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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85화 (184/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85)

하늘에서 떨어진 신

말을 달리는 나를 추월하고자, 나보다 늦는 게 부끄럽다고 기병이 달려 나간다.

보병이, 궁병이,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간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나는 티가 나지 않게 속도를 늦추었다.

군을 이끄는 자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워야 한다.

“폐하! 늦게 도착한 불충! 죄송합니다!!”

레릭이 내 옆에서 말을 달리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놈을 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레릭, 정신 차려라.”

“예?”

“마음 다잡으라고. 너까지 흥분해서 날뛰면 애들 통제를 누가 하냐?”

병사들이 주저하지 않게, 병력이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와해하지 않게 내가 독려하고 북돋아 준 거다.

기세는 올랐지만 무계획적인 돌진이다.

적, 칠죄신의 상태가 어떠한지 어떤 정보인지도 모르는 상태.

병사들을 하나라도 살리려면 장군들이 얼른 방책을 짜내야 한다.

내 눈총에 레릭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폐, 폐하.”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한다.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려서 가족에게 돌려보낸다. 명심해라.”

“예!”

―하하하하!! 하하하하!!

우리들이 무작정 돌격하자 들려오는 칠죄신의 웃음소리.

동시에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

“으아악!!”

“카아악!!”

여기저기 튀는 번개.

군의 선두, 후미부터 번개가 떨어질 때마다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튀어 나갔다.

파군이라고 해도 내 염동결계가 전군을 다 덮어 버릴 수는 없다!

“레릭, 잠깐 지휘 맡긴다! 애들 낙오되지 않게 주의해라!”

나는 이를 악물면서 다시 말의 속도를 올렸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번개가 떨어지는 경우, 돌진 말고는 답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위력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화살 비와 다를 게 없다.

멈추면 죽을 뿐!

“돌격! 돌격해라!!”

“폐하보다 늦는 자는 불충이다! 제국군 돌격!!”

내가 다시 앞으로 나서자 제국군은 이를 악물고, 검은 벼락의 비가 치는데도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전장에 나선 병사들도 아는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싸움, 그리고 여기서 물러나면 다 끝난다고.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지상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끔찍하게 능멸당하는 말로!

“버텨! 버텨!!”

“정령마술부대! 전원 방어결계!!”

우우웅!!

상장군의 외침이 들려오더니 제국군 병사들의 머리 위에 얇은 수막(水膜)이 펼쳐졌다.

콰가가가!!

떨어지는 번개를 수막이 흘려 버린다.

“폐하의 결계를 믿어라! 나머지만 커버해!”

“다들 조금만 버텨라!!”

나, 시릭과 함께 말을 달린 경험이 있는 장군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수염이 성성한 엘프 하나가 내 옆에서 말을 달리면서 외쳤다.

“폐하! 하장군 렌스입니다! 적을 공격해도 되겠습니까?”

“공격해!”

하늘에 떠 있는 눈을 어떻게 공격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있겠지.

렌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폐하와 다시 함께 전장을 달릴 수 있는 기회! 감사합니다! 폐하께서 허락하셨다! 사수부대!!”

렌스가 내 옆에서 물러나면서 뒤를 향해 호령했다.

그리고.

파바바바바박!!

하늘을 향해서 화살이 쏘아졌다.

보통 활이라는 물건은 곡사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마술을 담은 공격은 직사, 최대 1km 근처까지 닿는다.

하늘에 있는 눈이라고 해도 노릴 수 있다.

―이 잡것들이!!

칠죄신은 비웃으면서도, 분노하면서 다시금 번개를 뿌렸다.

자세히 보니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지는 것이다.

카가가가!!

하늘에 박힌 눈알을 향해서 날아갔던 화살들이 번개에 맞아서 튕겨 나갔다.

이어서 번개가 엘프 궁수부대를 향해서 떨어졌다.

“아아아아!!”

“막아라! 막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막이 펼쳐진다.

반격당할 걸 각오한 이들!

퍼버버벅!!

하지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번개를 버티지 못했는지, 엘프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레이나! 아아악!”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가슴이 찢어진다.

엘프는 짜증 나는 시골 마피아들이다. 폐쇄적으로 살고, 자기들의 문화와 방식만 고집하고, 얼굴 예쁜 것만 믿는 놈들이다.

그래도 내 병사들이다.

