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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200화 (20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200)

부부는 서로 닮는다

연임식.

황도를 한 바퀴 크게 도는 퍼레이드다.

마차가 나아가는 대로, 양쪽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이들도 헤아리기 어려운 인산인해.

황도 시민들은 물론이고, 제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추정 천만이 넘는 인파들이다.

당연히 치안을 비롯해서 온갖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 때문에 제국 정부의 요인들이 야근을 거듭했고.

드디어 오늘이 마무리.

이제 내가 황제가 됐다는 걸 만방에 알릴 시간이다.

“황제 폐하!”

“폐하 만세!!”

“시릭 카라카스 폐하 만세!!”

“리젠 폐하 만세!!”

대로를 천천히 나아가는 황금마차.

제국민들이 내 전생의 이름과 지금의 이름을 혼용해서 부른다.

나는 마차 지붕에 서서 손을 흔들어서 화답했다.

사람들에게 직접 내 얼굴을 비치는 자리다.

“폐하! 받아 주세요!”

“폐하!!”

어린 소년과 그 어머니로 보이는 엘프 여성이 나에게 꽃다발을 던져 준다.

나는 얼른 염동력으로 꽃다발을 끌어와서 내 옆에 놓았다.

그때마다 환호성이 터지고, 박수 소리가 울린다.

이미 마치 지붕 위는 꽃다발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 옆에 선 8황후, 마령화비 유하도 제국민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준다.

검은 로브를 기조로 한 숏 드레스, 팔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난 게 유하답지 않아서 매혹적이다.

하얀 황제복을 입은 나와 나란히 서 있으니 누가 봐도 정겨운 한 쌍이리라.

나는 유하에게 속삭였다.

“할 말 없냐?”

“예?”

“모처럼 단둘이잖아. 아무 말이나 해. 뭐든지 다 들어줄게.”

뭐 황후들도 이 자리 준비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나?

유하는 당황하다가 말했다.

“……딸아이가 돌아왔어요.”

“응, 막내가 라온 챙기느라 고생했겠지.”

장녀, 라온은 힘은 있어도 나이가 어려서 누가 옆에 붙어 다녀야 했고.

내 자식 중 막내가 따라다니면서 보호자 역할을 했다.

유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에게 잘했다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

“잘했다.”

나는 유하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유하는 깜짝 놀라서는 손을 빼려다가 머뭇거렸다.

나는 유하의 손을 툭, 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자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건 당연하고, 너한테도 해 줘야지.”

“폐하…… 저는 잘한 일이라고는 없어요. 늘 실수뿐이었으니까요.”

“나도 실수 많이 했다.”

쏟아지는 환호성.

우리 둘은 시민들에게 일일이 응해 주고, 꽃을 받아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에게 대화를 건넨다.

“그래도 다들 한자리에 모이게 됐잖아. 그럼 된 거다.”

“예, 감사해요. 폐하.”

유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음?”

유하가 나와 맞잡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내 손등에 키스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

“오오오!”

하지만 구경하던 이들이 새삼스럽게 목청을 높이면서 환호했다.

높은 분들의 다정한 애정 행각은 임팩트가 강하지.

유하가 자기가 먼저 키스해 놓고 수줍어하면서 눈을 피했다.

“……그러면 폐하, 나중에 아이와 함께 찾아뵐게요.”

“응, 그래.”

내 손을 놓은 유하는 제국민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빛에 확 휩싸이는가 싶더니 팟하고 모습을 감춰 버렸다.

“오오오.”

“8황후 전하께서 신기하게 사라지셨다!”

깜짝 놀라는 반응들.

하시아가 유하의 모습을 감춰 버린 거다.

비전의 응용이라는데 내가 봐도 굉장히 놀라운 수법이다.

하시아는 이게 특기인 모양이었다.

텅 비어 버린 내 옆.

그리고…….

휘리릭!

갑자기 돌개바람이 일어나더니만 내 옆에 바라메가 나타났다.

시원하게 다리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바라메였다.

“아, 7황후 전하시다!”

“바라메 전하!!”

알아본 시민들이 환호했다.

바라메가 웃으면서 손 키스를 날리자 그쪽의 시민들이 자지러진다.

자기 쪽에도 날려 달라고 껑충, 껑충 뛰어오르는 이들도 있고.

나는 어깨로 바라메의 어깨를 툭 쳤다.

“분위기 잘 타시네.”

“축제는 늘 즐거운 법이니라. 이리도 많은 이들이 그대가 돌아온 걸 보고 기뻐하니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 아니겠느냐?”

“야근 받은 인생이다. 뭐 별문제 없고?”

“걱정하지 말고 즐겨라.”

바라메는 손을 흔들면서 불쑥 말했다.

“오래 살아라, 시릭. 그게 이 몸의 소원이니라.”

“그게 소원이라고?”

“부부가 오래 함께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더냐.”

바라메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다.

만 년을 넘게 산 용공주니까.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시간, 이 제국도 결국 일순 찰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무작정 오래 살면 끝이냐? 매일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노력해야지.”

