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김천성 사망? (2)
"지시사항은 어떻게, 잘 이행했습니까?"
"예. 우선적으로 저희쪽 자금은 금요일에 급변사태에 대한 소문이 들리자마자 바로 리버스로 옮겼었고,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기존 레버리지 고객들에게도 리버스로의 투자 전환을 독려하는 전화를 계속 돌리고 있습니다. 물론 소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오와다의 보고에 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오오와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 임의로 판단하여 움직인 부분도 있습니다."
"보고하세요."
"우선 14일에 들어온 첩보를 바탕으로 저와 타케미치가 해당 사태에 대한 소문을 슈간게자이스포(週刊経済スポ ; 일본의 타블로이드지)에 흘렸습니다. 그날 당일에요. 월요일에 풀리는 주간지는 슈게스포 밖에 없어서 주간지 판매부수 3위권이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오와다의 돌발 행동에 나는 놀란 목소리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말입니까?"
"직접은 아닙니다. 우리쪽이 독점적으로 판매중인 리버스 펀드가 있는 상태에서 우리쪽에서 소문을 내는 것이 걸리면 위험하니까요. 익명의 자위관(자위대원)으로 보냈습니다.
그저 그런 소문이 있다 정도로 문구를 정리해 짧게 보냈는데... 뭐, 받은 쪽도 어차피 경제지라는 간판을 달고 있기는 해도 사실상 타블로이드지인 만큼 좋다고 덥석 물겠지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다행히 어설프게 일을 처리하진 않았군요."
"그리고 타케미치 쪽에서는 정치권과 법조계에 투자 권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리버스쪽으로 말입니까?"
"예. 벌써부터 예상 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치권과 법조계 쪽에 돈이 많이 몰렸습니다. 제안만 했음에도 말이죠. 물론 그 자금들은 월요일 장이 열리자 마자 투자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 말에 나는 슬쩍 옆에 시립한 타케미치를 보고는 수화기 너머 오오와다에게 말을 이었다.
"잘했습니다."
오오와다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타케미치의 능동적인 호응에 간단한 치하를 내려주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회장님께 배운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물론 간단한 치하로 끝낼 생각은 없었기에 오오와다의 너스레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다만. 매번 지금 처럼 했다가는 오오와다 사장, 그리고 타케미치 변호사 두 분이 위험해 질 수 있으니 다음에는 필히 제게 먼저 보고 한 뒤 움직이도록 하세요.
책임은 리더인 제가 지는 것이지 여러분이 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일단은 정답에 가까운, 어쩌면 가산점까지 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니 칭찬은 하지만,
지금처럼 독단적 행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언젠가는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말려줄 필요가 있었기에 나는 좋은 말로 오오와다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보도자료 준비하세요."
"보도자료 말씀이십니까? 추가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실 생각입니까?"
"언론 플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광고지요. 신문사들 기사를 빙자한 광고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미 돈이 몰리고 있으니 우리 쪽에서 직접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제목은...."
나는 무슨 제목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고민을 마치고 말을 이었다.
"남들이 돈 날릴 때, 돈을 벌면 인생이 바뀝니다. 로 하죠. 그리고, 투자금은 월요일 장 마감때까지만 리버스에 넣고 전부 다시 인덱스 니바이 펀드로 옮기시구요. 월요일. 단 하루에 모든 게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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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이 혼란을 틈타 일본에서 또 다시 돈을 쓸어담을 준비를 하고 있던 그 시각.
한국은 평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평화 속에서 홀로 일본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웃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일본에서도 보도가 났다?"
바로 12.12 군사반란의 주인공. 정두황이었다.
박형식 비서실장의 보고에 정두황 대통령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각하. 해서 일단 내일 보도제한 조치를 내리고 서울권 전역의 가판대에 요원들을 풀어 일제히..."
이어지는 보고에 정두황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옆에 놓여있던 크리스탈 재떨이를 박형식의 어깨너머로 강하게 던지곤 강하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이봐. 박형식이. 상황이 아직도 이해가 안가? 그걸 왜 막아? 보도제한 조치를 왜 해. 그리고 가판대는 뭐하러 지켜.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 아닌가?"
말만 들어서는 전부 맞는 말이었다.
언론 보도의 자유를 위해, 국가의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 엠바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가판대를 지키고서 엠바고를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감시하는 것(판본에 따라 기사를 달리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각 언론사에서는 검열 우려가 있는 기사를 1판으로 찍어 서울쪽 가판대를 통해 유통하기도 하였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는 해서는 안될 일인 것도 맞았으니까.
다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박희정 대통령의 사망 직후 곧바로 또 다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집권한 정두황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80년 언론통폐합으로 신문사, 잡지사는 물론, 방송사, 통신사(뉴스를 신문사와 방송사에 판매하는 회사. 뉴스 에이전시라고도 불린다. 외국을 대상으로 소속 국가의 국민들이라면 알만한 일반적인 소식과 기고문을 정리하여 판매한다.)까지 닥치는대로 없애고 합치던 사람이 대뜸 언론의 자유니 뭐니 하는 꼴이 퍽이나 우스운 것이었다.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야! 어! 민주주의 몰라!? 거기에 곧 있으면 올림픽 열리고 한다고 외신기자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보고있는데 그딴 짓을 하면 쓰나."
"하지만 아직 국방부나 안기부에서 정식으로 확인한 사안도 아닐 뿐더러...."
"미군이 확인했다잖아! 미군이! 거기에 일본에서도 이미 확인이 끝났으니 보도를 했을텐데, 그걸 우리가 재차 확인한다고 총 맞고 뒤져버린 김천성이가 살아나기라도 하냐 이거야!"
