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자민당 (1)
"뭐라구요?"
"대장대신께서 보자십니다."
나는 나간지 10분도 채 안되서 돌아온 타케미치 변호사의 보고에 황당함을 느꼈다.
"대뜸 그게 무슨....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랜더스 플랜과 랜더스 투자운용. 이 두 쪽으로 공문을 보낸 뒤 수취확인을 하기 위해 연락이 온 것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최근 일본의 상황.
여러가지 정치적 배경.
거기에 내가 가진 일본에서의 입지.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 퍼즐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얼마전 문부대신이 한국 병합은 합의에 의한 것으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망언을 했었지... 그 때문에 한국에 항의를 받기도 했고.
그와 관련해서는... 당연히 나를 부를리는 없을.... 잠깐. 아주 관계가 없는 건 아닌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비선으로 쓰기 위해서 불렀을 수도 있긴 하니...
일단은 서자이긴 해도 노대호 의원하고 혼맥이 있는 태균그룹 3세니까. 내막을 모르는 일본애들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도...
아니, 애초에 그 망언을 지껄인 후지오 마사유키는 경질되는 것으로 이미 끝나지 않았나?
그럼 신 자유 클럽(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축하던 정당)이 해산하면서 당내 구조가 개편된 것 때문인가...?
당내구조가 개편되었다고 할 지라도 미야자와(나카소네 내각의 대장대신 ; 미야자와 기이치)씩이나 되는 거물들이 구태여 나를 찾을 이유가 없지 않나? 애초에 난 외국인인이라 후원금도...아!'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그때.
머릿 속을 스치는 뭔가가 떠올랐다.
"설마. 그것 때문인가."
나는 일본을 뒤흔들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는 탄성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런 내 탄성을 들은 타케미치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짐작 가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대충 알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 보자고 합니까?"
"회장님 회신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잡아주세요."
그렇게 타케미치에게 약속을 잡으라 명한 뒤 나는 곧장 타케미치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아, 그리고 리크루트 사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주세요. 계열사 전부."
"예. 알겠습니다. 그 건은 오오와다 사장을 통해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 주의 시간이 흘러,
오오와다 사장이 보고를 위해 내가 머무는 호텔방으로 찾아왔다.
"말씀하신 크라우드 펀딩 상품의 개요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타케미치를 통해 요청하신 리크루트 홀딩스의 자료입니다."
"수고했어요. 특기할 만한 점은 있습니까?"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것이라면 허영하 그 자의 사업계획을 하나로 묶는 1안과 각각의 사업계획을 따로 처리하는 2안을 정해주시면 됩니다. 리크루트 건에 대해서는... 여기. 일주일 뒤 그러니까...."
그렇게 오오와다의 보고가 채 다 끝마치기 전에 객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잠시 손을 들어 오오와다의 보고를 멈춘뒤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수화기 너머 타케미치 변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케미치입니다. 미야자와 센세(先生)와의 약속이 잡혔습니다."
"언제입니까?"
"일주일 뒤. 9월 21일 아침 10시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상으로 전해진 타케미치의 보고를 듣고 자리에 돌아오자 오오와다 사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10월 30일에 리크루트의 부동산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코스모스의 OTC 상장(Over the counter market; 점두시장 : 증권사의 자체 중개를 통해 비상장주식을 거래하는 장외시장)이 있을 예정 입니다.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중개할 예정이랍니다."
그 말에 나는 말 없이 그저 헛웃음을 지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웃음에 오오와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 이내 자신이 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금 내게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방안을 물어왔다.
그런 오오와다의 질문에 나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답(2안으로 가기로 했다.)을 내려 돌려보내고는...
"어쩜 이렇게 예상 밖을 벗어나질 않냐."
오오와다가 준비한 리크루트 관련 보고서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박아 넣었다.
애써 조사해 온 오오와다의 노력이 아깝긴 했지만.
"이유는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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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일본 대장성.
대장대신 미야자와 기이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김 회장과의 약속이 잡혔습니다."
미야자와의 말에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겠군."
총리대신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시작으로.
"확실히. 아무래도 이런 일은 쓰고 버리기 좋은 자를 이용하는게 제격이지. 물론 버릴일 자체가 없어야겠지만."
전임 대장대신이자 차기 총리대신으로 유력한 다케시타 노보루 의원.
"....하필이면 조선계인계 조금 걸리기는 합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먼 훗날 총리가 되는 아베 신조의 아버지이자 쇼와의 요괴라 불리는 57대 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인 아베 신타로 전 외부대신(현 자민당 총무회장)
"아베 선생께서 자이니치 조센진들과의 친분이 깊기에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그 자는 한국 태생의 순수 한국인이지 않습니까. 딱히 지지율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
전 재영일본대사관 서기관 출신의 엘리트이자 이제 막 정계에 입문한지 3년된 괴물 신인 이부키 분메이 중의원(하원의원)까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걸로 우리 모두 다음 선거 비용은 문제가 없겠군."
그렇게 나카소네 총리의 말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기쁜 마음을 공유하기를 마치자, 태준과의 약속을 잡은 미야자와 대장대신이 말을 이었다.
"돈은 문제가 아니지요. 김 회장 그 자가 아니더라도 리크루트에게 받은 코스모스의 비상장 주식이야 어떻게든 처분할 수 있을테니. 좀 더 안전해 질 뿐.
