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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56화 (15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56)

다시 모이고 나니

황도 에덴시아.

제칼의 일을 마친 나는 황성으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응접실로 가자 메이호가 반겨 주었다.

“아빠! 엄청 다쳤다면서요! 오르카가 놀라고 이셀렌 어머니도 엄청 당황했어요!”

달려온 메이호는 얼른 내 손을 잡고는 상황을 살폈다.

내 팔을 더듬던 딸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만 다시 말했다.

“아빠, 진짜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세탄하고 오르카가 같이 가서 안심했는데.”

“아니, 뭐…….”

사실 예렌과 락셀에게 당한 상처보다, 드래곤 하트의 부작용이 더 큰 건데.

내가 얼버무리자 메이호는 내 손을 잡아끌고는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손을 잡은 메이호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남자들만 보내니까 이러잖아요. 다음부터는 저도 데려가요.”

“그건 안 되지.”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제가 사실상 장녀고, 저도 혼자서 오래 여행했어요. 아빠 돕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요.”

메이호는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제가 세탄은 몰라도 오르카보다는 셀걸요?”

“……메이호 누나, 누나는 수인인데 나보다 더 센 게 당연하지.”

응접실로 들어오던 오르카가 듣고 투덜거렸다.

손에 든 건 머그컵 두 개.

내게 찻잔을 건네준 오르카는 내 옆에 앉은 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정보 처리 담당이고요. 단순한 돌격대장 노릇을 할 거라면 메이호 누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많아요.”

“너, 까분다? 아빠랑 같이 가 놓고 제대로 지켜 드리지도 못하고!”

“으음…….”

오르카는 할 말이 없는지 차를 마시는 척하면서 얼굴을 가렸다.

메이호는 나에게 다시 말했다.

“아빠는 정말 너무 위험하게 굴어요. 명색이 황제인데 병력도 부리고, 다른 애들도 좀 시키고 그래야죠.”

“알았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럴게.”

“……그러면 됐고요.”

메이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나를 안쓰럽게 보았다.

“우리 아빠, 정말 더 걱정시키지 말아요. 예?”

“생각해 보니 내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왜 퍼진 거냐, 오르카?”

다크엘프의 정보망, 오르카의 일 처리라면 덮어 버릴 수 있지 않나?

이셀렌이 아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오르카도 난감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비린 어머니가 가만히 있질 않으셔서요. 아버지 주무시는 동안 뒤집어 버리셨어요.”

“나비린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리세라 누님하고 이야기 중이신 것 같은데요. 불러올까요?”

“아니, 그냥 쉬자.”

내가 의자에 몸을 묻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얗고도 작은 날개.

작은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셋째 딸 미리엘이 내게 다가와서는 양팔을 벌려 보였다.

“아빠, 돌아오셨어요?”

“으응, 아빠 왔다.”

나는 얼른 미리엘을 양팔로 안아 들었다.

미리엘 역시도 나를 끌어안아 주고는 어깨에 뺨을 비볐다.

내친김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하하!”

비행기에 신이 난 미리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나, 왜 그렇게 부럽게 봐요? 악!”

오르카가 메이호의 발길질에 얻어맞고는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나는 일단 미리엘을 내려놓고는 메이호를 향해서 양팔을 벌려 보였다.

“자, 우리 딸.”

“……시, 싫어요. 제가 몇 살인데 애 취급을 하세요.”

“네가 몇 살을 먹었건 내 딸이다.”

메이호는 쭈뼛거리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일어나고 싶은데 망설이는 얼굴.

그러자 나는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빠 슬프고 외롭다. 위로 좀 해 줘라.”

“……정말, 오르카 너, 소문내면 죽는다?”

메이호가 으름장을 놓더니만 일어나서는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나는 능숙하게, 춤을 추듯이 돌면서 메이호도 비행기를 태워 주었다.

윙크까지 날려 가면서.

착.

내가 회전을 멈추자 메이호는 좀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진짜 옛날 생각 나네요. 아빠, 이거 옛날부터 잘하셨죠.”

“와, 저도 해 주실래요?”

화들짝!

어느새 응접실로 들어온 리세라의 목소리에 메이호는 기겁하고는 돌아보았다.

“봐, 봤어!”

“언니가 아빠랑 춤추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요?”

“행복했어!”

미리엘이 들뜬 목소리로 리세라를 거들었다.

