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김천성 사망? (3)
태준과의 전화를 마친 오오와다는 태준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행을 필두로 일본의 금융권에서는 결코 빈말로라도 들을 수 없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태준이 방금전 한 말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을 (비록 그것이 자조 섞인 블랙조크라 할지라도) 늘상 들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部下の手柄は上司のもの、上司の失敗は部下の責任。(부하의 공은 상사 것, 상사의 실패는 부하 책임)"
먼 훗날 소설과 드라마에서까지도 울려퍼질 그 블랙조크를 읊조리던 오오와다는 이내 끊긴 전화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그것은 태준에 대한 충성의 맹세이자,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동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부풀어오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껏 표현한 오오와다 사장은 이내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들어올리고는 인터폰을 들어올려 2번 버튼을 누르고는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보도자료 만드세요. 제목은 '남들이 돈 날릴 때, 돈을 벌면 인생이 바뀝니다.'로 하고 리버스 펀드의 예상 수익률에 대한 자료를 첨부해서 뿌리세요.
오늘 석간, 다음주 월요일 조간.
이 두 날에는 무조건 실려야 합니다. 산케이건 닛케이건 아는 경제지 기자들한테 전부 기름칠 좀 하시고.
절대로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는 섞지 말고 리버스 펀드의 일반적인 장점에 대해서만 써서 보내야 합니다."
오오와다가 감격에 젖어 미친듯이 일을 하던 그 시각, 타케미치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긴 태준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회장님의 생각을 넘어서서 움직였다. 이건 어쩌면 회장님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몰라.'
태준의 의중을 멋대로 읽고 허가도 받지 않은채 움직였다는 것.
그것은 달리 보면 태준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방금전 태준의 전화에서 느낀 것이다.
'나아가, 회장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타케미치가 두려움에 떨던 그때, 태준이 입을 열었다.
"노우지독의 고사를 아십니까?"
"예?"
뜬금없는 사자성어에 타케미치가 놀라서 되묻자 태준이 말을 이었다.
"조조가 계륵이라는 소리를 듣고 철군을 준비하던 양수의 목을 치고나서 양수의 부친인 양표가 '아들을 잃은 소의 기분'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지요."
그 말에 타케미치는 내심에 머물던 두려움이 머리 끝까지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노우지독이라는 성어는 모를지라도, 조조의 계륵에 대한 일화는 잘 알았으니까.
'조조의 계륵이라는 말에 철군을 먼저 준비했던 양수가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인가....'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슬며시 무릎을 굽히던 타케미치는 이어진 태준의 말에 굽히려던 무릎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조는 그런 양표의 태도에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후회...말입니까. 그 조조가요?"
너무나도 의외의 말이었기에 타케미치는 순간 자신이 느꼈던 공포심을 저 멀리 보내버리고 태준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그런 타케미치의 순진한 태도에 태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조도 인간이니, 인간적 감정 때문에 후회를 했겠지만 어디 그 뿐이었겠습니까? 조조씩이나 되는 인간인데. 아마, 자신의 감정 때문에 인재를 잃은 것에 대한 후회도 어느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 말에 타케미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제 넘게 먼저 움직여서. 그리고 다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알아서 움직여주는 인재가 주위에 많을 수록 리더는 편한 법이니까요. 이번 건에 한해서는 사실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고맙기도 했구요.
이미 완전히 실행하고 나서 내게 사후보고를 했기에 경고를 했을 뿐인 것이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는 정답이었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두 분이서 보고 없이 움직인다면.... 여러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제가 나서기 쉽지 않으니, 오늘 경고는 꼭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태준이 스위트룸의 내실로 들어가자 타케미치는 굳게 닫힌 내실의 문 앞에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대로 스위트 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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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폭풍과도 같은 주말이 지난 17일.
나는 오오와다를 통해 정산된 금액을 받아들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 단 하루만에 수익률이 13%라니. 시간이 없어 대출을 못받은게 아쉬울 정도군요."
"말씀하신대로 정확히 장 마감 1분전에 모두 정리하기는 했습니다만, 닛케이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두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오와다가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단기 뉴스로 떨어진 가격은 금방 다시 회복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전쟁이 날 수도 있는 것이고..."
뭐 이게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일 터였다.
지속적으로 대남도발을 받아온 한국 증시도 유래 없이 휘청이는 판국에 김천성의 죽음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일본인들은 오죽 불안할까.
