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28화 (28/200)

028. 소동 (2)

"그럼 일단 잠시 준비를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오오와다와 최민영이 자리를 비우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영숙이 이렇게 나와주면 계획을 조금 더 당길 수 있겠네..."

혼잣말로 시작한 상념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갔다.

'애시당초 노영숙이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태균그룹에서 나를 어떻게든 엮으려 들지 않았다면, 복수 따윌 하지도 않았겠지... 뭐하러 하겠어. 시간 아깝게.'

만약 노영숙이 내 어머니를,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잡상부터,

'IMF때 망한 대기업 회장이 잘 나갈때 그랬다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전생에 자기 사업 말아먹은 사람이 한 말이라 공감하고 싶진 않지만,

한번 인생 60년 풀로 살고 돌아오니 진짜 그렇긴 그렇더라.

그 말에 공감을 안할 수가 없더라고.

80년대는 일본에서 돈 뽑아올 수도 있고,

90년대에는 90년대 나름대로 한탕 해먹을 수 있는게 무려 두 건이나 있고,

00년대에도 서브프라임이라는 역대급 기회가 있으니....

진짜 할 일은 더럽게 많은거지. 그 만큼 기회도 많고.

굳이 저런 한탕용 사건이 아니어도 돈 벌 사업 아이템도 엄청 많잖아?'

앞으로의 계획 겸, 전생에 있었던 굵직한 기회들과 사업 아이템들까지.

정돈되지 않은 생각의 흐름이 나 혼자 남겨진 거실 한 공간에 가득 들어차 제멋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고 흐른 생각은 다시 처음 상념의 시작점인 노영숙에 대한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생부터 이어진 지긋지긋한 악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그리고 내 발목을 계속 잡아채는 그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더 멀리 더 나아가기 위해서.

빨리 다음 돈 벌 기회가 오기전, 시간이 떠 있는 지금 후딱 처리해야 해야겠지.

공부하기전에 책상 정리를 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지.

무능한데 잔인하기만 한 김석훈,

가진거라곤 정치적 후광밖에 없이 탐욕스럽기만 한 노영숙,

제 아비어미를 닮아 악독한 짓만 하고 다니는 김민식.

모두가 내 전생의 복수의 대상이자 현생의 장애물이 되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고 말이야.

우선은 그래. 그 쓰레기들을 포장하고 있는 쓰레기 봉지부터 꾹꾹 눌러 터뜨려야겠지.'

그렇게 생각이 한 번 본론에 닿자, 빠르고 깊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김석훈 일가를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결심을 뿌리삼아

그 결심을 실행할 계획이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일단 계획 진행에 있어서 운이 따라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어.

어차피 군대문제라던가 전길남 박사를 만나는 일이라던가 하는 것들 때문에 들어오기야 했겠지만,

그냥 들어왔으면 일본에서 돈 벌고 다음 돈 벌이까지 시간도 붕 뜨고, 하는 거 없이 그저 버리는 시간 취급이었을텐데,

이렇게 뒷 정리 하면서 군 문제에 인맥까지 쌓아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으니....

거기다 한국 정세가 나한테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가는 시점이랑 딱 맞물리기까지 했으니 시기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거기다 입국 때부터 견제구 한방 날리고 시작했고..... 거기에 지금 시점에 노영숙이 할만한 공격 재료도.... 다 소진 시켜놨고.

이제 조제형만 잘 써먹으면... 완전히 보내버릴 수도 있겠어.

뭐.... 조제형 건이 불발나도 원래 계획대로 김민식 타고 들어가서 보내면 되니까.'

그렇게 빠르게 자라난 계획이 끝에 닿은 그 순간, 준비를 하러 갔던 오오와다와 최민영이 돌아왔다.

"가시죠. 준비 다 해뒀습니다."

그 말에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갑시다."

그렇게 내가 자리에 일어나서, 오오와다와 최민영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여기에 가둬놓았단 말입니까?"

어머니 집에서 불과 열 발자국도 안떨어진...

"예.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경호 인력 배치를 위해 구매한 집 중 하나입니다. 사모님께서 거주하시는 집을 중심으로 위 아래 양 옆의 집을 모두 법인 명의로 구매했습니다.

두배 가격을 준다니 다들 군말 없이 가구도 버려둔 채 이사를 가주더군요. 계약 편의상 일단 제가 대표이사직을 맡아서 처리했습니다. 이번 달 대표이사 월급은 제가 가져가겠군요. 후후."

옆집이었다.

어머니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놈이 옆집에 있다는 사실에 오오와다의 농담에 웃을 수 없을 만큼 심적으로는 상당한 저항감을 느꼈지만...

"노영숙 쪽에서 이 자를 제거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이어진 최민영의 지적처럼,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애써 그 저항감을 무시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도둑이라도 든 집 처럼 보이는 내부.

오오와다가 말한 대로 큰 가구와 오래된 가전 등을 제외한 모든 동산들이 사라진 휑하니 사라진 집의 거실 한 중간에 조제형이 삐걱거리는 의자 한 중간에 묶인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탈출을 시도한 모양입니다. 자빠져 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손수 조제형을 일으켜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은 최민영이 이내 자신의 정장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의자를 가져올까요?"

