력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과외 뛰는 것 보다 살짝 많은 수준밖에 못 벌텐데. 여기서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내려와서 연구하고 새벽에 퇴근하고 좀 쉬다가 다시 등교하고 하면... 바짝 벌 수 있을껄?"

민영이 1종 대형을 가지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제안.

난 슬쩍 미안하다는 듯 민영에게 눈짓하고는 말을 이었다.

"얼마나 주십니까? 소장님?"

"재식아 너 얼마 받냐?"

"세금 다 떼고 백 오십 받습니다. 숙식 제공."

"들었지?"

""""하겠습니다. 매일.""""

.

..

...

여기까지가 '전생의 최고의 기업가가 될 인재들이 포함된 서울대 생들을 매일 부려먹을 수 있다는 점'이라는 득(得)이었다면....

실(失)은...

...

..

.

"김태준!"

"네 교수님."

"최근에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 같던데. 박사 과정은 다 안다 이거냐."

"그럴리가요. 아직도 배우는게 많습니다."

"이번에 쓴 논문 봤다. 우리 쪽 학회지에 올린 논문이 아니더구나."

"예. 영감을 받아 나름 공부해서 썼고, 최근엔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와 학제간 연구로 진행중입니다."

"그런 비전을 보여주는 논문도 좋다마는 이대로는 박사 학위 따기 힘들어질거다.

나야 지도교수니까 네 성격이나 강점을 아니 괜찮지마는, 다른 교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야. 슬슬 박사 학위 논문 준비 해 둬라.

보통 논문 쓰고 통과받는데 5년 정도 걸리는 거 생각하면 너 지금도 늦었어."

"예. 안 그래도 준비하고 있는게 있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

..

...

내가 꼬셔야 할 전길남 교수의 호감도가 내려갔다는 점이다.

민영을 삼김에게 보내놓고 그런 득과 실을 계산해보던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번 일은 좀 사안이 커서요, 교수님. 최대한 빨리 끝내고 착한 제자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혼잣말을 남긴 나는 연구실에서 나는 민영이 좋은 소식을 들고 올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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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삼김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최민영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회장님 생각을 따라 갈 수가 없으니... 이거 참....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상전으로 모시려니... 위궤양 걸리겠네 진짜. 은혜 갚을다 내가 먼저 죽겠다 진짜... 에효..."

혼잣말을 하다 자신이 내뱉은 헛소리에 헛웃음을 지은 민영은 다시 돌아와 업무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우선은 일부터. 애초에 회장님이 불가능 한 걸 시키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렇게 민영이 각오를 다지며 펜을 꺼내 태준의 업무지시 속 필수 사항들을 정리하고는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티 안나게 만나는 방법.... 사실 김응삼 총재를 먼저 만난 다음에 그 건을 이용해서 가면 된다고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여기서 내가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지....

거기다 땅까지 몰래 줘야하고... 아니, 일단은 접근부터 하는데 초점을 맞추자. 접근만 할 수 있다면... 그 뒤는 순서가 좀 뒤집혀도..."

그렇게 두 번째 목표에 삭선이 그어지고,

첫번째 목표에 집중한 결과.

민영은 이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소리쳤다.

"아! 내가 왜 직접하려고 했지?"

그렇게 실행계획을 모두 세운 민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움직이려고 한 순간.

-댕

-댕

집안 거실에 놓인 괘종시계가 열두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민영은 거실에 있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열 두시?! 벌써? 이거 야근 수당 받을 수 있으려나...? 돈 엄청 많으니까 달라면 주긴 할텐데...

흐음.... 뭐, 이건 서비스라고 치지. 우리 집 빚 갚아준 사람인데 이 정도야."

그렇게 시원하게 웃으며 소파에 늘어져 있던 민영이 슬쩍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민영이 부엌에서 가져 온 것은 냉장고 한 구석에 숨겨두었던 맥주였다.

- 딱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터져나오는 맥주거품을 본 민영이 그대로 입에 가져다대며 호탕하게 벌컥벌컥 마셨다.

목선을 따라 흐르는 땀과 목 안을 타고 흐르는 맥주의 시원한 감각을 즐긴 민영이 맥주캔을 구겨 분리수거통에 던져넣었다.

"요샌 매일 매일이 재미있다니까. 힘들긴 해도. 모시는 분 얼굴이 잘 생겨서 그런가?

아니... 시시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네. 늘 내 상상 이상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민영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누였다.

"은혜 다 갚고 나서도 계속 회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거 아냐? 하. 이러다 노처녀로 늙어 죽는거 아닌가 몰라. 연대 메이퀸이 노처녀라니....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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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다 됬습니까?"

"예. 지시하신대로. 김응삼, 김태충, 김정필 세 분께 모두 제안을 드렸고, 전부 승낙하셨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빛내며 말하는 민영을 빤히 보고는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어디 답을 맞춰볼까요? 뭘 어떻게 했는지."

"우선..."

그렇게 시작된 최민영의 이야기는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니까. 제가 준 논문들을 들고, 학부생 하나를 사서 그 세분에게 편지를 넣었다는 겁니까?"

"예. 서울대, 그것도 운동권에 활동 중인 학생을 섭외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니까요. 젊은 이의 우국충정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뭔가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친구를 통해서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흘리게 시켰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그러자 최민영이 신이 난 얼굴로 자신의 두 손을 꼭 붙잡아 쥐어, 얼굴 왼편에 가져다 대고는...