지금 번개로 반격당할 걸 알면서도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자 목숨을 걸고 화살을 쏜, 자랑스러운 전우들이다!

“2사 발사!!”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화살을 하늘을 향해서 쏜다.

오만하게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저 빌어먹을 눈깔을 거꾸러트리고자!

―하하하하! 똑같은 수를…….

나는 이를 악물고는 탐랑을 뽑았다

이번에도 안 되면, 내가 하늘로 날아올라서 직접 눈을 찔러 떨어트리는 수밖에 없다.

한데…….

다시 번개를 떨어트리고자 칠죄신이 눈을 감는데.

가장 늦게 쏘아진 화살.

일부러 타이밍을 늦춘 듯이, 가장 늦게 날아간 새카만 화살이…… 갑자기 홱 빨라진다.

어마어마한 속도.

멀리서 눈으로 보는 나도 믿을 수 없는 속도.

흑마력까지 받아들여서 강해졌기에 가능한 무시무시한 저격!

“잘했다! 예렌!”

내가 외치는 순간.

푸우우우욱!

막 눈을 뜨려던 칠죄신의 안구에 검은 화살이 박혀 들었다.

―크아아아아악?!

하늘과 땅을 떨쳐 울리는 비명.

이어서 뒤늦게 도착한 화살 백여 발이 칠죄신의 안구에 빽빽하게 박혀 들었다.

―으아아악! 카아아아악! 카아아악!!

원초적인 비명이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진다.

병사들이 무심코 멈추려고 했지만 나는 기합을 넣었다.

“멈추지 마라! 안 끝났다! 제국군!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제국군 돌격!! 돌격!!”

장교들이 독려하고 병사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앞으로 달렸다.

저렇게 화살 수백 발이 꽂힌다고 끝날 놈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크아아악! 카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눈알이, 툭 하고는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눈에서 빠져나온 안구가 떨어지듯이.

직경 10km는 됨 직한 물체가 수직 낙하!

그것도 우리 쪽으로!!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나는 앞으로 나서면서 다시금 염동결계를 세게 발휘했다.

문곡의 효과 덕분에 정신력 소비가 줄었지만 그래도 염동결계는 정신력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써야 한다!

콰아아아아아앙!!

다행히 크기에 비해서 질량은 압도적이지 않았다.

내가 염동결계로 막으니 땅이 좀 들썩거리는 정도로 끝났다.

“돌격! 돌격!!”

“시끄럽게 울어 대던 매미 새끼가 땅으로 떨어졌다!”

“죽여!!!”

흥분한 장교들, 병사들이 앞다퉈 달려 나간다.

1km가 넘지만 잡을 수 있는 거리.

나는 얼른 텔레파시로 이셀렌에게 일렀다.

―이셀렌! 랑에이는? 얼른 이쪽으로 돌아오라고 해!

선발대인 랑에이는 번개 치던 평원 쪽으로 앞질러 가 버린 상태다.

아마 지금쯤 돌아오고 있겠지만.

“방심하지 마라! 쏴라!!”

“정령화살부대 일제 사격!”

“백호부대 1돌격대! 돌격!”

“청룡부대가 간다!! 신의 목을 날리는 건 우리다!!”

일선 장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다.

번개에 계속 아군을 잃는 바람에 흥분한 거다.

하지만 무작정 말릴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나름 정확한 판단이다.

파바바박!!

땅에 떨어진 안구를 향해서 다시 화살이 날아간다.

그리고 말을 탄 기병 돌격대가 창을 꼬나들고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간다.

누구보다도 위험한 길이건만 각오하고!

그런데 그 순간…….

땅에 떨어졌던 안구가 다시 눈을 부릅떴다.

콰가가가가!!!

기다렸단 듯이 사방으로 검은 번개가 줄기줄기 뻗어 나간다.

“크아아악!”

“돌격! 돌격! 겁먹지 마라!”

물론 파군으로 확장된 내 염동결계의 효력을 받는 거리.

돌격대는 그걸 믿고 달려들었는데…….

콰가가가!!

안구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쏟아지는 번개 다발이 격렬해진다.

“크아아악!”

“아아악!!”

“폐, 폐하 만세!!”

먼저 말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이어서 병사들이 전격에 타 버린다.

어찌나 강한 전류인지 새카맣게 타 버려서…… 사람이었다는 흔적이 아니라 숯덩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누구보다 먼저 돌격해 들어갔던 천여 명의 돌격대가 한순간에 전멸했다.

