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1화 (11/200)

011. 랜더스 투자운용 (3)

"오랜만입니다. 지점장님."

"아! 김회장님. 한국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예. 일정이 좀 있어서. 일정이 바빠서 선물은 준비 못했습니다."

"생각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리셉션 홀에 내려온 나는 단상과 제일 가까운 자리로 이동하며 도쿄 지점장 모임의 일원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인사치레를 길게 하는 것 자체를 전생에서부터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 챙겨야지. 저 사람들이 다 돈인데.'

좋아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의무와 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었기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폈다.

그렇게 하나 둘 인사를 하며 자리에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직원들이 사전에 안내받은대로 상품 설명서를 하나씩 자리에 놓기 시작했다.

[랜더스 투자 운용 종합 상품 설명서]

- 인버스 / 레버리지 / CDS

나는 이미 몇번이고 검토한 자료들이 담긴 설명서를 받아 툭하고 자리에 놓고는 공식적인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되고,

"안녕하십니까. 랜더스 투자운용의 오오와다 타이조 사장입니다."

오오와다가 단상에 올라오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김회장이 직접 발표하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김회장이 대표가 아닌 것 같지?"

"오오와다라... 그 오오와다인가?"

"그 오오와다라니. 아는 사람이요?"

"아니. 아니겠지. 그 오오와다가 뭐가 아쉬워서 노무라를 등지고."

그렇게 웅성거림과 술렁임을 배경음악 삼아 시작된 오오와다의 발표는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유래없는 호황기입니다. 전후, 아니 일본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오오와다의 주의 환기와 함께 웅성거리던 소음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허나, 어느 사회, 어느 시대든 음모론자들은 있기 마련. 그런 음모론자들의 자금을 조금이나마 회수할 방법이 바로 이 인버스 펀드 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회장의 거의 대부분이 집중하여 듣는 모양새가 되었다.

"저희 랜더스 투자운용은 닛케이에 올라와 있는 모든 회사의 선물시장을 분석하여 닛케이지수가 떨어지면 돈을 버는 구조의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했습니다!

또한! 작금의 호황기에 더 큰 투자, 더 많은 이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을 위한 레버리지 상품도 출시했습니다. 기존의 인덱스 펀드와 마찬가지로, 닛케이를 추종합니다만, 이 상품의 경우 지수가 오를때에는 두 배, 지수가 내릴때도 두 배씩 움직입니다.

상세한 구성은...."

거기에 더해 당장에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상품이 튀어나오자 이내 지점장들과 함께 온 (아마도 증권운용부 출신일) 행원들이 필기를 하거나 주먹보다 큰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변화를 보며 타케미치에게 짧게 촌평했다.

"생각보다 잘하는 군요. 대놓고 음모론자 운운하는 것은 영 보기 좋지 않지만..."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어제부터 고민을 많이 하더군요. 어떻게 설명해야 은행을 구워삶을 수 있을지."

"그렇습니까?"

"예. 해서 그렇게 말해줬습니다."

목적어도 없이 툭 하고 던져진 타케미치의 말에 나는 호기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회장님을 따라해라."

이어진 대답에 나는 희미하게 지은 미소 그대로 얼어붙은 채 간만에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예?"

그런 내 반응에 타케미치 변호사는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회장님의 화술은 일본인이 아니라 상당히 직설적이신 편이시죠. 돌려서 말씀하시는 법이 없고 언제나 노골적일 만큼 명쾌합니다.

그런데도 전혀 불쾌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뭔가 개안한 기분이 들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건 회장님 스스로가 스마트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직설에 감정 대신 진실과 진심을 담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자연히. 그 말에는 사람들을 이끌고 매혹시키는 마력이 있습니다."

꽤나 장황하고 과장된 말.

그 말에 나는 스쳐가는 당혹감을 갈무리하고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아 말을 이었다.

"오늘따라 아부가 심하군요. 타케미치 변호사."

"아부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일본인들은 칭찬도 가르침도 인색하거든요. 그리고 그렇기에 진심으로 솔직하게 가르침을 내려준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회장님의 화술은 상대를 설득시키기 좋다고 판단했고, 그랬기에 오오와다에게 따라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타케미치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타케미치의 고평가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타케미치의 이런 반응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다시금 침묵하자 타케미치가 조용히 다시 말해왔다.

"주제 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생각한 것 이상의 고평가에 놀랐을 뿐입니다."

그렇게 타케미치와의 잡담이 끝나감과 동시에 오오와다의 프레젠테이션 역시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여기 CDS.... 그러니까 신용부도스왑에 대해서는 아직입니까?"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순간 흔들리는 오오와다의 표정을 보며 나는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여주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CDS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오오와다 대신 내가 발표에 나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영업까지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CDS라는 상품을 처음 듣고 설계해보기 전의 오오와다를 전제로 한 계획.

지금의 오오와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오오와다가 따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던건... 그놈의 쿠우키(공기)를 읽은 탓이겠지.

그리고 그 공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내가 과연 기술적인 부분까지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일테고.'

내가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대략적인 구조도 내가 알려준 대로 짠 것이지만,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금융업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

당연히 방금 전과 같이 인버스나 레버리지 상품의 구조처럼 세부적인 질문들이 오갈 수 밖에 없다.

오오와다는 그 질문들을 상품을 설계한 것도 아닌 내가 답할 수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본인 발표가 생각보다 호응이 좋은 탓도 있겠지. 뽕에 가득찬 저 표정을 보면.'

