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86)
생명의 적
호랑이의 도약.
랑에이는 기합 소리를 하나도 내지 않고, 조용하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지켜보는 병사들이 침묵할 수 있을까?
“…….”
놀랍게도…… 180만에 달하는 제국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거니와.
하얗고도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전장의 여신이, 홀몸으로 신에게 뛰어드는 모습은 그저 눈부셨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왜 그렇…….
뻐어어어억!!
그 순간, 랑에이가 내려찍은 주먹이 안구를 찌부러트렸다.
쿠우우우우웅!!
안구를 짓이겨 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지에 충격이 울리고는 지면에 쩌저적 금이 갈 정도의 파괴력.
척!!
신을 찌부러트린 강맹한 일격.
“돌…….”
그 순간 백부장, 천부장의 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돌격!”
“랑에이 님을 따라서 목숨을 걸어라!”
“백호부대!! 죽으러 가자!!”
통제되지 않는 상황, 일선의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고, 좌우의 병사들이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2천, 아니 8천의 병사들이 앞다투어서 뛰어 들어간다.
이 일격으로 잡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가세해서라도 조금의 틈이라면 만들어야 한다.
장교들의 판단이었고, 옳았다.
“레릭! 맡고 있어라! 백호! 청룡부대 돌격!!”
나 역시도 달려 들어가면서 염동결계를 발휘했다.
상식적으로 황제, 총지휘관인 내가 일선에서 돌격한다는 건 군사학적으로 막 나가는 짓이다.
하지만 군사학 따질 거면 신하고 싸우면 안 되지!
애당초 병사들을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계속 염동결계로 커버를 쳐 줘야 했다.
―……이, 미친놈들이!!!
찌부러졌던 안구가 포효하면서 다시금 지면의 사방으로 번개를 쏘아 댄다.
안구 위에서 2타를 준비하던 랑에이는 훌쩍, 아주 높이도 날아올라서는 피했다.
이 순간 나는 급히 텔레파시로 전달했다.
―이셀렌! 적은 예지 능력이 없다! 그리고 번개의 범위에도 한계가 있다! 바라메, 하시아와 의논하고 번개를 막을 방법을 찾아라!
내 텔레파시는 일방적이다.
이셀렌의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나는 병사들의 앞에 서서 염동결계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파바바바박!!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수십 번을 발광하는 번개 다발이 내 앞으로 쏟아진다.
“이히히히히힝!!”
말이 반사적으로 멈추려고 하자 나는 얼른 텔레파시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지적 생명체가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는 초능력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나는 나만이 아니라 기병들의 말 전부에 전의를 주입했다.
“으아아아!!”
기병들이 말에 꼭 붙어서는 번개를 뚫고 들어간다.
파바바박!!
염동결계가 있다고 한들, 눈앞에서 번개가 튀는데 사람이라면 겁나는 게 당연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시릭! 눈! 눈을 베어 버리면 번개가 막힐 거다! 번개는 신의 기적! 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신의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거다!
마찬가지로 텔레파시를 쓸 수 있는 하시아의 조언.
바라메와 함께 지금 전황을 필사적으로 분석하고 있을 거다.
제국군의 전략.
랑에이가 선봉을 서고, 이셀렌이 정보를 통솔하고 하시아와 바라메가 분석한다.
이 말에 모든 걸 건다.
나는 포효를 쓰면서, 번개의 굉음을 뚫으며 외쳤다.
“병사들이여! 눈을 못 쓰게 만든다. 그러면 번개는 막힌다!”
“알겠습니다!”
“찔러라! 조금이라도!!”
파바바바박!!
“으아아아악!!”
하지만 기병들과 나, 보병들이 송곳 형태로 진을 짜서 달려들수록 번개의 격류가 어마어마해졌다.
염동결계를 뚫고, 번갯불이 튀어 들어온다.
“아아아!!”
나는 정신력을 불어넣어서 염동결계를 강화했지만, 그래도 병사들이 타들어 가고, 말들이 쓰러졌다.
고작 100미터를 질주하는 동안 천여 명의 전우들이 쓰러진다.
갈수록 거세지는데…….
“아.”
“아아아아아!!”
2차 돌격을 준비하던 제국군의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가 울려 퍼졌다.
하늘.
아까 번개를 피해서 높게도 날아올랐던 랑에이가 이제 낙하하고 있었다.
―으으음?
