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55)
말이 없더라도
처음부터 이 몸, 리젠 리브라타의 심장은 정말로 이상했다.
마력약을 복용해도 바로 탐욕스럽게 먹어 치워 버리는 놈.
내가 염동력을 못 썼다면 마력을 각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각성한 다음에는 역대급 마력 성장을 보여 주고 있었고.
이건 인간의 심장이 아니다.
용족, 그것도 드래곤의 심장.
그게 바로 리젠의 몸에 달려 있었다.
짐작하면서도 지금까지는 감히 쓸 생각을 못 했다.
쓰면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게 짐작이 갔으니까.
하지만 나도 계속 강해졌고.
지금은 옛 부하들과 결판을 낼 때다!
두근!
내가 일부러 마력을 불어 넣은 순간.
심장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가 싶더니…… 갑자기 쿵 하고 멈춰 버렸다.
아니, 세상이 멈췄다.
예렌이 놀라서 입을 벌리는 게 슬로모션으로 보이고.
락셀이 움찔거리는 동작마저도, 아주 느리게.
세상이 너무나 느리게 보이는데…….
퍼어엉!
나는 빠르다!
온몸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쾌감.
내가 앞으로 내달린 순간, 락셀과 예렌의 몸에 충돌했다.
마력질주를 쓴 것도 아닌데, 너무 빨라서 부딪쳐 버린 것이다.
“뭣…….”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적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충돌 직후, 뒤로 날아가려는 둘의 멱살을 잡고는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콰아앙!
둘은 손도 쓰지 못하고 바닥에 꽂혀 버리면서 몸이 튕겨 올랐다.
그러자 나는 락셀의 허리를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등뼈가 부러지는 소리.
이어서 나는 도마 위의 생선을 내려치는 것처럼, 예렌을 손날로 내리쳤다.
빠각!
예렌이 팔로 막으려고 들었지만, 팔뼈가 박살이 나고 이어서 가슴까지 충격이 간다.
예렌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토하고.
락셀이 급하게 몸을 돌리면서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퍼벅!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락셀의 가슴과 배를 두드렸다.
퍼버버벅!
소리가 갈수록 늘어 간다.
“아아아아아아!”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처럼, 갈수록 내 연타 속도가 빨라지고 몸의 피가 엄청나게 끓어오른다.
빠바바바박!
강건한 사자의 육체가 내 주먹에 박살 나고 부러지고, 파괴된다!
락셀이 주먹을 한 번 휘두르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서른 발의 주먹을 꽂아 넣었다.
락셀이 고통스러운 포효를 지르는 순간 나는 날아오르면서 놈의 턱을 무릎으로 올려쳤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
이어서 나는 몸을 회전, 날아가려는 락셀의 가슴을 밟고는 바닥에 눌러 버렸다.
쿠웅!
평소처럼 염동력을 써서 가능한 게 아니다.
내 지각 능력과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슈퍼맨이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잡는다고?
지금 나는 총을 쏜 다음에 그 총에 내가 맞는 게 가능할 정도로 빠르다!
“커억!”
하지만 상대는 사도.
순식간에 나한테 치명상을 입었어도 예렌은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들었다.
그러자 나는 락셀의 팔을 잡고 휘둘러서, 예렌을 향해서 내리쳤다.
퍽!
완벽한 일격.
동시에…….
“큭.”
내 입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흔들린다.
당연하다.
인간의 몸에다가 드래곤의 심장을 박는다고?
경차에다가 F1 레이스용 엔진을 달고 달린 셈이다.
차체가 못 버티지.
“헉, 허어억.”
내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귀에 이명이 들리고 어질어질한 게, 나도 상태가 안 좋았다.
“컥, 커어억.”
“…….”
하지만 예렌과 락셀도 신음만 흘릴 뿐,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처럼 흑마력으로 몸을 때우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드래곤은 초차원생물(超次元生物).
방금 내가 가했던 육탄 공격들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그 너머, 영혼까지 때려 부수기에 그런 방편이 안 먹히는 것이리라.
“마, 말도…….”
“…….”
하지만 그래도 둘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고 들었다.
속에서 피가 터진 나도 상태가 안 좋았지만 검을 잡았다.
서로 그로기 상태.
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 강하시군요, 폐하. 설마 이런 수법을 숨겨 놨을 줄은.”
위이잉.
예렌의 뒤쪽.
검은 나선의 공간이 열린다.
전처럼 공간이동으로 달아나려고?
하지만 내가 또 초가속을 쓸까 봐, 예렌도 눈치를 보았다.
도망가려다가 잡히면 진짜 죽을 테니까.
한데 락셀이 예렌의 팔을 잡고는 뒤로 밀어냈다.