더구나 오오와다의 경우엔 본인이 직접 움직인 것도 있으니 더욱 아쉽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생에서 적어도 2023년까지는 전쟁 안 나는거 보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불확실한 기대로 투자를 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전쟁나면 왜 일본 증시가 떨어집니까? 오르면 더 오르지."
"그게 무슨... 한국이 망하면 일본도 망합니다."
"망하긴요. 바로 재무장 하고 방산기업들을 중심으로 떼 돈을 벌겠지요. 6.25때 그렇게 벌어서 지금 이렇게 떵떵거리는거 아닙니까. 일본이."
내 말에 오오와다가 순간 멈칫 하더니 이내 말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정산된 금액은 어떻게 처리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전에 말씀하신 대로 할까요?"
아무래도 내가 생각보다 날카롭게 말한 모양이었다.
애써 오오와다가 말머리를 돌리는 것을 보니 타케미치에게 했던 말을 전해들은 모양.
오오와다가 알아서 자중하겠다고 나름대로 조심을 하니 나도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하고 말을 이었다.
"얼마 정산 되었죠?"
"500억 8380만 3441엔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졌던 빚이 천억엔.
우리나라 돈으로 5천억 상당이었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500억엔, 우리나라 돈 2500억이 지금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빚 없이 순수한 내 회사의 수익으로 말이지... 물론 이케부쿠로 쪽 토지가 남아 있으니 빚이 완전히 청산 된건 아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을 만큼의 이익을 보았으니... 뭐.'
11억엔으로 땅을 사고, 그 땅으로 대출을 받고, 다시 땅을 사기를 1년간 반복했기에 가능했던 대출이었고, 그 덕분에 얻은 수익이었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원금의 약 50배(실제로는 그에 미치진 못하지만)의 수익을 얻은 셈이었다.
'노래하는 부동산업자'로 유명한 가수 오쿠 마사오(億昌夫)가 움직이는 금액이 8천 억이라고 했으니 아직 갈길이 먼 것이었다.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지.... 거기다 아직 버블은 꺼지지 않았으니 기회는 더 있어.'
"그 돈으로 우리 레버리지 상품을 사세요. 전부."
나는 자연히 그 수익을 전부 재투자하는 선택을 했다.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떨어지는 추세라... 다시 한 번 재고하심이..."
"어차피 오전장은 상승세를 타지 않습니까? 오늘이야 주말에 빅 뉴스가 있었으니 매도세가 강했던 것이고."
"하지만 아직 그 뉴스로 인한 하락세가 해소 된 것이 아닌데..."
"정 그러면 내일 점심 휴장 끝나고 오후장에 바로 레버리지 상품으로 사죠. 그 쯤이면 아마 해소가 되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고객들에게도 잊지 말고 공지하시구요."
나는 34억 가량의 주식을 전부 레버리지 상품에 넣기로 결정 한 뒤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한달이 넘었는데, 크라우드 펀딩 건은 아직입니까?"
"예.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법률적인 문제가 많아서.... 실제 판매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허영하 회장이 몸이 달았겠군요."
"예.... 안그래도 타케미치를 통해 연락 받았었습니다. 허영하 회장 측에선 최소한 크라우드 펀딩 런칭일이 확정이 되어야 땅을 살수있다고 하더군요. 계약금을 높게 걸어두긴 했다지만...아시다시피."
"땅 값이 계속 치솟고 있으니 상대 쪽에서도 변심하기 쉽겠지요."
내가 말을 가로채며 오오와다의 말에 긍정하자 오오와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일단은 우리쪽에서도 직원을 더 뽑기로 했습니다. 금융관련 자문 변호사쪽으로 해서 법무팀을 보강해서 빠르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오와다의 인사계획은 정공법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기업, 그것도 일본 굴지의 대기업에 속해있던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전생에 뒤에서 태균의 수발을 들며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본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래서 엘리트들은... 출력은 좋은데 꼭 항상 윤활제를 발라줘야 한다는 말이지.'
"법무팀도 법무팀인데, 우선은 대장성 관료를 포섭해서 진행하도록 하세요. 최종 승인기관은 그 쪽이니 그 쪽 출신자를 구하는 편이 훨씬 더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겁니다. 현직이 어렵다면, 전직이어도 좋습니다. 나름대로 살아있는 라인이 있으면 써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내가 오오와다 엔진에 약간의 윤활제를 발라주자 오오와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할 겁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재촉에 오오와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하잇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오오와다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일본에 남기는 부비트랩이니까.. 최대한 빨리, 정교하게, 탈 없도록 만들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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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장이 마감된 한국의 증권 거래소에는 파란 불만이 가득했다.