메이호는 비틀거리다가 얼굴을 감싸고는 소파에 앉아 버렸다.

앓는 신음 소리에 미리엘이 갸웃거렸다.

“메이호 언니, 어디 아파?”

“……모, 몰라. 소문내지 마. 엄마한테 말하지 마.”

“무슨 엄마?”

리세라는 쿡쿡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다치셨다고 해서 다들 걱정했어요. 아버지.”

“별거 아니었다. 뭐 내가 다치고 쓰러지는 일은 늘 있었는데.”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일단 정신력이 바닥나면 나는 인사불성, 며칠씩 의식불명 상태라서 남들에게 지휘를 맡겨야 했다.

제국군을 지휘할 때도 몇 번이고 그랬으니까.

내가 전우들을 유달리 소중하게 여기는 건 이런 이유도 있다.

내가 쓰러지면 다음을 맡겨야 하니까.

리세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알고 있지만 가족들은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걱정하고 있어요. ……다시는 아버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

“주제넘은 소리를 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어머니도, 다른 애들도 그게 너무 무서워요.”

황제였던 내가 급사하고.

황후들은 서로 동석도 안 할 정도로 냉랭해지고,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렇게 다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내가 시릭의 환생이라는 게 준공식이 돼서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하마.”

“죄송해요. 아버지의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한 소리만 해서.”

“아니, 아니다. 딸이 걱정해 주는데 아빠는 행복하지.”

내가 웃는데 리세라는 장난스럽게 양팔을 벌려 보였다.

“그럼 이제 저도 메이호 언니처럼 안아 주실래요?”

“그래, 메이호처럼 안아 주란 말이지?”

“……아빠! 세라야!”

구태여 거론하자 메이호가 부끄러워하면서 쏘아붙였다.

죽이 맞은 우리 둘은 손을 맞잡고는 메이호를 바라보았다.

“언니만 아빠에게 안겨서 빙글빙글 하고 싶나 봐요? 저도 하면 안 될까요? 허락해 주세요.”

“호야, 네 기분은 알지만 가끔은 동생에게 양보하렴.”

“……왜 내가 그걸 독점한다는 듯이 말하는데요? 둘 다 짜고 나를 놀리는 거죳!”

메이호가 빽 소리치자 웃음소리가 터졌다.

오르카가 고개를 숙이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메이호가 홱 돌아서 노려보는데도 입을 가리고 대폭소.

둘 사이에 낀 미리엘은 갸웃거리다가 화사하게도 웃었다.

남동생이 웃으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 내 딸이지만 귀엽다!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자 리세라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 미리엘 언니와 메이호 언니만 예뻐하시는 거예요? 얼른 저도 예뻐해 주세요.”

“그래, 메이호처럼 안아 주마.”

“다음부터 황실 고유명사로 정할까요? 메이호처럼 안아 주기.”

“……세라, 너 진짜.”

내가 리세라를 안아 들려는데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6황후, 금색 드레스를 휘감은 나비린이었다.

그녀는 내게 빠르게 다가오더니만 쏘아붙였다.

“황실의 규범이 있는데 체통과 위엄을 생각하셔야 한답니다.”

“어머니도 안아 달라는 말씀이시네요.”

“……세라, 지금 그런 말 한 적 없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저하고 아빠가 손잡은 걸 무척 부럽게 보시는데요?”

리세라는 생긋 웃더니만 내 팔짱을 꼈다.

그러자 나비린이 무섭게 리세라를 노려보았다.

“리세라, 지금 저를 시험하는 겁니까?”

“어머니에게 서운해하는 건데요?”

리세라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으셔서, 저에게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약간이나마 들어 버리게 만드셨잖아요.”

“당신에게 설명할 일이 아니었답니다.”

“…….”

팽팽한 대립 분위기.

나야 당연히 심정적으로 리세라 편을 들고 싶지만.

오르카가 어떻게든 말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메이호에게 안겨 있는 미리엘이 겁먹은 얼굴이 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나에게 설명할 이야기겠네. 설명해 봐라, 나비린.”

“…….”

“오해라며?”

나비린은 멈칫하더니만 다른 황자, 황녀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정색하며 꾸짖었다.

“다 우리 가족이고 우리 핏줄이다. 가족 사이에 뭐 비밀이 있다고 눈치를 보지?”

