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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230화 (마지막 회) (23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외전 (마지막 회)

그리고 행복하게

바람 피우다 걸렸다!

그것도 결혼식 전날 밤에!

취한 와중에도 나는 경악과 혼란에 빠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초능력자인데 왜 시간을 거꾸로 못 돌릴까?

“아, 아니지.”

나는 황제잖아!

황성의 모든 여자가 내 여자! 이건 국법이다!

머리로는 그리 생각하는데…… 입속은 바짝바짝 마른다.

“어, 어으음.”

창문에 달라붙어 있던 아이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테라스로 나왔다.

나는 놀란 와중에도 얼른 윗옷을 벗어서 아멜리아에게 걸쳐 주었다.

주춤하면서도 일어나려던 아멜리아는 내 뜻을 알고는 멈췄고.

황제가 신하에게 손수 옷을 걸쳐 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굉장한 공을 세웠으니 내가 치하한다는 의미, 집안의 가보로 대대로 물려줄 정도다.

……지금은 내 아이들도 아멜리아에게는 가능한 부드럽게 대해 달라는 의미를 담은 거고.

“험, 험. 으음. 얘들아?”

“…….”

들어온 아이들은 묵묵히 나를 보았다.

정신 차리고 살펴보니 아이들이 8명, 내 자식들이 전부 있었다.

5녀 링이 한숨을 쉬더니만 품에서 돈을 꺼내서 2녀 메이호에게 건넸다.

“그래요, 댁이 이겼어요. 해냈네~ 해냈어~ 황제가 해냈어~.”

“보라니까? 내 말이 맞지? 반드시 한다고 했잖아. 아, 오르카. 너도 얼른 줘.”

“메이호 누나가 우긴 거잖아요.”

“…….”

너희들 내기를 했니?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는 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왔다고 했지?

그럼 나와 아멜리아의 자리를 아이들이 만들어 준 건가?

애당초 8명이 다 모였다는 게…….

“……음, 설마 아빠가 어떻게 할지 감시했니?”

“응! 다들 아빠 뒤를 따라다녔어! 아빠가 요즘 걱정이 많다고 했어!”

세탄에게 목말을 탄 라온이 기운차게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서는 헛기침을 했다.

……아, 민망해.

자식이 많고 아내가 많다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내딸 벨이 나직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폐하가 여인을 취한다고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취하는 건 술 아니야?”

3녀 미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링이 폭소했다.

“술에 취해서 여자를 취했다!”

“……링, 너 지금 그걸 말재간이라고 하는 거야?”

“다들 조용히 해 주세요. 지금 아버지가 말씀하려고 하시잖아요.”

리세라가 타이르자 메이호도 입을 다물었다.

아이들이 나를 빤히 보자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비밀로 해 다오.”

“누구에게? 엄마에게? 어떤 엄마에게?”

링이 재미있어서 죽겠다는 얼굴로 쿡쿡 웃었다.

내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쉬는데…… 벨이 나직하게 말했다.

“폐하, 굳이 공들여 감추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이해하실 겁니다. 외려 황후 전하들의 협조를 얻어 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비밀이에요?”

“응! 비밀이래! 엄마에게 말해야지!”

미리엘의 물음에 라온이 신나서 대꾸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아직 어린애들에게는 대체 뭐라고 설명하지?

“다들 그만,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자. 내일은 경사스러운 날이니까. 라온 누나와 미리엘도 당분간은 아무 말 하지 말고.”

장남 세탄이 나서서 정리하자 링이 휘파람을 불었다.

“제국 최대의 겹경사네! 내일 결혼식이 하나 더 늘었어! 얼쑤! 풍악을 울려라!”

“…….”

쟤, 나와 하시아 딸 맞다.

우리 두 사람의 나쁜 버릇을 퓨전한 것 같거든!

오르카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요즘 마음이 많이 불편하신 것 같아서 저희들이 좀 신경을 썼어요. 제가 주도했습니다.”

“으음, 그랬니?”

아멜리아가 슬쩍 내 뒤를 따라 나온 것, 애들이 날 걱정해서 꾸민 일이리라.

오르카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내일 행사도 있고, 아버지의 뜻도 있으니까 당분간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대신 저 좀 도와주실래요? 어머니와 루이사가 또 서로 불꽃 튀기고 있는데 무서워 죽겠어요.”

“그, 그래. 내가 들어가서 말려 보마.”

