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74)
신을 죽일 방법
나는 소수의 병력과 함께 비밀스럽게 전진했다.
목적지는 워길드, 반역의 우두머리인 엔라가 숨어 있을 곳이다.
전장의 밤.
나는 진영에서 좀 벗어나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집중.
그러자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온몸을 보라색 마력이 휘감는다.
이어서 내 몸이 땅으로부터 3미터를 떠올랐다.
비행이 아니라 염동력이다.
그런 나를 중심으로 다섯 자루의 검이 위성처럼 선회한다.
“음…….”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열반의 경지를 거치고 나니 정말로 강해졌다.
내 생각에 마력이 신속하게 반응해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식과 아내와 서로 재회하고, 마음을 풀고 나니…… 정신력은 시릭 시절을 능가하고 있었다.
시릭 시절이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라면, 지금은 호우로 불어난 강물 정도?
“이제 제국 최강이로군.”
스펙은 전성기보다 한 걸음 부족한데, 스탯이 압도적으로 올랐다.
내 경험과 지식까지 합치면 이제 누가 적이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부르셨습니까?”
아들, 세탄이 내게 경계를 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보았다.
내일이면 워길드에 도착한다.
“엔라와 결판을 내려고 한다.”
“……워길드 안에 4황후가 있단 사실은 아직 미확인 아닙니까?”
“안에 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 판이 성립이 안 되니까. 처음부터 나와 엔라는 서로를 거꾸러트리는 게 목적이었다.”
일단 못을 박은 나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었다.
“애당초 내가 시릭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의견이 힘을 얻을수록 서부군은 붕괴하게 되어있어. 베로드가 합류했으니 더 빨라질 거다.”
제국군의 장교들 대다수가 이종족이다.
나, 시릭 카라카스와 함께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녀석들.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대세가 정해지면 사람의 마음은 기울기 마련이다.
나는 서부군이 투항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물론 서부대장군도 보통 녀석이 아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엔라와 서부대장군이 이끄는 병력만 남게 되겠지. 3만에서 5만 사이일 거다.”
나는 처음부터 이 정도를 예상하고 출정했다.
“그 둘과 한판 승부를 내면 되는 거였는데…….”
“예.”
“……원래 계획보다 무모한 짓을 해야 할 것 같다.”
세탄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시릭 카라카스는 늘 무모한 짓을 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야, 내가 이래 보여도 제국군에서 제일가는 장군이었거든?”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
생각해 보니 세탄은 이제까지 내 앞에서 일절 엔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역자로 치부했고, 이후에는 말을 극히 아꼈다.
세탄은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남자라고 하셨습니다. 병사 10명을 살리겠다고 장군이 직접 나선다면서요. 그런데 그게 또 성공하니 기가 막혔다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나보다 더 무모하거든.”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세탄은 슬쩍 웃었다.
장남의 드문 웃음, 내가 좀 놀라는데 세탄이 정색하고는 말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제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군인입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내일이면 엔라와 대결.
그 전에 세탄에게 언질을 주긴 해야 한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엔라를 알고, 엔라도 나를 안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서로를 너무 잘 알아. 하지만 엔라는 너를 모른다. 아들인 너는 알아도, 제국군 무장인 너는 몰라.”
“…….”
“엔라는 지금 워길드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처음부터 그쪽에서 보자고 못을 박아두기도 했고. 그걸 어떻게 믿냐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유하의 방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던 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워길드에서 결판을 낼 걸 그때부터 예측하셨다고요?”
“황도 쪽에서 서부로 군사 병력이 뻗어 나가면 워길드 근방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내가 시릭으로서 칠죄신과의 최종 결전을 치렀던 곳도 그쪽이었지.”
세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내 손바닥 위에 서부의 지도를 영상으로 띄워 올렸다.
초능력, 비전.
“랑에이와 레릭의 군대가 킹크로와 알렉사 공략에 들어갔다. 그러니 본대는 여기에 놔두고 나와 네가 병력 1천만 데리고 워길드 안으로 들어간다.”
“폐하, 이건 너무 무모합니다.”
세탄이 정색하고는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라 공적으로 부르면서.
“워길드 안에 복병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아버지가 선두에 서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밖에 이셀렌이나 다른 애들을 놔두고 가는 거야. 만약의 사태에 안팎으로 호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넘겨짚었다.
“이제 슬슬 엔라는 자기가 지금 워길드에 있다고 노출할 거다.”
“…….”
“말했잖아,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자기가 여기에 있으니까 들어오라고 나를 유혹하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들어가는 게 제국군의 피해가 적어.”
세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만약 함정이라면…….”
“그래도 엔라의 목을 벨 찬스다. 엔라도 내 목을 노릴 찬스고.”
서로 장군이다.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세탄, 따라오라고 명령하진 않겠다. 오늘 밤 충분히 생각하고…….”
“가겠습니다.”
“아니, 좀 더 고민해도 되는데.”
“아버지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를 막기 위해서 중앙군으로 달려온 겁니다.”
세탄은 분연하게 말했다.
“설득이 통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군인다운 방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나는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탄의 이런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아버지로서는 좀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더 할 말이 없구나. 밤이 늦었으니 쉬어라.”
“예, 그럼 언제라도 출진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세탄은 경례를 해 보이고는 물러났다.
내가 녀석의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말이 걸려왔다.
―기척이 느껴진다.
등에 찬 칠성칠요의 말.
놀란 내가 말했다.
“깜짝이야. 평소에 말 안 하던 놈이 무슨 일이래?”
―칠죄신이 거의 다 돌아왔다. 지금 머무를 몸을 물색하는 중이다.
“…….”
나는 잠시 주변에 듣는 귀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물었다.
