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쇼핑 (1)
절차가 마무리 되고, 준비작업이 끝나는 데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주식 인수 대금은 곧 나갈겁니다. 세금 문제는..."
"예.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리고... 랜더스에서 KOTEC에 추가 투자를 단행할 계획입니다."
"추가투자... 말씀이신가요? 용도는..."
"그걸로 KOTEC에서 받은 대출 전부 정리하시고, 남는 부분은 장비에 투자하세요. 일단 지금 경비업무 보고있는 사원들 삼단봉부터 차근차근 교체해 주시고, 그리고 가스총 구해서 지급해주시고요. 보호장비도 같이요. 필요하면 수입도 고려해보시고요."
"알겠습니다. 일단 가스총에 관한 건은 경찰에 총포소지허가 문제가 있으니 천천히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우선 인수한 KOTEC의 모회사가 된 한국 랜더스 법인에서 추가 투자를 단행하는 방식으로 KOTEC의 빚을 털어내고 장비를 교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단 지금 계약 맺은 곳들까지만 유지하는 선에서 경비업무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그 외의 업무는 받지 마세요."
"안 그래도 매출이 안나오는데 그러면... 규모를 줄여야..."
"아뇨. 규모를 줄일 일 없습니다. 곧 이 집 뿐만 아니라 우리 쪽에 새로 세울 사업체들도 경비업무를 봐야할 테니까요. 그리고 경호쪽 전문가들은 알아보고 있습니까?"
"청와대쪽 퇴직자들을 수소문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정권하고 연계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군 출신자들이 대부분이라... 들여온다고 해도 좋은 영향은 없을 것 같습니다."
KOTEC의 추가적인 영업을 제한하고 대기할 것을 명하는 것으로 3개월간에 걸친 인수작업을 마무리 한 나는 곧바로 평택에 위치한 카폰 제조 업체로 향했다.
이 당시에도 소위 벽돌폰이라 불리는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굳이 휴대전화가 아닌 그보다 한 세대, 어쩌면 두 세대 뒤쳐진 카폰을 선택한 이유는,
휴대폰 그 자체가 대중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현저히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유학하던 당시, 모토로라에서 나온 소위 벽돌폰은 미국에서는 그런대로 사용층이 있었지만(물론 비싼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는 자국 통신 서비스 사업을 지키기 위해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가 NTT에서 85년에 숄더폰이라는 기괴한 핸디형 카폰을 개발하면서 이를 수출하기 위해 수입이 시작되어 서비스 되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휴대전화의 도입 자체는 일본보다 근소하게 빨랐지만 과도하게 높은 가격으로 인해 사실상 안기부 요원들의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다가
88올림픽을 계기로 모토로라의 미디어텍이 들어오며 민간에 처음 상용화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이 있다보니,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그나마 사용층이 넓게 포진되어 있으며, 개발된지 시간이 꽤 지나 중소기업들도 속속 업계에 뛰어들고 있는 카폰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찾은 곳은 사명에서 부터 영세해보이는 "빵빵카폰"이라는 업체였다.
"어서와요. 일본에서 온 재일교포라고?"
공장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나는 마중을 나온 사장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설마 여기 카폰 공장 사장이 김기백...?'
내가 놀란 이유.
그것은 김기백이 전생에 이뤘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성전자 모바일 사업부 부분장으로 사성의 2G시대를 책임진 휴대폰 '에브리콜'을 성공시킨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여긴 무조건 인수해야겠어. 무조건. 사성한테 김기백을 넘겨줄 수는 없지.'
그렇게 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선 채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김기백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고는 말을 이었다.
"나 김기백이요. 여기 빵빵카폰 사장이지."
그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며 말을 이었다.
너무 놀란 탓이었을까.
"안녕하십니까. 전화로 견학요청 드린 김태준입니다."
인수 전 기술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공장 견학을 하기 위해 재일교포로 위장했다는 사실도 잊은채 너무나 유창한 한국억양으로 답을 한 나는 낭패감을 느꼈지만....
'뭐 거짓말 한 게 들키면 바로 인수제안을 걸면 되니까. 기술 수준 확인 못하는 건 아쉽지만... 뭐 김기백 영입비용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지.'
이내 전생의 김기백이 사성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고는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미리 준비해둔 말을 읊기 시작했다.
"제가 이번에 일본에 우리 국산 카폰을 수출해보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혹시 견학 가능합니까?"
"일본에 오래 살았을텐데 발음이 좋구만. 아버지가 잘 가르치셨어. 허허. 견학이야 가능한데...
일본에 수출해서 뭐하려고 그러나 몰라? 일본에는 어깨에 매는 것도 있는데. 송수신 음질도 우리 것보다 훨씬 좋잖아."
