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6화 (6/200)

006. 긴자 프로젝트 (1)

"그거라면... 어렵지 않군요. 신주쿠, 시부야를 빼면 거의 대동소이 하거든요. 그나마 싼 곳이라면.... 이케부쿠로 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머지는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이케부쿠로는 아직.... 근교까지 확장한다면, 치바나 사이타마, 가나가와, 타마도 아직은 쌉니다."

변호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치바나 사이타마, 가나가와, 타마는 상업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온건한 거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치바나 사이타마, 가나가와는 훗날 도쿄 근교의 위성도시로 성장하는 지역이지만, 어디까지나 위성도시일 뿐이었다.

'치바를 고른다는 건.... 우리나라로 치면 개발 전 강남 땅 살 돈으로 분당이나 판교땅... 아니지, 어쩌면 일산 땅을 사는 느낌인건데... 굳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나 내 온건한 거절에도 변호사는 끈질기게 설득에 들어갔다.

"이케부쿠로도 상업지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주택입니다. 이케부쿠로 역이랑 세이부 백화점... 그리고 사창가랑 술집이 역 서쪽으로 쭉 이어져 있고 동쪽은 그냥 주택지입니다."

결국 나는 그와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애초에 내가 고용주인 만큼 견해차를 좁힐 필요도 없지만)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조언을 일축해버린 뒤 '명령'을 내렸다.

"이케부쿠로 동쪽 지역의 땅 중 역과 가까운 땅 위주로 매입하세요. 아, 기왕이면 땅이 넓었으면 좋겠군요. 기왕이면 말이죠. 경비는 모두 법인에서 충당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법인 명의로 땅을 사시구요. 일만 잘 해주시면, 연봉으로 3천만엔 드리겠습니다. 제 법인의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제 전속 변호사가 되어주신다면 말이죠."

"....3천만엔...말씀이십니까?"

"예. 매입 비용으로 10억엔까지 써도 좋습니다. 뭐... 잘 안되어도 3년은 변호사님을 고용할 수 있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변호사를 통해 이케부쿠로의 부동산을 법인명의로 사들인 나는 그 이후 다시 때를 기다리기만 했다.

그렇게 3개월 뒤.

통성명도 하지 않고(물론 고용계약을 체결하며 쓴 계약서가 있으니 변호사의 이름이 타케미치 노시히코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고용한 변호사를 백수로 놀리며 매월 250만엔씩 지급하던 기간이 지나고....

86년 1월 30일.

드디어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를 4.5%로 인하하기로...."

간단한 단신.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딱히 신경도 쓰지 않을 이 뉴스가 내게는 달리기의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달려 나갈 건 아니지."

벌써부터 달려 나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플라자 합의가 왜 생겼던가.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일본의 연비 좋은 자동차를 필두로 소니의 워크맨 등등 각종 일본산 제품이 미국의 대일무역 적자폭을 크게 늘려놓으면서, 미국 경제 자체가 흔들리자 생긴 합의였다.

서독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를 절상함으로써 미국의 적자를 보전해주고, 세계경제를지탱하겠다는 G5(미,영,프,독,일)의 결정.

그 결정의 피해자가 된 독일과 일본은 더 많이 기준금리를 내려 내수로 버티려고 들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애들이 버블 터지고 난 뒤에도 뻑하면 입버릇 처럼 하던 이야기가 '우리는 내수시장이 커서 버틸 수 있다.'라는 개소리 였으니까. 특히 더 그렇겠지."

그러니 지금은....

"더 기다린다. 3%대에 진입하면.... 대출을 받아서 땅을 더 사고, 그 아래로 떨어지면 전환대출을 받은 다음, 추가 대출을 받고...하는 식으로 움직이자."

기다릴 때였다.

그렇게....

1달 하고 10일이 지난 3월 10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4%로 인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플라자 합의 이후 둔화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내수시장 진작을 위한..."

예상 대로 다시 한 번 금리 인하가 단행 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1달 하고 10일 뒤인 4월 21일.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를 추가로 0.5%p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기준 금리는 3.5%대에 진입하였다.

그 뉴스가 나오자마자 나는 곧장 법인 서류와 토지서류를 챙겨들고 곧장 은행들을 돌기 시작했다.

"담보대출을 받고 싶습니다만."

"담보 물건은 있으십니까?"

"여기 법인 명의의 대출을 받으려 합니다. 담보는 이케부쿠로의 토지로 하지요."

"얼마나 대출을 받으시려고 하십니까?"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이자율 8%에 담보 인정비율은 90%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생각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첫 은행에서 먼저 조건을 듣고,

"스미모토 은행에서는 이자율 8% 담보인정비율은 90%라는데, 다이이치칸은 얼마나 해줄 수 있습니까?"

"저희쪽은 이자율 7.5%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인정비율은 95%까지 해드릴 수 있구요. 어차피 땅이란 건 오르기 마련이니 저희 쪽에서 실사를 한다는 조건으로는 100%까지도...."

다음 은행에 흥정을 건다.

그렇게 도쿄, 산와, 도카이, 미쓰비시를 돌고 나니....

"저희 은행에서는 이자율 6%, 담보 인정비율은 추후 지가 상승분까지 고려하여 130%까지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조건으로 대출을 받도록 하죠."

10억에 산 땅(현재 지가는 12억엔가량이었다.)으로 15억 6천만엔의 자금을 추가로 수혈받을 수 있었다.

나는 수혈받은 돈으로 다시금 타케미치 변호사를 통해 다시금 이케부쿠로의 땅을 12억엔어치를 매수하고 이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틈만 나면 땅을 사고, 대출을 받기를 반복한지 수개월이 지나.... 87년 2월이 되자.