물에 빠졌는데 앞에 밧줄이 내려오면 일단 잡아채야지.

내가 받아들이자 오르카는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천천히 있다가 오세요.”

“그래, 고맙다.”

나는 좀 편안해진 기분으로 대답했다.

이어서 손을 잡은 링과 벨이 나란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 젊어서 좋, 좋겠어요. 푸후후후훗.”

“……아주 재미있어 죽겠나 보구나.”

“아, 아니, 아빠가 너무 귀여운데 어떻게 해요! 아빠 잘못이지!”

링은 옆에 선 벨의 어깨를 탁탁 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벨은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시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옆 사람의 입단속은 맡겨 주세요.”

“이게 언니의 머리로 기어오르려고 하네?”

“저도 거기 올라가기 귀찮은데 폐하가 난감해하시니까요.”

링과 벨의 대화에 나는 실소해 버렸다.

정말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서 가능한 대화다.

“서로 안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정말로 친해졌네?”

“그야 내 여동생이잖아? 귀엽게 봐 줘야지.”

“그건 당신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헤실거리는 링과 딱 부러진 벨, 대조적인 자매지만 서로 팔짱을 끼고 웃고 떠들고 있다.

두 딸을 본 나는 안도했다.

텔레파시가 너무 강하면 문제가 생기기 쉬운데, 이 둘은 동병상련의 처지로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다.

링에게도, 벨에게도 다행이다.

“그래,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라.”

내가 두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링은 쿡쿡 웃으면서, 벨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 우리 막내. 아빠가 쓰다듬어 준다고 얼굴 빨개진 거 봐.”

“……적면증입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폐하.”

벨은 예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링은 나에게 손을 살랑거리고는 벨을 쫓아갔다.

“마녀가 거짓말을 해도 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직 사랑을 모르는 마녀니까. 아니, 오늘 안 거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멀어지는 말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메이호와 미리엘이 나에게 다가왔다.

메이호는 자못 어른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애들이 너무 놀리는 데 신경 쓰지 마세요. 전 보기 좋았는데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제 우리 걱정은 그만하셔도 된다고요, 다 이해하니까.”

메이호는 살짝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친애의 의미로.

성인이 되어서 이러는 건 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 메이호가 미리엘을 내려다보았다.

“미리엘도 할래?”

“응, 아빠 저도 할래요.”

미리엘이 양손을 올리면서 발돋움을 하자 나는 얼른 몸을 숙여서 받아 주었다.

아직 어린 딸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고 탁, 탁 등을 두드려 준다.

“들어갈게요. 너무 늦게 오진 마세요.”

“……으응, 졸려요, 메이호 언니.”

“그럼 먼저 자러 갈까?”

미리엘과 메이호, 리세라가 가고, 장남 세탄이 나를 향해서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세탄에게 목말을 탄 라온이 손을 뻗어서 내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아버지, 편하게 쉬시죠.”

“아빠, 머리 엄청 부드럽다. 뱅글뱅글 돌아! 아, 잠깐! 계속 만질 건데?”

“조금 이따가 만지게 해 드리겠습니다.”

세탄이 라온을 달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엔라의 판결이 난 다음에, 마음고생을 또 하나 걱정했는데…… 이젠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정말 애들이 다 컸다.

“도련님, 저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으음, 그, 그래.”

일어난 아멜리아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둘만 남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서로 뭘 더 말하기는 무리다.

잠깐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럼 나중에 다시 할까?”

“…….”

아멜리아는 얼굴을 더욱 붉히고는 고개를 수그렸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의미였는데 보다 깊은 의미로 받아들인 눈치.

내 실수였지만…… 주워 담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쐐기를 박을 작정으로, 아멜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

한참 시간이 지나고, 아멜리아는 작게 대답하고는 달아나듯이 들어가 버렸다.

너무나 솔직한 반응에, 덩달아 나까지 부끄러워진다.

좀 진정하고 들어갈 생각으로 호흡을 고르는데 발소리가 또 들려왔다.

금발의 하프엘프, 리세라였다.

메이호와 함께 들어가는 것 같더니만 돌아온 거다.

따로 이야기하려고 일부러 기다린 거겠지.

내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리세라가 말했다.

“아버지, 이젠 행복하세요?”

딸이 걱정스럽게, 간절하게 묻는 말.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참 힘든 일이 많았다.

