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점화 (3)
그렇게 타케미치의 퇴직을 시작으로 그간 계속 벌려오기만 한 일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부지를 구해 다행이군."
"도와달라고 하셨으니 도와드리는 겁니다."
"이 사람... 제 값을 다 받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겐가?"
"더 두면 더 오를 땅이지 않습니까. 그 이익을 포기한 걸 생각해 주셔야지요."
"그야 그렇지. 이제 그 크라우드 펀딩인지 뭔지만 잘 진행해 달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허영하와의 토지거래를 시작으로.
"1월 15일, 인덱스 니바이 펀드로 돌풍을 일으킨 랜더스 투자운용이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상품인데요. 무토 금융전문기자의 정리 들어보겠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해석하면 군중이 돈을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상품은 특정 사업이나 제품에 개인 또는 법인이 투자를 하고 그에 합당한 리워드를 제공받는 것으로 랜더스 투자 운용이 내놓은 상품은...."
일본 금융계에 시한 폭탄이 될 크라우드 펀딩이 런칭되었으며,
크라우드 펀딩을 런칭한 직후 곧바로....
[다이와 금융 그룹 - 랜더스 투자금융 인수 체결 행사]
- 쇼와 62년 1월 30일
"저 오오와다가 키운 이 랜더스 투자금융이 인정을 받아 일본 굴지의 다이와 금융 그룹의 품에 안기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와 저의 랜더스 투금의 사주이셨던 김회장님은 비록 랜더스를 떠나지만, 랜더스의 고객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포함한 모든 상품, 나아가 그 자체로 꼬투리가 랜더스 투자금융이라는 회사까지 전부 통째.
일본의 다이와 금융그룹에 팔아버렸다.
매각대금은 회사의 규모에 비해 큰 320억엔.
랜더스 투자금융의 지분 100%가 전부 랜더스 플랜의 것이었기에 320억엔의 자금 역시 랜더스 플랜으로 흘러들어갔다.
'생각보다 비싸게 팔린건 이득이지만, 진짜 이득은 따로 있지.'
그렇게 내가 얻은 이득. 그것은 단순히 320억엔의 돈 만이 아니었다.
허영하와 엮여있던 랜더스 투자금융이라는 배에 자민당의 부패 정치인들을 태우고,
그 배안에 황금으로 도금한 갖가지 폭발물들(고위험 파생상품들)을 함께 싣고는,
출항과 함께 다른 선장에게 배를 팔으니.
그 이득은 단순히 숫자로 찍히는 돈의 액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번 합병을 주선한 다이와 금융그룹 회장께서 감사의 인사를 해오셨습니다."
"뭐... 우리쪽 운용자금을 그대로 둔 데다 다이와에서 받은 매각 자금도 그대로 넣었으니 다이와 입장에서는 고마워 할만도 하지요."
"예. 거기에 다이와의 취급 상품의 규모가 이번 합병으로 노무라를 넘겼다는 점에서 그쪽은 더욱 신이 난 모양입니다."
"노무라도 넘겼단 말입니까?"
"예. 거기다 다이와 금융그룹 회장의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입니다. 합병을 통해 랜더스 투자금융 주식이 100대 1로 다이와 금융지주의 주식이 되었는데, 그걸 전부 회장이 개인 자금으로 받았으니까요.
그 덕분에 저 믿고 따라왔던 부하녀석들도 한순간에 다이와 운용부 메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배를 산 선장에서부터,
"이야... 역시 김회장. 이럴 생각이었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번 합병 말일세. 다이와 그룹에 아예 통으로 회사를 넘겼더군."
"아, 그것 말입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거참 대단해."
"별 것 아니었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이 이상 회사를 키울 수도 없고, 키웠다가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일본 분들이 싫어하실게 아닙니까?"
"그런가. 하긴 나도 자이니치 출신이라 차별을 좀 당했으니... 아직 젊은 김회장은 더 하겠구만.
뭐... 자네가 회사를 다이와에 넘긴 덕분에 나도 주류 금융계와 얽힐 수 있게 되었어. 고맙네. 고마워! 자민당 쪽 선생들도 자네의 결단에 꽤 만족하는 눈치야.
자네도 손해만 본 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투자운용사를 대승적 차원에서 팔아줬으니, 나도 언젠가 크게 한 번 돕겠네. 물론, 그때는 자민당 의원들도 함께 나설걸세."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내가 말만 그렇게 할 사람으로 보이나? 그 치들 목줄 단단히 채워뒀으니 나중을 기대하라고."
그 안에 탑승해 계신 손님들께서도, 위험하다고 느끼기는 커녕 내가 내려준 것에 고마워 하는 모양새였으니 최상의 결과였다.
"이걸로 이제 오물은 다 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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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망의 2월 10일 화요일.
청약에 실패해 환불받은 580억엔과 허영하에게 판매한 토지대금 195억엔 랜더스 투자금용의 매각대금 320억엔까지 합한 실탄 1090억엔 상당의 돈이 주식시장을,
정확히는 NTT 주식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나오는 매물 전부 받으세요!"
"최대한 빨리 담아야 합니다. 전부!"
