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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73화 (17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73)

쾌속 진격

내 몸을 단숨에 휘감은 보라색 마력.

“오오오.”

“아, 아니. 인간이 7계위라고?”

칠죄신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사투를 벌이면서 7계위에 도달한 인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이제 다 사라졌고, 평화로운 시기가 100년이 지났다.

인간의 고유능력은 마력전승,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인간 중에서 7계위는 손에 꼽는다.

즉, 인간인 내가 보라색 마력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시릭의 환생이라는 풍문에 살이 붙는다.

“흥!”

하지만 베로드는 굴하지 않고, 양손으로 전투망치를 꽉 잡았다.

눈에는 투지.

내가 성질 좀 죽이라고 요새 방어로 돌려놨지만 본래 성격이 불같은 놈이다.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행여나 내가 죽는다면! 너희들은 모두 중앙군에 항복해라!!”

“예? 사, 사령관님!!”

“만약의 이야기다! 이놈이 비범한 건 사실이니까!!”

베로드는 내가 시릭의 환생이라고 인정한 건 아니지만, 만만하지 않다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투지를 불사르면서, 나를 향해서 망치를 꽉 잡고는 먼저 뛰어들었다.

핑!! 핑!!

나는 가만히 서서 탐랑과 녹존을 비검으로 쏘아 보냈다.

까아앙!!

하지만 베로드도 노련한 놈, 옛적에 나와 붙었을 때처럼 타이밍을 맞춰서 망치를 휘둘러서 비검을 연이어 쳐 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검은 3자루.

더군다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잉!!

비검을 쳐 내기는 어려워진다!

거문이 날아들자 베로드는 절묘한 마력질주로 옆으로 휙 빠져나갔다.

하지만 나 역시도 마력질주로 따라붙어서는 양손의 검을 휘둘렀다.

챙!

염정과 문곡의 연격에 베로드는 얼른 망치를 휘둘러서는 맞받았다.

하지만 나는 굳이 버티지 않고, 검을 놓고는 물러났다.

비어 버린 내 손으로 아까 날려 보낸 탐랑이 돌아와서는 잡혀 들고.

피잉!!

다시 비검으로 날려 보낸다!

“으으음!”

노련한 베로드도 기겁하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귀가 크게 베였다.

이제야 내 본래의 전투 방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이도류를 쓰면서, 검들을 휙휙 날리고 불러오고 바꿔 가면서 상대를 몰아붙였다.

내가 칼을 잡으면 근거리, 놓으면 원거리다.

여기다가 관성을 우롱하는 내 몸놀림까지 섞으면, 대개 손도 발도 못 쓰고 목이 날아간다.

“크아아악!!”

하지만 베로드는 역시 노련했다.

그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걸 개의치 않고, 내 머리를 향해서 망치를 내리찍었다.

망치에 어린 강기, 7계위 능력!

같이 죽자는 공격에 나는 일단 몸을 뒤로 빼냈다.

“흐으읍!!”

하지만 베로드는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르기, 종횡으로 망치를 휘두르면서 나를 몰아붙였다.

빈틈이 있긴 한데…… 그걸 파고들려다가는 내 골통까지 부서질 판이었다.

내가 비검으로 날릴 틈도 안 주려고 한다.

“……그래, 끝내자.”

하지만 나도 정색했다.

부우웅!!

내가 양손에 쥔 탐랑과 거문에서 검강이 솟아오르자 베로드가 눈을 부릅떴다.

그것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지켜보던 병사들도 기겁했다.

“거, 검강이다!”

“인간이 7계위에다가 검강까지! 거기다가 폐하의 비검도!”

“설…….”

베로드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망치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탐랑으로 막고는 거문으로 놈의 어깨를 그어 버렸다.

“크으으윽!”

피가 튀고, 놈이 물러나려고 하자.

나는 몸을 돌리면서 비검 두 자루를 연달아 뿌렸다.

퍽! 퍽!!

빛살처럼 날아간 비검이 베로드의 양쪽 어깨에 꽂혀 들었다.

어깨가 박살 나면 무기를 휘두를 수가 없다.

그리고 마무리!!

“……헉, 허어억.”

달려드는 나를 보고도 무기를 휘두르지 못한 베로드는 굳어 버렸다.

바로 자기 목 앞에 멈춰 버린 염정을 보고.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폐, 폐하?”

“이번에도 어깨에 구멍이 난 다음에야 알아 모시는군.”

내가 칼을 물리자 베로드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검을 칼자루에 꽂고는 말했다.

“이제 됐지? 잔말 말고 요새 개방해.”

“…….”

병사들이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비록 내가 7계위에 검강까지 쓴다고 한들, 이 요새 안에는 1만의 병력이 있다.

숫자에는 장사 없지 않냐는 셈법.