그제야 병사들이 어디를 보는지, 눈치를 챈 칠죄신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서 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번개가 멎었다.
이놈의 번개 다발은 놈이 눈을 뜨고 시야를 고정하는 동안에만 발동하는 거다.
―이것이!!
아주 찰나의 순간, 칠죄신은 다시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떨어지며 공격을 날리는 랑에이를 향해서 쏟아 내기 위해.
“가라!!”
그 순간 나는 얼른 칠성칠요 여섯 자루에 염을 불어넣고는 검을 날려 보냈다.
비검이 아니라 어검.
핑! 핑! 핑! 핑!
달리는 말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어검들.
콰가가가가!!
막 랑에이를 향해서 검은 번개를 쏟아 내던 눈알에 검들이 파고든다.
푸부부북!
―크아아아악!!
칠죄신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았다.
직경 10k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눈알에 비해서 내 검들은 너무나 작다.
하지만 그래도 칠성칠요는 칠죄신에게 통하는 무기.
눈에 꽂힌 데서 그치지 않고 안구 전체를 관통하고 뚫고 나가 버린다.
하늘을 향해서 번개를 뿌리던 놈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
“정령궁수부대 일제 사격!”
“쉬지 말고 쏴라!!”
돌격하는 부대와 동선이 겹치지 않게, 전개한 엘프들의 궁수부대들이 일제히 화살을 쐈다.
―이것들…… 크아아악!!
수백 발이 화살이 꽂히자 칠죄신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았다.
“뜨기 전에 쓰러트려라!!”
“으아아아!!”
마침내 돌격한 기병들이 기세를 실어서 검과 창을 내질렀다.
퍼버버벅!!
칠죄신은 반사적으로 눈꺼풀로 안구를 닫으려고 하지만, 화살이 너무 빽빽하게 꽂혀 있어서 불가능하다.
번개를 뿌리려고 해도 궁수부대들이 계속 쉬지 않고 쏴 대서 순식간에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카아아악! 카아아악!!
그리고…… 내가 곁으로 돌아온 칠성칠요 여섯 자루의 검을 다시 어검으로 날려 보냈다.
지금까지 기병들의 공격, 돌격에도 칠죄신은 눈동자만큼은 맞지 않게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즉, 약점!
핑! 핑! 핑!!
탐랑과 거문, 녹존이 날아가면서 놈의 눈동자를 노렸다.
칠죄신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얼른 피하려고 했지만 빽빽하게도 꽂힌 화살들과 기병들의 공격에 눈동자가 피할 곳이 많지도 않거니와.
내가 날린 염동어검은 자유자재로 비행한다.
스거어어어어억!!
아주 섬뜩한 소리.
―크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신의 비명이 길게도, 길게도 이어진다.
목숨을 걸고 돌격해 들어갔던 기병, 보병들도 순간 손을 멈칫할 정도의 비명이었다.
언뜻 보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두 후퇴!! 내 뒤로 모여라!!”
나는 얼른 말을 멈춰 세우고는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막 안구를 난도질하던 병사들은 멈칫했지만 나는 다시 고함을 쳤다.
“명령이다! 모두 퇴각해!!”
“퇴각! 다들 물러나라!!”
“하, 하지만…….”
다수의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몇몇은 아쉬워하며 바로 몸을 돌리지 못했다.
내가 다시 고함을 지르려고 하는데…….
퍼버버벅!!
미적거리던 병사들이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
삽시간에 300명의 인간, 엘프, 수인의 머리가…… 무슨 풍선처럼 일제히 터져 나가는 모습은 너무나 끔찍했다.
쉬지 않고 활을 쏘던 궁수부대도 멈칫할 정도였다.
털썩! 털썩!!
머리를 잃어버린 병사들이 휘청거리면서…… 쓰러진다.
정적.
기합과 비명이 울려 퍼지던 평원에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전쟁터에서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함께하던 전우들이 칼이나 화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갑자기 머리가 일제히 박살 나는 건 압도적인 공포였다.
―……아, 내가 비명 좀 질러 주면 다들 좋아라 달려들던데. 역시 너한테는 안 통하나?
끔찍할 정도로 피범벅이 된 안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혀를 찼다.
“이걸로 죽을 놈이라면 일이 이렇게 어렵지도 않았지.”
칠죄신이 나약하게 비명을 지르는 게 정말일 리가.