"어서오십시오. 김 회장님. 오늘도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오셨습니까?"

어느새 내 호칭은 사장에서 회장이 되어있었고, 가는 은행마다 지점장들이 나를 상전 모시듯 깍듯이 인사하며 맞이하기 시작했다.

"예. 이번에도 금리 인하가 된다는 소식이 들려와서요."

"하하... 맞습니다. 이럴 때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는게 바로 사업이죠. 요새 일반인들 사이에도 재테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정도니까요."

"다들 빠르게 움직이는군요."

"김회장님 만큼 빠르게 움직이시는 분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이 늦은 편이지요."

"그래도 금리가 인하되었으니 지금이 오히려 적기 아니겠습니까. 저같은 경우에는 너무 빨리 시작해서 이자만 얼마나 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렇지요. 하하하..."

나는 너스레를 떠는 지점장을 보며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제가 이번에 꽤 좋은 생각을 하나 했습니다. 어떻게... 들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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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점장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오자 기다리던 타케미치 변호사가 내게 다가와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법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밑에서 일할 펀드 매니저는 구했습니까?"

"애초에 투자운용사는 펀드 매니저 없이는 못굴리지 않습니까. 제 도쿄대 동기 중에 노무라 증권 운용부 출신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연봉은 얼마나 달라던가요?"

"5천만엔입니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도 그럼 그 정도 받아가셔야겠네요. 이번 달 부터 연봉 5500만엔으로 하죠."

"가...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앞으로도 이렇게 열심히만 해주세요."

그렇게 보고를 듣고 나름의 포상까지 마친 나는 곧장 타케미치 변호사에게 말을 이었다.

"변호사님은 투자 좋아하십니까?"

"저는 사업가 스타일은 아니어서요. 그냥 회장님께 받는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회장님만 따라 가면 월급으로도 충분히 고액연봉을 달성하기도 하구요."

나는 그 말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저런."

"왜... 그러십니까?"

"이번에 꽤 재미있는 모임에 대해 알게 되어서요."

"재미있는... 모임 말씀이십니까?"

"예. 도쿄에 있는 각 은행 지점장들이 모이는 모임이라던데... 꽤 흥미로운 모임입니다. 만약 투자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시면, 함께 가자고 권유하려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투자 매입건 관리만으로도 이미 과로중이라서요. 적어도 퇴근 후에는 집에서 편히 쉬고 싶습니다."

"그러십니까."

그렇게 타케미치 변호사에게 퇴짜를 맞은 나는 그날 저녁.

미쓰비시 은행 지점장 타카하시의 초대로 각 은행 지점장들의 모임에 나갔다.

"다들 아는 얼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이번에 제가 초대를 했으니 정식으로 다시 한번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건너온 부동산 사업가, 김태준 랜더스 플랜 회장입니다."

타카하시 지점장의 소개와 함께 회장에 모인 수십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 짝짝짝

나는 그런 그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와 함께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타카하시 지점장님의 소개로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게된 김태준 랜더스 플랜 회장입니다. 뭐... 한국에서 건너왔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학 학부도, 석사도 전부 미국에서 딴 미국계입니다. 지금은 도쿄대 전산학과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구요."

"하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김회장님께서 어디 그런 후진국에서 오셨을 리가 있나!"

'실컷 웃어라. 머저리들. 너희가 웃고 즐기는 만큼 내가 털어먹을 돈이 늘어나는거니까.'

그렇게 그들이 원하지 않는 출신을 숨기고 원하는 정보를 부각하며 (덤으로 친일인사라는 시각까지 더해줌으로써) 그들의 경계심을 한껏 낮춘 나는 곧바로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할 틈이 없도록 몰아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온 만큼. 오늘 든 모든 비용은 제가 전부 대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고급 요정과 술집이 즐비한 도쿄의 긴자.

그 긴자(銀座)에서 진짜 은(銀)을 넘어 금(金)으로 도배를 한 듯한 이 고급 요정에서의 비용을 전부 대겠다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호스티스 불러!"

"오늘은 김회장님이 전부 내신다고!"

"예예! 마음껏! 마음껏 즐기십시오!"

호구를 물었다고 생각한 지점장들이 부른 여자들과도 (내키지는 않지만) 잘 노는 모습을 보여주며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자,

"회장님! 여기 잔 받으십시오!"

"어허! 이 사람! 한국어로 해야지 한국어로! 요기 바도시브시요!"

"아니지! 영어가 더 편하시지 않겠나?! 에...또..."

"푸하하하학....! 이봐!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 영어로 하겠다고!"

지점장들이 내게 잘 보이기 위해 저마다 사투에 가까운 똥꼬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똥꼬쇼를 조용히 감상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순간의 유희의 광풍이 스쳐지나가고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주변이 서서히 조용해지자 나는 타카하시 지점장을 쓱 하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듯한 모습을 보이던 미쓰비시 은행 지점장 타카하시가 이내 맥주잔에 얼음을 잔뜩 말아 한 번에 들이키고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소리치듯 말하기 시작했다.

"흠흠. 여기 김회장님께서! 이번에 우리를 위해 새로운 사업을 하나 구상하셨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업?"

"자세한 건! 그러니까....! 여기 김회장님께 들어봅시다!"

그렇게 타카하시가 판을 깔아준 덕에 반쯤 술에 취한채 단상에 올라선 나는 한 손에 술잔을 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타카하시 지점장님께서는... 들으셨던 내용이라 지루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참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모두의 동의를 얻어 시작한 발표회.

그것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그들의 업적이 될 전설의 시작이자.

일본 경제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게 바로 제 2차 맨하튼 프로젝트... 아니, 일본 긴자니까. 긴자 프로젝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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