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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218화 (218/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외전 (218)

자매 다툼

덤.

천년제국의 8황후, 마령화비 유하 피어리스는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덤이라고.

1황후, 마녀왕 하시아가 죽으면서 일곱 이종족에서 하나씩 황후를 배출한다는 균형이 깨졌다.

하시아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바로 친동생인 유하의 의무였다.

마녀들을 위해서, 제국을 위해서.

그리고…….

“으음.”

……그런데 그 당사자, 빈자리인 줄 알았던 하시아가 눈앞에 앉아 있었다.

자못 심각하게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예쁜 입술 위에 포크를 수직으로 올려놓고는 한숨이다.

길거리의 광대나 보일 기예, 유하는 못 본 척, 무시하고는 말했다.

“……진지하게 좀 들어 줄래요, 언니?”

“음, 아.”

하시아가 입을 연 순간 당연히 포크로 미끄러졌다.

하시아는 재빠르게 공중에서 포크를 낚아챘지만 유하는 더 어이가 없었다.

하시아는 초능력자, 염동력으로 포크를 입술에 붙게 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진짜 광대처럼 기예를 부렸다는 건데…….

유하가 이해할 수 없어서 바라보자 하시아는 배시시 웃었다.

“왜 이러냐고? 원래 정신력을 함양하는 기초 수련 중 하나야. 초능력은 결국 집중력 싸움이니까. 더불어서 익혀 두면 장기 자랑으로 써먹을 수 있지. 너도 연습해 볼래?”

“…….”

하시아가 포크를 내밀자 유하는 손을 흔들어서 밀어내 버렸다.

“언니, 진지하게 들어 주라니까요.”

“나만 보면 그 소리야, 난 언제나 진지한데.”

“부탁드릴 게 있어요.”

하시아는 찻잔을 손에 들고는 말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유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호흡을 골랐다.

친자매지만 유하는 하시아가 불편했다.

예전에도 불편했지만 온갖 과정을 거치면서 더더욱.

그래도 말해야 한다.

“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요. 벨 말인데…….”

“아, 초능력 세더라. 난 상대도 안 되겠던데?”

“…….”

유하는 기막힌 얼굴이 되었다.

기실은, 유하가 하시아에게 부탁하려던 건 바로 벨의 문제였으니까.

“……알고 있었어요?”

“초능력자끼리 서로 알아보는 건 아니야. 오히려 네가 어떻게 아는지가 신기한데? 벨은 자기 나름대로 주변에 철두철미하게 숨겼나 본데.”

“카미르 대모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아, 그래? 하긴 초능력자를 여러 명 봐 왔으니까 분위기로 눈치채셨겠지. 왜 벨에게 직접 듣지 않고?”

하시아는 단숨에 핵심을 파고들었다.

벨은 자기가 초능력이 있다는 걸 주변에 감추고 있고, 유하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왜 그러냐는 질문이다.

“아이가 먼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설사 말하더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언니가 좀…….”

“응, 나도 못 도와줘.”

애써 꺼내려던 말이 중간에서 잘린 유하는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하시아는 차를 마시고는 새삼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와, 이거 엄청 달다? 뒷맛이 산뜻한 게 꿀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언니.”

“응,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언니 맞지?”

“……심술부리지 마요. 아니, 심술부려도 돼요. 하지만 그건 나한테만 하라고요.”

하시아는 입을 다물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하는 내심을 토로했다.

“언니가 날 달갑지 않게 여길 거,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벨은 달라요. 벨은 내 딸이지만 시릭의 딸이기도 해요. 언니가 나한테 감정이 있는 건 알겠으니까…….”

“안 믿네, 진짜로 못 하는데.”

하시아는 한숨을 쉬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벨이 나보다 강해. 그래서 못 해.”

“……정말이에요?”

“내가 치맛자락이라도 붙잡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빌어야 할 정도인걸? 나는 상대도 안 돼, 시릭은 가능할 거고.”

하시아는 턱을 괴고는 빤히 보았다.

“시릭에게 부탁해. 방법을 마련하겠지.”

“……그분은 바빠요. 여기서 더 일을 늘리고 싶지 않고요.”

“아이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두잖아. 오히려 좋아할걸?”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국정에 정신이 없으신데 이 이상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요.”

유하가 고집스럽게 말하자 하시아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자매의 침묵.

유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상담은 감사했습니다.”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시릭에게 말하는 게 껄끄러우면 내가 부탁할게. 그러면…….”

“하지 마요.”

순간 유하는 정색했다.

황제, 시릭은 하시아에게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

하시아가 부탁하면 보다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아니, 아니야…….’

유하가 부탁해도 마찬가지.

시릭 카라카스는 자식은 정말 아끼니까.

그걸 잘 알면서도 비교하고, 계산하고 있다.