그렇게 내 끄덕임을 보았는지 오오와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늘 행사의 핵심이기 때문에 잠시 휴게시간을 가진 뒤에 발표가 있을 예정이오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CDS에 대한 이야기를 넘긴 오오와다는 인버스와 레버리지에 대한 질문을 더 받고는 휴게시간을 고지했다.

그렇게 휴게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회장이 칼을 갈았군."

"그러게 말이야. 오오와다라니. 노무라의 신성을 어떻게 데려온 거지?"

"캐스팅도 캐스팅이지만 상품도 노무라 스타일이 전혀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노무라 스타일이었다면 레버리지 정도가 한계지. 절대 안팔릴 상품은 구색으로도 안놓으니까. 인버스는 진짜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팔릴지 안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은근히 알짜인데... 우리쪽은 어렵겠지."

"여기 모인 은행 전부 판매 불가지. 우리가 지금 팔고 있는 상품이랑 너무 배치되니."

"증권 운용부가 없는 지방은행만 노났군. 그쪽은 이미 방카슈랑스도 하고 있으니 창구인원 교육해서 팔면 그만이기도 하고."

"아직 CDS인지 뭔지 하는 상품이 남았으니 지켜봐야지. 사업설명서에서도 그렇고 오오와다 본인의 말도 그렇고 그게 오늘 핵심인거 같은데."

그렇게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에 집중하며 반응을 살피던 그때, 오오와다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일단 흐름은 좋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오와다 사장. 본인이 다 하려던 것 아니었습니까? 아까 고민하는 것 같던데."

"그게...."

"애초에 상품설계는 오오와다 사장이 했으니 발표도 오오와다 사장이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제가 하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그건 오오와다 사장이 자신이 없어보였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설계자도 아닌 제가 전면에 나설 이유가 없지요."

"그럼...."

"오오와다 사장이 직접 하세요. 백업이 필요하면 그때 내가 나서겠습니다."

그렇게 눈치를 보는 오오와다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며 발표 허가를 내준 나는 조용히 타케미치 변호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분위기는 좀 보셨습니까?"

"예. 다들 흥미롭다는 분위깁니다. 지방은행쪽에서는 벌써 회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한 쪽도 있었습니다."

"창구특판 관련 제휴를 문의한것이군요."

"예. 해서 일단 제휴관련 문의는 랜더스 투금쪽에 정식요청하라고 안내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제가 아는 바가 없으니 그리 대답하는 수 밖에요. 혹시 따로 생각하신 것은...."

"따로 제가 지시할 것은 없습니다. 애초에 잘 굴러가고 있기도 하고."

"그럼 예정대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아, 그건 오오와다 사장이 할 겁니다. 저는 뒤에 빠지구요. 뒤에서 지원사격만 할 생각입니다."

"계획이 바뀌었군요."

"예. 오오와다 사장도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고. 믿고 맡겨보려 합니다."

말이 좋아 믿고 맡기는 것이지, 나쁘게 해석하면 상품의 책임 소재를 전부 오오와다 사장에게 떠밀겠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 말.

실제로도 어느정도 그런 '나쁜 의도'를 고려하여 꺼낸 말이기도 했다.

'물론 부하 팔아서 살아남을 정도까지 몰릴 정도로 허술한 계획은 아니지만...'

그런 내 말의 진의를 아는지 모르는지 타케미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적으로 말해왔다.

"그렇군요. 그럼 사회측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 태도에 나는 괜히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선선히 받아들이니 기분이 묘하네. 혼네, 다테마에를 본능적으로 구분하는 일본인이라 한 마디 반발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깔려있어서 그런가?'

그러나 그뿐. 일은 일이었고, 결정은 결정이었기에 나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오는 관련 면담도 오오와다 사장을 통해서 진행해주시죠. 단, CDS관련해서 은행간 협약은 제게 먼저 승인을 받은 뒤에 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잠시간의 휴게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작된 프레젠테이션.

만반의 준비를 마친 모양인지, (티날 정도까진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아까보다 더 흥분한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오오와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CDS, 쿠레짓토 데포르토 스와푸, 신용부도스왑.

생소한 개념이실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간단합니다. 보험입니다.

채권이 부실화 되면 원금은 어떻게 보증받을 수 있을까요?

보통이라면 그저 채권자가 손해보고 끝나는 이야기겠지요. 아, 물론 채무자도 곱게 끝나지는 않습니다만...."

"하하하하"

오오와다의 농담섞인 말을 시작으로 드디어 이 세상에 CDS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즉, 이 상품의 경우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팔고 계신 각종 채권이 망하면 돈을 버는 상품인 것이죠. 그리고 이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CDS의 설명을 들은 누군가가 작지만 명료한 목소리로 평하는 것이 들려왔다.

"이거 완전..... 돈을 털어먹는 사기잖아..."

그리고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은 회장의 사람들이 흥분감을 감추지 않으며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당장 토오도리(頭取 : 은행장)께 전화 연결해! 어서!"

"음모론자들 돈 털어먹을 최고의 기회...!"

"이거면 타이밍 잘 잡아서 포지션 변경이 가능하겠군."

"지금 시점에서 프리미엄 수치를 계산해보면..... 순 이익률이 23%?! 대충 한 단순 계산이지만.... 이건 미쳤군."

그렇게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진 도떼기 시장을 보며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오와다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런 내 모습에 오오와다가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푹 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랜더스 투자운용 사장 오오와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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