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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87화 (186/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87)

수라지옥

방금 죽어 버린 시체들, 머리가 터져 나간 제국군이 각자 무기를 들고 천천히 다가온다.

제국군은 침묵하고, 내 뒤에 집결했던 돌격대도 주춤 물러났다.

당연하다.

함께 훈련받고 함께 싸운 전우들.

때로는 가족 이상의 친밀감과 애정을 느낀다.

그런데 그 시체가 일어나서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 똑바로 보겠는가?

“아아아아아아!!”

멈춰 버린 제국군 앞으로 나선 랑에이가 크게 외쳤다.

천지를 떨쳐 울리는 호랑이의 포효.

외침에 물러나던 제국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타, 타락.”

“타락한 거다!”

“적이다! 눈물을 머금고 베어라!!”

“싸우자!!”

그래도 제국군은 칠죄신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군대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패닉을 일으키고 뭉개지겠지만 장교들의 독려, 병사들 개인의 부르짖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무기를 꼬나 쥐었다.

그 선두에서 랑에이가 앞으로 나서자, 병사들이 각자 무기를 잡고 따라나섰다.

“랑에이.”

“해 보겠다.”

내 말에 랑에이는 앞만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일반적인 타락이 아니다.

칠죄신도 전선에서, 자기를 죽인 이들을 이렇게 바로 즉석에서 수하로 부릴 수 없었다.

그냥 시체를 조종하는 능력인 거다.

―시릭, 한계가 있을 거다. 엔라가 말하기를 한계가 없다면 어차피 제국군은 끝이라고 한다. 칠죄신만 쓰러트려라!

하시아의 텔레파시.

맞는 말이다.

칠죄신의 이 능력에 한계가 없다면 제국군은 그 머릿수가 스스로를 옭아맬 것이다.

그렇다고 나만 남고 제국군을 뒤로 뺀다?

퇴각이 쉽지 않을뿐더러, 칠죄신이 종복들을 소환하면 내 승률은 지극히 낮아진다.

―단기 승부로 들어갑니다. 엔라에게 그렇게 전해 주세요.

나는 그 말을 맡기고는 검을 잡았다.

탁!

“아아아아!!”

“앞만 보며 돌격! 랑에이 전하를 따라라!!”

시체로 일어난 동료들.

제국군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는 랑에이를 선두로 뚫고 들어갔다.

방금 죽은 동료들과 충돌하는 제국군.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 광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에서 떠올랐다.

비행.

―흐음?

팔짱을 끼고 뒤에서 지켜보던 칠죄신이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대로 사선으로 낙하, 탐랑을 휘두르면서 놈의 머리를 노렸다.

“칠죄신!!”

―뭐야? 이제 시작인데 총대장이 돌격해 오나?

파아아악!

내가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휘두른 칼을 칠죄신은 여유롭게 피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염동력을 써서, 착지의 충격을 줄이면서 그대로 거문을 횡으로 휘두르고는 녹존을 어검으로 날렸다.

칠죄신은 고개를 숙여서, 뒤로 뛰고 피하며 비웃었다.

―하하하! 황제! 마음이 달아오르나?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마음이 조급해지나? 너무 급하게 굴면 여자가 싫어한다고?

“유부남 아저씨는 인기 신경 안 쓰거든!!”

나는 쏘아붙이면서 마력질주를 사용, 계속 칠죄신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칠죄신은 훌쩍, 훌쩍 뒤로 피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신은 신.

놈이 한 번 발을 구르면 100미터가량을 이동해 버린다.

내가 열반의 경지를 넘어서 마력질주 자체가 빨라진 데다가 염동력까지 써야 가까스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동안 뒤에서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팔다리를 잘라라! 죽일 필요는 없어! 팔다리만 잘라!”

시체들과 충돌한 제국군 사이에서 사상자가 추가로 발생한다.

그러면 죽은 제국군이 바로 다시 칠죄신의 뜻에 따라서 조종당한다.

방금까지 동료였던 이들과 싸워야 하는 군대.

아군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게 고스란히 적군의 숫자가 된다.

지금이야 분전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멘탈이 꺾이게 된다.