하시아가 말하는 게 시릭에게 더 와닿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계산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

딸아이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두는 게 부모 마음일 텐데.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눈앞의 언니와 저울질이나 하고 있다니.

하시아는 빤히 바라보았다.

“몹시 복잡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네. 술이나 마실까?”

“허튼소리 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세요.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했습니다.”

“정말 남처럼 구네. 왜 그러는 거야? 돌아온 언니와 말하기도 싫어?”

하시아는 툴툴거렸다.

“얼굴 보고 밥이나 먹자는데 계속 피하고. 겨우 불러줘서 되게 기대하고 왔는데 몇 마디하고는 바로 돌아가라고 하고. 물론 우리가 예전에 서먹서먹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잖아?”

“…….”

그래, 아니었지.

제국이 세워지기 전에, 칠죄신이 지배하던 시절.

마녀 중에서 초능력을 전수받을 후보로 하시아가 선택되었고.

그 영광스러운 사명을 간절하게 바라던 유하는 탈락했지만.

어쨌거나 자매였으니까.

“……왜 언니죠?”

유하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오랫동안 묵혀 온 질문.

“아니, 알고 있어요. 언니는 나보다 정신력이 강하니까. 초능력의 전승자는 낙천적이고 정신력이 강한 마녀를 선택한다는 것. 하지만…… 왜 언니였죠?”

“…….”

“언니는 늘 설렁설렁했잖아요. 마녀의 율법, 규칙도 수시로 어겼죠. 금기라는 걸 알면서도 초능력을 마녀 아닌 사람에게 전수했죠. 예, 그래서 칠죄신이 쓰러졌죠. 결과가 전부인가요?”

유하는 물었다.

“언니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 돌아왔어요. 이걸로 다 된 건가요? 모두 다 끝난 건가요? 결말만 좋으면 다 된 건가요?”

“…….”

“납득해 보려고 했어요. 언니는 나보다 강하다고, 내가 초능력자가 되었어도 언니보다 잘 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언니는 위대한 업적을 해냈다고. 언니의 선택이 결국 칠죄신을 추방했으니까.”

유하는 주먹을 꼭 쥐고는 물었다.

“그 과정에서 언니를 살려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빈자리를 채워 보려고 애를 썼어요. 노력했어요. 하지만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고, 내 딸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만 알았죠. 모른 척, 입 다물고 눈을 감는 게 전부였죠.”

“…….”

“예, 이제 언니가 돌아왔어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나요? 이제 다 끝인가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굴어 달라는 건가요?”

유하는 분하게 말했다.

“언제나 그렇게 내려다보네요. 예, 그래요. 언니는 정말 잘났어요! 좋겠네요! 항상 자신만만해서! 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죠!”

“…….”

그리고 시릭에게 사랑받지.

언제나 이기는 쪽, 언제나 사랑받는 쪽에 선 언니.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다.

세상에는 그런 운 좋은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보려고도 했다.

“이제 됐어요. 이제 됐다고요. 이제…… 지쳤어요.”

“그래서?”

“언니 자리를 돌려줄게요. 주제 모르고 언니를 대신하려던 게 어리석었어요. 이제 물러날 테니 마음껏 비웃어요.”

해묵은 말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부들거리던 유하는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하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유하를 바라보았다.

“아, 이게 자매 싸움이네. 그래, 우리가 좀 덜 싸우고 자랐지?”

“난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라…….”

“내 남자랑 붙어먹어 놓고 어디서 내빼려는 건데.”

확 낮아진 목소리.

유하는 믿을 수 없어서 하시아를 바라보았다.

자매로서 같이 자랐지만 언니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

턱을 괴고 웃으면서 노려보던 하시아는 한숨을 흘렸다.

“나만큼 황후에 안 어울리는 여자는 드물 거야. 나는 사실 시릭이 챙겨 줘야 할 정도로 칠칠하지 못하거든?”

“…….”

아니, 그건 다 아는 이야기지.

시릭도 예법을 귀찮아하지만, 하시아는 한술 더 떴다.

하지만 시릭은 중요한 자리에서는 예법을 차리고 위엄을 보일 줄 안다.

하시아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나 죽었다고 냉큼 시릭에게 아양을 떨고 철석같이 달라붙더니만 이젠 물러나겠다? 없던 일로 하겠다? 인생이 테트리스인 줄 알아? 넣었다 뺐다 하면 깔끔하게 정리되게? 아서, 그렇게 믿던 남녀가 예기치 않은 임신에 직면해서 인생 말아먹으니까.”

“…….”

“테트리스는 뭐냐고? 그러니까 다른 차원의 개념인데…….”

하시아는 화내다 말고 갑자기 뜬금없는 설명으로 들어갔다.

얼어붙었던 유하는 빠드득 이를 악물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다.

