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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79화 (178/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79)

전의 충천

가장 강한 이가 대장인가?

보통은 아니다.

하지만 칠죄신에 항거하는 제국군, 그 총수인 나는 가장 강해야 했다.

그래야 서로 생각과 문화가 다른 이종족들을 하나로 묶고 다스릴 수 있으니까.

나와 3명의 대장군이 동시에 싸운다.

이 소식을 들은 병사와 장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레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굳이 이러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 알려 주셨던 때처럼 해도…….”

“100년간 전쟁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싹 모집하더니 내일 목숨을 걸고 싸우라면 하겠냐? 아군의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해. 그러면 내가 누군지 알려 줘야 하고.”

“그거야 알겠습니다만.”

“거기다 문제는 대장군만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두고 선 병사들, 장교들이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시릭의 환생이 맞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강할지.

“결국 다들 믿음직한 대장을 따르고 싶어 해. 내가 그렇다는 걸 한 번은 보여 줘야 한다.”

내가 시릭이라는 걸 꼭 증명할 필요는 없다.

지금 저 병사들 중에서 인간은 물론이고, 뒤늦게 입대한 이종족들도 나를 직접 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다만, 리젠 리브라타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

100년이 넘어서 다시 모인 총동원령. 거기다가 다시 적은 칠죄신.

상황이 급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내부를 다져 두는 게 좋았다.

레릭도 말뜻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디…… 좀 살살 해 주시죠.”

“야, 쟤네 셋 다 6, 7계위 아니냐? 그걸 한꺼번에 상대하는 내 걱정을 해야지.”

“폐하가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듭니다.”

레릭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때 떨어져 있던 동방대장군 세오닌이 목소리를 높였다.

“거,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지금부터 시작한다. 레릭, 룰을 말해라.”

내 말에 레릭은 쩌렁쩌렁한 함성을 질렀다.

“제국군은 들어라! 2대 황제 후보이신 리젠 리브라타 님이 몸소 무예를 선보이신다고 한다. 상대는 동방, 북방, 남방의 대장군들! 무기는 사용이 가능하며 양어깨가 땅에 닿는 순간 패배로 친다!”

“…….”

3명의 대장군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불편한 얼굴들.

자기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동시에…… 설마 내가 진짜 시릭이면 어쩌나 싶어 하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고민하지 말고 덤벼. 내가 가짜라면 베어 버리면 그만이고, 진짜 시릭이라면 너희들에게 당할 리가 없다.”

“사람을 얕보네!!”

동방대장군, 세오닌이 검을 뽑아 들면서 마력질주로 달려들었다.

내 이번 싸움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대장군의 충성을 얻어 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국군 장병들에게 내가 강하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그러니까 이해하기 쉽게 이겨야 한다.

척 봐도 내가 강한 놈이라고,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

나는 세오닌을 향해서 마력질주로 달려들었다.

팍!

같은 마력질주라도, 반응속도가 월등히 빠른 내가 더 날래다!

“어…….”

세오닌은 칼을 휘두르려다가 내가 코앞에 단숨에 도착하자 당황했다.

너무 상식 밖의 속도니까.

하지만 그래도 대장군, 검의 궤적을 바꾸면서 어떻게든 펼쳐 내려고 했다.

삭!

하지만 나는 달리는 그대로 상체를 숙여서 피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보통 효율적인 공격을 한다. 당황하면 본능이 우선하고.

어딜 노리는지 훤히 보였다.

퍽!!

나는 그대로 세오닌의 배를 태클로 들이받으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발바닥이 붕 떠 버린 세오닌은 당황하면서 소리쳤다.

“뭐…….”

위계가 높은 이들은 마력장, 마력영역을 쓰니까 보통 이런 전투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오닌도 얼른 마력영역을 펼치려고 했지만…….

나는 달리면서 먼저 마력영역을 깔아 버렸다.

휘이이익.

내 마력영역의 효과는 상대 마력영역의 카운터.

내 주변으로 마력이 파문을 그리고 번져 가면서 세오닌의 마력영역을 지워 버렸다.

“뭐, 이런…….”

내가 세오닌을 바디벙커 삼아서 역습해 오자, 용족 라카드는 칼을 길게 잡고는 내 다리를 노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염동력으로 급정지하면서 들고 있던 세오닌을 던져 버렸다.

