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89)
서방정토
콰앙!!
내가 내달리는 걸음을 따라서 사방으로 금색 마력이 쭉쭉 퍼져 나갔다.
마력이 온몸에 넘쳐 나서 움직일 때마다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신검 천지신명의 위력, 만인의 정신을 한 몸에 받아들인 내 힘이었다.
칠죄신이 불러냈던 종복들이 거기에 휩쓸려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칠죄신은 당황하면서 손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아!!
그러자 다시 검은 마력이 퍼져 나가면서, 타락한 생명들이 튀어나온다.
순식간에 내 앞을 몸을 던져서 막는 칠죄신의 종복들.
어찌나 급하게 불러냈는지, 제대로 된 형체도 갖추지 못하고 시커먼 물엿이 끈적거리면서 너울거리는 것 같았다.
“폐하의 길을 열어라!!”
“제국군!! 지금이야말로 목숨을 걸 때다!! 좌익!! 동방군부터 순차적으로 돌격해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엔라의 목소리.
제국군도 이 한순간,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었다.
“미안하다!”
계속 튀어나오는 종복들은 전우들에게 맡긴다.
나는 오로지 앞으로 내달렸다.
파아앙!!
시커먼 흙탕물을 갈라 버리면서, 금색의 마력을 내뿜으면서 앞으로.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싸워 온 숙적, 칠죄신에게!
―정말 미쳤군!! 죽을 생각인가?
칠죄신이 경악하면서 뒤로 뛰어서 피했다.
물수제비를 뜰 때처럼, 날렵하게.
순식간에 1km, 5km 씩 휙휙 멀어져서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다.
칠죄신도 지금 내가 오래 못 버틴다는 걸 간파하고 도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막 7번째 초능력, 순간 예지를 각성했다.
그러니…….
파아아악!!
내가 천지신명을 횡으로 휘두르자 금색의 마력이 검광이 되어서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간다.
―커어억?!
무작정 내빼던 칠죄신이 검광에 두 동강 나 버렸다.
물론 신은 신, 땅바닥에 착지했을 때는 이미 재생된 뒤였다.
그래도 상당한 타격이 들어갔다.
동시에 드래곤 하트를 발동!
초가속이 된 나는 거리를 좁혀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칠죄신은 이번에는 옆으로 뛰어서 피했지만…….
―크아아악!?
역시 내 순간 예지에 걸려서 다시금 영체가 반으로 동강이 나 버렸다.
가까스로 다시 재생하기는 했지만 척 봐도 영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칠죄신이 급하게 외쳤다.
―황제! 미쳤냐! 그렇게 수많은 정신력을 끌어모았다가는 네 영혼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걱정되면 빨리 죽어 줘라!”
어차피 정신 오염이라면 이쪽이 낫다.
내가 또 검광을 날리자 칠죄신은 흑마력을 불러일으켜서 방패를 만들었다.
효과가 있는지 내가 날려 보낸 검광이 방패에 막혔다.
이어서 하늘에서 다시금 시커먼 벼락이 떨어지려고 하는데…….
“합!”
나는 신검을 들어 올려서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막, 뭉쳐서 떨어지려던 검은 벼락이 기세를 잃고 흩어져 버렸다.
칠죄신은 기겁했다.
―뭐?! 그게 어떻게…….
“어차피 흑마력도 결국 마력이고 사람의 정신이다! 덮어쓰는 건 일도 아니지!”
칠죄신은 신, 사람의 악의와 증오를 자유롭게 다루며 정신은 바다처럼 방대하다.
하지만 지금, 제국민의 정신을 모두 끌어모으고 신검을 쓴 나는 그보다 훨씬 방대한 정신력을 갖추었다.
놈이 바다라면 나는 행성, 이제 내가 압도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크다.
숨 쉴 때마다 자연스럽게 금색 마력이 파바밧 튀어 오르는데…… 정신이 주기적으로 멍해진다.
시릭 카라카스이자 리젠 리브라타인 영혼에 다른 이들의 기억과 감정이 섞여 드는 것이다.
무당벌레가 갑자기 우주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시릭.
“알아, 고맙다.”
손에 쥐어진 신검의 부름,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신검은 나에게 힘을 빌려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밀려드는 제국민의 정신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 주고 있었다.
나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정말로 민의(民意) 그 자체로군. 민의검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해할 수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왜? 흑마력을 받아들이면 네 영혼은 남는다. 그런데 왜 다른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면서 싸우는 거냐? 인류가 선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국민 탓할 거면 정치는 하면 안 되지.”
아, 젠장.
나도 지금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칠죄신과 말을 섞으면 내가 시릭 카라카스라는 확신이 돌아온다.
멈춰 버린 심장에 제세동기로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도 슬슬 한계다.
“이제 끝내자.”
나는 이를 악물고는 신검에 모든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칼날에 어린 마력이 쭉쭉 늘어나기 시작한다.
칼날을 넘어서 하늘을 찌를 기세로 마력이 뻗어 나간다.