“헛소리 집어치워요! 예! 그래요! 내가 언니 대신이 되어 보려고 했지만 끔찍하게 실패했어요! 그런데 그런 언니는 대체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뻔뻔하고 당당한데요? 그때 언니가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서큐버스로 타락하지도 않았을 테고, 가족을 찢어 놓지도 않았을 거다. 그때 내가 조금만 제정신을 차렸다면 시릭이 일만 하다 죽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하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타락은 도저히 견딜 수 없더라.”

“산뜻하게 대답하면 다 정리되는 줄 알아요? 언니의 그런 태도가 진짜 진저리가 나요! 끔찍하다고요!”

“그러니까 초능력자지.”

하시아는 차분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염동력으로, 손도 대지 않고 입가로 가져와서 마신다.

“초능력은 정신의 힘, 이게 왜 마녀 사이에서만 전승되어 왔는지 알아? 마녀들은 날 때부터 감정이 하나씩 없는 정신병자들인데?”

“…….”

“반대야. 제정신이라면 초능력자가 될 수 없어. 되어서도 안 돼. 초능력은 정신의 힘, 자책하고 지난 일에 얽매여서 후회가 깊어지면 난리가 나니까.”

하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처럼 자책해서는 안 돼. 정신 오염의 위험을 달고 사는 초능력자는 후안무치해야 그나마 덜 미쳐. 그러니 유하, 네가 모자라서 초능력을 전수받지 못 한 게 아니라. 내가 양심에 털이 나서 초능력자가 된 거야.”

“…….”

유하는 멍하니 들었다.

누가 봐도 유하가 하시아보다 성실하고, 사리 분별을 잘 하며 사회 체제에도 순응한다.

그런데도 마녀의 비전, 초능력을 계승한 건 언니였다.

유하로서는 내내 가슴에 품었던 응어리인데…….

진실은 뭐 이런 기막힌 소리란 말인가.

“하, 하지만 시릭은…….”

“시릭은 당연히 나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바른 정신을 갖고 있지. 하지만 시릭의 멘탈, 정신력은 사실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 어떤 고난과 역경에 괴로워하더라도 결국 받아들이고 일어나는 초인적인 심지가 있지. 그래서 믿고 전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지.”

“…….”

시릭 카라카스는 온갖 고난과 패전, 끔찍한 상황도 결국 받아넘겼다.

하시아는 포크를 허공에 건들거리면서 말했다.

“역대 초능력자 중 누구보다 진취적인 기상을 지녔지. 나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시릭의 딸이 선천적인 초능력자가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고…… 앞으로 잘 교육시켜야 할 거야. 교육은 정말 중요하니까.”

“…….”

유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이 올라와서 나오는 대로 말했지만 벨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

하시아가 안 된다면 결국 시릭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데…….

하시아는 유쾌하게 웃었다.

“시릭이 요즘 이셀렌을 계속 찾는 이유가 오르카 문제 때문이잖아? 오르카가 마음에 둔 여자를 황성으로 불러들이는 바람에 이셀렌과 한바탕했단 소문이 파다하던데? 이제 네가 벨의 문제를 앞세워서 시릭을 방으로 불러들일 찬스 아냐? 반격의 천재일우!”

“찬스라니…….”

“총애 다툼은 당연한 거지. 아, 이건 시릭이 한 말. 그런 게 없는 것처럼 굴면 더 이상해진다고 하더라.”

하시아는 무릎을 치고는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 다툼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걸 적당히 다독이는 게 바로 다스리는 이가 할 일이라고 하더라. 장려해서는 안 되지만 무작정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조이고 푸는 걸 잘하는 게 바로 정치라고.”

“…….”

“네가 벨 문제로 상담 좀 하고 싶다고, 시릭에게 안겨서 눈물 좀 글썽거리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텐데? 그 정도 계산이야 다 끝났을 텐데 뭘 관두느니, 마느니 소리를 해? 시릭은 아버지로서 책임감 때문에 네 딸아이에게 더욱 집중할 테고. 넌 다른 황후들보다 더 각별하게 사랑받고. 다 좋은 일이잖아?”

하시아가 멀뚱하게 보자 유하는 허탈해졌다.

“다, 당신은 진짜 사람이…….”

“이젠 서큐버스야. 놀랍게도 사람을 관두었지.”

하시아는 잠깐 서큐버스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다시 마녀로 돌아왔다.

눈앞에서 변하는 재주에 유하는 도리질을 쳤다.

“언니는 그리도 뻔뻔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러지는 못하겠어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 없는 사이에 자리 차지한 게 부끄럽고 괴롭다? 당연히 그래야지.”

“…….”

하시아는 싸늘하게 말했다.

“나도 불만 많은데? 내가 없는 틈을 틈타서 여동생이 내 남자랑 놀아나서 자식까지 본 걸 즐거워할 사람은 드물 거라고. 아무리 내가 슬픔을 모른다지만 분노는 알거든.”

“그러니까…….”

유하가 말하려는 순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 폐하 납십니다!”

문제의 당사자가 직접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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