온갖 고락과 고비를 넘겨 왔지.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실망하고 환생했고.

떠오르는 온갖 기억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너희들이 있어서 아빠인 나는 참 기쁘고 행복했다. 이 마음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고.”

“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더욱 행복해지셨으면 해요.”

달밤에 마주 선 내 딸이, 리세라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리들은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번 일로 부부 싸움이 벌어져도 다 아버지 편을 들어 드릴 테니까.”

“……으으음.”

“농담이니까 걱정 마세요. 어머니들도 아버지의 행복을 바라니까요.”

리세라는 조용하게 말했다.

“이제 무거운 짐은 내려놓으시고, 자기만 생각하셔도 돼요.”

“무거운 건 사실이지. 가정의 화목과 나라의 평안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무겁다고 내려 둘 생각은 없다. 너희들이 이렇게 날 생각해 주고, 염려해 주는 게 참 기쁘기 그지없고. 그러니 아빠를 응원만 해 줘도 충분하단다.”

“이제 다들 컸다고 도와드리고 싶어 하는걸요. 방법을 찾고 있어요.”

“…….”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다소 갈피를 잡지 못했던 아멜리아의 문제, 아이들도 신경 써 주고 이런 자리를 소극적이나마 만들어 준 것이리라.

리세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나에게 손을 겹쳤다.

“우리들은 이제 다 모였고 모두 행복해요. 아버지도 행복하세요. 지금 행복하시면 더더욱 행복해지세요.”

“……그래.”

내 대답에 리세라는 양팔을 벌려서는 나를 끌어안았다.

어린 시절처럼 꼬옥.

나는 조심스럽게 딸아이를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행복하게 지내자꾸나.”

“예, 그럴게요.”

한참 시간이 흐르고.

리세라는 손을 풀고는 살짝 물러났다.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 하지만 내 시선에 금세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메이호 언니가 이거 알면 저만 했다고 삐질걸요. 자기도 하고 싶었는데 얌체처럼 군다고요.”

“그럼 미리 하지 그랬어?”

“링과 벨이 보고 있으니까요. 동생들 앞에서 위엄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에요.”

리세라는 몹시 재미있어 하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잘 지내네?”

“링은 친화력이 좋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형제자매가 많은 게 익숙하니까요.”

리세라는 그리 말하고는 나를 보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아버지, 내일 연혼식, 즐겁게 치르세요.”

“그래, 아빠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어가라. 나는 술 좀 깨고 들어가마.”

“예, 다들 걱정하니까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리세라는 공손하게 예를 표하고는 물러났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나는 쓴웃음을 흘리다가…… 벤치에 앉았다.

옆에는 마시다 만 술병 하나.

하지만 쓸쓸하지는 않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까와 같은 말, 아까와 같은 상황.

하지만 내 마음은 확 달라졌다.

성취감과 은근한 허무함 대신, 충만함과 앞일에 대한 기대감이 채운다.

아이들은 착하게, 무척 잘 컸다.

이제 아빠인 나를 걱정하고, 등을 밀어 줄 정도로.

“그래.”

애들 걱정만 시키는 아빠일 순 없지.

모두에게 존경받는 황제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그럴 기회? 넘쳐난다.

복잡하게 얽힌 제국의 대소사는 한둘이 아니니까.

“그리고…….”

아멜리아와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틈을 봐서 미레이와 알리시아하고도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이제까지 해 온 일 이상으로 앞으로도 할 일이 많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쁘다.

“겨울이네.”

눈이 내리는 겨울.

찬바람이 불고 어둡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겨울.

다 같이 지내는 겨울이 왔다.

나는 웃으면서 술병을 잡고는 일어났다.

남은 술은 다 같이 나눠 먹을 생각으로.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문틈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잠깐, 언니. 애들에게 술을 권하지 말라고요!”

“괜찮아, 이거 바라메가 가져온 거니까 술이 아니라 꿀이지. 달지, 라온아?”

“……용족이 아니라 곰족이랍니까? 당신이 좀 말려 보세요, 렌시엘? 이봐요, 렌시엘? 취해서 잠들었어요? 당신 혼자서만 꿈나라로 달아나면 다랍니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뭔 일이 벌어졌는지 시끌벅적하다.

황실치고는 너무나 소탈하고 꾸밈없는 대화들.

여기가 나의 집, 내 가족이다.

나는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행복하게.

《두 번 고인 황제놀음 외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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