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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225화 (22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외전 (225)

손발이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제국의 3황후 이셀렌.

다크엘프의 여왕, 암살여왕이라고 불리면서 천년제국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암약하던 여자.

사람들은 그녀가 모르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행여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경계했다.

물론 그건 이셀렌이 유도한 바, 그녀는 그 선입견을 이용해서 온갖 모략을 부려 왔다.

거의 다 통했다.

다크엘프가 약체 종족이라고는 하나, 정보를 지혜롭고 잘 다루고 싸울 장소만 고르면 이기기는 수월하니까.

오늘 이 순간까지는.

“그러니까 시릭하고 결혼하자니까? 이셀렌, 너도 좀 거들어 봐.”

“…….”

이셀렌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누르고는 한숨을 쉬었다.

손에 포크를 들고 있는 백청발의 마녀는 빙긋 웃었다.

“와, 한숨 쉬는 게 시릭하고 꼭 닮았네?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정말인가.”

“…….”

당신 상대하다 보면 누구나 이렇게 되겠지, 하시아 씨.

이셀렌은 속으로 읊조리면서 앞을 보았다.

은회색 머리카락의 수인 여성, 하프엘프에 엘프.

세 여자가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1황후 하시아, 3황후 이셀렌은 제국 안에서 지고한 신분, 쉽게 대하기 어려울 테니까.

막상 당사자는 방금 이셀렌이 했던 것처럼, 이마에 손을 대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때? 나도 시릭하고 좀 비슷해?”

“……이제부터 제가 말할게요, 하시아 씨.”

이셀렌은 옆을 무시하고 앞을 보았다.

시간 끌어 봐야 열만 터지니 단도직입으로 끝내자.

“수인 아멜리아, 하프엘프 알리시아 크로셀 그리고 엘프 미레이.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셋 다 황제 폐하와 결혼할 준비를 하도록. 이는 황명이니 받들어라.”

“황명 아닌데?”

“…….”

욕하고 싶다.

작심하고 일을 단숨에 마무리 지으려는데 초를 치네.

하지만 하시아는 뚱하니 말했다.

“이셀렌,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황명 남발하면 나중에 큰일 나. 시릭이 알면 어쩌려고 이래?”

“……당신이 시릭에게 이 안건에 대해서 위임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시아 씨?”

나는 당신이 정말로 싫으니까 최대한 서로 대화하는 일을 지양했으면 한다.

이셀렌은 표정과 어조에 그 감정을 가득 담아서 일렀다.

보통 그녀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일은 없다. 그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을 테니까.

하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릭에게 일종의 양해를 구한 거지. 황명을 앞세우란 이야기는 아니었어. 무작정 결혼시키기만 해도 능사는 아니잖아?”

“……저기, 죄송합니다만.”

메이드복의 수인 소녀, 아멜리아가 정중하게 말했다.

“중요한 안건이라고 들어서 경청 중입니다만. 그러니까 도련님, 아니 황제 폐하와 결혼하라는 건가요?”

“그걸 왜 이렇게 들어야 하나요?”

하프엘프, 알리시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황실의 결혼이라면 그에 맞는 법도가 있다고 아는데요. 황후 분들이 이렇게 얼굴을 보고 권하는 식은 예법에 어긋나지 않나요? 물론 황제 폐하는 법 위에 서 계신 분, 그분의 정사는 예절 따위에 구애받지 않지만 황후 분들까지 해당 사항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죠.”

“…….”

서로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인가?

마지막 엘프는 골똘히 식탁을 보고 있었다.

이셀렌 앞에 놓인 접시, 담화의 디저트로 나온 케이크를.

너무나도 간절하게.

“…….”

이셀렌이 설마하면서 슬쩍 접시를 밀어 주자 엘프, 미레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 앞으로 온 접시를 양손으로 잡은 미레이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셀렌을 보더니만 고개를 굽실거렸다.

알리시아가 계속 말했다.

“일단 저는 크로셀 후작 가문을 승계했습니다. 그런 제가 황제 폐하의 부인이 된다는 건…… 가문의 계승 문제가 생기는데요?”

“넌 하프엘프이니 아이를 못 낳지. 계승 문제를 꺼내는 건 핑계로 들리는데?”