말 그대로 수라지옥이니까!

―하하하하하!!

내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칠죄신이 갑자기 손을 저었다.

콰르르르릉!

저 멀리, 제국군의 후미에 갑자기 검은 벼락이 떨어지고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비명 소리들, 그리고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들.

저 멀리서도 시체가 되면 이제 칠죄신의 뜻에 따라 조종당하는 것이다.

……이건 못 이긴다.

나도 모르게 불쑥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발생한 사망자가 고스란히 적군이 되는 싸움이라니.

이 능력 자체를 파훼하지 않으면 무리다.

원래의 나라면 즉각 군을 물리고, 재정비를 거친 다음에 새로운 전술을 수립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뒤가 없다.

―육체를 버리니까 이런저런 능력을 지니게 되더군. 아, 내가 지금까지 왜 이렇게 육체를 고집했지? 이런 능력을 일깨워 줘서 아주 고맙군. 시릭!

놈이 도발적으로 말하자 나는 호흡을 정돈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텔레포트.

―윽!?

내가 이동시킨 왼손의 탐랑이 놈의 등을 찌르려고 하자, 칠죄신은 얼른 몸을 굽혀서 피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른손의 문곡 역시 튀어 나가면서 칠죄신의 허리를 베었다.

―큭.

신음 소리.

이제까지 아군을 조롱하기 위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 비명이었다.

동시에 진즉에 떠올린 탐랑과 녹존이 쉴 새 없이 비행하면서 칠죄신의 머리와 가슴팍을 노렸다.

어검 2자루로 놈을 계속 추격하면서, 다리는 마력질주로 따라붙고, 거리가 떨어지면 텔레포트로 놈을 베어 버린다.

―음?! 큭!

내가 작정하고 몰아치자 칠죄신은 신음을 흘리더니 드디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일단 붙어 버리면 최소한 텔레포트 공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겠지.

“무적이 아니지.”

칠죄신은 절대로 무적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해서 위압하는 거지.

놈은 사람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금 아군을 몰아붙이는 시체 조종 능력도 결국 영혼 없는 껍데기를 부려 먹는 거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애들, 아군이 침착하게 응전하기를 기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퍼붓는다!

―시릭 카라카스!!

칠죄신이 외치면서 양팔을 휘두른다.

그 손에 맺힌 시커먼 마력, 흑마력이 검의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파바바박!!

놈이 나를 흉내 내는 것처럼 양손에 검을 잡고는 맹공을 펼쳤다.

나 역시도 물러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맞받았다.

차차차차창!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

서로 땅에 발을 딛고 검을 계속 휘두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결투에서는 이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건 자존심, 자부심 싸움이다.

지금 내 뒤에서 제국군이 말도 안 되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으아아아!!”

나는 팔이 베이고, 몸통이 베이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칠죄신을 몰아붙였다.

인류의 대표로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다!

―크아악!

팔이 베인 칠죄신이 비명을 지르면서 주춤 물러난다.

휘청거리는 몸.

나는 드디어 앞을 향해서 전진하며 그 가슴팍을 향해서 크게 검을 휘두르는데…….

―이긴 줄 알았나?

갑자기 놈의 허리가 수직으로 떨어졌다.

뒤로 기울인 상반신,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면서 양팔의 검이 내 턱을 찔러 온다.

말도 안 되는 기예다!

“이겼지.”

퍽!

하지만 나는 수평으로 이동해서 피하면서 놈의 머리를 파군으로 갈라 버렸다.

즈어어억!!

검은 그림자가 갈라지고 눈을 부릅뜬다.

나는 멈추지 않고 이어서 놈의 다리를 베고, 어검으로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키에에엑! 키아아악!!

칠죄신이 괴성을 지르면서 훌쩍 뒤로 빠져나갔다.

흉측하게 갈라지고 베인 몸은 어느새 말끔하게 돌아가 있었다.

―……안 속는군?

“그런 곡예는 내가 원조거든.”

나는 원래 염동력으로 관성을 무시하는 전투를 즐겨 했다.

애당초 지금 칠죄신이, 거대한 인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본질은 영체(靈體)다.

