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귀국 (2)
짐의 안내를 받아 티머시 존 버너스리가 있는 연구실로 향한 나는 퀭한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팀을 볼 수 있었다.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책.
중간중간 보이는 각종 논문들과 자료들.
그리고 케이블.
여름의 끝 무렵.
공기도 꽤나 식어있을 9월의 마지막이었음에도 건조하게 타오르는 듯한 공기.
이 모든 것이 '팀'이라는 사람의 열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렇게 내가 사방을 구경하며 감상에 젖어있자 짐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공조기를 틀어놔도 요새는 이렇습니다. 설비는 좋은데 설비 용량 이상으로 실험을 해대서요. 팀이."
"실험이라면 네트워킹 테스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준이 쓴 그 논문에서 밝힌 미래전망 있지 않습니까? 그 논문의 문구 중에 '정보의 교환을 넘어선 새로운 공간개념'이란 것에 팀이 집중을 하더군요.
저로서는 지금의 네트워킹 수준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팀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공간의 개념을 구현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요구성능 쥐어 짜는 중이랄까요...."
그 말에 나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말한 공간 개념이 고성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커뮤니티 기능을 그럴 듯한 표현으로 바꿔 쓴 것일 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내가 의문을 가지던 그 때 팀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머그컵을 들어올리더니 이내 다시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로 향하던 중 우리를 발견하고는 말을 이었다.
"짐. 벌써 학자 방문 코스가 끝난거야?"
"그럴리가."
"그런데 왜 들어온거야?"
"학자 방문 코스로 여길 정했달까?"
"뭐? 아니 무슨... 학자 방문 코스는 정해져 있잖아? 함부로 이곳 저곳 들락거리게 하면...."
"이 사람은 여기 와도 되는 사람이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렇게 언성을 높인 팀이 슬쩍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보안규정은 중요하죠."
그렇게 짧은 사과를 하고는 다시 짐에게 뭐라 말을 하려는 그때 짐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분이 그분이거든. 뉴욕 주립대의 태준."
그리고 그 말이 나온 순간 팀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쓱 보고는 멍하니 고개를 돌려 짐을 보더니....
"태준...? 설마 '정보혁명 : 개방형 통신의 미래'....?"
라고 물었고, 그 어색하게 묻는 모습에 짐이 재미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태준.. 여기는..."
나에게 정식으로 팀을 소개하려는 그 순간.
"잘 오셨습니다!"
팀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반가운 얼굴로 빠르게 인사하더니,
"그럼 www를 보러 가시죠."
엄청난 기세로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기세에 떠밀려 연구실의 가장 안쪽으로 끌려온 나는 존이 보여주는 웹 페이지를 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내 논문이 오히려 독이 된건가?'
미래의 인터넷, 그러니까 내가 미래에서 보고 온 www는 기본적으로 어느 페이지로든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는 책과 같은 구조였다.
그 페이지를 넘기는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45년 베니버 부시가 제안했던 메멕스가 바탕이 된 하이퍼링크다.
즉, www, 월드 와이드 웹은 엄밀히 따지면 이 하이퍼링크로 서로 상호작용하는 각각의 쪽을 가진 거대한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내 논문을 통해 통신 시스템의 발전 가능성을 보면서 팀의 욕심이 커져버린 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원안의 형태였던 www의 기본 틀이 되는 html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원안에 여러가지 기능을 추가하고 움직이게 하려다 보니 사실상 운영체제와 웹페이지의 중간에 있는 무언가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그래서 널부러져 있는 책 중에 공룡책(Operating System Concepts ; 운영체제 관련 전문 서적. 표지에 공룡이 그려진 것으로 유명하다.)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내가 보자마자 문제를 파악하고 있을 때, 팀이 말을 이었다.
"일단 서버에 있는 영상을 불러오는 것까지는 가능한 수준입니다. 사용가능한 영상은 작년에 결성된 MPEG측의 도움을 받아 개발중인 영상표준을 임시로 사용했습니다. html상에서 구동될 표준 재생 프로그램도 그쪽에서 도와주었습니다.
물론... 랩 수준이라 실사용엔 문제가 있겠 네트워크 환경이 발전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니 상관 없습니다. 문제는... 실시간 소통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같은 페이지에 접속을 하면, 그 페이지 내에서 실시간으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페이지를 불러온 시점에 고정이 되어버려서... 최근에 핀란드에서 발표된 IRC 프로토콜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별도의 소프트를 html 페이지 상에서 구동되게 해야..."
그렇게 이어진 현재의 한계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너무 과하다.
당장 사용되지 못하더라도, 미리 표준을 정하고, 그를 위한 언어를 개발하고 구동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너무 과해지면 문제가 된다.
미래가 예측대로 굴러가리란 보장도 없고(이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내가 절절히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알고 있는 미래도 행동에 따라 바뀌는 판에 예측은 오죽할까.),
설사 예측대로 굴러간다 한들, 방법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방법이 분명 존재할 수도 있기에 너무 완벽하게 만드려들면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html로 모든 것을 해내려는 발상을 버리라는 조언을 팀에게 해주며 말을 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이 html로 작성된 페이지 안에서 작동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예?"
"애초에 논문에서 밝히신 바도 그렇고, 원래는 데이터를 구조화해서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태준도 알다시피...."
"예. 분명 저는 논문에서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네트워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미 달성된 목표니까요.
우리가 인지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3차원으로 이뤄진 입체가 시간의 흐름에 변화하는 양태를 말합니다.
