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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63화 (16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63)

열반의 경지로

제국 광장에서의 한판 승부.

결국 경찰 병력이 출동해서 상황을 마무리했고, 나와 바라메는 황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나는 황성의 남성으로 돌아갔다.

내가 황후들에게 각각 일을 맡긴 지 3일이 지나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허룡탑은 카라카스이면서도 다른 차원에 걸쳐진 공간, 거기를 통한 이동은 시간을 소비하니까.

늦은 오후.

나는 오드벨을 만나서 보고를 받았다.

“그래, 정황은 좀 어떠냐?”

“시중의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7황후와 폐하의 단판 승부, 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지켜보았고 열광했습니다. 결국 폐하가 7황후를 꺾어 버리셨고, 시릭 카라카스의 재림이라는 평판이 더더욱 힘을 싣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출정식은 금방 할 수 있겠냐?”

“예, 렌시엘 전하와 함께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만. 늦어도 1주일 안에는 다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길어?”

내가 의아하게 보자 오드벨은 입을 다물었다.

이놈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크게 사고 치고 사후 보고를 올리는 놈이지.

“야, 뭔데? 중앙군의 출정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해? 레릭이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던가?”

반란을 일으킨 서부군과의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레릭이 이 정도는 알고 대비해 뒀을 놈인데.

한데 오드벨은 벽만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화 안 낼 테니까 말해.”

“……황후 전하들이 부탁하셨습니다. 가능한 뒤로 미뤄 달라고요. 다들 보름 이상의 기간을 요구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폐하께서 눈치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드벨은 말하다가 정색했다.

“아, 나비린도 부탁했습니다만. 걔 말은 무시했습니다. 다른 황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시고 황자와 황녀분들도 찬성하셔서요.”

“……그래서 출정식은 1주일 뒤라고?”

“미리엘 황녀님마저도 리세라 황녀님의 손을 잡고 와서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폐하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요.”

“으으음.”

나는 신음을 흘렸다.

“내가 출진을 서두르는 걸 다들 걱정한다 이거지?”

“예, 다들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은 만에 하나라도 폐하를 다시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오드벨이 나를 똑바로 보고는 말했다.

“폐하, 그냥 서부군은 레릭에게 처리하게 하시죠.”

“안 돼, 내가 직접 가야 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너에게 내가 시릭의 환생이라는 소문을 퍼트리라는 게 아니다. 그걸 발판 삼아서 반란군, 서부군을 보다 많이 항복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시릭이라는 사실을 믿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설득과 회유가 쉬워질 테니까.”

“……폐하.”

“엔라의 말을 따르는 병졸들이 대체 무슨 죄냐. 물론 전쟁에는 피가 흐른다지만 나는 최대한 피해를 적게 내고 싶다. 그게 이제 없는 전우들과 지금도 나와 함께 해 주는 전우들에 대한 예우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엔라가 함정을 파고 있을 것쯤이야 짐작하고 있다. 그래도 모든 일의 마무리는 내가 해야 한다. 나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갈 테니 너도 여기에 대해서는 더는 말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미리엘 전하.”

“야!”

진중하게 말하던 나는 정색했다.

이놈의 뱀 새끼가 내 딸을 들먹여서 공격하네!

하지만 오드벨은 태연하게 말했다.

“미리엘 전하가 제게 ‘우리 아빠, 전쟁 나간다는데 말려 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죄드리는 겁니다.”

“……너, 알면서 그러는 거지?”

“죄송합니다, 메이호 전하. ‘아빠는 우리가 말려도 분명히 웃어넘길 테니까 재상님이 말려 주셨으면 해요. 아빠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재상님은 아끼시잖아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

이 뱀 새끼가.

내가 노려보아도 오드벨은 벽만 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세탄 전하.”

“……아, 그만해. 몇 절까지 하려는 거야.”

“8절까지 남았습니다만.”

오드벨은 벽을 보는 채로 말했다.

“폐하, 몇 번이고 말씀하시지만 폐하를 이렇게 다시 뵙고 폐하를 섬기는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는 건 정말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기적이 다시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겠습니다.”

“…….”

“폐하가 정말 뜬금없이, 급하게 떠나신 이후에 제국의 문무백관부터 일반 신하들까지 모두 발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행정부의 직원들도, 하나둘씩 폐하가 시릭 카라카스라는 촉을 느끼면서 저에게 넌지시 운을 떼고 있는 거 모르십니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알았다, 알았어. 조심할 테니까 그만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친정을 포기하시지는 않겠죠. 폐하께서는 늘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싸우셨습니다만. 제국의 지존으로서 좀 더 몸을 아끼시는…….”