외국인들이 '코리안 리스크'를 외치며 연신 보유 물량을 던져댄 탓이었다.
"젠장!"
"하필 왜 이 시기에 뒤지냐고! 김천성 그 돼지 빨갱이 새끼는!"
그렇게 각 증권사 객장에서는 분통터지는 고함소리가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소음 속에서 태균물산의 김두혁 회장과 차남 김석훈 상무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 총 얼마나 매입했어?"
"자사주 매입 신고 직후에 바로 오늘 나온 물량의 30%는 전부 태균물산에서 매입했고, 전부 소각했습니다."
"잘했네. 그래서 얼마나 들었어."
"약 46억원어치 입니다."
"신고 규모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50억 규모로 잡았습니다."
"물산 시총이 9800억대이니 아주 작은 수준은 아니군. 우리 나라 주식 거래액이 이제 막 7천억대 규모인데 50억원어치 사들인 거면 상당한게지."
"네. 그래서 저도 몇 일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도 물량이 많아서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주가도 금요일 종가 수준에서 조금 못미치는 수준으로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김두혁 회장 쪽에서는 주가를 방어함과 동시에 본인 소유의 주식 지분율을 늘리기 위한 수법으로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을 담당하는 태균물산의 주식을 자사주 매입을 통해 소각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얼마나 샀다고?"
"장 열리기 직전에 태균물산에서 자사주 매입신고가 들어와서 물량이 씨가 말랐습니다. 그나마 건진게 6억원어치 입니다...."
"뭐? 자사주 매입 신고를 했다고? 이사회 없이?"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상무님께서 더 잘 아시는 것 아닙니까."
"...그..그래서 내가 보유한 태균물산 주식이 전체의 몇 프로가 되는건데?"
"... 자사주 매각 효과까지 다 해서 약...9%입니다."
김석훈 상무 쪽에서는 빚까지 내서 본인 보유 지분을 늘리기 위해 주식 매입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움직일 수 있는 돈의 규모가 다른 김두혁 회장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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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곧 나올 '김정일 오보 사건'의 진상을 경고하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어제 하루 동안 있었던 내 생물학적 아버지의 반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 니 애비가 괘씸하게도 말이지. 심지어 지 장인인 노태호 의원한테 빚까지 내서 주식을 사들였다더라."
"뭐. 기민한 판단이긴 하군요."
"그래. 주식만 사들였다면 나도 그리 생각했을게다."
"또 뭔가가 있는 겁니까?"
"그 놈이 글세 지 살겠다고 교회간다고 이빨까고는 일요일에 바로 부산으로 지 가족들 데리고 피난갔지 뭐냐. 심지어 일본으로 갈 배편도 구해뒀다더라. 첫째는 그래도 나랑 같이 피난가자고 평창동으로 바로 들어왔건만 그 놈은.... 내 집에 얹혀 살면서도 지 혼자 내뺐어!"
나는 김석훈의 한심한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혼란을 틈타 주식 매수로 태균 내 권력 강화를 노린 것 까지는 그래 백번 천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거기에 피난...? 그것도 일본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행동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 정도라면 사실상 그냥 뇌가 아니라 척수 반사로 모든 행동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정도의 아둔함이다.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판단다면, 태균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 주식을 던지는게 정상이니까.
물론.... 그 새끼를 위한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외 지사들에 대한 장악력을 위해서 물산 주식을 매수하려 들었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아니, 그래도 바보짓이지.
해외 지사들 규모가 얼마나 된다고. 애초에 해외 지사들이 가만히나 있을까? 본사 망했다고 현지 법인 주주들이 독립선언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그렇게 내가 김석훈의 한심한 태도를 이해해보려 나름의 계산을 하며 (결국 이해하진 못했다.) 허허거리며 웃고만 있자 김두혁 회장이 말을 이었다.
"너도 어이가 없지? 그런 놈한테서 네가 나왔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런 머저리 같은 인간, 기분 나쁘니까 엮지 마시죠."
"그리 부정해봐야...."
나는 어떻게든 김석훈과 나를 엮으려 드는 할아버지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