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25화 (25/200)

025. 귀국 (1)

이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해진 계획을 따라,

명확하게 세운 목표를 향해,

결심한 대로 몸을 놀리기만 하면 되니,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우선은 한국으로 들어가야 일이 풀리겠네. 해외를 떠돌아 다녀서는 김석훈 일가를 잡을 수 없으니까."

역시 한국으로의 귀국이었다.

정확히는 '안전한' 귀국.

이를 위해, 한국에 들어가기전 챙겨갈 수 있는 모든 무기와 안전장비를 구해갈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제1무기겸 제1방어구는 역시 일본에서 번 돈이었다.

"한국에 회사 몇 개 차리죠. 일단 중간 지주회사가 될 한국 현지 법인 준비하세요. 법인명은 KTJ Corporation으로 합시다."

여지껏 일본에서 활동하며 번 돈은 그 규모가 규모인 만큼 만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힘을 주는 규모, 그 자체였다.

대략 이천억엔의 자산.

현금만 움직여도 일천억엔.

지금 환율 기준으로 전체 규모가 1조에 가까운 만큼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국에 갈 때 처럼 깨작깨작 합법과 편법을 동원해 움직여 봐야 힘이 되기는 커녕 약점만 될 것이 뻔하지.'

해서, 나는 일본의 랜더스 플랜의 이름으로 한국에 투자를 진행하는 방법으로 그 무기를 옮기기로 했다. 어차피 필요한 건 '돈의 힘'이지 '돈 그 자체'는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이 방법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방법이기도 하고.

랜더스 플랜이라는 일본법인격이 한국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기에 제한이 거의 없다는 장점과 내가 큰 돈을 벌었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일본은 비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주주공시 의무가 없으니까.

물론 일본에서 그런 난리를 쳤으니 알 사람은 알겠지만, 자료 조사 없이 바로 아는 것과 자료 조사를 통해서 어찌저찌 알게 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고,

그 마저도 각 은행사들의 서류 보관 기한 5년이 지나면 조사로도 알지 못하게 될테니까.'

거기다 지금 일본 시장은 기본적으로 자국 내 투자를 메인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에서는 이러한 쏠림 현상을 경계해 해외 투자를 할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상황이었으니(물론 여기에는 일본의 환율 정책과도 관련이 있었다.),

돈이 나간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는 점도 이러한 결정에 한 몫을 차지했다.

'나중에 사업 규모가 커져서 일본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거추장스러워 지면, 지분 정리를 통해서 완전히 한국 기업으로 돌려도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 그 때 지분 정리하려면 돈 좀 써야겠지만.'

그렇게 오오와다에게 명을 내린지 며칠이 지나고.

한국에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할 'KTJ Corporation'이 생겨났다.

투여된 자본금은 현재 랜더스 플랜의 사내 유보금의 50%.

약, 2500억원 규모였다.

"일단 말씀하신대로 완전 자회사로 한국 법인을 세우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국 현지 상황부터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아 KTJ쪽에서는 대표이사 월급 빼 갈겁니다. 저도 한국에서 활동자금은 있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NTT주식 전부 매도하는 대로 연락 한 번 주시고요."

"바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예. 여긴 오오와다 사장이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대전략은 끝이 났으니, 이제는 알아서 관리만 해주시다가 제가 연락하면 가끔 한국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내 말에 오오와다가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때, 웃기게도 나는 그런 오오와다의 표정을 보며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아, 지금 다녀오실래요? 가신 김에 88 올림픽도 보시고 제 지시사항도 하나 해결하시는 건 어떠세요? 믿고 맡길 사람이 지금 오오와다 사장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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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준이 한국에 KTJ 코퍼레이션을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들어온다는 소식은 김두혁 회장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외국환 관리법을 피해서 들어오는 거구만."

"예. 아무래도 미국으로 넘어갈 때와는 사정이 다르니까요.

그때도 개인이 들고가긴 큰 돈이었지만, E-2비자로 들어가셨으니 애초에 반출 가능 금액이 높았고, 거기다 국내에서 환전하실 때 편법으로 국내 CD(양도성 예금증서)를 매수해서 교포들이 보유한 현지 CD와 하는 교환하는 방식으로 몰래 들여갔기에 어떻게든 국내에서 빼 낼 수 있는 규모였지만...

