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랜더스 투자운용 (2)
태준이 일본 경제를 먹어 치우기 위해 부린 전략들은 역사 자체를 비틀어 놓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원 역사에 없었던 것을 대뜸 미래에서 가져와 박아넣은 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가 없이 끼워진 태준의 전략은 그 흐름상 일본 경제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결과로 향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그렇듯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준조차 예상치 못했던 그 장점은, 바로 일본 금융가의 기술적 발전이었다.
태준이 은행을 부추겨 탄생한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부동산담보대출 저당 증권)는 노무라증권에게 영감을 주어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 부채담보부증권)를 탄생시켰고,
이 CDO를 본 수많은 투자은행들과 증권사들은 또 다시 주택과 부동산 대출을 기반으로 한 MBS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CBO(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s ,채권담보부증권)들을 온갖 채권에 적용해 CBO-(채권종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더해 한술 더 떠 MBS가 부동산을 담보로 한 채권의 '권리'를 파는 것이라는 것(즉, 채권할인)에서 착안해 부동산의 임대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증권화 하여 파는 ABS(자산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각종 파생상품의 등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금융 상품들을 배껴오기 급급했던 일본 금융시장을 한 순간에 금융의 성지, 선진 금융 시장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주었고...
"금융을 배우려면 일본으로 건너가야지."
따위의 말이 그 콧대 높은 미국의 금융시장에서도 들려올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은....
- 1억 중산층 시대를 넘어, 1억 상류층 시대가 곧 열리는가
따위의 제목을 가진 국뽕 기사를 너나 할 것 없이 쏟아내는 것을 넘어,
- 일본이 돌아왔다 ; 고도로 계산된 선진 금융 상품의 요람
따위와 같은 논문을 한 없이 넘쳐나는 돈으로 세계의 석학들에게 던져주며 쓰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진상이라는 것은 태준이 이 세계에 개입하기 전 원 역사에서 처럼, 아니, 어쩌면 더욱 참혹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작금의 일본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행에서 집 또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온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생긴 채권들을 묶어 만든 거대한 집합체인 MBS를 잘게 쪼개 주식화 시켜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각 은행들의 MBS를 노무라증권이 골고루 사들여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회사채와 국채)과 묶어 만든 거대한 집합체인 CDO를 잘제 쪼개 주식화 시켜 주식시장에 상장,
이를 본 수많은 투자은행들과 증권사들은 회사채와 국채 뿐만 아니라 결제 어음, 무기명 채권, 개인 사채까지 사들여 거대한 CBO를 만드는 상황.
바야흐로 파생상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 어떠한 통제장치나 규제 없이.
이렇게 미쳐버린 파생상품의 시대 속에서 그 자금의 근원이 되는 일본의 부동산 시장은 점차 미쳐가고 있었다.
대출을 해주고 그 원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그 만큼 대출 가능액이 줄어야 했지만, MBS라는 파생상품이 원금과 할인된 이자를 순식간에 회수할 수 있게 해주니 은행의 대출 가능액은 점차 늘어만 갔고,
그렇게 불어나기 시작한 대출액은 고스란히 그 기반이 되는 부동산 시장과 각종 파생상품으로 연신 빨간불이 켜져있는 주식시장으로 들어가니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가 연신 상승세를 보이는 듯 했다.
자연히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이 성공했다는 생각에 더더욱 저금리를 강하게 밀어 붙여나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태준이 살다온 전생 속 일본은 이 시기 금리를 2.5%선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준의 개입 이후, 미친듯이 팽창하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시장의 뽕에 취해버린 지금의 일본은 '증명된 정책'이라며 기준 금리를 1.5%까지 추가로 더 떨어뜨려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한 달 사이에 벌써 부동산 가격이 30%이상이 올랐다고?!"
"그렇다니까! 부동산을 안사면 바보되는 세상이야. 백날 일해서 번 돈 보다 한 달 사이에 번 돈이 더 많은데."
"그것도 있는 놈들이나 사는 거지."
"아닌데? 은행 가봐. 살 땅만 구하면 대출은 그냥 나오는데 무슨. 내 친구는 부동산 산다고 대출 받아서 노무라 CDO랑 CBO-C샀는데도 문제 없다고 했다더라. 걔 심지어 백수인데 그랬다니까?"
소득이 불안하거나 없어도, 자산이 없어도, 심지어 직장이 없어도 대출을 해주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오와다가 만들어 가져올 신규 투자상품을 기다리던 태준은 이와 같은 현상에 짧게 촌평했다.