“흠?”

“매일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 너도 열심히 해라.”

바라메는 맑게 웃었다.

“그래, 그러면 라온과 함께 밤에 찾아가겠느니라.”

“응?”

바라메는 발돋움을 하더니만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와아아!”

“좀 더 진하게! 좀 더 해 주세요!!”

제국민들이 좀 더 수위를 높이라고 불처럼 다그친다.

내가 얼떨떨해하는데 바라메는 입술을 떼고는 고혹적으로 웃어 보였다.

휘리리릭.

무심코 내가 손을 뻗어서 붙들려는 순간, 다시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바라메의 모습이 사라지고…….

“응? 나비다!”

“나비야!”

바라메가 사라진 자리에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붉고 노랗고 푸른 나비들이 뭉치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

누가 등장할지 반사적으로 깨달은 나는 손을 뻗은 그대로 기다렸다.

그러자…… 나비들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만 가련한 엘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활짝 핀 꽃처럼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드레스.

6황후 나비린이었다.

“정령무희님!”

“팔이 어쩜 저렇게 얇으실까?”

제국민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던 나비린이 나를 돌아보다가 비틀거렸다.

내가 반사적으로 붙잡아 주자 아예 몸을 유지할 수 없다는 듯이 포옥 안겨 버린다.

“오오오!”

“좀 더!”

갑작스러운 포옹에 제국민들의 반응이 아주 열성적이었다.

문명이 발전했다면 카메라 플래시에 눈을 뜰 수 없었을 거다.

“오늘 연임식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이 남겠군.”

“몸이 약한 저를 폐하가 안아 주셨다고 길이길이 기록될 거랍니다.”

“아, 무거워.”

“……무겁지는 않답니다.”

내 가슴에 기댄 나비린은 샐쭉하니 말했다.

나비린이 몸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일부러 능청을 부리는 거다.

나는 나비린의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럼 네 소원은 이걸로 때운다?”

“……자, 잠깐만요. 그건 아무래도 아니랍니다?”

득의양양하던 나비린은 정색했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황후들, 이미 내가 소원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일부러 심술궂게 굴었다.

“이렇게 안아 줬는데도 소원이 더 있다고? 뭐가 더 필요해?”

“……조, 좀 더 안아 주세요.”

“다른 사람도 등장 시간이 있잖아.”

쪽.

나는 나비린의 머리를 끌어안고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나비린은 반색하면서 힘차게 나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 몸이 약한 척 휘청거리던 분은 어디 가고 천하장사 탄생이다.

“폐하, 그러고 보니 세라 이야기로 논의를 드릴 게 있는데요.”

“응?”

설마 세라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그 이야기인가?

하지만 나비린은 눈을 가볍게 흘기면서 내게서 팔을 풀고 물러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제 방에서 나누도록 하죠.”

“야, 잠…….”

파아앗!

나비린의 모습이 빛나는가 싶더니만 형형색색의 나비로 변해서는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나비린이 있던 자리에 따사롭게 내려오는 빛무리.

그 빛기둥 사이로 하얀 깃털이 팔락, 팔락 떨어진다.

“아.”

“5황후 전하시다! 5황후 전하가 나올 차례신가 봐!”

관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 기대대로, 쏟아지는 하얀 깃털이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렌시엘이 갑자기 나타났다.

단색의 베이지색 드레스, 끄트머리와 팔에 작은 방울들을 단 게 이색적이다.

“우와아아!”

“렌시엘 전하!”

“사랑합니다!!”

“아름다우세요!!”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렌시엘은 100년 동안 황성을 홀로 지킨 황후, 황도의 시민들이 남다르게 여기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피곤하진 않으시고요?”

“잠이 좀 부족하지만 괜찮아. 너는?”

“저보다 당신이 걱정이에요.”

렌시엘은 조심스럽게 나와 팔짱을 꼈다.

작은 스킨십이지만 시민들이 탄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쳤다.

모습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내가 시릭이라는 걸 인정하는 추세였다.

이것만 봐도 연임식은 성공적이다.

“이 등장, 퇴장씬은 너희들이 짰지?”

“각자 생각하고 하시아 씨가 최종 조정을 했습니다. 전 화려한 건 별로였지만요.”

“…….”

이야.

새삼스럽지만 렌시엘도 하시아를 어려워하네.

이 문제도 어떻게 해야겠는데.

내가 머리 한구석에 기억해 두고 있는데 렌시엘이 말했다.

“……엔라도 등장해요.”

“그래.”

이 연임식은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황후들과 관계도 개선되었고 제국이 평온하게 돌아가리라 알려 주는 자리다.

여러모로 고려한 끝에 엔라도 참가시키기로 했다.

물론 사면해 준 건 아니고.

앞으로 엔라에게는 재판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나는 분위기 전환 겸 렌시엘에게 말했다.

“넌 뭐 소원 없냐? 지금이라면 뭐든지 들어줄게.”