다들 베로드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하.”

베로드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팔짱을 끼었다.

“이거 참,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이렇게까지 하시는 분은 폐하 말고는 없으시죠. 설마 또 살려 주실 줄이야.”

“알아봐 줘서 고맙다고 할까?”

베로드는 후련하게 말했다.

“요새를 장악하려면 절 죽이시는 게 확실한데도 굳이 살려 주시는 거 하시며, 홀몸으로 대담하게 찾아온 거며, 이런 무모하고 황당한 짓은 폐하 말고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욕을 해라, 욕을.”

내가 투덜거려도 베로드는 웃기만 했다.

피가 양쪽 어깨에서 철철 흐르는데도 기분 좋은 미소.

베로드는 떨어져서 지켜보던 부관에게 호령했다.

“팔레스! 당장 요새의 문을 개방하고 병사들을 순차적으로 내보내라! 우리가 저항 의사가 없다는 걸 중앙군에게 알리고, 중앙군에게 각 병사들의 무기를 차례차례 반납하겠다고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십검장 팔레스가 몸을 돌리고 뛰어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요새 내부.

베로드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나를 보았다.

“그런데 폐하, 대체 집안 관리를 어떻게 하셨기에 이 사단이 나는 겁니까? 엔라는 대체 뭔 생각으로 저러는 겁니까?”

“상황이 설명하기 복잡하다. 머지않아 끝날 거다.”

“아닙니다. 제가 알아야 합니다.”

내 시선에 베로드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에게 서신 몇 통만 써 주시죠. 그걸 들고 서부군의 각 군단을 돌아다니면서 장군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

베로드는 성격이 너무 과격해서 친한 장군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에 대한 충심이 높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베로드가 내가 시릭이라고 지지해 준다면 그만큼 일이 잘 풀리리라.

“알겠다. 그렇게 조치하지.”

“……허허허, 폐하. 그러시면 안 되죠. 제가 두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는데 항복한 지 5분도 안 돼서 풀어 주겠다고 약조하십니까?”

“넌 두 마음 먹을 놈이 아니야. 그럴 놈이었다면 진즉에 이 요새를 비싼 값에 팔아치울 생각을 했겠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 더욱이 내전은 피가 적어야 한다.”

“암요, 그럼요. 정말 우리 폐하다우신 말씀입니다.”

“진짜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네. 이제 아첨까지 하고?”

“아첨할 줄 알았으면 제가 진즉 별 달았습니다. 자, 여기 독한 술이나 좀 가져와라!”

“…….”

내가 어이없이 보는데 베로드가 흡족하게 웃었다.

“폐하를 다시 뵈었는데 얼른 술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바론홀 요새 공략은 끝났다.

아니, 사실 공략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하지만 단순한 게 낫다.

화살 하나 쏘지 않았으니 다행 아닌가.

물론 그래도 항복의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중앙군이 요새 방위병들의 무기를 압수하고, 무장해제 과정을 거쳤다.

베로드는 일단 치료를 받아야 했고.

중앙군은 요새 안팎으로 나눠서 진영을 차렸다.

지휘 막사.

레릭은 크게 고무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폐하. 정말로 홀로 뛰어들어서 요새를 함락시키시다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런 무용은 전례가 없었을 겁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 1대 1싸움이었지. 베로드가 담백해서 가능했던 거야. 하지만 이셀렌.”

나는 이셀렌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오늘 일어날 사실을 서부군의 근방에 퍼트려라. 다소 과장이 섞여도 좋다.”

“이미 처리했어.”

그 성질 더러운 베로드가 나를 시릭이라고 인정하고 항복했다.

이 사실이 퍼지면 서부군은 내부부터 무너질 것이다.

결국 전쟁이란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지도를 내려다보던 랑에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부 각 방면의 군사들은 흩어지고 무너질 거다. 하지만 서부대장군의 직속부대, 그리고 엔라가 있는 부대는 그렇게 풀지 않겠지.”

“그래, 결전을 한판 벌이기는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가 최대한 적게 나게 잡는 거다. 일단 계속 서부군을 회유하고 깎아내라.”

그때 막사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용공주 바라메와 마녀 카미르였다.

“시릭, 이 몸과 마녀가 의견 교환을 하고 대충 가닥을 잡았느니라.”

“아직은 가설이지만 들어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적, 엔라와 하시아의 구체적인 목적이 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는 새삼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랑에이와 이셀렌, 레릭.

다들 알아도 된다.

내가 시선으로 전하자 카미르가 말했다.

“차원에 대해서는 다들 모르실 테니 간략하게 비유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카라카스가 바로 물질계지만, 이 근방에는 다른 차원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엘프들이 정령력을 끌어오는 정령계 같은 곳 말이지.”