“칠죄신을 죽일 방법이 존재하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하지만 내 지식은 한미하니 다른 방법은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내가 생각에 잠기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완벽한 이목구비라서 외려 이질적인 미인, 용공주 바라메였다.
“시릭, 은밀히 할 말이 있다만.”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거냐?”
“설레발이 될 수도 있어서 말이니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게 참으로 아름답다.
바라메가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흐르니 별자리도 변하고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구나.”
“너는 안 변하잖아?”
“……후후, 그럴 리가 있나. 이 몸 또한 그대와 만나고서 적잖이 변하였거늘.”
바라메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색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이 몸 또한 황후들과 함께 어리석은 행동을 같이 하였느니라. 하시아의 입장에 다소 질투를 한 것은 사실이니까.”
“…….”
만년이나 묵은 드래곤이 질투라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 바라메가 곱게도 눈을 흘겼다.
“오래 산 이 몸이 그리 유치한 질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딱히 너만이 아니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아내들이 하시아를 그렇게 남다르게 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나도 혹시 몰라서 아내 사이에서 차등을 두지 않게 노력했는데…….”
이건 중요한 일이었다.
제국군 초기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많이 불안정했고, 이종족들의 지지를 확고하게 얻어야 했으니까.
정략 목적이 섞여서 결혼했는데, 소홀하면 그 종족의 불만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 그대는 우리들을 극진하게 대해 주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느니라.”
바라메가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 그대는 하시아를 유일하게 편히 대했지. 다들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게다.”
“…….”
“그대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니라. 우리들의 작은 마음, 우리들의 잘못이고 우리들이 후회하면서 되돌리고 싶어 하는 일이니라.”
차분하게 말한 바라메가 말을 돌렸다.
“그대여, 실은 칠죄신을 죽일 방법이 떠올랐느니라.”
“뭐?”
“아니, 이건 너무 단순한 이야기이다만. 지금까지 칠죄신을 죽이지 못한 이유 뭔가?”
“그야 칠죄신은 육체를 갈아타니까.”
설사 그 육체의 목을 날리고 죽여 버린다고 하더라도, 다음 몸에 붙어 버린다.
내가 원탁결전에서, 키릭 레오가를 끝장냈을 때도 칠죄신의 본체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바라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느니라. 그러니까 칠죄신의 영혼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더냐? 새카맣게 물들어 버린 영혼을 베어 버리면 다 정리할 수 있느니라.”
“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영혼은 영생불멸이야. 사람의 영혼도 윤회전생을 거치는데 신의 영혼을…….”
“신의 영혼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느니라. 잘 들어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마녀 원로회의 수장인 카미르와 무릎을 맞대 가슴을 터놓고 논의한 끝에 나온 결론이니라.”
바라메는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작게 말했다.
“영혼의 본질은 똑같으니라. 인간과 엘프, 다크엘프, 수인…… 전부 다 동일한 재질로 이뤄졌느니라. 칠죄신의 영혼도 예외는 아니니라.”
나는 퍼뜩 떠오르는 예감에 말했다.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방법이 있다면 신의 영혼에도 통한다, 이거냐?”
“그러하느니라. 문제는 그 방법을 찾는 일이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그런 건 모르겠다고 말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나 있다.
딱 하나 있다.
“……잠깐만.”
엔라가 칠죄신을 무작정 불러들일 리가 없다.
제거할 방법, 죽일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엔라는 내가 환생한 걸 알고 계획을 꾸몄을 리 없어. 설령 내가 윤회전생한다는 걸 알았더라도 이 타이밍이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그렇지?”
“으음, 그러하느니라.”
바라메의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시아다.
엔라는 하시아가 칠죄신을 없앨 방법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하시아는 초능력자다.
초능력자는 정신의 힘,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의 의지와 영혼까지 이르는 힘이다.
하지만 그만큼 주의하면서 다뤄야 했다.
왜냐하면.
“칠죄신을 파괴할 방법이 하나 있다.”
자칫하면 정신 오염이 되니까.
남의 기억이나 감정에 오염되어 버리면, 자아가 박살 난다.
그래서 나도 함부로 남의 정신을 흡수하지 않고, 가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았나?
“…….”
그러면 만약 칠죄신을 정신 오염시킬 수 있다면?
그 사악한 영혼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다.
“설마 이게…….”
“방법이 있나?”
“그래, 덕분에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놈의 정신을 오염시키지?
칠죄신은 신, 그 영혼의 정보량은 압도적으로 방대하다.
내가 왕년의 시릭 카라카스를 넘을 만큼 성장했다지만 신의 정신을 오염시킨다고?
아무리 세찬 강물이라도 바다를 삼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대략적인 방법은 생각이 났다. 고맙다, 바라메.”
“아니,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니라. 이 몸도 세세한 방법은 더 없을지, 지식을 교환하면서 알아보겠느니라. 의외로 지적인 교류를 하는 것도 즐겁더구나.”
빙긋 웃던 바라메가 돌아보았다.
나도 따라서 돌아보니 이셀렌이 서 있었다.
“시릭, 워길드에서 엔라의 행적이 드러났어. 시민들 사이에서 숨지도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중이야.”
“함정이라고 광고하는 중이네.”
“……그렇지, 병력은 1천이야.”
이셀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에 워길드 근방에서 다른 병력의 움직임은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재차 검토해 보겠지만…….”
“엔라는 네가 그렇게 검토할 것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다. 진짜로 1천 명만 있을 거다.”
엔라와 이셀렌도 같은 제국군, 한솥밥을 먹은 사이니까.
이셀렌은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나와 세탄이 1천 병사와 함께 워길드로 쳐들어간다. 너희들은 밖에서 대기하다가 유사시에 호응해라.”
“……응.”
“내일, 엔라를 꺾고 내전에 쐐기를 박는다.”
그 후 신을 죽일 방법을 알아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