단순하지만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검.
어림잡아 100미터는 넘을 칼날.
말 그대로 하늘을 베어 버리는 칼.
우우웅!!
금색의 칼날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한다.
8계위 이상, 나도 모르는 영역까지.
칠죄신은 나를 노려보았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래, 시릭! 그걸로 나를 쳐서 없애겠다고? 그게 가능해도 그 다음은? 너는 이미 정신 오염이 될 대로 돼서 돌아가지 못해! 나 이상으로 타락하고, 추락하게 될 거다!!
“힘든 걸 모르겠냐? 내가 황제인데.”
티 하나 없이 새하얀 마력을 내뿜으면서 하늘의 끝까지 닿은 신검.
아니, 이제는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기둥이었다.
나는 그 빛기둥을 지상으로 내리치면서 외쳤다.
“신화(神話)!”
내 머릿속에서 솟구치는 지식.
신을 없애 버리는 건 신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그러니 나는 재림하는 황제 전설을 넘어서, 신을 죽이는 신화를 써야 한다.
“천의검 참신황제(天意劍 斬神皇帝)!!”
우우우우웅!!
300미터는 넘음 직한 칼날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하늘에서 추락해서 온갖 포악한 짓을 일삼던 죄악신을 향해서.
―크아아아아!!
칠죄신은 흑마력의 칼날을 수천여 개를 만들어서 내게 투척했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나를 해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염동결계가 전부 다 막아 버렸다.
느릿하게.
하지만 장엄하게.
빛의 기둥이 칠죄신의 머리로 떨어졌다.
퍼어어어억!!
―크아아아악!!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칠죄신이 비명을 질렀다.
검이 닿은 곳만이 아니라 저 먼 지평선까지 새하얀 마력이 쭉쭉 뻗어 나간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빛의 바다.
아무리 질긴 재생력도 각설탕처럼 녹아내린다.
칠죄신은 타들어 가는 비명을 질렀다.
―시릭, 시릭 카라카스!! 이런다고 네가, 네가 괜찮을 줄 아냐?! 너는 이제, 이제부터 어마어마하게 시달리게 될 거다! 사람들이 널 추종하면서 끝도 없는 기대를…….
“몰랐냐? 원래 황제는 종신직이다.”
우우우웅!!
신검이 빛을 발하면서 마력의 바다가 더 진해진다.
―카아아악! 카아아악!! 끄아아악! 왜, 왜, 왜 내가…….
칠죄신은 새하얀 마력의 바다에 휩쓸려서 말 그대로 영혼이 불타 들어갔다.
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계속 투시력으로 살폈다.
혹시나 놈의 티끌이라도 남아서 달아날까 봐.
―나, 나는, 내, 내가…… 이런 하찮은 생명들따위에게…… 크르륵.
우우우웅.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비명도 꺼지고.
신검에 어린 거대한 마력도 사라졌다.
“…….”
빛의 바다가 사라졌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신검을 잡은 그대로 멍하니 앞을 살폈다.
정적.
몇 번이고 확인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칠죄신은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
내 손에 들린 천지신명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반적인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천지신명을 살펴보았다.
“오래 본 친구가 하루아침에 성형수술을 받고 오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머, 몰라보게 예뻐졌다, 얘? 그 쌍꺼풀 어디서 했어? 파운데이션은 뭐 쓰고?”
―많이 힘든가 보군.
“돌아 버릴 것 같다.”
부작용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방금만 해도 2번 정도 의식이 끊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정신을 다루는 나는 직감했다.
이번에 의식이 끊어지면 죽는다.
아니, 지금 이러는 것도 마지막 숨을 내뱉기 전에 붙들고 있는 거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으니 대가를 치르는 거지. 젠장, 역시 황제는 종신직이야. 죽어야만 끝나는군.”
―칠죄신은 완전히 소멸했다. 이제 카라카스에는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거다.
“다행이다. 우리 애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걱정 없이 크겠구나.”
갑자기 목이 막힌다.
아.
나는 이제 다시 애들을 보지 못하겠구나.
“아빠!!”
그 순간 타들어 가는 목소리.
아직도 허공에서 열린 포탈.
저 너머에서 리세라가 나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라도 볼 수 있게 됐구나.
나는 얼른 목을 가다듬고는 웃었다.
“으음, 세라야. 왜 그러니? 다 끝났다.”
“아빠! 몸이…….”
리세라의 옆, 메이호가 멍한 얼굴로 나를 가리켰다.
내 몸에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새하얀 마력들.
조금씩 몸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음, 미안하다.”
“미, 미안하다고 하지 마요!”
“폐하!!”
저 멀리 떨어졌던 제국군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칠죄신과 싸우느라 멀리 와서 한참 거리가 있다.
나는 돌아보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아, 저놈들 대오도 안 맞추고 오는 거 봐라.”
“……아빠.”
포탈, 메이호의 손을 잡은 미리엘이 나를 불렀다.