"길게 이야기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치 군인과도 같은 각진 자세로 내 뒤에가 시립하는 최민영을 본 나는 곧장 조제형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살 방법... 아니 한 순간에 영웅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일려주려 하는데. 어떻게... 할 마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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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식 요원의 멘탈이 금이 가기 시작한 신호는 태준이 귀국하고 다음 날 아침 10시부터 이어졌다.

- 띵동.

평창동 고택을 울리는 벨소리.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벨소리가 울린 시간은 공교롭게도 노영숙의 개인 비서 자격으로 평창동 고택에 잠입 중이던 박형식 요원이 아침 근무를 서기 위해 나온 시간이었다.

"경찰입니다."

"경찰이 여긴 무슨 일입니까?"

"김태준씨 지금 집에 계십니까?"

그 말에 박형식 요원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어 인상을 쓰자, 경찰이 말을 이었다.

"어제 귀국하고 어제 바로 이곳으로 전입신고를 하셨던데... 혹시 이곳에 김태준씨께서 살고 계시지 않으신겁니까?"

그 말을 들은 박형식이 인상을 쓰며 지금의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경찰들 뒤로 박승철 이사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말을 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혹시 여기 김태준씨 안계십니까?"

"태준 도련님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경찰들이 반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예, 병역법 위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셔야 하는데, 혹시 안에 계시면 저희와 임의 동행이 가능하겠습니까?"

"병역법 위반이라니 대체 그게..."

그렇게 박승철 이사가 자초지종을 듣고, 자진 출두하겠다는 말로 경찰들을 돌려 보낸 뒤....

"뭐?! 병역법 위반?!"

곧바로 그 소식은 김두혁 회장에게 보고되었고,

"예. 아무래도 태준 도련님 귀국에 맞춰 저희 쪽 케어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

"노영숙 고년이 그랬겠지. 그냥 봐도 표적으로 딱 집어 수사하는게 아닌가."

"예. 거기다 엄밀히 따지면 태준 도련님의 경우 빠른 년생이기 때문에 아직 연기 연한을 다 채우지도 않아서 병역법 위반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해결할 거야?"

"일단 저희쪽에서는 급한 대로 영장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움직이려 합니다."

이러한 보고가 있은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인 오후 2시.

아침에 찾아온 경찰들이 다시 평창동 고택에 찾아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이 나서 내사 종결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고택 볉채 안 내부에서 지켜본 노영숙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거창하게 플랜 A니 플랜 B니 하며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댈때는 언제고! 대체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이냐구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박형식 요원을 질책했다.

그리고 고스란히 그 질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박형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카이스트 연구부에서 대통령 각하께 학사부와의 독립을 요청하면서 KIST로 따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모집 일정이 틀어진 탓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라버니 탓하는 건가요?"

"상황이 꼬여버렸다는 겁니다. 이미 오늘 아침에 이 고택에 전입신고를 하고 곧바로 병무청으로 가 대학원 원서 접수 서류를 제출하고 다시 입대를 유예했답니다.

그 말인 즉, 최소 플랜 A, 병역기피 혐의로 경찰 수사는 물건너 갔고, 플랜 B인 일반병으로 징집도 카이스트 합격 여부에 따라 물건너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카이스트 합격만 막으면 되는 건가요?"

그 말에 박형식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막을 수 있다면 논리상으로야 그렇습니다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애초에 대학교에서 빨갱이 새끼들이 왜 그렇게 설치고 다니겠습니까? 함부로 대학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노영숙이 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

"그럼 대체 안...!"

을 치기가 무섭게 박형식이 입가에 검지를 들이밀며 말했다.

"다 같이 죽겠다는게 아니라면 거기까지만 하십시오. 사모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일단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때를 기다리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승철 이사가 안 이상 이번 무고 건은 회장의 귀에 들어갔을 테니까요."

박형식의 말에 노영숙은 분풀이를 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사람의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일단은 참을께요. 후..."

"저도 일단 실종된 조제형을 찾아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실종이라니요? 그게 무슨..."

노영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박형식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조제형이 작전 수행 도중 실종되었습니다. 아파트에 들어간 것까진 확인 했는데, 그 이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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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 아침.

조제형을 차에 태운채 나는 곧장 병무청으로 가 카이스트에서 받은 원서접수증을 들이밀며 입대 연기 신청을 하고 다시 차로 돌아온 나는 문득 어제 작정하고 던진 견제구를 떠올렸다.

"흠... 슬슬 집에 사람이 갔으려나?"

내 혼잣말에 오오와다가 곧장 반응해왔다.

"예? 사모님 댁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런 오오와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씩 웃고는 (뒤에 조제형이 타고 있었으므로) 일본어로 말을 답을 해주었다.

"아뇨. 평창동 집 말입니다. 제가 노영숙에게 선물을 하나 보냈거든요. 슬슬 도착했겠군요."

"그 집은 오늘 선물 꽤 많이 받겠군요. 어제 보낸 것 하나에 오늘 보낸 것 하나. 그리고 곧 발송될 것 까지.... 그 집안 품격... 알만하네요."

"예. 그럼요. 그 정도 대접은 받아 마땅한 집안입니다."

"그럼...."

오오와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예. 광화문으로 갑시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 좀 구경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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