“이 자리부터가 핑계라고 보이는데요?”

이셀렌이 싸늘하게 굴어도 알리시아는 주눅 들지 않았다.

“제가 서적으로 읽고 전해 듣고, 직접 뵌 폐하는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 분이 아닙니다. 애당초 최근 보름 동안 폐하의 행적이 묘연하다고 궁중에 소문이 파다하고요. 또 폐하의 실종 아니냐는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 황후들의 음모라고? 그 레퍼토리도 지겹군.”

이셀렌은 단호했다.

“폐하께서는 깊이 살피실 일이 있어서 잠시 휴식 중이다. 그것뿐이야. 아니면 끝끝내 거부하겠다는 건가, 크로셀 후작? 황제 폐하가 원하시는 일인데?”

“…….”

알리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이셀렌은 내친김에 방점을 찍었다.

“너는 이전에 폐하와 약혼 관계였다가 깨졌지. 그 일에 대해서는 알아서 윤색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너는, 너희들은 그저 결정하기만 하면 돼. 아니, 너희들은 선택할 수 없어. 거부한다면 그만한 각오를 해야지.”

이셀렌이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협박 섞인 강요에 아멜리아, 알리시아, 미레이는 침묵했다.

하시아도 차를 마시기만 할 뿐,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이셀렌은 차게 말했다.

“이는 제국을 위한 일, 또 황제 폐하를 위한 일이다. 거부는 허락할 수 없다.”

“죄송합니다. 거절하겠습니다.”

맑은 목소리, 아멜리아의 말에 이셀렌은 확 얼굴을 구겼다.

물론 아멜리아가 환생한 시릭을 금이야, 옥이야 기른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셀렌으로서도 위해를 가할 순 없지만…… 좋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건가? 설사 너희들이 따로 마음에 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리하고 황제 폐하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너희들은 폐하에게 호감이 있을 텐데? 그런데도 지금 거절하겠다는 건가?”

“이유는 도련님, 아니 폐하를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멜리아는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고집스럽게.

이셀렌이 험악하게 노려보아도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알리시아가 말을 보탰다.

“저도 거절하죠. 먼저 이게 폐하의 뜻이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황제 폐하의 뜻을 곡해했다는 주장인가? 목이 몇 개나 되지?”

“결혼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요? 더더욱 폐하답지 않으신데요.”

알리시아는 정색하고 말했다.

“저는 황제 폐하를 경모하지만 당신, 황후 분들에게 좋은 감정은 없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다들 어영부영 넘어가고 있지만 황제 폐하가 생전에 여러분들을 멀리했다는 사실, 필시 그만한 곡절이 있겠지요.”

“…….”

“거기에 대해서는 캐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폐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또 황후 여러분들이 국정을 주관한다는 겁니까? 작금의 상황은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셀렌은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 그 말에 목숨을 걸어야…….”

“시릭 지금 여기에 없는 거 맞아.”

정적.

하시아의 말에 다들 입이 벌어졌다.

알리시아와 아멜리아는 깜짝 놀라서.

이셀렌은 기가 막혀서.

미레이는 디저트를 먹느라고.

하시아는 턱을 괴고는 가볍게 말했다.

“시릭은 지금 다른 차원에 갔어,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그걸 밝히는 겁니까?”

이셀렌은 욕설을 애써 참았다.

이 정보를 숨기기 위해서 다크엘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

하시아는 가볍게 말했다.

“이셀렌, 너나 다른 황후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는 시릭이 돌아옴 직한 환경을 꾸며야 해. 그래서 지금 이 세 사람을 설득하려는 거잖아? 그냥 다 밝히고 협조를 얻는 게 나아.”

“정보 누설이…….”

“특관님이 여기 없다고요? 어째서요?”

내내 케이크만 먹던 미레이가 불쑥 물었다.

깜짝 놀라 눈은 크게 떴는데, 그 와중에도 입은 씹으면서.

이셀렌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데…….

하시아는 가볍게 말했다.

“설명하기 복잡한데 마지막으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어. 다들 이거 비밀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이셀렌에게 혼나.”

“……애초부터 말을 하지 마시죠?”