“……락셀?”
“…….”
락셀은 고개를 가로젓더니만 품에서 칼날을 꺼냈다.
내게 보란 듯이 내미는 칼날.
손바닥만 한 크기.
파군의 칼날이었다.
“…….”
무언.
하지만 락셀이 뭘 말하려는지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렌은 멈칫하고는 말했다.
“잠깐, 락셀. 뭘…….”
휙!
락셀은 말하는 예렌을 저 너머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공간이 닫혔다.
정적.
락셀은 자기가 남을 테니 예렌은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는 그걸 받아 주었고.
어차피 내 몸도 정상은 아니라서, 둘을 잡으려다가 외려 내가 당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어쩌다 말도 못 하게 된 거냐.”
“…….”
락셀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애당초 수인이었던 놈이, 머리 자체가 털북숭이 사자가 되어 있었다.
절대로 좋아서 저랬을 리가 없다.
“이 둔한 놈아. 왜 그랬냐.”
“…….”
락셀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마력을 불러일으키며 주먹을 쥔다.
나도 말없이 칼을 잡았다.
결전.
나와 락셀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퍼버벅!
이미 승부는 났다.
락셀은 척추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몸속이 엉망이었지만 마력은 넘쳐 난다.
내가 날려 보낸 탐랑과 녹존이 연이어서 락셀의 가슴을 꿰뚫었다.
“…….”
비틀거리는 몸.
하지만 락셀은 최후의 힘을 짜내서는 내게 달려들면서 주먹을 뻗었다.
강맹한 공격.
나는 거문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했다.
정적.
락셀의 주먹은 내 얼굴 앞에서 멈췄다.
“락셀.”
“…….”
락셀은 손을 내렸다.
줄줄 흘러내리는 피, 더 이상 거동을 못 한다.
나는 장승처럼 선 놈을 멍하니 보았다.
방금 공격, 힘이 빠져서 관둔 게 아니었다.
뻗다가 알아서 멈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냐?”
“…….”
“네가, 너와 예렌이 이제 와 나를 배신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이놈이 잉어를 잡았다면서, 나에게 바치겠다고 온 적이 있었다.
정신력이 바닥나서 내가 픽픽 쓰러지니까 몸보신을 해야 한다면서.
제국의 기라성 같은 장군이라는 놈이, 직접 강에 뛰어들어서 잡아 왔다.
전우인 나를 걱정해서.
“락셀.”
“…….”
락셀은 그저 눈을 감고 고개만을 저었다.
묵묵히 내게 머리를 숙이고, 잘 안 움직이는 팔을 시간을 들여서 움직인다.
제국군의 경례.
“…….”
이 녀석은 살아서는 나를 믿고 인류를 위해서 싸웠고.
죽어 버린 지금도 그 뜻은 변치 않았다.
“……그래, 알았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런저런 말.
하지만 전우를 보는 내 가슴이 말하고 있었다.
이 두 녀석이 죽음이 두려워서 칠죄신에게 영혼을 바친 게 아니라고.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알겠다, 락셀. 쉬어라.”
“…….”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나는 웃으면서 락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다시 봐서 기뻤다.”
“…….”
락셀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뚝. 뚝.
사자의 얼굴에서 흘러넘치는 눈물.
락셀의 몸이 발끝부터 서서히 바스러진다.
나는 막막하게 전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
“그래, 내가 다 할 거다. 그러니 안심하고…….”
락셀의 팔, 몸까지 다 사라져 간다.
내가 두드리던 어깨마저도 흩어지고.
―죄송합니다, 폐하.
마지막에는 머리까지 사라졌다.
정적.
혼자 남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어라.”
깊은 밤.
달과 별이 전우를 보내 주고 있었다.
부디 가는 길이 편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틀 뒤.
제칼의 일은 다 끝났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본래 병원에 입원해야 할 부상이다.
하지만 나는 2대 황제 후보, 내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돌면 정치적인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제칼에도 신분을 숨기고 활동했고.
그래서 나는 치료약으로 일단 치료하고 간이 병실로 만든 호텔 객실에서 쉬고 있었다.
“아, 이제 슬슬 퇴원하자. 언제까지 내가 수액 맞고 있어야 해.”
“……아버지.”
내 침대 옆에 앉은 오르카가 탄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골백번은 죽었어요.”
“그래서 2급 치료약 먹고 내려왔잖아. 무리 좀 한다고 안 죽어.”
“의사가 기겁하던데요? 장기 다발적 손상이라고.”
“적에게 입은 부상이 아니다.”
오르카는 어이없어했지만 사실이었다.
내가 격발시킨 드래곤의 심장, 그게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준 거다.