“애 받아라!”

“우왁?!”

라카드는 당황해서는 얼른 검을 거뒀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전우, 차마 찌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날아간 세오닌이 땅으로 떨어지려고 하자…….

“캭!!”

그대로 라카드의 어깨를 붙잡고 쓰러져 버렸다.

라카드를 붙잡아서 버텨 보려던 건데, 역으로 둘 다 나동그라진 거다.

“이 미친 마녀년이! 어디서 물귀신질이야!”

“아니, 용족 새끼가 뭐 이리 부실해? 좀 붙잡았다고 바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밥도 안 먹고 다니냐?”

둘을 정리한 나는 주변의 반응들을 살폈다.

장병들이 놀란 얼굴이기는 했다.

“어, 방금 어떻게 한 거야?”

“피하고 끌어와서 던졌잖아. 저렇게 쉽게?”

“대장군님 강하지 않으신가?”

“…….”

음.

나로서는 쉽게 보여 준다고 한 건데.

애들이 사실 대장군이 약한 거 아닌가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남은 놈을 돌아보았다.

남방대장군 천족 토라벨.

검을 양손으로 잡은 토라벨은 나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폐하가 맞으신 모양이로군요.”

“마력영역 보고 짚은 거냐?”

“아뇨, 지금 상황에서 장병들의 눈치를 이렇게 살피는 분은 폐하 말고 없으시죠. 주변을 보고 으스대는 게 아니라 애들이 분위기를 타는지, 안 타는지 가늠하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에서는 폐하뿐입니다.”

“이제 와서 알아 모신다고 안 끝난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사실 폐하와 싸워 보고 싶긴 했거든요.”

토라벨은 진지하게 말하면서 검강을 일으켰다.

장군이라고 꼭 직접 전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국군의 경우에는, 워낙 험하게 싸워서 직접 전투 능력이 부족한 장군들은 버티지 못했다.

게다가 토라벨은 7계위에다 검강까지 쓴다.

천족 중에서도 3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실제로 병사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토라벨 님은 다르시지.”

“칠죄신과의 전쟁에서 오크 100마리를 홀로 베어 버리신 분이잖아.”

분위기가 잡혔다.

나 역시도 양손의 탐랑과 거문에 검강을 불러일으키자 병사들이 감탄했다.

“오오, 검강이다! 그것도 두 자루를 동시에!”

“……어? 두 자루를 동시에 하는 게 그렇게 대단해?”

“이 멍청아. 마력검만 해도 이도류를 쓰면 마력이 2배로 들잖아. 그런데 검강은 더 하지. 더욱이 정신 집중이 필요하고. 그래서 제국에서는 이도류가 사도(邪道), 쓰지 말아야 하는 검술인 거야.”

역시 광선검을 붕붕 휘두르면서 싸우는 게 애들이 알기 쉽다니까.

만족한 나는 토라벨에게 시선을 보냈다.

먼저 들어오라고.

“……송구합니다, 폐하!”

토라벨은 단도직입으로, 몸을 크게 날리면서 대뜸 내 머리를 찍으려고 들었다.

나는 탐랑을 휘둘러 맞받고, 거문으로 반격했다.

검강과 검강의 충돌.

캉! 카앙!!

쇳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불꽃이 튀고, 칼의 빛이 얽혔다가 떨어진다.

토라벨은 진지하게, 사력을 다해서 나를 향해서 칼을 휘두르고 긋고 찔렀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스텝을 밟아, 피하고 흘리면서 맞받았다.

서로 현란하게 부딪치는 백중세.

“……폐하.”

하지만 토라벨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강자일수록 상대와의 격차를 잘 안다.

토라벨은 예전의 나를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염동력, 비검을 하나도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사실 토라벨이 강하다고는 해도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열반을 거친 나는 마력 반응속도가 너무 빨라서, 페이크를 섞는 거로 토라벨을 간단하게 희롱할 수 있었다.

채애앵!

0.3초도 안 된 순간, 단 한걸음의 마력질주로 뒤로 빠져서 공격을 피하고는.

다시 마력질주를 써서 두 걸음 전진, 양손의 검을 뿌리면서 토라벨을 밀어붙인다.

