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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1화 (1/200)

돈 쓸어담는 재벌가 서자

001. 리스타트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컥."

어떤 방식으로든.

태어나서.

숨을 쉬고.

그 숨이 끊어지면 죽는다.

이 단순한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죽어가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

..

.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적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일테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삶을 살지도 못했고, 모든 후회와 잡상들을 내려놓기에는 그 그릇이 크지 못했다.

그렇기에, 실제로 나는 죽는 순간 온갖 상념과 오감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감각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내 목을 억지로 조여오는 적당한 굵기의 밧줄의 감촉.

나를 바라보며 악귀같이 웃는 동료 수형자의 얼굴.

손 끝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편지.

발치에 채이는 택배 박스.

그 모든 감각이 한순간에 몰아침과 동시에 숨이 턱하고 막혔을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헛 살았구나.'

육 십 평생을 헛살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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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는 마당이고, 저기 내 시체도 누워있으니.

내 이야기나 한 번 해볼까 싶다.

내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면서 무엇하나 풍족한 적도, 그렇다고 주위의 시선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 인생에서 그나마 내가 가진 무기라고는 남들보다 더 잘 외우는 것 하나 뿐이었다.

돈도 없고, 나이도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더 많이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전부 기억하고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쯤 되었을 때부터 눈치껏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들을 하며 지내자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멸시 대신 불쌍한 놈이라며 어디가서 뭐라도 하나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고,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수재라며 밥을 얻어먹고, 동네 동생들의 가정교사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등학교에 와서는 나와 동갑내기이자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지역 유지의 아들의 가정교사가 되어 홀어머니가 간신히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어온 삯일을 월사금에 꼴아박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전부 마치고, 형편이 되지 않아 예비고사만 보고 취업을 준비하던 1979년 1월.

내 인생이 송두리채 바뀌는 날이 찾아왔다.

"같이 가시죠. 아버님께서 찾으십니다."

19년동안 애비없는 자식으로 살아온 내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인사드리시죠. 도련님. 아버님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뉴스에서나 보던 태균물산의 오너일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 어렸던 내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꿈 속에서 해어나오지 못하고 인정 받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다.

-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자 '김태준'

그렇게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을 시작으로,

"서울대 법대 수석 '김태준' 앞으로."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래."

아버지의 인정은 받기 어려웠고,

"어디서 첩년 따위가 자식 앞 세워 수작질이야!"

집안의 안주인인 본처 노영숙의 견제만 잔뜩 받는 나날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 때라도 집을 나와 연을 끊고 사는 편이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잘 했다. 잘 했어. 그렇게 하다 보면 네 아버지도 언젠가 너를 인정해주시겠지."

별채 한 구석에서 나만을 바라보며 기뻐하던 어머니와

"흐음... 그래도 네가 성과를 내었으니 네 어미 이름으로 집 한채는 내어주마. 강남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면 되겠지. 설마 영숙이 그것이 한강 건너가면서까지 네 어미 잡진 않을테니."

그나마 가끔 보는 할아버지 김두혁 회장의 인정때문에 나는 더더욱 얻을 길 없는 인정에 목말라하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44년.

태균물산이 그룹이 되고, 태균그룹이 세련된 이름의 TQ그룹이 될때까지

평생을 인정과 애정에 목말라하며 노예처럼 부려먹히기만 했다.

그나마 태균의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살아계실때는 더러운 일을 하지 않았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쟁에서 승리한 아버지가 태균의 주인 자리에 오른 시점에는 온갖 더러운 일을 '리스크 매니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해내야만 했다.

회계 조작을 통한 비자금 확보에서부터, 횡령과 배임, 사기까지 전부 하지 않으면 어머니를 지키기는 커녕 나 자신조차 살아남을 수 없는 삶이 이어졌다.

그나마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에는 '죽였다 치고' 타깃이 된 사람을 멀리 해외로 도주시켜주는 것이 내 양심을 지킨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더러운 설거지를 잔뜩 해주고도 나는 결국 아들로서도 부하직원으로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화르륵.

"처리했어?"

"예. 회장님."

이제는 회장이 된 이복동생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거참... 자식도 부인도 아무것도 없는 양반이 대체 왜 이제와서 재심을..."

"예?"

"아닐세. 법무부에서는 곧 연락이 갈 걸세. 서울구치소 소장으로 발령이 나올거야. 무궁화 2개도 달거고."

"가...감사합니다."

"어디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다칠테니까."

"물론입죠."

그렇게 나는, 아니 나였던 고깃덩어리는 드럼통 안에서 휘발유에 절여진채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고깃덩어리를 보며 김민식이 손짓하자, 교도소장이 물러났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가 부서져라 악 물었지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분을 토하며 타들어가는 나를 보던 그때, 주위를 흘끗 둘러본 김민식이 씩 웃으며 타들어가는 고깃덩어리를 보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 잘난 형님도 죽고나니 별 수 없네. 크크.... 따땃하고 좋지? 그간 고생했으니 좀 쉬셔. 가서 노망난 노친네 말동무도 해주고. 아, 가서 노친네 한테 전해.

자격 없다던 나 김민식이 결국 이 TQ의 주인이 되었다고.

아버지처럼 형제 잡아먹고 그 자리에 올랐다고. 아, 형제만이 아닌가? 임신한 형수까지 차로 밀어버렸으니까?

할아버지가 말하던 자격있는 형님께서는 이렇게 드럼통에서 따뜻한 말년을 보내다 왔다고 꼭 꼭 좀 말해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버지도 건너뛰고 형한테 태균 물려주려고 했던 할아버지 입장에선 크크... 속 좀 터지시겠지.

그 까짓 예비고사 수석이 뭐라고... 그 까짓 사법고시따위... 돈 만있으면 그만인데 그 따위게 무슨 능력이라고.... 첩년 소생의 서자는 서자답게. 정실 소생의 적자는 적자답게 첩년 자식은 노비로, 나는 후계자로 하는게 당연한 거 아냐?

안 그래? 애초에 아버지가 버린 자식이랑 첩년이었는데 억지로 데려온 것 부터가... 순리에 어긋나는 거지.

뭐.... 가면 다 알게 될테니 더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잘 가시라고. 형님."

그 혼잣말.

아니 내가 듣고 있고, 나를 향해 하는 말이니 더는 혼잣말이 아닌 김민식의 말에 나는 주먹을 쥐고 김민식에게 달려들었다.

휙휙 김민식의 육신을 스쳐지나가는 내 몸을 보면서도 주먹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흩어져가는 내 몸과 함께 나는....

"헉.... 헉..."

"얘가 예비고사 끝났다고 안하던 짓을 하네?"

"어...머니?"

"어머니는 무슨. 내내 엄마라 부르더니. 너 꿈꿨니? 저녁 상이나 펴라."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 일천구백칠십구년 일월 삼일. 아홉시 늬우스 시작합니다. 주요 단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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