“아, 알았어. 1주일 뒤에 출발!”

나는 항복의 표시로 손을 들어 보였다.

사실 출정식에는 이런저런 예식적인 준비도 필요했다.

나야 간소한 걸 좋아하지만, 렌시엘이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성대하게 준비하고 싶겠지.

민심 수습에도 그게 낫긴 하다.

여기서는 그냥 져 주자.

오드벨이 내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럼 폐하, 황후분들과 자제분들에게는 제가 말씀드려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황실의 여러분들이 저를 해결사, 폐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신하라고 착각하면 매우 난감합니다.”

“……너도 어지간하다.”

“제 못난 동생이 폐하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이상 더더욱 몸가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저와 동생, 둘 중 하나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제 입장에서는 제 동생이 사라지는 게 좋습니다.”

“…….”

오드벨은 나 관련해서는 또라이 짓을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냉철하다.

괜히 내가 뱀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오드벨은 여동생인 나비린이 나와 결혼하자, 이후에 남매 둘만 보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카인 리세라에게도 마찬가지.

만에 하나, 외척이라는 경계나 의심을 사는 일을 피하겠다고 철두철미하게 구는 것이다.

오드벨이 냉정하게 말했다.

“폐하, 마침 좋은 기회라서 여쭤보는데 혼인은 어쩌실 작정입니까?”

“왜 또 미친 소리를 시작하고 있어.”

“폐하에게는 대충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혼인을 하지 않는다. 이건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민심에 좋을 게 없습니다.”

제국에는 안주인이 필요하니까.

“둘째, 시릭 카라카스의 환생이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밀어붙이고 황후분들과 재혼하시는 겁니다.”

“……정치적인 부작용이 어마어마할 텐데?”

내가 환생한 시릭이라는 소문은 이래저래 퍼져 가는 중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황후들과의 재혼은 두고두고 정치적, 도덕적인 논란을 야기하리라.

내 개인 의사를 제외하고 정치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오드벨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권하는 건 새로운 분하고 결혼하시는 겁니다.”

“그건 안 하지. 애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폐하가 그렇게 답변하실 것 같아서, 두루두루 생각해서 후보를 선정했습니다. 아멜리아 님과 미레이 님입니다.”

“지금 뭐라고 했냐?”

나는 정색하고는 오드벨을 쏘아보았다.

“너 설마 뭐 사고 친 거 아니지? 아멜리아에게 뭔 짓 안 했지? 헛짓하면 진짜 작살낸다?”

“음, 그러실 것 같아서 아멜리아 님에게는 아무런 말씀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행…….”

안도하던 나는 멈칫했다.

이놈은 늘 저지르고 사후 보고를 하는데?

나는 설마 하면서 확인했다.

“……미레이에게는 했다 이거네?”

“예, 새로운 황제의 황후가 되실 마음이 있냐고 확인했습니다. 대답을 말씀드릴까요?”

“…….”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오드벨은 내 침묵을 허락으로 여겼는지 자기 양 뺨을 손으로 눌러 보였다.

“특관님이 절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잠깐만요! 좀 고민해 볼…….”

“…….”

나는 옆에 있던 책을 놈의 머리를 향해서 던져 버렸다.

오드벨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굽혀서 피했지만.

뻑!

염동력으로 수직 낙하 한 책 모서리가 오드벨의 뒤통수를 찍어 버렸다.

“아오. 어쩐지 요즘 얌전하다 했다. 또 사고를 쳤네?”

“폐하, 폐하의 혼인은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닥치고 있어.”

나는 이마를 눌렀다.

“……아, 그래도 미레이에게만 해서 다행이네. 아멜리아에게 그딴 소리 했으면 넌 진짜 죽었을 거다.”

“그러실 것 같아서 주의했습니다.”

“…….”

나는 오드벨을 노려보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가 막히긴 하지만 유능하고, 또 사심이 있는 놈은 아니다.

이놈이 권력이나 다른 이득을 노렸다면 자기 동생이랑 재혼을 권했겠지.

“일단 알았다. 알았으니까 바라메나 좀 불러와.”

“알겠습니다. 그러면 근처 시종들도 물리고 침소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딴 거 아니니까 그냥 조용히 불러와.”

오드벨이 나가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가족들이 걱정한다라…….”

애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섯에서 열 살 때 아빠가 죽었는데 스무 살이 되니 돌아온 셈인가?

