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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81화 (18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81)

False God

서큐버스 하시아가 보여 주는 영상.

내가 100년 전에 봤던 그 상황과 동일했다.

마녀 하시아는 무릎을 꿇고 칠죄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칠죄신이 강림한 육체, 거한이 교활하게 웃는다.

―자, 하시아. 방금 봤으니 황후들이 밉겠지? 복수하고 싶다면…….

“…….”

마녀 하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대체 왜 이러지?”

―뭐?

“너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인류를 죽였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능욕했지.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게 하고, 형제가 부모를 살리겠다고 서로 찔러 죽이게 했지.”

―하하하, 그게 무슨 큰일이라도…….

“도덕적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안 지겹나?”

마녀 하시아는 똑바로 칠죄신을 쏘아보며 말했다.

“나에게 교섭을 걸고 굳이 타락까지 시키려는 걸 보니 나를 써서 시릭을 공격하려는 거군. 그러니 날 함부로 죽일 수도 없지. 고문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순간 자살할 거다.”

―뭐라고?

“언젠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방법을 마련해 뒀지.”

마녀 하시아는 쓰게 웃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지. 하물며 수만, 수십만 년 동안 횡포를 부리는 신을 상대로 반기를 드는 일인데…… 아군의 피해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달관이라도 한 것처럼 구는군.

“네가 그토록 집요하게 관심을 가진 시릭에게 하던 말이다. 시릭이 말했었지. 롤에서 한 타를 말아먹어도 사람 멘탈이 깨지는데, 한 번 싸울 때마다 수만 명의 전우들이 죽고 도망가야 하니 힘들어 죽겠다고. 자기가 한 타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전우들이 죽으면 너무 힘들다고.”

하시아는 초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거물, 칠죄신이 두렵지 않다는 것처럼.

“그때마다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입을 맞추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함께 별을 보고, 손을 잡고, 다시 해내자고 마음을 다잡았지. 질투하나?”

―…….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너는 생명이 서로 어우러지는 걸 질투하는 거 아닌가?”

―하하하, 그게 듣고 싶었나? 하긴 누구도 물어본 적이 없군.

칠죄신이 음산하게 웃었다.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면 밟아 뭉개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신발 끝에서 툭툭 터지는 감촉이 짜릿하잖아? 나는 그게 즐거울 따름이다!

“이종족의 이혼율은 상당히 높지. 카라카스의 이혼 제도는 빠르고 간결하다.”

―……무슨 소리냐?

영상을 보는 나도 순간 칠죄신에게 공감할 뻔했다.

자길 죽이려는 신을 앞에 두고 저런 소리라니.

마녀 하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도 오래 함께하면 물리고 질려 버려. 그런데 너는 이 짓을 대체 언제까지 할 거고 어디까지 할 거지? 앞으로 수만 년 더? 수억 년 더?”

―…….

“왜 그리 시릭에게 집착하지? 따분하던 네게 색다른 자극을 줘서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시릭의 영혼에 타격을 주고자, 나를 붙잡아 두고 무려 교섭이라는 걸 하고 있구나.”

마녀 하시아가 혀를 찼다.

“너는 결국 세상을 포악하게 지배하는 거에 질렸다. 도덕성을 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을 반복하는 게.”

―네 혓바닥으로 목숨을 구명하려고 드는구나. 그런다고…….

“아, 타락할 거다. 그러니까 이야기나 마저 들어.”

마녀 하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칠죄신은 어이없어하는 기척이었다.

자기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고, 외려 이렇게 태연하게 타락하겠다고 선언하는 생명은 처음일 테니까.

“신의 전제 조건은 뭘까?”

―내가 신이 아니라는 말하고 싶은 게냐? 네까짓 놈들을 좀 죽인다고 해서…….

“나는 독자적으로 차원을 연구했고, 또 바라메를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다른 세상의 영혼, 시릭과 대화하면서 지구라는 곳의 정보까지 흡수했지. 그래서 나온 결론은…… 신성의 가장 근본은 창조다.”

―…….

마녀 하시아가 말했다.

“창조, 하늘과 땅을 만들고 생명을 창조하는 거지. 선악을 논하기 전에 그게 신의 근본이다. 사람들이 신에게 바라는 원형이지.”

―가당치도 않는 말을 하는군.

“그런데 너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해. 오로지 뺏을 뿐이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망나니,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조롱할 뿐이지. 넌 그냥 힘센 악령, 잡귀다.”

―하하하, 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이들을 숱하게 봤을 텐데? 너도 곧 다시 태어나게…….

