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5화 (5/200)

005.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렇게 10억이라는 돈을 전부 달러로 바꿔서 떠난 미국에서 지낸지 6년.

그 동안 나는 지극히 평범한 축에 속하는 동양인 A로 살아갔다.

학교를 다니고, 빈 시간에는 핫도그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패션잡지 에스콰이어에서 동양인 모델로 가끔씩 스튜디오 출사를 나가곤 했다.

돈은 없고, 얼굴과 몸매는 좀 괜찮은 전형적인 동양인 유학생의 삶이었다.

자연히 그렇게 번 돈은 모두 학비와 생활비로 나갔고, 당연스럽게도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고생하네. 동양인이 여기까지 와서....'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막은......

"4,972,371 달러라..."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현재 내 평가잔액은 정확히 4백 97만 달러.

85년 기준 대략 44억 정도.

이유는 당연히 IBM을 사두고 존버한 덕분이었다.

알바부터 온갖 잡일을 하며 남은 돈까지 모두 계속 IBM만 주구장창 산 것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14달러 초반에 사서 1985년 08월 26일 기준 32.06달러에 팔았으니(물론 전량을 한번에 판건 아니었고, 며칠간 쪼개서 팔았다.) 벌지 못할래야 벌지 못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환율도 저 올때랑은 많이 달라졌잖아요? 올때만 해도 400원대였는데 지금은 거의 900원 가까이 오지 않았어요? 그 덕도 좀 봤죠. 하하."

그리고 이러한 내 기행을 미국까지 오셔서 보고받은 할아버지, 김두혁 회장의 반응은....

"미친놈....."

"뭘 그렇게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돈쓰러 간다고 하더니 한다는게 주식이었냐!"

"뻔히 돈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식만이 아닙니다! 저 컴퓨터 공학 석사까지 전부 땄다구요. 미국이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아십니까? 그건 전부 제가 벌어서..."

내 말에 김두혁 회장이 손을 휘휘 젓고는 말을 이었다.

"주식을 살거면 국내에서 사도 되잖냐."

"그러면 자잘한 세금이랑 수수료가 크게 붙지 않습니까. 미국은 증권거래세 같은건 없고, 제가 직접 객장에서 매입하면 수수료도 적으니 당연히 미국에 와야지요."

"그래. 너 잘났다. 어차피 양도소득세는 내야하는데 그 알량한 푼돈 아껴보겠다고 고생하는구나."

"양도소득세도 최소한으로 절세 했습니다. 떨어질때 다시 팔아서 손실 처리하고 다시 그대로 샀거든요. 아마 1/10정도까진 줄였을걸요?"

"미친놈..... 석사까지 따면서 언제 그런걸 공부했는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래서 이제 슬슬 들어올테냐?"

나는 김두혁 회장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지금 들어가면 저 진짜 죽을걸요? 그 새끼 본처가 제 존재를 알았다면서요."

"저저.. 지 애비를 두고 새끼니 어쩌니. 말 뽄새하고는."

"쨋든 한국엔 당분간 안들어갈겁니다. 그 새끼 본처... 그러니까 노영숙? 그 여자 정두황 대통령 측근 노태호 의원 여동생 아닙니까."

"내가 있는데 설마 네게 해코지 하겠느냐."

"하죠. 하고도 남죠. 그 인간들 박희정 대통령 암살되자마자 바로 쿠데타 일으킨 인간들인데. 거기다 저 건너올때 쯤에 뉴스 보니까 광주에서 미친짓을 했던 모양인데... 그런 인간들이 저 하나쯤 치우는게 일이겠어요?"

'그리고 회장님 자식들을 죽일 인간들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내가 미래에 있을 일을 떠올리며 김두혁 회장을 바라보자 김두혁 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 후... 해서 어쩌겠다는게냐. 군대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 않느냐. 학업으로 미루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대로 일본으로 건너갈까 합니다. 대학은... 뭐 서울대야 이미 중퇴 처리 되었을테니 더더욱 돌아갈 이유가 없고. 여기서 별도로 대학을 학부랑 석사까지 마쳤으니... 당분간 더 미뤄볼까 합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 코스를 밟는 것으로."

"일본? 거긴 왜? 아니 그보다 군대를 여기서 더 미루겠다고?!"

"예. 가면 저 죽어요."

"그러게 내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럴 일 없대도! 거기다 그놈들 정권 승계하려면 사건 사고 안나는게 최선인데, 그럼 지금이 군 문제 처리하기엔 적기 아니냐! 너 설마 군대 가는게 무서워서 그러는게야!?"

'그게 또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한들 그래봐야 기업인.

아무리 권력이 화무십일홍이라고는 하나, 아직 그 권력이 지려면 한참 남았다.