“거기다가 아직도 전성기 시절보다 약하고.”

이제 6계위.

대략 40% 채워졌다.

사기적인 성장률을 보인 리젠의 몸도 7계위는 쉽게 이룩할 수 없었다.

이게 당연했다.

시릭 시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치르고도 대충 연 단위로 걸렸으니까.

“이 몸을 찾았다고? 헤어진 지 2시간도 안 돼서 찾다니, 어지간히 급하구나.”

바라메가 들어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곤 의아해했다.

“침대가 없다만? 의자에서 하자는 것이냐?”

“하긴 뭘 해. 약속한 특급 마력약이나 내놔.”

바라메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특급 마력약이 귀하다는 건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왜 귀한지는 생각해 보았느냐?”

“짧게 설명해.”

“애당초 마력이 무엇이고 마력약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하겠느니라. 마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만…… 이 몸이 정설을 말해 주마. 마력이란 영혼과 육체를 보다 긴밀하게 잇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니라. 정신과 육체를 합치시키는 것이지.”

“그러니 내가 환생해서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던 건가? 리젠의 육체는 새 거니까?”

바라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니라. 마력약이라는 건 이 통로를 힘으로 만들고, 더 넓혀 주는 것이지. 그럼 경지가 올라갈수록 마력약을 먹어도 별 효험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 강제 개통이 갈수록 의미가 없어져서?”

“그것도 있지만 문제는 안정성이다.”

바라메는 담담하게 말했다.

“특급 마력약은 만드는 재료도 귀하지만, 애당초 만들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걸 복용한 자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단 보장이 없으니까.”

“…….”

“생각해 보아라. 사람 몸에 구멍을 하나 뚫는다고 치자. 죽을 확률이 높진 않겠지. 하지만 이미 구멍이 대여섯 개 뚫려 있는데 하나를 더 뚫는다면? 그것도 다른 구멍을 건드리게 된다면?”

“무조건 1계위를 올려 준다는 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 거였군?”

“그래, 갈수록 마력이 성장하는 속도가 더뎌지는 게 그 이유다. 구멍을 뚫을 때마다 몸과 영혼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보다 신중해지는 것이지.”

바라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하긴, 정말로 아무런 부담도 없이 1계위를 무조건 올려 준다면 그걸 양산해서 용족들이 전원 7계위가 됐겠지.”

“이건 어떤 종족이건 대단히 위험하다.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에도 구멍을 뚫게 되니까.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매우 안전하게 뚫어야 하는 통로를 한순간에 확 넓혀 버리는 셈이지.”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물었다.

“그 특급 마력약을 먹은 경우 생존율은?”

“25%다. 지금까지 네 명이 먹었고 한 명만 남았지.”

“…….”

미묘하게 현실적인 수치네.

바라메는 설명조로 말했다.

“특급 마력약을 먹는 순간, 정신이 육체를 떠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면 정신과 육체의 연결이 끊기고 죽음을 맞이하지. 그러니 열반이라고 한 것이니라.”

“알았다. 줘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위험하다는 건 알겠는데 안 먹는 게 더 위험하다. 마침 1주일 시간 여유도 생겼다니 지금 당장 먹어 버려야지.”

“이미 마음을 정했구나.”

“아주 막무가내는 아니다. 영혼과 육체, 양쪽에 다 서로 연결 통로를 만드는 거라고 했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시릭 카라카스고, 7계위는 도달한 적이 있다. 그러면 내 영혼에는 이미 그 통로가 개설되어 있겠지? 위험부담이 절반밖에 안 된다.”

“이론은 그렇다만.”

바라메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붉은색이 찰랑거리는 병.

바라메는 간곡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심해라. 이 열반의 경지를 뛰어넘으면 크게 성장하나, 실패하면 바로 죽는다.”

“그래.”

나는 약병을 열고는 삼켜 버렸다.

말하는 순간, 손끝이 확 굳어 버렸다.

목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가 싶더니만 순식간에 전신으로 번진다.

몸을 불태워 버리는 열기.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써 보려고 해도 안 된다.

몸도, 염동력도 말을 안 듣는다.

……어, 이거 언젠가 경험한 것 같은데?

그래, 시릭 카라카스의 마지막 순간.

여기서 딱 심장이 멈추고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 버렸지.

바라메가 나를 보고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도 안 들린다.

소리가, 내가 보던 세상이 멀어진다.

아주 멀리.

대신, 많이 본 얼굴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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