“부모가 자식의 허락을 받고 만드나?”

하시아는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자리에 들기 전, 1년 뒤에 태어날 아이에게 허락을 받나? 신이 사람을 만들 때, 그 사람에게 미리 허락을 구하나? 생명을 만든다는 건 존귀한 일이지만 당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사전에 허락을 받는 게 불가능하지.”

―…….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아끼고 키우는 거다. 동의를 얻지 못하고 태어났지만 그 아이가 행복하기를 원하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하기를 바라니까.”

하시아가 말했다.

“그런데 너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사람에게 검은 마력을 부어서 타락시킨다고는 하지만, 당사자의 허락이 없으면 시도도 못하지. 그러니까 지금도 내 말을 들어주는 거잖아? 물론 시릭이 나를 각별하게 생각해 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찢어 죽였겠지만.”

―……계속 지껄여 보아라.

마녀 하시아가 나직하게 말했다.

“시릭이 나타나기 전까지 너에게 굴종하던 인간과 일곱 이종족들, 네가 두려워서 차마 부정하지는 못했지. 그저 네가 매서운 신일 따름이라고. 우리가 부족해서 아버지가 저리도 잔학하게 구는 거라고. 자식인 우리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자고 했지.”

“…….”

“너는 사실 신이 아니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짓밟혔지. 감히 신에게 항거하는 이단이니까. 그리고 근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감추더라도 진실은 하나다.”

마녀 하시아가 단정한다.

“너는 신이 아니다. 신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정신 생명체이지만 신이라고는 부를 수 없지. 세상에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는 신이 어디 있지?”

―나는 나를 따르는 종복들에게 은총을 내린다만? 흑마력의 강력함을 잘 알 텐데?

“그것도 너 자신의 힘이 아니지. 애당초…….”

마녀 하시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영혼을 바쳐야 힘을 주는 건 악마다.”

―……하.

칠죄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놈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하, 하, 하, 하하하하하하!!

찢어지는 웃음.

그러자 칠죄신의 주변에 있던 종복들이 눈과 코, 귀에서 피를 뿜어내더니 쓰러졌다.

너무나 압도적인 힘에 눌려서 죽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평원의 수백 명이 쓰러지고, 남은 건 칠죄신과 하시아 단둘이었다.

“큭…….”

마녀 하시아도 얼른 염동결계를 펼쳐서 막았지만 안색이 단번에 안 좋아졌다.

―그래? 내가 악마라…… 그렇다면 신은 어디에 있지? 이 카라카스에서 나만큼 강력한 존재가 어디 있나? 말해 보아라, 마녀여. 네 주장대로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면 너희들은 어디서 왔는가?

“나는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 얼굴이 그다지 궁금하진 않아서. 내 동생과…… 내 사랑이 중요하지.”

하시아는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얼른 공간을 열어.”

―…….

“맞잖아? 흑마력은 네 본연의 힘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흘러들어오는 독기(毒氣)니까.”

―하하하, 그래서? 그걸 알아차린 게 네가 처음인 줄 알았냐?

칠죄신은 음흉하게 웃었다.

―너처럼, 흑마력에 오염되고도 이성을 찾겠다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자긴 미치지 않겠다고. 제정신이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뜯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더군. 자기 과신이 아주 지나치군!

“아니, 전혀 안 믿는다.”

하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라고 다를 거 없겠지. 나는 뒤집어쓰고 미쳐 버릴 거다. 다시 태어나도 예쁜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예 원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교차하네.”

―뭐?

“시릭이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과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드니까.”

하시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칠죄신이 어깨를 떨면서 비웃었다.

―표표한 것 같으면서도 그 황제에게 정말 어지간히도 매달리는군.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죽음을 택하지 않지? 타락하면 그놈의 심장을 찌르게 될 텐데? 얼른 자살해야지!

하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널 세상에서 영영 없애 버릴 거다. 나는 그 발판이 될 거고.”

―하하하하, 말이 거창해 봐야 목숨 구걸이군! 타락한 널 본 황제가 어떤 얼굴로 울부짖을지 기대될 따름이다!

우우우웅.

칠죄신이 손을 젓자, 공간이 찢어지면서…… 검은 액체가 떨어져 내린다.

뚝, 뚝.

마치 원유처럼, 끈적끈적한 액체가 하시아의 모자, 어깨에 떨어진다.

치이이익.

살을 태우고 뼈를 녹이는 소리.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중에 하시아는 몸을 웅크렸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으려고.