"이른바 닌자 대출이로군."
참으로 일본에 잘 어울리는 촌평. 그 촌평에 타케미치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No INcome, no Job, no Asset. 줄여서 닌자대출 이지 않습니까."
"그도...그렇군요. 뭐 은행에서 생각 없이 대출을 해주진 않았을테니까요. 안심해도 되겠지요."
태준의 촌평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타케미치 변호사는 일본인 특유의 집단주의적 순수함에 잔뜩 물든 대답을 하고는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런 대꾸에 태준은 그저 웃으며 말을 아낀채 다시 서류를 보며 생각했다.
'은행은 생각 자체를 안하고 있을 겁니다. 자산이 매일 매일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준의 예상대로 은행은 더 많은 MBS를 발행하는 것에, 증권사는 더 많은 CDO를 발행하는 것에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번 할당량 다 채웠어?!"
"아직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거야! 엉! 대출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야 할거 아냐!"
"하지만 더는 대출을 받을 사람이 진짜 없습니다."
"없긴 왜 없어! 투자가들 있잖아! 그 투기꾼들!"
"그 사람들은 이미 다 고정 거래 은행이 있어서...."
은행에서는 MBS를 찍어내기 위해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집을 사라며 대출을 해주는 수준이었고,
"다음은 신상품개발1부의 하쿠 부장입니다."
"이번 상품은 CDO끼리 묶어서 만든 2차 CDO로서 안정적인...."
증권가에서는 이미 MBS와 CDO들의 집합체인 CBO들을 다시 사들여 묶는 2차, 3차 CDO를 만들어 내는 것을 주 상품으로 찍어내 만들어 냈다.
그런 상황 속.
금융가를 강타한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 신생 운용사에서 사업제안서를 보내왔습니다."
"뭐야? 그런건 대충 넘겨!"
"그게...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지점장님께서 말씀하신 VIP분께서 핵심 멤버로 들어가 있는 투자운용사인것 같아서..."
"랜더스 플랜 회장 말하는거야?"
"예."
"이리줘!"
- 랜더스 투자운용 신사업설명회
겉봉에 그려진 랜더스 마크.
그것을 본 각 은행의 지점장들은 서로 다른 은행, 서로 다른 시간에 있었음에도 마치 짜기라도 한 것 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사방팔방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그 전화의 내용을 잠시 들어보자면....
"받으셨습니까?"
"지유가오카 지점에도 왔습니까?"
"예. 슬쩍 연락을 돌려보니 지난 번 모임 인원에 지방계 은행 점장들 정도만 초대된 모양이더군요."
"김회장이 이번에 또 뭔가 판을 벌리려고 한다라.... 초대장에 적힌 장소를 보니 지난 모임장소가 아니라 힐튼 호텔인 것도 그렇고... 지난번 도쿄은행점장 모임을 중심으로 초대장을 보낸 것도 그렇고... 우리와의 인연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조센진이니 어쩌면 더 인맥에 목을 매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김회장이 일본땅에 인맥이 뭐가 있겠습니까. 뭐.... 전에도 김회장의 제안이 꽤 짭잘했으니 이번에도 가는 편이 좋겠지요."
"그야 그렇지요. 아, 그러고 보니 본점으로 곧 영전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하.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니시카와 지점장 보다 빨리 기안한 덕분이지요."
"우리가 다른 은행이라 다행이군요."
"하하. 별말씀을."
태준을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한 대화 뿐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러한 결과를 원했던 태준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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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다 됬습니까?"
"예. 갑작스럽게 그렇게 초대장을 발송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오와다 사장이 내게 세 묶음의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 당혹감이 담긴 말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원래 놀기를 좋아하니까요."
"예?"
"마감이 있어야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초대장 전부 발송했다는 말에 이렇게 하이-퀄리티의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오시지 않았습니까."
".... 과연. 그렇군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오오와다를 보다 괜히 어색해진 나는 서류를 쓱쓱 넘기며 말을 이었다.
"레버리지, 인버스... 이건 뭐 개념적으로 명확한 것이라 딱히 어렵지 않았을테고... CDS(신용부도스왑)쪽은 전공분야가 아니라 꽤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구조를 한 번 제 앞에서 브리핑 해보시겠습니까?"
내 말에 오오와다가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자신이 설계한 신용부도스왑의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서 지급보증은행의 명의로 CDS를 발행하고, CDS를 산 사람에게 변동 프리미엄을 적용하여 보험료를 수취하는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당연히 그 보험에 대한 운용은 저희쪽에서 맡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바꿔야겠군요."