“그리고 7황후 전하와 지식과 의견을 교환한 끝에…… 흑마력 역시 다른 차원에서 흘러들어 오는 에너지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엘프들의 정령마술과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단, 흑마력을 받아들인 이는 생전의 기억은 있되 이성을 상실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세운 가설이지만, 확증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바라메가 거들었다.

“그 흑마력을 좌우하던 게 바로 칠죄신이니라. 하지만 그도 절대적인 장악력을 가진 게 아니었느니라. 아니, 예전에야 그렇게 보였지만…….”

“칠죄신이 추방되면서 그 지배력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하시아나 다른 이들이 흑마력에 타락했는데도 이성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던 거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들도 칠죄신이 돌아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반대로 돌아오게 만들고 있지?”

카미르는 천천히 말했다.

“여기부터는 완전하게 가설의 영역입니다. 사실 칠죄신이 돌아온다는 건 기정사실입니다만, 어떻게 돌아오게 할지가 관건이었습니다.”

“그야 사도의 몸을 통해서 강림하겠지.”

원탁결전에서처럼.

바라메는 신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니, 그건 구체적인 방법이고 보통은 돌아올 수 없네. 그러니까 좀 띄엄띄엄 세운 가설이지만…… 제국해방군의 테러 자체가 칠죄신을 불러들이는 방식이라고 봐야지.”

“뭐?”

“세상이 불안정해질수록 칠죄신이 재림하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이른바 말세라는 거죠.”

“시대가 원할 때 황제가 되살아나고, 신도 되살아나는 거지.”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지금까지 제국을 혼란시킨 자체가 칠죄신이 돌아오기 편한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거였다고?”

“흔한 말세론이니라.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그걸 끝낼 신과 부처가 돌아온다고 하니,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것이지.”

“…….”

테러범들의 테러 행위.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묘한 데가 있긴 했다.

사실 칠죄신을 재림시킬 거라면 그냥 어디 두메산골에서 최대한 조용하게 의식을 치르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세상의 눈에 띄는 쿠데타를 연달아 벌였다.

“속세의 권력을 노린 게 아니었군…….”

나는 그 일련의 계획이 원탁회의에서 그들이 미는 후보를 황제로 만들려고 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체가 칠죄신이 강림하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막을 방법은 없냐?”

“그대에게 예전에 설명한 적이 있다. 허룡탑은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정보 침식을 막는 방파제 같은 곳이라고. 본래 차원과 차원에서는 서로 정보 교환이 일어나는데 그 이변을 막는 최선이라고.”

“그래, 그런데?”

바라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칠죄신의 정보가 상당수가 넘어왔다. 몸통이 넘어왔고 팔다리가 붙는 중이라고 하면 되려나.”

“…….”

“재림은 기정사실이다. 다시 칠죄신의 종복들이 어둠에서 일어나겠지.”

나는 이마를 누르고 생각에 잠겼다.

적을 깨트리려면 목적을 알아야 한다.

“엔라가 대체 왜 그랬을까?”

“……응?”

너무 새삼스러운 이야기에 다들 의아해했다.

나는 재차 말했다.

“엔라의 목적은 하시아를 되돌리는 거다. 칠죄신이 재림할수록, 반대로 칠죄신의 흑마력 점유율은 낮아지고 있다. 그리고 출정식에서 하시아의 이야기까지 겹쳐 보면…… 칠죄신을 처리할 방법이 있다.”

“……적의 말을 믿는 겁니까?”

레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라는 가만히 있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여자였다. 한데 모든 지위와 명예, 가족까지 저버리면서 이 짓을 했고, 정작 적극적인 공세는 꾸리지 않고 있어. 애당초 목적 하나를 위해서 아주 황당한 기책도 쓰는 여자야. 그러니까…….”

“…….”

대충 예상은 가지만 확신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가설이다. 엔라를 잡아서 최종 확인에 들어간다.”

“그야 물론 우리들은 그러려고 출정한 거 아닙니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다르다, 엔라는 지금 어디에 있지? 워길드에 있는 게 맞나?”

“폐하, 설마…….”

내가 지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알아, 엔라가 워길드에 있다는 게 확인이 된다고 해도 함정이다. 그래도 가장 빠른 길이지.”

내 말에 레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 죄송하지만 적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될 거다. 세탄 불러와.”

“…….”

다들 깜짝 놀랐다.

내가 아들을 미끼로 내걸어서, 엔라를 끌어내려는 걸 알고.

“……시, 시릭?”

심지어 남들 앞에서는 시종일관 냉철한 이셀렌마저도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비정하게 나올 거라고는 다들 생각 못했겠지. 엔라도 이것까지는 상상도 못할 거다. 그러니까 통한다.”

계획이 섰다.

“물론 아들 혼자 사지로 보낼 순 없지. 나도 같이 간다.”

부자간의 합동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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