일본에서 워낙 크게 성공하신 탓에 이번에는 편법조차 안먹히는 상황이어서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세금 문제도 있고, 일본 현지에서의 주목도 문제도 있으니까요.

일본은 자국 법인의 투금계정을 활용한 투자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면세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 혜택을 놓고서 굳이 법인 청산해서 양국에 세금을 전부 다 내고 돈을 들여올 이유는 없지요.

샤를롯테도 그런 식으로 일본 자본을 들여와 사업을 시작했으니... 전혀 새로울 건 없는 자본 도입 루트이긴 합니다."

"자본금은 어느정도인지 알아봤나?"

"법인 신고 금액으로는 약 2500억원입니다."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어났다.

"일본이 잘 나가기는 잘 나가는 모양이야. 꼴랑 10억. 미국에서 건너갈때를 기준으로 해도 겨우 40억 정도 들고 들어가서 4년도 채 안되서 2500억이라니 말이야. 하하하."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한 투자가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대출로 땅을 사고, 땅으로 대출을 받고하기를 반복하다가 적정 시점에 전부 처분해서 주식투자로 돈을 번 모양입니다."

"그렇지. 사업은 그렇게 하는 거지. 누가 제 돈으로 사업을 하나. 전부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거지."

그렇게 태준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 꽃을 피우던 김두혁 회장은 순간 멈칫 하며 말을 이었다.

"이거. 노영숙이 고 년이 알아선 안되는 거 알지?"

"예."

"보안 철저히 해야하는 거 잊지마. 고년 그거 태준이가 그 정도로 돈 많이 벌어온 거 알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박승철 이사에게 다시 한 번 당부의 말을 전한 김두혁 회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서 태준이 그 놈은 언제 들어온대? 법인 설립했으니 곧 올 거 아닌가."

"그게...입국 예정자 명단에도 있었는데... 들어오지 않으셨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그놈이 지금 어디있다는 건데?"

"그게.... 확실하진 않지만, 탑승 직전 프랑스 직항편을 새로 끊으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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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급한 와중에 내가 급거 프랑스로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 입국 일정에 혼란을 줌으로서 노영숙 측이 혹시라도 내가 오자마자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나를 직접 공격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학자 방문 신청한 뉴욕주립대 전산학 석사 김태준입니다. 현 소속은 도쿄대입니다."

학자 방문 제도를 통해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오기 위한 것이 두 번째였다.

뜬금 없고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지만, CERN에 오는 것 역시 내 귀국 계획의 일환이었다.

'빨리 돌아가는 것도 좋지만, 안전하게 돌아가는게 우선이지. 돌아가자마자 노영숙의 공격을 받으면 본말전도. 우선은 노영숙의 공격 자체를 막아야 해.

어머니....는 일단 못마땅하긴 해도 김회장의 우산 속에 있는데다가... 오오와다 사장도 한국에 보내 KTJ 산하로 둘 경호업체까지 알아보라 지시했으니 내가 없는 그 틈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귀국계획에서 가장 핵심인 안전. 그것을 이곳 CERN에서 얻을 수 있었다.

최근 "Information System : A Proposal"이라는 제목으로 소논문을 발표한 티머시 존 버너스리.

그 자가 내 안전을 담보해 줄 열쇠였다.

'문제는...전생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가 인터넷인줄 알고 살 정도로 컴퓨터에 대해 잘 몰랐어서 티머시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점이겠지.'

그저 이름만 아는 사람.

그런 그를 내가 안전을 담보해줄 열쇠라 여긴 것은....

'논문에서 http 프로토콜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는 점이 중요하지. http 라는 말은 내가 전생에 컴맹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해도 아는 말이니까.'

그의 논문 내용 중에서 미래에나 쓰이는 컴퓨터 용어들이 나왔다는 점 때문이었다.

'만약에 내가 예상한 대로 티머시 존 버너스리라는 사람이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자라면 무조건 만나야 한다. 만나서 설득해야겠지. 내게....'

그렇게 몇 겹에 걸친 보안 과정을 통과하며 상념에 잠긴채 보안요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던 나는 이윽고 CERN의 전산부 앞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전산부 입구입니다. 곧 사람이... 아, 저기 오네요."

보안요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백인 남성이 거의 죽어가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학자 방문 신청한 사람입니까?"

"예. 이 분입니다. 일본 도쿄대에서 오신 분이랍니다."