이제는 랜더스 플랜의 사장이 된 오오와다는 연신 전화를 걸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지시들이 쌓이고 쌓일 수록 NTT의 매물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가는 점차 오르기 시작해....
개장 직후 160만엔 선에 형성되었던 NTT의 주가는
170만엔을 가뿐히 넘겨, 190만엔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2주의 시간동안 반복되자...
"이제는 물량이 씨가 말랐습니다. 다들 내놓지를 않고 있어요."
"뭐 우리도 돈 거의 다 쓰지 않았나요?"
"예.... 1050억엔 넘게 썼으니 거의 다 쓰긴 한 셈이죠."
"평단가는 얼마입니까?"
"지금까지 210만엔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기 매입에 힘쓴 것이 주효했습니다. 배당주는 포함하지 않은 평단가입니다."
"매입한 주식은 총 얼마나 됩니까?"
"배당 받은 12000주 제외하면, 딱 5만 123주 매집했습니다."
"이번에 풀린 물량이.."
"일반경쟁입찰에서 20만주 증권사매출취급에서 165만주정도 풀렸습니다."
매수주문으로 300만엔을 넣어도 판매자가 나오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원 역사에서 이 시기 NTT의 주가는 240만엔선.
태준의 개입으로 원래 역사보다 무려 60만엔이나 높은 금액... 아니, 그 조차도 매수주문의 호가일 뿐, 실제 금액은 알 수 없을 만큼 올라간 것이었다.
원 역사만큼 올라도 이미 태준의 입장에서는 단순 계산으로 14%의 이익을 2주만에 본 셈이었는데, 그보다 한참 높은 300만엔 선에서 매수주문을 넣어도 물량이 나오지 않고 있는 판이었으니, 태준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40억엔이 남았지.... 지금 환율로 대략 240억원쯤 남은건가....?'
그렇게 계산을 마친 태준은 오오와다에게 가볍게 말했다.
"일 하느라 기회를 놓쳐서 아쉽겠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늘 남의 돈 굴려주느라 돈은 구경만 했을텐데..."
"그래서 그런지 더는 주식투자 제한에 해당이 안되는데도 아쉽지가 않군요."
"그래도 그러면 안될 말이지요. 지금 가용금액 얼마나 있습니까?"
"예?"
"주식 살 돈 얼마나 있냐 이 말입니다. 연봉이 작지 않으니 모아놓은 돈은 꽤 있을 거 아닙니까?"
"그야...."
"그럼 회사에서 매입한 주식 중 일부를 211만엔에 살 만큼 사가세요."
"예?"
"어차피 회사가 손해보는 것도 아니고. 복지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 생각하시고, 그렇게 처리하세요. 아 법무팀에 문의해서 문제 없게 처리하시구요... 필요하다면 제가 승인했다는 서류도 올리세요. 바로 처리해드릴테니까.
타케미치 변호사... 는 퇴직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람이니 그쪽에도 한 번 물어나 보시구요. 이미 샀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마 우리쪽에서 사자 주문을 한 번에 계속 내서 매수 타이밍을 놓쳤을 확률도 있습니다."
태준이 가볍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오와다는 푹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감사합니다....! 주군!'
그렇게 태준의 모습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고개를 숙인채 있던 오오와다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는 태준이 준 기회를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법무팀과 논의해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진행을 전부 마친 오오와다는 이내 타케미치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니... 근데, 타케미치가 한 결심을 회장님이 아시나? 타케미치가 그런걸 대놓고 말할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면... 그냥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챙겨주시는 건데... 거참... 선의로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그렇게 오오와다는 법무팀과 준비한 서류를 보며 전화기를 들었다.
수신자는 당연히 타케미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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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불어일으킨 NTT 열풍은 일본 사회를 다시 한 번 주식투자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라면 태준이 만든 인덱스 니바이를 샀고,
펀드를 사며 주식의 단 맛을 조금 본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펀드 대신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NTT! NTT를 내놔!"
"매도자가 나와야 드리지요..."
"그럼 그보다 싼 거라도 좋으니까 주식을 내놔!"
그렇게 몰려든 주식매수자들, 아니 투기꾼이라는 말도 아까운 도박쟁이들은 물량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백만엔 짜리 주식인, NTT대신 싼 다른 주식에 몰려들었고...
그 결과 1988년 9월 23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시가 총액 기준 세계 100대 기업 순위에 60개의 기업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원 역사보다 무려 7개나 많은 기업 숫자였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사업 영역이 일본, 심하면 특정 지자체에 한정되어있는 수준의 기업체들이었다.
그리고 NTT를 사둔 채 1년 6개월 넘게 그저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에만 몰두하고 있던 태준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슬슬 팔때가 왔네요."
태준은 오오와다에게 NTT 주식 매각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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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돌려 태준이 일본 버블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으며 자산을 불려가던 1987년의 한국에서는 일대 파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두황 대통령의 실각, 그리고 연이은 노대호 의원의 배신으로 이뤄진 6.29 민주화 선언에 의해 87년 10월 29일 헌법이 뜯어 고쳐지며 7년 임기였던 대통령직이 5년으로 바뀌고, 선거 제도 역시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전체는 6.10 민주 항쟁이 낳은 이 결실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그렇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쁨과 기대로 곧 있을 대선을 기다렸다.