30초도 안 된 순간에, 전신의 내부가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이딴 걸 인간 몸에 달다니, 그 여자가 제정신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진짜 미친 짓을 하네.”
“예?”
“됐다. 너 일은 좀 괜찮냐?”
오르카가 푹 한숨을 쉬었다.
“형이 앞장서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더 걱정인 게…….”
“뭔데?”
“……애들이 알고 놀라고 있어요. 리세라 누님하고 메이호 누나가 오겠다는 거 일단 막았습니다. 제칼은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이니까 안 된다고요.”
“야, 애들이 어떻게 알아?”
내가 제칼에 온 것도 적당히 둘러대게 했는데?
오르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됐어요. 황후분들도 다 오셨어요. 렌시엘 어머니까지도요. 중앙대장군 레릭 님도 오려고 하셨지만 오드벨하고 아르센이 막았습니다. 지금 다들 난리입니다.”
“…….”
보통 렌시엘이 경거망동은 안 된다면서 황후들을 잡아 눌렀을 텐데.
그럼 전원 다 제칼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정작 이 객실 겸 병실에는 오지 않아서 난 몰랐는데.
“그럼 제칼의 정보 통제는 네가 하는 거냐? 황후들이 호텔에서 머무른다는 거 완전히 비밀로 하게?”
“예, 뭐 별장 있으니까요. 혹시 모르니 소문은 최대한 막고 있습니다.”
“미안하다. 너한테도 못 할 짓 시키는구나.”
“……됐어요. 뭐.”
황후들이 특별하게 오르카에게 뭐라 말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오르카로서도 황후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고 나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했다.
“황후들 전부 황도로 돌아가라고 해라. 돌아가서 이야기 들어 준다고 해.”
“예?”
“나비린이 말하는 거 보니 억울하고 자기들도 할 말 있다는 투였다. 원래는 가능하면 확인 안 할 생각이었는데 방법이 하나 생각이 났다.”
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
예렌과 락셀.
그리고 이런저런 게 걸린다.
“계속 일이 부딪치고, 상황이 복잡해지는 걸 보니 결국 정리는 해야겠구나.”
“……아버지,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가 나와도 너희들이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오르카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내가 쓰러졌어도 이번 사건을 아주 훌륭하게 처리했더구나. 둘 다 정말로 잘 컸다.”
“아닙니다. 저야 형을 거든 거죠. 형이 정연하게 정리한 덕분에 제칼이 금방 안정을 되찾고, 마피아 녀석들을 입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냐? 미레이는 괜찮지?”
“……으음.”
오르카는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상처도 없고 무사하다고 합니다. 다만 나비린 어머니 쪽이 불안불안해서, 일단 아버지 이름을 대고 말리기는 했는데요.”
“야, 아니야. 나하고 미레이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오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비린 어머니는 평소에는 침착하신데 아버지 일에는 워낙 감정적이시잖아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미레이 씨에게는 사람을 좀 붙여 뒀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따로 좀 말씀해 주세요.”
“괜한 일까지 거들게 해서 미안하다.”
“아버지가 뭘 미안하다고 하세요. 괜히 좀 그런데.”
“그래.”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했다.
“예. 더 하실 말씀은요?”
“아멜리아 보고 싶다.”
“오셨는데요?”
멈칫.
내가 깜짝 놀라는데 오르카가 말했다.
“아버지가 손님 들이지 말라고 해서 막고 있지만 오셨어요.”
“……얼른 데려와. 정중하게, 조심스럽게.”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오르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남은 건 자질구레한 일들이니 저희들에게 다 맡기고 쉬세요, 아버지.”
“그래, 알았다.”
오르카가 나가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예렌과 락셀의 타락.
적어도 칠죄신에게 아양을 떠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락하면 칠죄신의 종이 되는데, 사도지만 칠죄신이 직접 강림하지 않았어. 놈에게는 좋은 기회일 텐데…….”
내가 그간의 일을 떠올리는데 문이 열렸다.
익숙한 발소리.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은회색 머리카락의 메이드가 나를 내려다본다.
빤히.
아무 말 없이.
“…….”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멜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양손으로 잡아 주었다.
“도련님.”
“응.”
“……도련님.”
아멜리아는 눈을 감고는 내 손에다가 자기 뺨을 문질렀다.
새끼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는 그제야 안도한 어미처럼.
절실하게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벌려 보였다.
“아멜리아.”
“…….”
아멜리아는 망설임 없이 나를 안아 주었다.
굳세면서도 작은 몸.
나를 어머니처럼 길러 준 메이드는 말없이 그저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나 역시도 그저 말없이 마주 안아 주었다.
이걸로 충분했다.
때론 많은 말보다는 몸짓 하나로 족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