"... 맞네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안요원으로부터 내 신변을 인계받은 남자는 보안요원이 멀어지자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컴퓨팅 분야로 학자방문을 신청하는 석사는 흔하지 않은데... 일단은 제가 오늘 당번이기는 한데...제가 요즘 크런치 기간이라서요. 일단... 따라 오시죠."

그렇게 그를 따라 몇개의 방을 지나치쳐 CL-0013이라 쓰인 방문 앞에서 그가 말을 이었다.

"전 여기까지. 여기부터는.... 짐! 나와봐!"

"왜 부르는데?"

"여기 이 친구가 안내해드릴겁니다. 저보다 1년 정도 늦게 들어온 친구인데 지금 한가할거거든요."

"한가하긴 개뿔! LHC 설치 관련 데이터 정리가 얼마나 힘든데!"

"한가하다네요. 나머지는 일정은 이 친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짐. 학자 방문 오신 분이니까 견학...도 좀 해드리고 이야기도 나눠드려."

그렇게 혹시라도 짐이 부를까 두려웠는지, 남자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그렇게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서있자, 짐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저... 죄송합니다. 팀이 요즘 맡은 일이 바빠서요."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80년에 팀과 같이 컨설턴트로 CERN에 들어와서 지금은 전산부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저는 도쿄대에서 전산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태준입니다."

"태준....? 어디서 들어본거 같은데?"

그런 내 소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떠올리려 노력하던 짐이 순간 '아'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뉴욕주립대 나오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 혹시 저랑 동문이신가요?"

예상치 못한 짐의 말에 내가 당황하며 되묻자 짐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전 방금 도망간 팀 녀석이랑 같이 퀸스칼리지를 나왔습니다. 혹시 '정보혁명 : 개방형 통신의 미래'라는 아티클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짐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과 머쓱한 표정이 한 데 뒤엉킨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 논문을 아십니까? 학사 논문이라 아무도 안볼 줄 알았는데요."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알파넷 개방에 맞춰서 나온 미래전망 보고서 중 가장 퀄리티가 높은 글이었잖습니까! 석사 논문으로 쓴 "개방형 통신 시스템의 상업적 전망"도 대단했지요!

전산학 논문이라기엔 조금...무리가 있긴 하지만, 요새는 또 inter-disciplinary research(학제간 연구)가 대세이지 않습니까.

미국 사회학회지에 표지 논문으로 실린 우리 쪽 논문인데 그걸 모를리가 있나요."

짐의 칭찬에 나는 더욱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쓴 논문들은 사실상 내가 살다 온 미래의 사회상을 '예측과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적당히 지금까지 나온 논문들을 참고문헌이랍시고 달아놓은 짝퉁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내가 민망한 표정으로 그저 허허거리자 짐이 말을 이었다.

"거참... 연구소에 처박혀서 전선이랑 키보드나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제 평생의 우상(idol)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만나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태준."

"너무 과한데요. 표현이... 아이돌이라니."

"과하기는요! 태준이 쓴 논문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특히 여기 CERN 전산부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 논문이 아니었으면 인콰이어(Enquire) 시스템 개조 프로젝트도, 아파넷 개방이 있었으니 못하진 않았겠지만, 한참 뒤에나 승인이 났을 거니까요!

미래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그 논문을 보고도 대단함을 모르는 바보들이 CERN에도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저와 팀은 아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팀.. 그 친구가 태준을 더 반가워 했을 텐데 왜 도망을 갔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크런치에 들어가 있다지만 태준인 걸 알았다면 신이 나서 좋아했을 녀석인데..."

"팀... 이라면 아까 그분 말씀하시는 겁니까? 죽어가는 눈으로 저를 안내해주셨던?"

"예. 팀 버너스리. 인콰이어 시스템 개조 프로젝트 총괄입니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춰서고는 짐에게 복사해온 논문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 Information System : A Proposal

"혹시 이 논문의 저자가 아까 그 사람이었습니까?"

그러자 짐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맞습니다. 학자 방문차 오셨으니.... 어떻게 지금이라도 팀이 있는 인콰이어 시스템 랩(Lab)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단순 견학 방문이 아닌 그 친구를 찾으러 오신 모양인데.

지금 그 친구 랩실로 가시면 포스트-인콰이어 시스템... PES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했으니까요.

아, 그 친구 앞에서는 PES라는 용어보다 WWW라고 말씀해주세요. 그 친구는 정식 명칭으로 월드 와이드 웹을 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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