이셀렌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정말 진짜 여차하면 살인멸구까지 해야 한다.

겨우 안정되는 제국에 또 황제의 부재가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하시아는 짓궂게 웃었다.

“거두절미하고 시릭이 돌아오는 시간을 앞당기려면, 너희들의 협조가 필요해. 그래서 결혼해 달라는 거야.”

“……폐, 폐하가 없으시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하나요?”

알리시아는 목소리까지 떨면서 물었다.

이셀렌과 맞상대할 정도로 배짱이 있었지만 황제의 부재는 워낙 충격적인 정보였다.

하시아는 간단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웨딩드레스 예쁘게 입고, 다소곳하게 신방에 앉아있으면 돌아올 확률이 높아질 거야.”

“…….”

“진짜야. 그렇지, 이셀렌?”

하시아가 동의를 구하자 이셀렌은 떫은 감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진짜인지 모르니까.

이런 차원 관련에 대해서는 이셀렌도 정보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이없어서, 기가 막혀서, 혼란스러워 하는 가운데 하시아가 말했다.

“통계로 따지면 남자가 가장 행복한 시기는 결혼식 직전까지라니까? 그러니까 그 환경을 만들어두고 인력(引力)으로 끌어당기는 거지. 확률이 약 0.12% 정도 오를걸.”

“너무 낮잖습니까.”

공갈을 칠 거라면 좀 더 세게 부르던가.

이셀렌이 어이없었지만 하시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원래 이런 건 천장 찍기 전에 나와 달라고 비는 수밖에. 최악의 경우에는 폭사하고.”

“……말하지 마세요.”

이셀렌이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탄식했다.

최악의 경우? 바로 시릭이 또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거다.

100년만의 환생도 진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자기 딸아이를 데려오겠다고 기약 없는 걸음을 하다니.

상상만 해도 애간장이 끓어서 이셀렌은 애써 그 가능성을 외면했다.

하시아가 이렇게 태연하게 보이는 건 믿는 게 있어서라고, 정말 며칠 안에 시릭은 다시 돌아올 거라고.

하시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셀렌, 정말 최악의 경우라면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서 후계자를 지지해야 해. 너도 짐작하고 있을 거야.”

“…….”

세탄.

4황후 엔라는 시릭이 직접 판결해서 징역을 사는 중이다.

그녀의 아들, 1황자 세탄이 2대 황제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시릭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든 황후들이 하나로 의견을 모아서 세탄을 2대 황제로 지지한다면?

‘……가장 괜찮은 수습 방법이지. 다른 황후들도 이견은 없을 거야.’

환생한 시릭, 리젠과 재회하고 가족이 뭉쳐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기도 했고.

또 엔라가 죄인의 신분으로 징역살이를 한다는 건 이 판국에서는 장점이다.

세탄의 정치적 기반은 불안정하다는 것이고, 황후들이 메워 준다.

이러면 황후들도 불만은 없을 테고, 각 종족들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것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가 닥칠 경우 최선으로 수습할 수 있는 수였다.

“…….”

설마 시릭은 여기까지 계산하고 결행한 건가?

정보를 다루는 이셀렌도 거기까지 내다보지 못했는데.

늘 엉뚱한 말이나 주워섬기고 판이나 깨는 이 마녀가 그걸 알았단 말인가?

“…….”

이셀렌은 몹시 복잡한 시선으로 하시아를 바라보았다.

결국 시릭에게 가장 가까운 건 바로 이 여자, 하시아라는 사실…….

쿠우웅!

그 순간 테이블이 들썩거렸다.

갑작스러운 낙하에 식기와 접시가 튀어 오르다…… 허공에서 딱 멈춰 버렸다.

양반다리로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투덜거렸다.

“아, 여긴 어디야?”

“식탁이죠. 아빠에겐 차려진 밥상이네요.”

남자의 옆에 정좌한 소녀가 차갑게 말했다.

남자는 머리를 긁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야 포크 튀는 걸 보면 식탁이겠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돌아본 남자는 이셀렌을 보고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셀렌은 순간 목이 메는 기분에 애써 입을 열었다.

“시…….”

“이셀렌, 안 늙었네?”

……매를 버는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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