"어떤..."
"보험료로 만들어진 기금 자체는 우리 쪽에서 운용하는게 전략적으로 당연하지만, 그 운용 기한을 한 달로 짧게 잡는 편이 좋겠습니다."
"한...달 말씀이십니까?"
"예. 그래야 나중에 탈이 안납니다. 그달 들어온 보험료로만 운용하고, 운용비용만 제한 다음 지급 보증 은행으로 전부 넣어주는 방식으로 변경하죠."
"어째서... 그렇게 하면 기금 규모가 예상보다 확 줄어버립니다."
나도 알고 있다.
다만, 오오와다가 모르는 한가지.
그것은...
'일본이 곧 망한다는 거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역사보다 더 빠르게 망할 수도 있어.'
일본이 망조가 들렸다는 것이다.
제로금리에 가까운 1%대 기준금리.
이것은 일본 산업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을 넘어 일본의 물가를 천정부지로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받는 것은.
일본 경제의 최하층.
대부분의 서민들.
'버블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일본인 특유의 전범찾기를 해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치권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자신들의 실책을 덮으려고 별 수를 다 써 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타깃은 고위험 상품을 만든 내가 되겠지.'
그러니 책임은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란 망하고 나면 남탓을 하기 마련이고, 어느나라나 그런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일본은 그런 방면에서는 알아주는 나라인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계약 상으로나 설계 상으로는 분명 지급보증은행이 지급을 해주는 방식으로 되어있으니 우리쪽 자금이 발이 묶일 이유는 없지만, 버블이 붕괴되면 계약 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각 지급보증은행은 지급금을 지급하기 위해 우리쪽 운용자금을 비싼 수수료를 주고서라도 회수하려 들 것이고,
우리 역시 버블이 꺼진 이상 운용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유동성 부족에 따른 손실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손실 이상의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은행-도쿄지검-법원-일본 내각 이 넷이 묶인 카스미가세키(일본 행정관청지구, 일본의 중심부이기에 관례적으로 핵심권력층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파벌이 연달아 우리쪽에 책임을 씌우려 들 것이다.
그런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은행들의 밑에서 일을 했을 뿐이라는 하청 이미지를 가져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돈을 다 운용하려는 건 욕심이지요. 실재하지 않는 위험이라도 어쨌든 지급보증을 한다는 점에서는 은행이 위험을 대신 짊어지는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명의라고는 하지만 그 돈을 구경도 못해보고 우리에게 맡기라고 하면 은행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거기다 우리는 신생이지 않습니까.
최대한 많은 은행을 지급보증은행으로 삼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계산을 마친 나는 속내는 숨긴채 표면에 떠오른 이야기로 오오와다의 작은 반발을 억누르고는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듣고보니 그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눈먼 돈이라 욕심이 나기는 하겠지만, 소탐대실하진 맙시다 우리."
그렇게 오오와다에게 간단하게 구조 수정을 하라 지시하고 내보내자 마자 각 은행의 지점장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미쓰이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로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전에는 후지, 도쿄에서도 연락이 왔었답니다."
"초대장을 받아본 모양이네요."
"예. 이틀전에 보냈으니 지금쯤 다 도착했을겁니다."
"당분간 저한테 오는 전화 연결하지 마세요. 적당히...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전해두세요. 일주일간은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끄러운 전화 벨소리(실제로는 호텔 로비를 통해 전화가 연결되었기에 내가 전화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다.) 속에서 나는 침묵을 지키며 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지 일주일이 지난 뒤.
내가 머무는 호텔 객실.
"회장님 가실 시간입니다."
오늘을 위해 내가 특별히 신경 써 맞춰준 양복을 입고 나타난 타케미치가 들어오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타케미치를 보며 손목에 걸린 롤렉스를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오오와다 사장은 아직입니까?"
"예. 차가 막히는 모양입니다. 초대하신 귀빈분들은 다 오셨답니다. 발표는 늦추더라도, 응대는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오늘 주인공은 오오와다 사장인데 제가 더 주목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한계까지 객실에서 기다린 끝에 오오와다가 헐레벌떡 도착해 외쳤다.
"죄..죄송합니다! 갑자기 사고..."
나는 늦은 것에 대한 변명을 하는 오오와다를 보며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준비는 다 됬습니까?"
"예."
"오오와다 사장. 나는 오오와다 사장이 준비 다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말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가죠."
'일본 털어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