'정두황 정권이 끝나려면 앞으로 2년 반은 더 있어야 한다.... 거기에 그 다음 정권이 노태호... 안전하려면 정권이 끝난 이후에 가거나 내가 그들과 직접 거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난 뒤에 가야해... 더군다나 지금 할아버지가 뒤를 봐주신다는 것도....'

"그리 무서워 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넌 석사도 있고 하니 정두황이가 만든 석사장교 제도로 6개월만 땡 치고 다이아 하나 달고 나오면 되는데 사내새끼가 뭘 그리...!"

그 말 많고 탈 많은 석사장교라는 밑도 끝도 없는 근본 없는 병역제도 였으니 더더욱 들어가서는 안됐다.

'나중에 인생 조질일 있나... 석사장교로 갔다가는..... 나중에 문민정부 들어서면 나락가는건 순식간인데.'

나는 그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그저 다 생각이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군 문제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 할 수 있어요. 굳이 석사장교같은 그런 머저리 짓 안해도, 전문연구요원을 하면 그만이지만....일본은 지금이 아니면 안됩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들어가서 만나볼 사람도 있기도 하구요.'

내가 미국에 건너온 이유.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1979년. 소용돌이에 휩싸일 한국에서 벗어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나와 어머니를 지키고 그 미치광이 김민식을 쳐낼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크진 않았지만, 커서 문제를 일으킬 미치광이 녀석.

그런 녀석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면 40억으로는 택도 없었다.

"고작 40억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까요."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그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첫 단추인 돈을 벌어다줄 천재일우의 기회가 지금 일본 땅에 있었다.

'정확히는 플라자 합의가 있지. 올해 9월에.'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은 한순간에 평가 절상되고, 달러는 평가 절하된다.

그 말인 즉....

'지금 내가 벌어들인 497만 달러를 지금 당장 엔화로만 바꿔도...달러 기준으로는 최소 20%는 거저 먹는 셈이지.'

거기에 곧 이어 다가올 일본 버블까지 올라타면....

'그 이후에는 노영숙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어....! 김민식 따위는 거들떠 볼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미국까지 찾아온 할아버지, 김두혁 회장에게 보고를 마친 나는 곧바로 일본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 준비의 첫번째는 바로....

"커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욕의 플라자 호텔 로비에서 죽치고 앉아서 일본의 재무장관이 오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9월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을 못하니... 별 수 없지. 일본 경영인 비자 나오려면 시간도 좀 더 걸리고.'

그렇게 8월 말부터 시작된 카페 죽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럼 이걸로 공증까지 완벽히 된 겁니까?"

"예. 여기 일본어로 된 공증서류입니다. 70년에 아포스티유 협약을 일본이 체결해서 여기 보이시는 서류로도 충분히 일본 내에서 인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건 대한민국에서 인증이 되는 서류입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아포스티유 협약국이 아니더군요."

"추가비용은 얼마나 들었습니까?"

"그건 부동산까지 정리 되면 별도로 따로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라자 호텔을 근거지 삼아 매일 같이 아침에 나와 변호사들을 만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그간의 인연도 정리하며 보낸지 2주가 지났을 무렵.

나는 생각지 못한 손님으로 부터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아들 수 있었다.

"옛다."

"오... 벌써 비자가 나온겁니까?"

"그래. 할애비가 힘 좀 썼다."

"박비서님편으로 보내셔도 됬는데.... 아니, 그 보다 제가 여기있는 줄 어떻게 아시고."

"그 놈은 이사자리 달아서 먼저 한국으로 들여보냈다. 빈 집 지키라고. 나도 나온 김에 일 처리 좀 하고. 그리고 내가 너 있는데를 왜 몰라. 박비서가 알면 나도 아는거지."

"그도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어떤 일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에 계시는 겁니까?"

"알고 싶냐?"

"궁금하긴 하네요."

"회사 사정까지 알고 싶으면 태균으로 들어오던지."

"그럼 말씀 안해주셔도 됩니다."

"에잉... 썩을. 귀여운 맛이 하나도 없구만."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이 할애비는 이만 가마. 넌 언제 일본으로 가는게야?"

"글세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이번엔 보고 잊지말고! 너 계약 위반 경고 1회야! 경고 세장이면 아웃이야 아웃!"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자.

"오늘은 카페 이용이 불가능 하십니다. 정기 메인터넌스가 있는 날이라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대하던 말이 호텔 직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9월 21일이었다.

'내일이 플라자 합의가 있는 날이겠군.'