―……응? 뭐냐.

그리고…… 염동결계를 발휘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기 방어가 아니다.

몸의 일부.

복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잠깐, 뭐냐? 뭐야? ……태어가 있었다고?!

칠죄신이 눈을 부릅뜨고는 놀란 목소리를 흘렸다.

뚝. 뚝.

새카만 흑마력에 머리부터 타들어 가는 하시아가 말했다.

“너는 그저 강할 뿐이다. 법칙을 깨지는 못하지. 내가 흑마력을 뒤집어쓰고 타락하더라도…… 뱃속의 아이는 예외지?”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리고 이 아이는 좀 남달라.”

그러면서 하시아는 눈을 내리깔고 배를 눌렀다.

“나와 시릭의 아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초능력자와 초능력자의 아이니까.”

마녀 하시아가 선언했다.

눈앞의 칠죄신을 노려보면서.

새카만 마력에 덮이면서도 말했다.

“초능력은 본래 마녀들 사이에서만 전승되는 비술, 그러니 부모가 양쪽 다 초능력자인 사례는 존재할 수 없었지. 아직 이름이 없는 내 딸아이가 말하고 있어. 나보고 힘내라고.”

―말도 안 되는 망상이로군! 지금 당장 죽여…….

“망상이 아니다. 나와 시릭의 아이는 이미 텔레파시를 쓸 수 있으니까!”

치이이익!

하시아에게 손을 뻗던 칠죄신이 멈칫했다.

얼굴 절반이 시커먼 마력에 덮여 버린 하시아가 날카롭게 웃었다.

“타락하는 중에는…… 못 건들지? 아니, 설사 타락하더라도 너는 내 몸을 못 써. 아이는 타락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다 끝난 다음에 죽여주마!

칠죄신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때 하시아의 뒤쪽에서 검은 나선형의 문이 열렸다.

텔레포트, 아니 포탈이다.

검은 마력에 덮여 버려서 타들어 가는 하시아가 쓰게 웃었다.

“……타락하면 능력이 강해지지. 초능력의 동시 사용, 내 아이를 보호하면서 텔레포트 할 수 있어.”

―이걸 계산했다고?

“세상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지켜야지. 생명의 귀함을 모르는 너는 절대 모르겠지만.”

마녀 하시아, 아니 타락하는 하시아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래 봐야 나는 이제 미쳐 버리겠지. 아, 알고 있어. 지금은 네게 동조하게 되는 걸, 칠죄신. 세상 모든 것이 다 밉고 짜증 나.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왜 황후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들은 앞으로 행복할 텐데 왜 나만 이런 부당한 일을…….”

으드득.

말을 쏟아 내던 하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은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입술을.

“……아무리 머릿속에 미친 생각이 날뛰어도 답은 하나지. 나는, 나는…….”

하시아가 이성을 겨우 유지하면서 말을 쥐어짜 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에도 단 하나의 말을.

“나와 시릭의 아이는 행복했으면 해. 반드시, 반드시 그래야 해. 아, 하지만 그러지 못할지도 몰라. 내가 실수할지도 몰라. 무섭고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두려워.”

―…….

“그래, 이제야, 이제야 알겠어…… 이게…….”

또르륵.

검은 마력에 불타오르는 하시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게 슬프다는 거였구나.”

칠죄신은 침묵했다.

하시아는 펑펑 울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 시릭, 미안해. 내가 바보짓을 다시 하고 있어. 힘들고 괴로운 일을 시키려고 하고 있어.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이렇게나 가슴이 아픈데 당신은 얼마나 괴로워질까. 정말로…… 미안.”

마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켜 내겠어.”

―…….

“사악한 악령, 네가 그동안 무수한 생명을 빼앗고 신이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렸지. 어차피 육체를 갈아타면 그만이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비웃었지. 너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었을까?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눈물을 흘렸을까?”

―하하하, 들어주니까 결국 원망이냐? 황제는 재미있지만 넌 시시하군. 아이를 잡았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하지.

칠죄신은 잠깐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무시했다.

다른 장난감은 있다는 투로.

―어차피 너는 타락했고 미쳐 버린 어머니가 될 거다. 내가 굳이 뭘 하지 않아도, 황제를 죽이려고 들겠지. 아, 차마 황제를 못 죽이고 다른 여자들을 죽이려고 들까? 나는 재미있게 구경하겠다.

“칠죄신, 너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적이다.”

흑마력에 불타오르면서도 하시아는 단호하게 외쳤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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