비명을 지르는 척, 구석에 몰리는 척 유도하고 카운터를 날리려는 거겠지.
그 편이 더 제국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니까.
“아니, 사실 네놈은 우리들의 사기가 오르건 내리건 크게 상관없어. 하지만 그냥 우리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게 보고 싶은 거잖아?”
―네놈들에게 그거 말고 대체 무슨 가치가 있나? 어차피 태어났으니 머지않아 죽는 인생인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야지. 그러면 최소한 나는 재미있거든!
병사들이 새삼스럽게 동요했다.
무지막지한 번개 덩어리, 그걸 뚫는데 이미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그건 칠죄신에게는 오프닝 게임도 되지 않았다.
“시릭.”
그 순간 내 말 옆에 랑에이가 섰다.
아까 공중에서 칠죄신의 번개에 휘말렸는데 용케도 버틴 모양이다.
수인, 그중에서도 강력한 백호 수인인 데다가 내 염동결계의 효과를 받은 덕에 생존한 것이다.
그런데도 팔이며 어깨에 피가 줄줄 흐른다.
저 안구를 일시적으로 제거한 데에는 랑에이의 공이 너무나 컸다.
“할 수 있겠냐?”
“렌시엘에게 치료약을 받아 뒀다. 심해지면 먹을 거다.”
이름난 장수, 여차하면 특공이라도 걸어야 하는 이들은 천족의 치료약을 받아 뒀다.
나 역시도.
랑에이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기운이 느껴진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푸가아악!
눈동자를 뚫어 버리고 시커먼 형체가 튀어 올랐다.
높게 날아오른 것이 아주 사뿐하게도 대지에 착지한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일렁거리는 시커먼 마력의 덩어리.
2미터 60cm쯤은 됨 직한 것.
저게 바로 칠죄신의 본체이리라.
―흐으으음.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선 그림자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 보였다.
꿀꺽.
내 주변, 아니 제국군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그림자.
압도적으로 강해 보여도 저것만 베어 버리면 끝이다.
우리는 100만이 넘고 놈은 혼자 아닌가.
병사들이 그리 생각하는 게 보이고, 장군들도 동조하고 있었다.
“…….”
하지만 칠죄신을 잘 아는 내가 보기엔 아니었다.
이놈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척하고, 절망시키는 걸 너무 좋아하는 놈이다.
방금만 해도, 일부러 비명 소리를 내서 병사들에게 희망을 줬다가 끔찍한 광경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버리지 않았나.
지금 이렇게 180만 대군 앞에 혼자 서서 몸을 푸는 것도 유인책이다.
―하하하, 왜 그러지. 시릭? 병사들이 얼른 나에게 돌격하고 싶단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서 목이 터져라 외쳐야지. 돌격~ 돌격~
칠죄신은 팔짱을 끼고는 조롱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 속 편하게 1 대 1로 맞짱 뜰까?”
―하하하하하!! 역시 황제로군.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절대로 넘어가려고 하지 않아!!
1,800,000 대 1.
그 180만을 지휘하는 내가 1 대 1로 승부 보자면 보통 얼씨구나 하고 받겠지.
하지만 칠죄신은 아니었다.
이놈은 도리어 다수가 자기를 공격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나도 예전에는 군대를 거느리고 휘둘러봤지만 영 불편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좀 방법을 익혔거든.
스으윽.
칠죄신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끼기긱, 끼기긱.
방금 머리가 터져서 사망했던 병사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전진해 온다.
“뭐, 뭐야.”
“저, 저거 뭐야! 뭐야!!”
제국군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 비명과 공포를 음률처럼, 칠죄신은 양팔을 활짝 벌리고는 기꺼워했다.
―네놈들은 전우들을 좋아하잖아? 자, 얼른 팔을 벌려서 안아 주라고? 으응? 방금 전까지는 뜨거운 전우애를 자랑했잖아?
“…….”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칠죄신은 본래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만 따지면 방금 번개도 그렇지만.
일부러 노린 것이다.
죽어 버린 시체들을 조종하는 능력.
―하하하하!! 하하하하!! 시릭 카라카스! 제국군이 너를 따르는 군대라고? 제국을 지키는 인류의 방패라고? 아주 좋아! 의기투합한 정의의 군대! 그 단결력이 부럽군! 너무 부러우니까…….
일렁거리는 그림자의 얼굴.
하관에 새빨간 금이 그어지더니 좌우로 찢어진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