여당인 정민당의 후보 노대호에 맞서 소위 야당3김으로 불리던 김응삼, 김태충, 김정필이 합당을 결의했을 때만 해도 그 희망의 불씨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각자의 노선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가 꿈꾸던 이상적인 민주사회를 향해 달려가던 야당3김의 합당은 그 간극으로 인해 오래 가지 못했고, 각자가 찢어져 이들 모두가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87년 12월 17일.
투표일인 16일 온종일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투표장에 나왔던 많은 수의 유권자들의 열망이 무색하게 노대호 후보의 당선이 발표되었고,
그 발표로 인해 대한민국은 다시 군사독재의 재림을 두려워 하며 한숨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 국민적인 한숨들 사이에 약간은 다른 의미의 한숨이 평창동의 한 고택으로 부터 스며들었다.
"후..... 다시 말해보거라."
그 한숨의 주인공은 바로 김두혁 태균그룹 회장이었다.
"저희 오라버니께서 대통령이 되셨답니다."
"나도 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게냐."
"오라버니가 대통령인데, 제가 태균그룹의 안주인 노릇은 못해도 태균전자 사장 사모소리는 들어야 청와대 만찬가거나 할 때 모양새가 좋지 않겠어요?"
당돌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한 노영숙의 요구에 김두혁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하."
'민식이나 잘 키울 것이지 허튼데 욕심을 내는구나. 이러니 같은 씨를 받고도 태준이는 알곡이 가득한데, 민식이는 쭉정이만 한가득이지.'
그렇게 김두혁 회장이 노영숙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자, 참다못한 노영숙이 말을 이었다.
"말씀이 없으시네요? 제 생각이 그리 잘못 된건 아니라 보는데. 안 그런가요?"
이제는 숫제 반협박조로 나오는 노영숙을 보며 김두혁 회장이 차분히 인내하며 입을 열었다.
"네 오라비가 득표율이 얼마인지는 아느냐?"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당선 됐으면 그만이죠."
김두혁 회장의 인내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 껏 부풀어 올라 거만해진 노영숙의 태도에 김두혁 회장은 인내를 거두고 노영숙에게 말을 이었다.
"고작 32%다. 국민의 삼분지일도 네 오라비에게 투표를 안했어. 아마 그 마저도 조작된 수치겠지. 그런데 감히 힘 없고,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 알량한 권력을 믿고 나를 협박하는게야?"
그렇게 김두혁 회장의 노여움에도 노영숙은 물러설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협박이라니요. 당치도 않으세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민주화된 세상이잖아요. 그리고 저희 오라버니는 '국민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구요."
"하.... 국민의 선택. 그래. 그 국민의 선택. 그 국민의 선택을 어설프게 받았으니 제 멋대로 할 수도 없을 텐데, 네가 감히 내게 둘 째의 복권...아니, 전자 사장자리를 요구하는게야?"
다시 한 번, 단계를 올려 쏘아진 노여움에도 노영숙은 당당했다.
그런 노영숙의 당당함에 김두혁 회장이 진정으로 분노를 표출하려던 그 때, 노영숙이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에이 설마 제가 그냥 달라고 그러겠어요. 저도 아버님께 드릴수 있는 게 있는데요. 저 예전의 노영숙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노영숙이 자신만만하게 내민 카드는 두 개.
하나는...
"제2통신사업자 선정. 대선 공약으로 나온거 보셨죠? 그거 우리쪽으로 끌고 올 수 있어요. 아버님도 아시겠지만... 매물로 나올게 한국이동통신인거. 다들 탐내고 있는거니 잘 아시겠죠."
모든 재벌들이 군침을 삼키던 공약. 제2통신사업자 선정에 대한 특혜였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고... 이건 서비스인데. 그 첩년 아들. 태준이랬던가? 어디 있는지 찾았거든요. 모르는 척 못 본척 아무 짓도 안할게요. 덤으로 그 첩년까지.
어때요? 이 두 개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거래 아닌가요? 아버님, 태준이 아끼시잖아요?
머리도 좋고, 미국에서 석사, 일본에서 곧 박사까지 딸 거라는 그 수재 손자.... 요원들 손에 타지에서 '자살'시키고 싶으세요?
생긴 것도 아주 잘 생겼다던데. 딴따라 어미 닮아서 미국 가서도 얼굴 팔아먹고 살았다면서요? 우리 집안 체면이 있는데 더는 그 꼴 보면 안되지요.
만약, 아버님이 통 크게 나와주시면... 뭐 예를 들어서 오라버니 활동비라던가... 아니면 민식이 명의의 물산쪽 주식을 주신다던가 하는 식으로. 아시죠?
그렇게 통 크게 나와주시면 저도 아무 짓도 안하는 것에 더해 태준이 우리 집안, 그리고 그 이 아들로 인정할께요.
이 정도면 제가 크게 밑지는 장사인거 같은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셨으려나 모르겠네요?"
태준의 안전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