"저는 아직 학부생이라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이 논문이 말하는 대로라면 우리는 일본이 겪은 실패를 다시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꼭 이 논문을 쓴 저자를 만나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까?"

"라고 말하라고 시켰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서울시립대 박찬길 교수에게 연락이 갔겠군요?"

"예. 하지만 박찬길 교수가 회장님과 쓴 논문은 어디까지나 인구 분산 효과에 관련된 논문. 답이 나올리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약속이 잡혔다 이거군요."

"그렇습니다."

그 말에 한 껏 뿌듯해 하는 최민영을 보며 살짝 헛웃음을 짓고는 생각했다.

'이걸 말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내가 말할지 말지 망설이는 것.

그것은 이번 기획이 최민영의 생각대로 100%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최민영의 창의력 넘치는 기획 덕분에 땅을 쓰지 않고, 즉, 범법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확실한 민영의 공적이고, 이는 칭찬할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모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하루 전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기에 마냥 칭찬하기만도 애매했다.

'일단은 목적 달성에 실패한 거긴 하니까. 뭐... 이건 내 용인술 문제긴 했지.

그래도 한 번은 테스트는 해봐야 했으니, 테스트 비용이라 치면... 결과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네.'

그 때를 떠올리면....

...

..

.

"사내새끼가 말이야 어디 할 데가 없어 그리 뒤로 소곤소곤 움직이고 그러나. 김회장."

수화기 너머로 대뜸 들리는 김응삼 의원의 목소리에 놀란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 너머로 고개를 숙이며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로 이리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김응삼 의원님."

"자네가 보낸 선물 잘 받아봤네."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어떻게 만족하셨습니까?"

"보낸 선물은 만족하는데 말이야. 포장지가 영 맘에 아이든다는 게 문제지."

은유적으로 돌려말하는 정치인 특유의 화법.

그 알듯 말듯한 말에 나는 대충 상황을 때려 맞추며,

'최민영씨가 속보이는 방법으로 접근한 모양이군. 뭐...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건... 나름 내용물이 혹할만한 것이라는 뜻이니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말로 자연스럽게 받아 넘겼다.

"포장은 제 부하직원이 했습니다.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이라 그런지 미숙했던 모양입니다.

일을 가르치는 중이라 한 번 해보라 시킨 것이니 혹시라도 그 부하직원 보시거든 모른체 넘어가 주시기만 하십시오."

"그 일전에 같이 온 여비서 말하는 건가?"

"예."

그 말에 김응삼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그럼 또 이야기가 다르지. 사내놈이 포장한 포장지는 예뻐야지 받는 맛이 있지만, 젊은 처자가 포장한 것이라면 못생긴 것도 향이 배어드는 법이니까."

이 시대 남성의 전형적인 농담이었지만, 한 10년만 지나도 문제시될 발언이 튀어나오자 나는 딱히 응대하지 않으며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럼 어떻게... 그 선물 써보실 생각은 있으십니까?"

"있다마다. 다만, 쉽지는 않을게야. 알다시피... 신도시는 말 그대로 노대호 정부의 숙원 사업이야. 200만호 주택공급.

정확히는 전 국민적인 야합에 가까운 정책이지. 이걸 뒤집기란 쉽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래. 계획이 다 있나보군. 그럼 그 계획은 언제 보여줄겐가?"

"불러주시면 지금이라도 올라가지요."

"그럼 내 TC하고, JP랑 같이 시간 맞춰보겠네. 일정은... 그래. 그 비서한테 전달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

..

...

즉,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린 것은 다름 아닌 김응삼 의원 덕분이라는 것.

그렇게 내가 그때 온 전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회상을 마치자 영문도 모른채 신이나 보고를 하는 민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올라갈 준비하죠. 논문만 보낸 걸 보니 사업계획서는 보여주지 못했겠군요?"

"아...! 네."

내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지는 민영을 보며 나는 슬쩍 웃어주고는 말을 이었다.

"가지고 있다가 모임자리에서 한 부 한 부 삼김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는 민영을 보며 앞으로 민영을 어떻게 써먹을지, 그리고 어떻게 조련해야 할지 생각하다,

'아무래도 리스크 매니징쪽 일은 안맞겠네. 머리도 상상력도 창의력도 모두 수준급인데... 뒷공작에 대한 접근 방식이 순수해.... 너무 착하고 성실하달까?

다듬으면 어찌저찌 되겠지만... 타고난 성품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 쪽으로는 한계가 있겠어.

차라리 이런 쪽 보다는 경영전략 쪽으로 역량을 키워주는게 나도 민영씨에게도 도움이 되겠네. 발상에 의외성이 있으니까.

문제는... 당장은 그런 경영전략쪽으로 인력이 필요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는게 문제인데... 뭐, 차분히 옆에 두고 가르쳐 두면 나중에 편해지겠지.

무엇보다 경호일도 잘 하는 만큼 당장의 내 안전에도 도움이 될테고 말이야.'

이내, 앞으로 만날 삼김을 떠올리고는 삼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당장 급한 건 삼김이지....

사실상 기름칠 안된 채로 설득에 들어가야 하니 삼김이 모두 혹할 만한 정치적 슬로건과 명분을 만들어줘야 해.

명분이야 이미 있고... 문제는 슬로건인데... 슬로건....

그래. 이거면 되겠네.

'식민지'

이 말에 과연 반응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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