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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219화 (219/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외전 (219)

황제는 싸운다

초저녁.

8황후의 후궁.

나, 시릭 카라카스는 술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

마주 앉은 건 후궁의 주인인 유하와…….

“음, 이거 뭔데 이렇게 달아?”

양념을 포크로 찍어 먹는 하시아였다.

나는 보다 못해서 말렸다.

“그거 시럽이니까 자꾸 찍어 먹지 마요. 아니, 그냥 한 보따리 싸 줄 테니까 들고 돌아가. 유하랑 긴밀하게 할 이야기 있거든요?”

“그냥 나 보는 앞에서 해. 나도 좀 듣고 싶거든?”

내가 대놓고 을러대도 하시아는 빙긋 웃기만 했다.

“나 없는 사이에 동생하고 자니까 좋았어?”

“…….”

덜컥.

내 귀에 유하가 움찔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하의 낯이 창백해지자 나는 정색하고는 말했다.

“아니, 그걸 왜 이제서 따지는데? 나한테 결혼 장려를 한 건 당신이잖아? 내가 좋아서…….”

“잠깐, 시릭 그 말은 하면 안 되지?”

“…….”

내가 좋아서 결혼을 마구 한 줄 알아?

반사적으로 나오려던 말을 나는 삼켰다.

다른 황후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내가 하시아를 제외한 다른 황후들과 결혼한 건 정치성이 있지만, 그걸 당사자 앞에서는 말하면 상처받지.

내 말문을 막아 버린 하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 내 동생이랑 재미 보니까 좋았어? 애가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커서…….”

“아, 진짜. 뭐 하자는 건데요?”

나는 정색하고는 말을 끊었다.

하시아의 생환, 1황후로 복귀하는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범한 하시아가 왜 유하를 걸고 넘어지지?

물론 자기 없는 사이에 남편이 동생이랑 결혼했다면 오만가지 감정이 들 만도 한데…….

하시아가 술잔을 기울이면서 삐뚤어진 미소를 짓자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걸 입에 올리는 건 허락 안 합니다. 더는 말하지 마요.”

“덮어 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잖아?”

“아, 그래? 그럼 끝을 봅시다.”

나는 정색하고는 말했다.

“그래요, 당신 없는 사이에 동생하고 사니까 기분 되게 좋던데요.”

“……폐, 폐하?”

침묵하던 유하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하시아만 보며 쏘아붙였다.

“당신하고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식적이라서 마음도 편하고, 눈치도 좋고, 성실해서요. 이런 결혼이라면 100번은 더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참 참해서요. 마녀들 통틀어서 유하만 한 신붓감은 없네요.”

“…….”

“이제 됐습니까?”

나는 딱 자르고는 유하를 돌아보았다.

“유하, 새삼스러운 생각할 필요 없다. 황후들은 제각각 장단점이 있고, 나는 너와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예쁜 딸을 낳아 줘서 고맙고.”

“…….”

유하가 눈만 깜빡거리면서 멍한 얼굴로 보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하시아를 노려보았다.

하시아가 아무리 몰상식한 부분이 있어도 이건 아니지.

정말 유하에게 불만이 있다고 해도.

“불만 있으면 나한테 따져요, 자꾸 신경 긁는 소리 하지 말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하시아라도 딱 자를 필요가 있다.

내가 투지를 불사르는데…….

하시아가 불쑥 말했다.

“유하가 제국군 성립 이전부터 너 좋아한 건 알아?”

“…….”

뜬금없는 이야기다.

제국군 성립 이전이라면…… 내가 칠죄신에 맞서겠다고 하시아와 함께 각지를 떠돌면서 무력을 키워 나갈 때 아닌가?

하시아와는 사제 간일 때, 내 이름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질 무렵이다.

하시아는 턱을 괴고는 빙긋 웃었다.

“우리 둘이 함께 다니는데 툭하면 와서는 나에게 잔소리했잖아? 그때 너하고도 간간이 이야기를 나눴지?”

“아, 그거야 내가 초능력을 악용할지도 모른다고 했었죠. 그래서 유하가 나도 감시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하시아에게 맞서려다 말고 어물거렸다.

싸울 준비 다 했는데 갑자기 너무 오래전 추억 이야기가 나와서.

하시아는 짓궂게 웃었다.

“유하는 그때부터 너를…….”

“아, 아닙니다!!”

술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얼굴이 새빨개진 유하가 소리쳤다.

내가 돌아보자, 흠칫하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시아가 노래하듯이 말했다.

“어, 그래? 사실 시릭 안 좋아해? 지금도 그냥 마녀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거고, 이제 스스로 황후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내 동생이지만 아니라는 소리밖에 못 하네? 어떻게 생각해, 시릭?”

“…….”

하시아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시아가 심술을 부리는 척하면서 묘하게 유하를 달랜다는 눈치가 온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갸웃거렸다.

“으음, 진짜예요? 난 그런 낌새는 전혀 눈치를 못 챘는데. 그때 유하는 나만 보면 화를 내서…….”

“마, 말씀하지 마세요, 폐하! 제발!”

유하가 발까지 동동 구르면서 사정했다.

그럴수록 하시아는 신바람이 났지만.

“그게 사실 관심 있어서 그런 거지. 마녀들은 다 여자잖아? 사실 남자 대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거야. 거기다가 유하는 특히 더 고지식한 데가 있었고. 네 배려, 사려 깊은 면모에 두근거리면서도…….”

“아아아아아, 어, 언니!! 언니!!”