"하지만 미군 측에서도 잘못된 첩보를 입수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박형식이! 정신 차려. 아직도 감이 이리 없어서 되겠어!?이건 기회라고 기회! 당장가서 비상대책회의나 열어! 그리고 국방부에는....'휴전선에서 전파방송이 있었다'정도로만 기자들한테 말하라고 해."
그렇게 소집된 비상회의 역시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건대에서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놈들이 건방지게 시위를 했잖아! 그리고 그걸 우리가 천 명 넘게 잡아들였고.
근데 대학생 천명씩 잡아들이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독재다 뭐다 안그래도 시끄러운데 더 시끄럽게 굴지 않겠어?
근데 위에서 김천성이가 총 맞고 죽었다잖아! 그럼 그걸 알려야지. 알려서 저 대학생 빨갱이 놈들이 북한 김천성이를 애도하기 위해 그랬다... 뭐 그런식으로 몰아가야 될거 아닌가! 안그래?"
"하지만 각하.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인데다 그렇게 물타기하다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쪽 애들이 확인한 바로는 김천성이가 죽었다기엔 의심스러운 정황이 너무 많다고...."
"이봐! 장사동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내 말을 뭐로 들은거야! 니가 그러고도 안기부장이야!? 재료를 받았으면 요리를 해야할 놈이 재료의 신선도를 따지고 앉았어?!"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사동의 만류에도 정두황은 이를 밀어 붙였고,
"맞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확실히 '휴전선에서 전파방송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만큼 국방부에서 선제적으로..."
"뭐요?! 기천 형님! 그 무슨.... 이건 금강산댐 수공 음모를 떠드는 것이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란 말이요! 이 사안은 진짜로 팩트 싸움인데, 그걸 그렇게 말해버리면 기자새끼들이 무슨 글을 퍼 나를지... 아니 후에 김천성이 살아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이러쇼?!"
비-일심회 출신 장성이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기천은 이런 정두황의 막나가는 태도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심회 출신인 장사동은 이해하지 못할 저자세였다.
결국 16일 일요일 아침. 고선일보의 호외를 시작으로 김천성 사망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자 한국 역시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시작한 파도였지만, 정작 가장 파도가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늦은 파랑은 김두혁이 이끄는 태균의 심장부에도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부산으로 가시는게..."
"시끄럽다. 사내새끼가 되서 무슨 추태냐."
"혹여라도 전쟁이라도 나면...."
전쟁을 겪은 김두혁 보다 전쟁 직후 혼란기에 태어난 장남 김석현이 오히려 더 공포에 떠는 모양새가 퍽이나 어색했지만,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 대해 늘상 들어왔으면서도, 정작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으니, 그 막연함에서 오는 공포가 더 클 수도 있는 법이니까.
"시끄럽다. 사장이라는 놈이 회사를 지킬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든 제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그러는 꼴이 우습지도 않더냐."
"저는 그게 아니라 아버지가...."
"다 늙어빠진 몸뚱이 전쟁으로 포 맞아 죽으나 길가다 차에 치여 죽으나 그게 그거니까 신경 끄고 넌 가서 네 할 일이나 해! 나가 이놈아!"
그렇게 장남 김석현을 내보낸 김두혁 회장은 박승철 이사를 불러들였다.
"그래. 태준이 놈한테 전화는 해 봤어?"
"안됩니다. 아예 전부 막아둔 모양입니다. 도련님 모시는 현지인 비서가 한국에 귀국했다고만 말하더군요. 여기도 이렇게 시끄러우니 일본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막아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쯧. 그 놈이라면 분명 알텐데 말이지... 고선신문이 이번에 배포한 호외에서 분명 미국의 첩보를 일본이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주말 동경에서의 급전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으니까요."
"그럼 거의 맞다는 이야기인데.... 혹시 다른 루트로는 안알아봤어?"
"태준 도련님 보호차 보내놓은 전략실 3부 계장이 보고하기로는 태준 도련님께서 운영하시는 랜더스 투자운용에서 보도자료를 냈답니다."
"보도자료?"
"인버스 펀드라고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버는 구조의 상품을 소개하는 내용의.. 사실상 광고입니다. 아무래도 월요일 장 하락을 대비한 선제적 홍보차원인듯 합니다."
그 말에 김두혁 회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박승철 이사에게 말을 이었다.
"애초에 진짜 전쟁이 날 일은 없다는 뜻이군."
"....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이 참에 태준이 놈 처럼 이 상황을 이용해야겠어."
그 말에 박승철 이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질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 시각.
가족과 함께 새벽예배를 보러 교회에 가던 중 고선일보의 호외를 본 김석훈 태균물산 상무는 교회가 아닌 부산의 한 호텔에 있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에 가족을 데리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그렇게 부산으로 내려오자마자 호텔방에 처박힌 김석훈 상무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딱딱딱.
방정맞게 울려퍼지는 손톱 끊어지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던 그때.
기다리던 전화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따르릉.
그 벨소리에 빛과 같은 속도로 반응해 수화기를 집어든 김석훈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물었다.
".... 배는?"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편을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사모님과 도련님 표 총 세장, 일주일치 확보해 뒀습니다."
김석훈 상무를 모시는 비서의 말에 김석훈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쉰뒤 간단하게 '바로 들어와'라고 답을 하고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웠다.
"이걸로... 일단 안전은 확보가 된 셈이고.... 이제 뭘 해야... 아."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들어서였을까.
김석훈 상무는 곧장 품에서 작은 수첩하나를 꺼내 뒤적거리더니 이내 하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나야."
곧 이어 이어진 김석훈 상무의 말은 김석훈 상무의 야심이 그대로 담긴 말이었다.
"태균물산 내일 장 열리자 마자 바로 매수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