“뭐, 뭐야.”

“……어쩌지?”

화살도 안 통하고, 접근하면 번개 세례에 죽는다.

병사들이 새삼 이를 악물면서 자기들의 부대 지휘관을 바라본다.

부대 지휘관이 장군들을.

장군들이 나를 찾는다.

타박, 타박.

나는 말에 탄 채로…… 천천히 나섰다.

병사들이 흥분하지 않게.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일에 주눅 들지 않게 절묘하게.

타박, 타박.

움찔.

나를 따라서 돌격해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병사들과 장군들은 갈등했지만 레릭이 알아서 제지했다.

나는 느릿하게, 100만 넘는 군대의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칠죄신!!”

―……카라카스로 들어왔군.

외눈, 칠죄신이 눈알을 한 바퀴 빙 돌렸다.

그리고 정면의 나를 본다.

눈이 가늘어진다.

―그래, 시릭 카라카스. 아니, 지금은 리젠 리브라타인가? 어느 쪽이건 황제군. 네 영웅적인 풍모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군!

칠죄신이 흥겹게도 웃는다.

물론 좋은 의미의 칭찬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야 죽이는 보람이 있지. 아, 보통 생명은 내가 좀 건드리기만 해도 울부짖고 복종하거든. 너처럼 굴하지 않는 놈은 처음이야.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다!

“유언은 그게 끝이냐?”

―아니, 계속 말해야지! 지금 네가 뒤에 거느린 떨거지들이 100만이건, 200만이건 무슨 소용이지? 나를 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너뿐이다!

“뭔 소리야? 전에 네가 추방당할 때 어떻게 됐는지 잊었냐?”

나는 병사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제국군이 길을 열어 줬기에 내가 마지막에 네 목을 날릴 수 있었다. 그때 제대로 못 날려서, 일이 이렇게 된 거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날려 주마.”

―희망 사항이 너무 지나치군. 정말로 나와 맞먹을 수 있다고…….

나는 놈이 말하건 말건, 말머리를 돌렸다.

설마 이럴 줄은 몰랐는지 칠죄신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칠죄신을 등진 나는 내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내 병사들은 칠죄신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나에 대한 경외심이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다들 봤을 건데 저 미친놈이 번개 한 번 지랄 맞게 뿌려 댄다. 시커먼 설사를 쉴 새 없이 싸지르는 똥싸개 놈이네.”

“…….”

나, 시릭 카라카스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인간, 그리고 이종족 병사들이 멍한 얼굴을 했다.

반면 나를 아는 장군들, 병사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폐하 또 저런다고.

나는 병사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놈의 똥구멍을 틀어막는다. 다들 내가 돌격하고 10초 뒤에 들어와라. 그 안에 내가 어떻게든…….”

내가 말하는데 레릭이 먼발치를 보았다.

저놈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디다 정신을 팔지?

내가 의아해하는데, 레릭의 주변 장군들, 그리고 병사들도 먼 곳을 보았다.

나도 돌아보았다.

파바바바바박!!

어마어마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인영.

보통 빠르다고 말하는 걸 쏜살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다.

본 순간 거리가 확 좁혀지고, 그게 뭔지 아는 순간 덮쳐든다.

검고도 하얀 머리카락.

제국군에서 첫째가는 선봉, 랑에이가 달려오고 있다.

단기 돌격.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기습.

하지만 벌어진 일, 시선을 끌어야 한다.

“야, 칠죄신.”

―뭐냐?

내가 말머리를 돌리자 칠죄신이 대답했다.

설마 내가 자기가 말하던 중에 무시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말야. 너도 무한은 아니지?”

―뭐라고?

“육체를 갈아타고 다녔지만, 마력이 무한할 리가 없어. 재생력도, 생명력도, 마력도 막대할지언정 무한은 아니야.”

설사 무한하다고 하더라도. 하시아나 바라메가 알아서 처리할 거다.

지금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니다.

놈의 주의를 끄는 거다.

“그놈의 번개를 영원히 뿌릴 수는 없을 거라고.”

그 순간 랑에이가 훌쩍 뛰어올랐다.

수백 미터를 단숨에 좁히는 어마어마한 도약.

칠죄신의 시야가 닿지 않는 뒤쪽으로 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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