"예. 그렇지만 단가가 비싸지 않습니까. 한국 것은 조금 더 싸고요."
"하기사. 카폰을 뭐 돈이 없어 못쓰지 안쓰고 싶어 안쓰는건 아니니까. 들어와요."
그렇게 카폰 제작공정을 쭉 둘러보며 김기백 사장으로부터 이런 저런 설명을 들은 나는 한 쪽 구석에서 분해되고 있는 일본제 숄더폰과 모토로라 다이나텍 몇대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긴 연구실인가 보네요."
"연구실이라기에도 민망하지. 역설계로 배끼기에나 급급한거니까. 애초에 미제는 부품 질 부터가 다르니 따라할 엄두가 안나고... 진짜 목표는 저기 저 일제 숄더폰이지.
숄더폰까지만 어떻게 단가를 맞출 수만 있으면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질텐데... 저 배터리가 문제야 배터리."
그렇게 쭉 공장견학을 마친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공장 설비도 그렇고 좋군요."
"뭐. 규모야 작아도 일단은 한국이동통신에 납품하는 업체인데 기본은 해야지."
"그렇군요."
"이게 비싸봐야 남는 게 없어 남는게. 그러면서 납품하려면 온갖 조건이 붙으니 속이 터져 죽겠다 이 말이지.
그래서 이 참에 회선은 그대로 두면서 새로 저 모토로라 미디어텍 같은 제품으로 기존 이용자를 갈아타게 하려고 준비중인데... 거 쉽지 않더군.
그 시점에 딱. 이렇게 자네가 일본 수출해보겠다고 나타나주었으니 나로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네."
김기백 사장의 한탄 섞인 말.
그것은 지금의 카폰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통신분야의 지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단은 어렵긴 해도 접근 가능할 정도로 원초적인 아날로그 통신기술을 담은 통신기기가 카폰이었다.
'나만 해도 그래서 카폰 시장을 발판으로 삼은 것이기도 하고.'
자연히 우후죽순 중소기업들이 생겨나며 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중소기업들이 들어오는 것 만큼, 미래는 밝지는 않았다.
카폰이 사용하는 통신 방법인 아날로그 통신의 특성상 주파수 분할이 되지 않아 사용 가능한 인구는 현저히 적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회선제한이 걸려있으니 사는 사람은 적은데 만들기는 쉬운 물건. 한 번 팔 때 비싸게 팔지 못하면 망하는 사업이니 가격으로도 경쟁할 수 없지.
말하자면, 규모의 경제가 아예 불가능한 구조의 사업이랄까...?
자연히 경쟁의 방향도 브랜드 싸움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이런 상황은 디지털 통신, 즉, 2세대 통신이 나오기 전까진 계속 될 것이란 걸 알았기에 나는 그렇게 김기백 사장의 한탄을 들어주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일단은 초장부터 인수이야기를 꺼내면 욕이나 먹고 끝날테니 기다린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대화는 어느새 업계의 사정에 대한 것까지 이어졌고,
"대현이랑 사성. 이 양강체제가 굳어지기 전에는 그래도 회사를 인수하네 어쩌네 하면서 둘이 돌아가며 찾아왔는데, 요새는 하청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군.
하기사 지들도 직접 만들어 팔 바에는 하청에서 물건 떼다가 파는게 나으니 그러는거겠지만....
안그래도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 아니냔 말일세.
그러던 차에 자네가 나타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솔직히 제품 질은 우리가 더 좋거든. 그런데 그 두 대기업이 작정하고 고사시키려 드니 버틸 수가 있어야지."
그 순간이 바로 내게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럼 이 참에 저한테 사업 넘기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업을 넘겨? 뭘 이 공장을?"
"아뇨 공장 뿐만이 아니라 사업 전체를요. 고용 승계는 물론이고 부채승계까지 전부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김기백 사장이 인상을 쓰더니 이내 내게 약간 성을 내며 말을 해왔다.
"어디서 왔어. 대현이야 사성이야."
"오기는 진짜 일본에서 왔습니다. 애초에 대현이나 사성 모두 하청제안했다고 하신건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런데도 못 믿으시는 겁니까?"
"거짓말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그 말에 나는 일본에서 만들었던 명함과 한국에 오며 만든 명함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랜더스 그룹 회장 김태준입니다. 회사의 뿌리는 일본에 있지만 일단은 엄연히 한국 국적의 한국 사람입니다.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내민 명함을 받아든 김기백 사장이 슬쩍 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명함을 반으로 접어 재떨이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이딴 장난감 가지고 날 속이려 드는건가?"
"일본은 지금 꽤 잘나가죠. 거기서 주식이랑 땅으로 돈을 좀 벌었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된 나이에 회장이라고 거들먹 거릴 정도로요."