그 말을 뒤집어 이야기 하면 이미 팀은 그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 됩니다. 계속 개발하느라 테스트 페이지만 보고 있어서 모르는 모양인데...."
그렇게 나는 말을 이으며 팀이 시연을 위해 띄워둔 html문서들을 연속적으로 열며 말을 이었다.
"미세하게 문서들이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공간인 것입니다. 이미 팀은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심지어 문서들간 자유로운 이동까지 가능한데, 이걸 공간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을 공간으로 불러야 할까요.
여기에 게시판 처럼 누구나 손 쉽게 각자의 글을 html문서로 만들어 쓸 수 있게만 만들어 준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 되겠지요.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기능을 html로 구현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html을 정교화하기 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십시오. 예를 들면 이 문서들을 주고 받는 프로토콜이라던가, 그 문서를 보여주는 출력 프로그램들 말이죠.
정교화 작업은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언어(html)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로 여러 시도를 하며 생겨나는 불편사항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시구요.
아, 그렇다고 지금까지 만들어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MPEG와 협업한 게 아깝기도 하구요."
그 조언 이후에도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나와 팀, 그리고 짐은 금세 친해져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www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가 슬슬 마무리 될 무렵, 내게 원하던 것을 얻을 기회가 찾아왔다.
"그나저나 태준. 학자 방문은 어째서 신청하신 겁니까? 견학 목적이라고 하기엔 CERN의 전산부는 사실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이 아닌데 말이죠."
"팀을 보러 왔습니다."
"저를요?"
"정확히는 팀을 설득해서 추천서를 한 장 얻어볼까 해서 왔던 것이었지요."
그 말에 내 예상과 달리 팀이 반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CERN에 취업하시려 하셨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제가 구상하는 WWW의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준이라면 추천서 정도는...."
"아쉽지만 제 행선지는 CERN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내가 처한 상황, 그리고 추천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자 팀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CERN에는 오실 수 없겠군요."
"예."
"아쉬워도 할 수 없지요. 그럼, 제가 KAIST 쪽으로 추천서를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짐의 이름도 들어있을 겁니다. 그렇치 짐?"
"아, 물론이지."
그렇게 짐에게까지 추천서를 써 줄 것을 요청한 팀이 말을 이었다.
"수신자는 당연히 전길남 박사가 되겠군요."
"예. 그 분이라면 팀이 논문도 읽어보셨을테니까요."
"태준의 논문도 읽어보셨을겁니다.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기술이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지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대체로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은 기술을 잘 모르는 이들이 표면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술자 입장에서 답답한 면이 있었는데, 태준이 그 역할을 적시에 잘 해주지 않았습니까. 저희 말고도 주목한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사실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요."
그렇게 순조롭게 원하던 것을 얻어낸 뒤로도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학자방문 시간이 마무리 되었기에 나는 보안요원의 손에 이끌려 CERN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CERN에서 나온 나는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미리 잡아둔 호텔로 이동해 잠을 청했다.
.
..
그리고 다음날 늦은 아침.
로비에서 결제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려는데 로비 직원이 나를 카페로 안내하며 말을 이었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간밤에 고객님 앞으로 물건이 하나 도착했는데, 당직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보관함을 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조식을 드시고 계시면 바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비행기가 14시이니 그 전에 조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항행 리무진을 따로 준비해드릴까요?"
"아, 그건 이미 전날 준비해뒀습니다."
"그럼, 저희쪽에서 출발 시간을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서비스로 제공된 조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자 담당 직원이 갈색의 봉투를 건넸다.
건네받은 갈색 봉투 안에 든 내용물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하하. 이거 참... 이건 예상치도 못한 선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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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서울 올림픽이 끝나가던 88년 9월의 마지막날.
김포공항 입국장 한쪽에 사복경찰들이 잠복근무를 서고 있었다.
국제행사를 진행중이니 테러를 대비하여 배치된 것이었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배치가 되어 있던 것이었기에 이들의 나누는 대화도 범상치 않았다.
"위에서 죄목이 결정 되었어."
"뭐랍니까?"
"병역법 위반. 입국자 명단에 오늘 점심 비행기로 들어온다고 하니까 절대 놓쳐선 안돼. 알았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빠르게 연행... 어! 저기 온다."
부하에게 말을 하던 사복경찰 하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그곳에 태준이 한 손에 프랑스산 고트 스킨으로 만들어진 얇은 서류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그렇게 태준이 다시 걸음을 옮겨 올림픽 폐막식이라도 구경하고자 찾아온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입국장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사복 경찰들이 빠르게 태준을 잡아채 입국장 한 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말을 이었다.
"김태준씨?"
"예?"
"경찰입니다. 당신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말에 태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비웃음을 날리며,
- 쓱
한 손을 들어올려 두 사복경찰의 말을 막고는 말을 이었다.
"두 분. 성함하고 직위가 어떻게 되시죠?"
"예?"
너무나 당당한 태준의 태도에 사복경찰 하나가 맥빠지는 소리를 내며 되묻자, 태준이 살짝 미소지으며 입국장의 출구 쪽, 정확히는 출구를 알리는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 입국ㆍArrivals ㆍ入國
밝게 빛을 내며 3개 국어로 입국장의 출구를 알리는 안내표시가 이 곳이 아직 에어사이드 내 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경찰 사칭이라면 당신들 인생이 꼬이는거고, 사칭이 아니라면 이 나라 이 정부, 그리고 88올림픽까지 모조리 다 꼬이는 건이니까. 잘 생각하고 이야기 하는게 좋을 겁니다."
태준은 미소 가득한 친절을 담아 두 사람에게 경고를 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압박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느 쪽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