정중한 호텔 직원의 말에 나는 씩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은행에 찾아가 당장 쓸 돈 1만 달러만 남긴채 싹 다 엔화로 바꿔 미리 준비해둔 일본의 스미모토 은행 계좌에 이체한 뒤,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14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을 마치고 일본에 들어오자 마자 호텔방에 짐을 풀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타케시타 노보루 대장대신이 비밀리에 출국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4개국 재무장관들과 협의를 가졌습니다."

플라자 합의에 대한 뉴스로 일본 전체가 떠들석해져 있었다.

"타케시타 노보루 대장대신은 이 비밀 출국을 기자들에게 숨기기 위해 골프웨어 차림으로 공항근처 골프장으로 라운딩을 갔던 것으로 알려져...."

어떤 뉴스에서는 타케시타 노보루가 비밀리에 출국한 과정에 대해 떠들어댔고,

"이번 플라자 합의는 전후 침체되었던 일본이 드디어 다시 세카이(세계)에 복귀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엔화의 가치 절상이라는 것은 결국 수출 단가를 올리므로 단기적으로는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단가가 낮아지고......"

또 다른 뉴스에서는 (특히 경제신문사를 가지고 있는 TV도쿄의 뉴스) 플라자 합의에 대한 분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호텔방에 처박힌 채, 뉴스를 지켜본 나는 피식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보는거라 시시하네. 분석도 죄다 개판이고. 그놈의 세카이 드립은 하여간...."

일본 뉴스들이 떠들어대는 그 잘난 일본의 쾌거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일본 기업의 저열한 태도가 보여줄 추태를 모르는거겠지."

일본 기업들이 앞으로 할 짓거리를 모르고 순진한 분석만 해대는 뉴스들이 내 눈에는 너무 우습게만 느껴졌다.

"뭐 그래봐야,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좋은 거지만."

그렇게 뉴스를 끈 나는 호텔 룸 서비스로 때 늦은 조식을 먹고 난 뒤, 발급받은 경영인 비자를 들고 곧장 일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법인을 하나 설립하고 싶습니다."

"법인이요?"

"네. 여기 경영인 비자는 있습니다. 업종은 부동산 개발업으로 해주시죠."

"부동산... 개발입니까?"

"예. 자본금은 넉넉하게 있으니 법인 등기 절차를 맡아주시죠."

"혹시.. 자본금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씩 웃으며 스미모토 은행의 통장을 보여주었다.

"일십백천만...십만... 헉....!"

"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예! 물론입니다. 바로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당분간 업무 처리를 변호사님께 독점적으로 맡기고 싶은데...."

"예! 맡겨만 주십시오!"

나는 11억 6560만엔이 든 통장을 거둬가며 씩 웃고는 변호사에게 내가 머무는 호텔과 호수를 알려준 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틀쯤 걸렸을까?

변호사가 내가 맡긴 일들 처리하고는 각종 등기 서류들과 함께 법인 명의로 된 노무라증권의 증권계좌를 들고 나타났다.

"말씀하신 법인 설립은 모두 마쳤습니다. 법인명이...랜더스 플랜. 그리고, 이건 법인 명의의 증권계좌입니다. 이 계좌로 이뤄지는 거래에 대해서는 토오킨(투금계정)으로 귀속을 시키시면 자본이득세 없이 투자도 진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음... 안 그래도 증권사를 따로 들러야 하나 했는데, 잘 해주셨습니다."

내 말에 변호사가 씩 웃으며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이었다.

"가무사하므니다."

나는 그런 변호사의 한국어에 피식 웃고는 (일본어로) 말을 이었다.

"뉴스 보셨죠."

"예. 플라자 합의가 이뤄졌다는 뉴스 말씀이시죠."

"네. 이제 곧 광풍이 몰아칠겁니다."

"예. 일본이 드디어 미국에 승리했으니까요. 지난 대전에선 졌지만, 경제에선 이겼지요."

나는 변호사의 국뽕어린 발언을 굳이 정정해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예. 일본이 드디어 재기를 한거죠. 그래서 제가 온 것이기도 하구요."

'정확히는 약물 도핑에 부작용만 잔뜩 낀 버블로 만든 재기지만...'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고객이라서였을까.

변호사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나를 추켜세워주는 말을 내뱉었다.

"상당히 정세판단이 빠르시군요."

'미래를 알고있으니까요.'

나는 그 말에 속으로만 대꾸해준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우선 일 이야기를 해보죠. 시간이 아까우니. 지금 당장 제가 불러주는 지역 중 가장 땅값이 싼 곳을 알아봐주세요.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롯뽄기, 우에노, 오다이바."

내가 변호사에게 불러준 지역.

그곳들은 전생에 일본 도쿄를 호령하는 도심지들이 있는 지역들이자....

'대부분 7-8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었거나 계획된 지역들... 그리고.'

버블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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