유하가 이제는 울상이 되어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모든 걸 다 내던지고 매달릴 기세, 지금 하시아의 입을 막을 수 있으면 뭐라도 할 기세였다.

내가 마른침을 삼키면서 돌아보자 입을 딱 다물기는 했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목까지 붉어진 반응을 보면 정답이었다.

“……으, 으음.”

그 당시에 유하는 내내 까칠하게 굴었는데.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 여기고, 또 스승님의 동생이라니 예를 갖춰서 대했고.

뜸을 들이던 하시아가 말했다.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은 깊어지는데 정작 너는 공손하게 굴되 거리를 두고. 그러니 사람이 환장할…….”

“마실게요. 마실 테니까 그만!!”

유하가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워 버렸다.

목 막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급하게.

하시아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내게 눈짓했다.

나는 유하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 주면서 운을 떼었다.

“저기…….”

“……폐하, 말씀하지 마세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유하는 진짜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로 사정했다.

나도 입속에서 근질거리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일단 다물었다.

그런데 또 하시아가 말했다.

“기간으로 따지면 랑에이보다 먼저 너를 알았지? 마음을 품은 기간은 더 길 테고.”

“…….”

유하는 이제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도 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시아는 계속 낭랑하게 말했다.

“그 와중에 너와 결혼하는 여자들, 정략 결혼하는 여자들은 나날이 늘어가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네 결혼의 정략성을 알고는 좌절했지. 내가 있는 한 유하는 너랑 결혼할 일이 없으니까.”

“…….”

“그냥 결혼 안 하고 만나는 사이기만 하면 안 되냐고? 너도 알지만 유하는 성실해서 그럴 수 없었어. 아니, 감히 너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비칠 수도 없었지.”

하시아의 말에 유하는 부들부들 떨다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마시는 순간만큼은 하시아가 말을 안 하니까.

유하의 잔이 비자…… 나는 주저하면서도 계속 따라 주었다.

하시아는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덜컥 죽어 버렸네?”

“계속할 거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렸다.

하시아가 괜한 심술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지나치게 민감한 부분 아닌가 싶어서.

하시아는 나에게 안심하라 눈짓하고 말했다.

“마녀 중에서 새로운 황후는 나와야 했지. 하지만 유하는 그토록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도 전혀 기뻐할 수 없었어. 너를 예전부터 사랑했단 말조차도 못 하고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

하시아도 텔레파시를 쓰지만 독심술은 못 한다.

나와 유하의 관계, 유하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가늠한 것이리라.

“내 여동생은 지나치게 성실해서, 원하는 걸 손에 넣었는데도 기뻐할 줄 몰랐지. 황제의 냉대를 자기에게 내려온 벌이라고 여겼을 거야. 마땅히 받을 벌을 받았다고. 그러니까 이젠 황후에서 물러나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지.”

“…….”

이건 유하에 대한 설명이자, 나에게 알려 주는 이야기기도 하다.

나는 신음을 흘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황후 중에서 가장 정략성이 강한 관계는…… 바로 나와 유하였다.

칠죄신을 추방하고 제국을 건국한 이후, 이종족과의 균형을 위해서 공석을 채우는 셈이었으니까.

전후를 헤아려 본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유하, 고개 들어라.”

“…….”

유하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는 내 얼굴을 살폈다.

젖어 든 눈가, 감정을 애써 누르는 얼굴.

“네 마음도 복잡했겠구나. 나한테 섭섭한 게 많았다는 건 알겠다. 이제부터 헤아릴 테니까 떠난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나는 손을 길게 뻗어서 유하의 손등 위에 손을 붙잡았다.

“네가 하시아의 동생이라서 신경 쓴 것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공통 화제로서지…… 그저 동정심이나 배려만은 아니었다. 난 그런 마음만으로 결혼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 해. 네 성실함과 아름다움에 반한 거다.”

“…….”

“그리고…… 어딜 도망가요? 앉아.”

말하는데 하시아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정색했다.

하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건 자리를 피해 줘야 하는 거잖아? 이제 둘이서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 아니야?”

“앉아서 기다려.”

나는 강하게 말하고는 유하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같이 있어 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딴말하지 마라.”

“……폐하.”

유하는 목 메인 소리만 내면서 흐느꼈다.

나는 잠자코 유하의 손을 두드려 주다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아는 멀뚱하니 그런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한참 유하를 달랜 나는 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 좀 혼나야지.”

“응? 이미 알 테지만…….”

“유하 속내를 까발린다는 명목으로 감정 쏟아 놓고 어디서 도망가려고 해? 가서 이불이나 깔아.”

“어? 뭐?”

하시아가 얼빠진 얼굴을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뭐? 내가 유하와 결혼한 게 불만 있어? 불만 있으면 어쩔 건데? 동생에게 복잡한 마음 있는 건 알겠는데 나도 일하느라 바빠서 일일이 챙겨 줄 수도 없어. 앞으로 다시는 허튼소리 못 하게 해 두려고.”

“잠깐,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폐, 폐하.”

하시아는 멍한 얼굴로, 유하는 당황스럽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유하는 자책하고, 하시아는 아닌 척해도 은근히 꽁해 있는 게 보인다.

내가 사람 하루 이틀 다룬 것도 아니고.

반목하는 남자 놈들은 그냥 더불어서 데굴데굴 굴려 주면 되고.

여자, 황후들도 마찬가지다.

“뭐 해, 나 자고 간다니까. 둘 다 씻고 와.”

굴리는 장소만 좀 다를 뿐이지.

황제는 침대에서도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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