그렇게 말한 내가 슬쩍 이번 KOTEC 인수계약을 하며 작성한 계약서와 법인 등기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미 한국에 오자마자 회사 하나도 인수했습니다. 경비업체입니다."
"대현도 사성도 아니라면, 일본 바이어라고 속여가며 내게 접근한 이유가 뭐야. 지금 나 놀리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뒤져 다시 서류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뉴욕주립대 전산학 학사 학위기.
뉴욕주립대 전산학 석사 학위기.
그리고 도쿄대 전산학 박사과정 수료 증명서.
차곡차곡 앞에 쌓인 학위증을 보던 김기백 사장이 역정을 내며 말을 이었다.
"가방끈 길다고 자랑하고 싶어? 많이 배운 자네 눈엔 이 사업이 유망하다 뭐 그런 소리를 할 모양인가보지?"
"그럴리가요. 그저 보여드린겁니다."
"뭘?"
"제 꿈을요. 저는 이 사업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 쓰고도 망하기 딱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다만, 제 꿈에 이 카폰... 정확히는 이 사업이 필요합니다. 완전 밑바닥부터 만들어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엔 제가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없으니 돈으로 해결하겠다?"
"예. 제게 필요한건 시간. 그리고 이 카폰 사업이거든요. 둘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죠."
그 말에 김기백 사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 물고는 틱틱거리며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김기백 사장이 후 하고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자네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가?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 같네.
사업성도 없는 시장에 쌩돈 박아가며 뛰어들겠다는 것도 그렇고, 대현이랑 사성 이야기 듣고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그렇고.... 정상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야."
"꿈을 이루기 위한 사업이니까요. 사업도 정신줄 반쯤 놓고 하는 건데, 거기다 꿈까지 끼어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지. 맞아."
김기백 사장의 동의에 나는 슬쩍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운을 띄웠다.
"그럼 이제 저를 믿어주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김기백 사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연신 허허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믿고 말고. 미친 놈이 미친짓 한다는데 거기에 무슨 의도나 꿍꿍이가 있겠어."
"그럼 어떻게.... 제게 팔아주시겠습니까? 회사."
"어차피 손해볼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지."
"물론입니다."
"그럼 좋아. 어디 한 번 덤터기나 써보라고. 나도 어차피 자네가 가져온 일본 수출 건이 거짓이면 죽을 판이었는데, 잘 됬네. 이 참에 나도 팔자 고쳐보자고."
그렇게 김기백 사장이 자신의 책상으로 가 홱 하고 종이 하나를 가져오더니 이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적어넣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애들 고용유지는 기본이고, 거기에 애들 월급은... 지금보다 두 배쯤 올려줘야 할거야.
거기에 내가 지금 대표이사로 100만원 받아가는데, 그 월급도 두 배쯤 올려주고.
거기다.. 회사에 빚이 좀 있는데, 이것도 가져가. 아 물론 인수가격에는 포함되지 않는 가격이야.
그리고...."
그렇게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내게 내뱉으며 쭈욱 요구사항을 적어 내려간 김기백 사장은 내게 휙 하고 종이를 던지며 말했다.
"자 이 조건. 이 조건이면 회사도, 공장도 전부 넘기지. 이 조건을 받는다면 나도 어디 따로 나가서 또 사업 차리고 그런거 없이, 자네 밑에서 일하지. 돈이 많아도 백수인 건 싫으니까."
나는 종이에 적힌 요구조건들을 보는 척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김기백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잘 됬네. 자발적으로 내 밑에서 일해준다니.
거기다 제안 금액.... 한국에선 터무니 없는 금액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딱히 많은 금액도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순식간에 생각을 마친 나는 제안서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뭐... 대단할 건 없네요. 알겠습니다."
"...뭐?"
"이 조건대로 인수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가 시원하게 말하자 김기백 사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잠깐. 자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될 건 또 뭡니까."
"그 조건을 받을 만큼 돈은 있고?"
"예. 충분합니다. 아, 인수하면 이름은 바꿔도 되겠습니까? 좀 촌스러워서요."
"이름? 뭘로 바꿀건데... 아니지, 아니야. 진짜로 이 조건으로 인수하겠다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김기백 사장에게 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여기에 연구소도 세우고 할 건데요 뭐. 이정도 금액이야... 뭐 지불할 만 하죠."
그렇게 김기백 사장의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해준 나는 가만히 김기백 사장의 (이걸 정당한 인수제안서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수제안서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인수하면 바꿀 이름을 물어보셨죠?"
나는 미래 전 세계를 호령하던 사성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브랜드 '은하'를 떠올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유니버스. 유니버스로 할 겁니다. 여기서 만드는 모든 제품의 펫네임도 전부 유니버스로 할 거구요."
유니버스.
사성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브랜드조차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