글썽거리는 눈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 미안하다. 아빠가 진짜로 미안한데…… 음, 건강해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시는 거예요! 무사히 돌아오시기로 했잖아요!!”
메이호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웃었다.
“형제자매 사이에 싸우지 말고, 어머니 잘 보살펴드리고, 잘 커라.”
“아빠, 너무하세요. 설마 또 이렇게…….”
리세라가 펑펑 울면서 나를 보았다.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빠는 또 환생할 거다. 늦어도 10년 안에 다시 너희들을 찾아갈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잘 지내라.”
“그,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메이호는 그때야말로 나랑 결혼하겠다는 소리 같은 거 하지 말고. 아빠 다음 환생은 엄청 잘생긴 남자가 될 거다.”
하소연하던 메이호가 어이없이 나를 보았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에 얼굴이라도 보게 돼서 다행……”
리세라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애써 웃으려고 했다.
―아빠, 돌아오…….
뚝.
그 순간 포탈이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저편의 광경이 모습을 감추더니 싹 사라진다.
슈슈슈슝.
공중에 떠 있던 무수한 포탈들이 싹 사라진다.
“아.”
하시아의 정신력이 다했구나.
하긴 단숨에 수천 개의 화면을 띄우고 동시 스트리밍을 진행했으니 서버가 버티겠냐.
하시아가 진짜 엄청난 일을 해 준 거다.
“…….”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걸로 됐다.
딸의 마지막 말을 못 들은 건 아쉽지만.
“애들 앞날 걱정 없고, 나 할 일 다 했으면…… 된 거지.”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2번이나 보여 줄 순 없다.
다시 환생해서 10년 뒤에 찾아간다는 건, 애들 안심시키려는 거짓말이다.
이 다음은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재림 황제가 돼서, 다시 세상이 혼란해질 때 윤회전생을 거듭하는 건지.
내가 어질어질한 머리로 생각하는 데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폐하!!”
“무사하십니까!”
제국군 기병부대가 말을 몰아서 달려온 거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외쳤다.
포효.
“제국군 정렬!!”
멈칫.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오던 제국의 기병들이 멈췄다.
내 쪽으로 이어서 달려오는 보병들, 다른 부대들을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상자는 얼마나 되나?”
“화, 확인 중에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 인간 기병대장이 말했다.
나는 턱짓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소속하고 이름이 어떻게 되지?”
“강철부대 2돌격대를 지휘하는 백부장 구델입니다.”
“좋아, 구델. 보다시피 긴 전쟁은 끝났다!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전우들부터 돌봐라! 이렇게 달려올 게 아니라!”
“폐, 폐하의 용태를 확인하고 모셔 갈 생각입니다!”
“어허! 나는 멀쩡하다. 얼른 돌아가라!!”
내가 꾸짖자 구델은 눈을 굴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 못하겠습니다.”
“야, 지금 명령 불복종이다?”
“……폐하.”
내 몸을 바라보는 구델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하긴, 이미 절반 이상이 투명해져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천국에서 마중이라도 나왔나 보네.”
내 몸 주변에 반짝거리는 하얀 입자들.
구델을 비롯한 제국군들이 일제히 말에서 뛰어내려서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폐하!! 우리들을 버리고 가시는 겁니까?”
“야, 나 아직 황제 아니야. 시릭 카라카스의 환생이라는 건 정치적인 거짓말로 해 두자.”
구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칠죄신과 싸우시던 용맹한 모습! 폐하는 제국의 단 하나뿐인 지존이시며 감히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냐?”
“예! 만약 의심하는 불충한 자가 있다면 제가 가장 먼저 없애 버리겠습니다!”
“이제 다 끝났는데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레릭이 미친 듯이 뛰어오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도 보인다.
랑에이도, 엔라도 보이네.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잘 모르는 얼굴들, 끔찍한 수라지옥을 거쳐 나온 병사들이 목이 터져라 나를 부르고 있었다.
“리젠 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들릴 거리가 아닌데도 무작정 내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백만이 넘는 전우들이 나를 걱정하고, 나는 또 안도하고 있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겨우 웃었다.
“많이 살아남았다.”
“……예?”
“칠죄신이 상대니 제국군 전멸까지 각오했는데. 정말로 많이 살아남았다. 다행이다.”
“전부 폐하의 지혜와 은덕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너희들이 날 믿어 줬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흐려지는 눈으로 달려오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함께 있고 싶은 녀석들이 저리도 많네. 난 행복한 사람이다.”
“폐하.”
“구델.”
“……예! 폐하!”
눈물을 줄줄 흘리는 구델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덩치는 산 만한 놈이 어린애처럼 펑펑 운다.
나는 놈과 놈의 뒤에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웃었다.
“애들 밥 먹이고, 싸우지 말고, 다들 행복하게 살라고 해라.”
“폐…….”
나는 눈을 감았다.
나를 부르는 소리들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그래, 극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놈들하고 같이 뒤엉켜서 살다가 잘 죽으면.
그게 바로 극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