“……미리엘이 아빠를 보고 싶어 해요.”

“응? 어젯밤에 봤잖아?”

“또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에요.”

렌시엘은 묘하게 말끝을 흐리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의아해하다가 뭔가 분위기가 요상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왜 이 화제로 부끄러워하지?

내가 멈칫하는데 갑자기 렌시엘이 나직하게 말했다.

“……눈을 감아 주세요.”

“싫은데?”

“…….”

내가 장난을 쳐도, 렌시엘은 무시하고는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입술! 아깝다!”

“입술에 하셔야죠!”

“이번에는 꼭 입술에!”

우리들을 지켜보던 제국민들은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훈수를 두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탄식하고, 보채자 렌시엘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날개로 자기 몸을 감춰 버렸다.

팟!

다시 하얀 깃털이 휘날리면서 렌시엘의 모습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나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설마 렌시엘이 밤에 보자는 게…….

“으음.”

스으윽.

그 순간 내 옆에서 푸른 불꽃이 확 타올랐다.

삽시간에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면서 제국군 군복으로, 그걸 입고 있는 미녀로 변한다.

엔라였다.

“아.”

“……4황후 전하시다.”

그 순간 시민들이 멈칫했다.

엔라가 반란을 일으킨 사실, 이후에 다시 제국군에 합류해서 싸웠다는 사실을 듣고 환영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거다.

그러자 나는 엔라의 손을 잡고는 번쩍 들어 보였다.

“와아아아!”

“제국 만세!”

머뭇거리던 제국민들은 내 퍼포먼스에 반사적으로 손뼉을 쳤다.

분위기를 끌어올린 내 행동에 엔라는 씁쓸하게 속삭였다.

“나는 빠지는 게 나았을 텐데.”

“너 하나만 빠지면 모양이 이상해져.”

“시릭, 세탄을 부탁한다.”

“어디서 부탁질이야? 네가 부탁할 입장인 줄 알아?”

나와 엔라는 서로 시민들을 향해서 활짝 웃고, 손을 흔들어 주면서도 말의 칼날을 부딪쳤다.

나는 혀를 차고는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 세탄을 엄마 없이 키울 생각 없다고. 애가 다 컸다고? 남자애는 아무리 커도 엄마는 엄마야.”

“그건 아멜리아 이야기인가?”

“……쓰읍.”

내가 노려보자 엔라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웃는 모습이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이미 협조했지만 앞으로의 모든 일에 전면 협조할 거다. 그저……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만.”

“사형장 끌려가는 죄수처럼 굴고 있네. 어디서…….”

“사랑했다, 시릭.”

엔라는 그 말을 하더니만 나를 갑자기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

내가 두어 번 등을 두드려 주고, 마주 앉아 주려는 순간…… 엔라의 몸이 확 불타올랐다.

푸른 불꽃이 순식간에 엔라를 살라 버리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엔라는 형벌은 피할 수는 없지만 목숨을 앗을 수는 없었다.

물론 내 아내, 내 가족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엔라는 유능한 장군이다.

칠죄신이 사멸했다고는 하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훗날을 대비해서 살려 둬야 했다.

그리고.

내 옆에서 갑자기 은색 기운이 치솟았다.

반짝거리는 은빛이 이내 머리카락이 되고, 그 긴 머리카락 사이가 벌어지면서 연갈색 여인이 나타난다.

요염한 다크엘프, 바로 이셀렌이었다.

“이셀렌 전하…….”

“으으음.”

“아름다우시다…….”

제국민들은 경계와 감탄이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도도하게 내 옆에 선 이셀렌은 코 아래를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이셀렌은 본래 공적인 자리에서 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이렇게 얼굴을 감춘다.

자기가 노출되는 걸 꺼리니까.

한데 오늘따라 이셀렌의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릭.”

“응?”

“……오르카에게 여자가 생겼다는데 혹시 알아?”

“뭐?”

이셀렌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시민들이 보는 자리라고 해도 거리가 있으니 사실상 나와 단둘이 있는 자리다.

그런데도 이셀렌이 이러는 건 진짜 어지간히 열 받았다는 거다.

연임식이고 뭐고 엎어 버릴 기세다.

“……어, 음? 이셀렌?”

“몰라? 너에게 아무 말도 안 해? 정보국장은?”

“…….”

사실 은근히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전에 세탄하고 메이호가 오르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놀렸지.

그때야 그냥 형제끼리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셀렌이 살벌한 걸 보니 뭔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일단 시침을 뚝 뗐다.

“오르카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그야 있겠지. 애가 나이가 몇인데.”

“누군지 알아?”

“너무 간섭하면 애가 힘들어해. 그냥 모른 척해.”

“안 돼, 내가 봐야겠어.”

“뭐?”

“보고 검증해야지.”

암살여왕의 검증은 죽여 버리겠단 소리잖아?

이셀렌은 연임식이고 뭐고 팽개칠 기세였다.

이 팔불출을 막을 수 있는 사람?

나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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