문제는 작금의 엔고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겠지요.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전체가 부동산과 주식으로 오카네(お金; 돈) 파-티를 벌이느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무역적자 폭이 상당합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대가 이룩한 55년 체제가 붕괴될지도..."
대장대신의 말에 나카소네 총리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그 말도 지긋지긋하군. 자네가 그 말을 하고 다닌게 벌써 6년이네.
언론에서부터 중의원이고 참의원이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매번 떠들어댄 이야기, 지긋지긋하지도 않은가, 그럴거면 자민당 말고 야당에 가지 그랬나?
나라고 뭐 좋아서 플라자 합의를 한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서 내 자네에게 대장대신을 맡기지 않았나. 자네도 해결 못한 걸 날 더러 어쩌란 말인가."
나카소네 총리의 볼멘소리에 전 외부대신인 아베 신타로가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협상 대상자인 미국 측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 외부대신인 구라나리 선생도 노력중이기도 하구요."
아베 신타로의 중재에도 미야자와 대장대신은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외교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경제 문제지. 얼마전 스미타 총재(스미타 사토시; 제25대 일본은행 총재)가 다녀갔습니다."
미야자와 대장대신의 말에 나카소네 총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스미타 총재가?"
"예. 더 이상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도 버겁다더군요. 시장개입도 한계랍니다. 채권 발행액도 연일 최고치를 갱신중이고, 거기에 우리 쪽 아이들이 올린 보고서를 보면 회사채 발행액도 연일 최고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이 전부 주식, 아니면 토지로 빨려들어가고 있구요.
지금이야 이 거품이 버텨주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더 이상 둔다면 그대로 파산입니다 파산."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그런 나카소네 총리의 말에 미야자와 대장대신이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미쳤나 자네? 금리를 올리면..."
"예. 지금까지 빚을 진 사람들은 이자 때문에 죽어나겠죠. 가계 부도도 상당히 많이 일어날 거고 회사들 역시..."
"그것만 있는게 아니지 않나. 그건 오히려 사소하지. 국채는 어쩔 셈인가. 나라가 진 빚에 대한 이자도 고스란히 올라갈게 아닌가."
가계 부도를 사소한 것으로 말하는 나카소네 총리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은 미야자와 대장대신이 침묵하자 나카소네 총리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 조만간 NTT가 기업공개를 앞두고 있네.
덴덴코샤(電電公社 ; 일본전신전화공사의 줄임말) 시절부터 민영화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는데, 그 마지막 단추를 끼우려는 이 때에 그렇게 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거기에 코쿠테츠(国鉄) 민영화는 아직도 시끄럽지. 그 빌어먹을 강성 노조새끼들 한테 먹잇감이라도 던져줄 생각인건가?
나라를 살리려다 우리가 죽어. 자네가 말한 그 55년 체제가 더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 말에 미야자와 대장대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때는 늦습니다. 총리. 지금 금리를 올리지 못한다면 후에는 악성채권들을 정리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막을 수 있을 거고, 그 공적 자금을 투입힐 시기조차 놓친다면 일본은 이대로 침몰입니다."
"고마츠 사쿄(소설 '일본 침몰'의 작가)로군."
"소설에 비유한게 아닙니다. 진짜 있을 현실입니다."
"그래서 경착륙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리자는게 말이 된다고 보나? 애초에 대장성에서 그리 발표를 한다고 하세. 그럼 누가 좋은건가? 사회당? 공산당? 모르긴 몰라도 우리 자민당엔 좋을 일이 없을게 아닌가."
"국민이 좋지요. 국민이!"
그렇게 미야자와 대장대신이 목소리를 높이자 나카소네 총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군."
"뭐가 재미있습니까?"
"자네가 국민을 운운하니 말이야."'
"예?"
미야자와 대장대신의 되물음에 나카소네 총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국민을 운운하는 사람은 자네 뿐이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일본인 특유의 빙빙 돌려 말하기.
그러나 그 뜻을 모르는 바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전부 리크루트로부터 뒷 돈을 받아먹은 사람들인데 퍽이나 깨끗한 척을 하는군. 미야자와. 그리 국민이 걱정되면 이 자리에 있으면 안되지.'
나카소네 총리의 발언이 담긴 속 뜻.
그 뜻을 읽은 미야자와 대장대신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에 담긴 쿠우키(空氣)를 읽은 나카소네 총리는 그저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그 김 회장이라는 작자를 어떻게 구워삶을지. 그거나 이제 이야기를 해보지. 이건 얼마전 개편된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보내온 김회장에 대한 자료일세. 꽤 대단한 인재더군. 아비도 모르는 비루한 출생인데도...말이지."
그렇게 어색한 공기를 흩어낸 이들은 김태준을 어떻게 상대할지, 또 어떻게 이용할지를 두고 한참이나 회의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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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9월 21일.
타케미치 변호사를 통해 들어온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대신과의 면담일정이 다가왔다.
외국인.
학생.
기업인.
그리고 한국인.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에 속하는 모든 사회적 낙인들을 가진 입장이었기에, 나는 별 수 없이 미야자와 대장대신 보다 1시간 먼저 약속장소인 긴자의 예약제 스시야(초밥집)에 나가있었다.
그렇게 빈 속에 물만 채워넣으며 미야자와 대장대신을 기다린지 1시간 반쯤 지났을까.
대장대신이 방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야자와 기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