몸에 관절이 있는 게 아니니 가동 범위가 자유자재였다.

―흠? 흐음.

칠죄신은 나를 보면서 손을 저었다.

콰릉! 콰르르릉!

그러자 다시금 제국군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내 염동결계 범위 안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막혔다.

“정령부대! 무조건 방어! 죽을힘을 다해서 막아라!!”

제국군도 이제 버티는 방법을 마련했다.

과연 내 전우들, 알아서 학습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 주고 있었다.

“발사!!”

뿐만 아니다.

이제는 짬을 내서는 칠죄신을 향해서 화살을 날려 대고 있었다.

파바바박!!

칠죄신은 귀찮다는 듯이 새카맣게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서 적당히 손을 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벼락이 일어나면서 화살 비를 흩날려 버리는데.

쐐애애액!!

그 직후에 어마어마한 화살이 칠죄신의 복부를 관통해 버렸다.

―커억?!

흑마력의 화살.

예렌의 저격은 칠죄신에게도 어느 정도 통하는 모양이다.

칠죄신이 움찔하고 비틀거리는 순간, 내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놈의 몸은 인체가 아니라 영체.

저 일렁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세상에서 한 점도 남기지 않으면 인류의 승리다!

하지만 비틀거리는 놈이 갑자기 팔을 휘둘렀다.

쐑! 쐐애액!

놈이 날린 검은 마력의 검, 흑마력의 검이 나를 노리고 똑바로 날아온다.

혹시 몰라서 나는 염동결계를 강화하고, 또 탐랑과 녹존을 어검으로 날려서 두 개를 쳐 내려고 했다.

“……아.”

안 된다.

서로 날린 검이 너무 속도가 빨라서는 저격이 안 되는구나.

미사일로 미사일을 저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지.

공격은 많이 해도 이런 방어는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 그래서 빚어진 착오였다.

그래도 염동결계가…….

퍼벅!!

한데 흑마력의 검은 염동결계를 단숨에 깨부수고, 내 마력방어도 무시하고는 내 몸에 박혔다.

본래 가슴에 박혀야 하는데 내가 그것만은 막으려고, 팔로 막아냈다.

“컥!?”

흑마력의 검에 맞는 순간, 온몸이 경직되면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걸렸…….

뎅겅!

어검으로 비행하던 탐랑과 녹존이 칠죄신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 틈에 나는 얼른 염동결계를 강화하고는, 팔에 박힌 흑마력을 뽑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염동력도 안 먹히고, 내 마력을 쭉쭉 빨아들인다.

“크아아아아!!”

결국 손으로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스스로 피부를 째는 고통을 이겨 내면서 뽑았다.

하지만 칼날을 잡고 뽑아낸 손이 시커멓게 물든다.

“헉, 허헉, 허어억.”

후드드득.

나는 온갖 전쟁터에서 굴렀고 수많은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내 팔에 뚝, 뚝 흘러 떨어지는 검은 피.

칼날을 뽑아내서 베인 손도 새카맣게 물들었다.

“…….”

모골이 송연해진다.

스르르륵.

날아갔던 머리를 금방 보충해 버린 영체, 칠죄신이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제국군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나? 저놈들은 그냥 관객이야! 어차피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버러지들!! 그냥 뒤에서 입 벌리고 탄식하고 울고불고하라고 불러 놓은 관객이라고!!

“…….”

―세상의 주역은 나와 너! 둘뿐이다!! 황제!

나는 대답하지 않고 상처를 살폈다.

덜덜 떨리는 팔.

칼에 맞은 팔이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시커멓게 물들어 버렸다.

마력을 써서 몰아내려고 해도, 염동결계를 펼쳐도 호전 증상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끓어오르는 머리,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칠죄신을 향한 게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적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게 내 몸속에 퍼지고 있었다.

이거 위험하다.

“헉, 허어억.”

―자, 이때만을 기다렸다. 시릭!

내가 놈을 노려보자 칠죄신이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이제 타락할 시간이다!!

동의도 없는 타락.

제국군의 앞에서 나를 타락시키는 것.

그게 바로 이놈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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