보통 이도류를 안 쓰는 이유는 1차적으로 완력이 부족해서고, 2차적으로는 마력, 3차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해서다.

하지만 나는 저 조건을 전부 클리어 하고, 쉴 새 없이 몰아붙일 수 있었다.

거리를 벌려 준 내가 권유했다.

“방패라도 들지?”

“……음, 저도 자존심이 있어서 이제 와서 들긴 좀 그러네요. 그리고 들어도 못 이길 것 같습니다.”

“그래? 끝내자.”

“예!”

토라벨은 기합을 지르면서 덤벼들었고.

나는 그걸 탐랑으로 막으면서 염동력으로 관성을 무시하고 급선회했다.

이어서 오른손의 거문을 휘둘러서 마무리.

퍽!

칼자루에 머리를 얻어맞은 토라벨이 비틀거리다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진짜 엄청 봐주셨네요.”

“끝났지?”

나는 진즉에 나가떨어졌던 세오닌과 라카드를 돌아보았다.

둘은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폐하 맞나 본데?”

“이도류로 검강 쓰는 게 말이나 돼? 아니, 애당초 저거 칠성칠요잖아…….”

“거 보라니까. 내가 몇 번이나 폐하가 맞다고 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니들 이따가 죽었다.”

두 놈의 옆에 선 레릭이 자랑스럽게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혀를 차고는 장병들을 둘러보았다.

너무 깔끔한 결말에 다들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인사가 늦어서 미안하다. 내가 바로 2대 황제 후보인 리젠 리브라타다. 이런저런 풍문이 있고, 그게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잠깐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런다고 바로 믿기는 어렵지?”

장병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둘러보면서 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강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무작정 믿고 따라오라는 건 아니다.”

나는 포효를 쓰면서 말했다.

“갑작스러운 제국군 총동원령, 모두 놀라고 당황했을 거다. 또한 지금 진중에 도는 소문이 사실인지 궁금할 거다. 우리들이 칠죄신과 다시 싸우기 위해서 모였냐고?”

“……저 번개가 그겁니까?”

쪼그려 앉아서 보던 인간 병사 하나가 물었다.

이제 이병.

까마득한 상관인 나와는 감히 눈도 못 마주칠 계급이다.

주변의 시선이 쏠리자 본인도 아차 싶은 얼굴이지만 나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래, 저건 칠죄신이 다시 우리들의 땅으로 오려고 몸부림치는 증거라는군. 지금은 번개에 지나지 않지만, 머지않아 진짜로 오게 된다.”

“…….”

“미안하다. 그놈의 칠죄신을 추방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 싶었는데, 150년도 안 돼서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

나는 병사들을 향해서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리가 다시 치러야 하는 싸움은 아주 힘들고 어려울 거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가족과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칠죄신에게 죽고, 죽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 겪게 될 거다.”

“…….”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지금 여기 모인 우리뿐이다.”

나는 가슴을 펴고는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낯빛이 달라져 있었다.

말단병사까지도 눈치챘을 것이다.

저 번쩍거리는 번갯불, 총동원령.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누군가는 칠죄신의 이름을 꺼냈을 테고, 누군가는 부정했을 것이다.

그걸 총지휘관인 내가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

다들 어두운 얼굴.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려운 일이라는 거 안다. 하지만 하나는 반드시 약속하겠다. 반드시,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칠죄신을 우리 세상에서 없애 버리겠다.”

“…….”

“부디 나를 믿고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건국 이후로 전쟁을 치른 일이 없던 제국군.

갑자기 목숨을 걸고 사지로 함께 가자는 소리를 들으면 적응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릭 카라카스의 오른팔.

나를 믿고 인류의 자유를 위해서 싸운 전우들을.

“……폐하 만세.”

아까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이병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정적이 깨진다.

토라벨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면서 양손을 들었다.

“폐하 만세!! 제국 만세!!”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함께하겠습니다, 폐하!!”

“우아아아아!!”

“아아아아!!!”

“신이 별거냐!!!”

병사들의 함성이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된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이를 악물고 투지를 불사르는 병사들.

또다시 나와 함께 싸울 전우들이었다.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고맙다.”

내 소중한 전우와 국민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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