“……리세라는 당신과 저의 딸이랍니다. 그리고 저는 엘프들과 정령을 잇는 가교, 그래서 정령무희라고 불린답니다.”

나비린은 체념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정령, 정령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없을 거랍니다.”

“…….”

나도 모른다.

혹시나 해서 오르카와 메이호를 봐도 둘 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메이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불, 물, 바람, 땅의 4대 정령의 힘을 빌리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랍니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답니다.”

나비린은 설명조로 말했다.

“정령마술이라는 건, 이 세상인 카라카스와 상당 부분이 겹쳐진 정령계에서 에너지를 빌려 오는 거랍니다.”

“아니, 그거야 대충 알잖아요?”

메이호의 말에 나비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랑에이의 딸이라는 티, 내지 않아도 된답니다.”

“……뭐라고요?”

메이호는 짜증을 부리고, 나도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나비린은 산뜻하게 무시하고는 말했다.

“칠죄신을 추방시킨 이후, 정령마술의 근간이 크게 흔들렸답니다. 카라카스와 정령계가 겹친 좌표가 어긋나기 시작했으니까요.”

“예? 왜요?”

“칠죄신은 신, 카라카스에 존재하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에너지였답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세상에 온갖 영향이 생기는 게 당연하답니다.”

말뜻을 이해한 나는 정색했다.

“잠깐, 그러면 칠죄신을 추방시키는 바람에 정령마술이 달라졌다고?”

“예, 실은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답니다.”

나비린은 정갈하게 말했다.

“세상은 우리들의 인지를 뛰어넘은 균형과 이치에 맞춰서 돌아가고 있답니다. 칠죄신은 너무나 사악한 신, 해악이었으나 그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영향 받는 걸 피할 수 없답니다. 그리고 그게 악영향일 수도 있답니다.”

“…….”

모기는 해충, 사람에게는 해롭지.

그렇다고 모기가 하루아침에 멸종하면 생태계는 어떻게 될까?

나비린은 지금 그걸 말하고 있었다.

“엘프들의 정령마술은 약해지거나, 혹은 다른 쪽으로 흘러 들어갔답니다. 누군가는 변해 버리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나비린은 안쓰럽게 리세라를 바라보았다.

“……세라는 몸이 약해졌답니다.”

“왜요? 리세라는…….”

“네 피를 이어서?”

나비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라니 더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정령무희는 반드시 혈통으로 계승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은 높은 편이랍니다. 그리고 리세라도 본래라면 저 이후의 정령무희가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만…….”

“…….”

리세라는 표정을 감췄다.

“인간과 엘프의 혼혈, 거기다가 칠죄신의 증발로 정령계가 급변했다는 사실에, 몸에 돌던 정령의 기운이 급변했습니다. 엘프라면 으레 지니고 몸에 도움이 되는 정령력으로 몸 내부를 공격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면…….”

“이대로라면 리세라는 위험해집니다. 그걸 위해서 저는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기존 사례가 없어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폐하가 노하고 꾸중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최선을 다했답니다.”

나비린이 단호하게 나를 보았다.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리세라도 나직하게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수혈을 받으면서, 다른 엘프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어요.”

“소란을 막기 위해서 다른 엘프들은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답니다. 적당한 핑계를 찾았답니다.”

“…….”

그러면 나비린은 리세라가 임신이 가능하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다.

반대였다.

가만히 놔두면 리세라가 위험하니까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 것이다.

나비린이 나직하게 말했다.

“리세라의 눈이 나은 건 치료를 관둬서가 아니랍니다.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보인 거랍니다.”

“그거 설마…….”

“자연스러운 시력 회복이라는 건 자연적이지 않은 일입니다. 굉장히 특수한 일입니다.”

칠죄신을 추방하고, 정령계와 카라카스의 좌표가 어긋나면서 리세라의 몸이 나빠졌다.

한데 리세라의 몸이 호전되었다는 건.

칠죄신이 거의 다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상황이 완전히 반대였다.

나비린은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리세라의 몸을 생각해서 대국적인 일을 염려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음, 그래. 알겠다.”

나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나비린, 괜히 오해해서 미안하다. 내 딸을 지켜 줘서 고맙다.”

“……우리 딸이랍니다.”

나비린은 몹시 섭섭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더 옛날의 오해에 대해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

“100년 전 그날의 일에 대해서, 저희들의 입장에서 해명하고자 합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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